극한 처지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려 애쓰지 말라. 하나님은 그대를 위로하기보다 그대가 인내하기를 더욱 힘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로는 피로한 육체와 영혼을 잠시동안 쉬게 할 뿐이지만 인내는 장차 당할 무수한 시련 속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는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를 적게 받는 것은 우리에게 탓이 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기에 언제나 우리가 그 위로를 받을만한 때에 아끼지 않으시는 고마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위로를 주시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은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기에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위로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이 더욱 나빠질 수 있기에 그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자격이 그대에게 있다고 여기는가. 그대의 죄 값은 더욱 큰 고통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애통할 만한 이유를 찾지도 못하는 자가 자신 아닌가. 참된 성도들은 눈물을 흘릴 줄 아는데 우리가 눈물을 흘릴 만한 죄를 찾지 못하였다면 누가 곧이 듣겠는가. 너무나 죄에 깊숙이 빠져있기에 죄를 죄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소경이 바로 우리들이다. 선한 사람은 애통할만한 이유를 충분히 찾아낸다.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통찰할수록 더욱 슬퍼하게 된다. 사람이 철저하게 회개할 때는 세상 만사가 비통스럽고 씁쓸해진다.
하나님께 값싼 위로를 구하지 말라. 신앙의 수련을 힘들어하여 그것을 회피하여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대역 무도한 죄를 짓는 것이다. 수련이 없으면 실패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시험을 당하거나 괴롭고 우울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수련을 해야할 때로 여기고 계신다.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주시는 하나님이신 데도 불구하고 그분이 응답을 하지 않고 계실 때 우리는 초조해하지 말고 우리에게 아직 그의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은혜는 받을 준비가 되어있을 때 부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 맛을 알려면 피조 세계에서 위로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자는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만족하여 불평이 없게 된다. 그때에는 무엇을 얻었다고 좋아하거나 무엇을 잃었다고 슬퍼하고 낙심하지도 않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즐거이 핍박당하셨거늘 그대는 어이 이를 마다하며 낯을 변하여 괴로워만 하는가. 그분의 뜨거운 사랑을 조금이라도 맛보았다면 자신의 편리나 불편 따위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모든 어려움을 즐거이 받으리라.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자는 정신적으로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사람이 냉담해지기 시작하면 작은 수고도 싫어하고 외부의 위로에만 눈독을 드리게 된다. 사람은 긴 세월 동안 내적 투쟁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온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는 인간적인 위로가 무척이나 달게 느껴진다. 인간적인 위로나 감각의 즐거움 대신 가혹한 시련이나 그리스도를 위한 고역을 달게 느낄 줄 알라. 그러나 때로 하나님께서 영적인 위로를 주시면 감사와 겸손으로 받아라. 교만하지 말고 너무 기뻐 날뛰지도 말며 무엇을 과분히 바라지도 말라. 은총을 받을 때는 황송하게 여기고 그대의 행위에 있어서 더욱 각별히 주의하라. 왜냐하면 그러한 시기는 지나가기 마련이고 시험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로가 끊어졌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 그럴 때는 겸손과 인내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려라. 하나님은 보다 큰 위로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자는 이러한 섭리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신앙의 선배들은 모두 이런 유형의 은총을 경험하였음을 알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이기심이나 자아애와 섞이지 않는 그런 순수한 사랑의 힘은 얼마나 막강하랴. 언제나 위로만을 추구하는 자는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현세의 것들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영적인 사업에 골몰하라. 정말로 마음이 가난하고 모든 피조물의 위로에서 해방된 자만이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있다.
어떠한 약을 쓰거나 위로를 해도 그대가 당하는 고통을 없애거나 완화시킬 수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위로 없이 고통을 참아내는 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요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서 환란을 당함으로 그대가 보다 더 겸손하게 되는 것을 가르쳐주시려 함이다.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을 그대로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께서 당한 고통을 깨닫지 못한다.
현세의 삶에서는 수많은 역경이 불시에 찾아오기에 우리에게는 인내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짜서 자신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우리 생애에 전쟁과 슬픔을 모면할 수는 없다.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시험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러한 평화가 아니라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나아갈 때 얻는 진정한 평화이다. 만약 그대가 이 정도의 괴로움을 참아낼 수 없다면 앞으로 겪게될 불같은 시련을 어찌 견디겠는가. 이 세상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평화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말라.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울며 괴로움에 허덕이기 일쑤다. 이 세상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지 않거나 조금만 겪는다고 생각지 말라. 아주 행복해하는 사람도 다른 이가 전혀 상상치 못하는 괴로움이 있는 법이다.
평화와 참된 자유를 얻는 길은 자신의 뜻을 행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힘쓰는 것이다. 언제나 많이 가지려고 하지말고 적게 가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언제나 낮은 자리를 취하고 모든 이에게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서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대가 만일 이러한 것을 지키면 그토록 쉽사리 곤란을 격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자주 불안과 혼란을 느낄 때마다 이 말씀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희망이요 유일한 위로는 온갖 환란에 처하여도 당신께 나아가서 당신께 의탁하고 당신께 호소하여 당신의 위로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여! 피조물에서 비롯되는 모든 일시적인 위로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나를 위하여 나의 악과 힘차게 싸우시는 분은 무능한 내가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 당신이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께서 주시는 평안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과 더불어 있게 되고 수많은 인내 속에 내재한다. 그대는 모든 일에 임할 때 언행에 주의하여야 한다. 온 정신을 항시 주님의 뜻을 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 주님 외에는 어떠한 것도 얻으려 하지말고 구하지도 말라. 조금도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나 조금도 마음이나 육체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현세의 삶에 속하지 않고 영원한 안식 상태에 속한다. 그러니 그대가 아무런 거북스러움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참된 평안을 찾았다고 여기지도 말며 어떠한 역경도 없다고 해서 만사가 잘되어간다고 여기지도 말라. 또 만사가 그대의 뜻대로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을 완전하다고 생각지 말라. 그대가 대단한 믿음과 몰입의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여기지도 말라. 인간의 발전이 이런 류의 것으로써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대는 순조로움이나 역경의 때에나 마음을 들뜨지 않게 유지하고 항상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한결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대는 그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 되고 꾸준히 소망을 지닌 채 인내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라. 그렇게 됨으로 그대에게서 혹 내적 위로가 없어져도 그보다 더 큰 괴로움을 참아낼 각오를 가지게 된다. 비록 그대가 어떤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라. 그럴 때에 그대는 비로소 참되고 올바른 길을 걷게 되며 엄청난 기쁨으로 주님을 맞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철저하게 자신을 멸시하는 경지에 도달하면 현세의 삶에서 가능한 최대의 평안을 누리리라.
위로를 얻기 위하여 바라거나 생각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그것을 이 세상에서 기대하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기대해야 한다. 영혼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라. 현세에 속한 것을 무절제하게 탐하다가는 영원한 하늘 나라의 것들을 잃게 되리라. 현세의 것을 필요에 따라 쓰되 마음은 항상 영원한 것을 갈망하여라. 특히 인간의 위로를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라. 모든 인간적인 위로를 받지 않고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 진리에서 비롯된 내적 위로만이 축복할만한 참된 위로이다. 당신의 위로가 없을 경우에는 당신의 뜻과 나에 대한 시험 그 자체가 가장 큰 위로가 되게 하여주소서.
그대는 언제나 열성적으로 덕행을 쌓아 나갈 수는 없거니와 더욱 더 높은 수준의 묵상을 계속해 나갈 수도 없다. 때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다가도 때로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비참한 자신의 신앙 상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대는 어차피 죽게될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싫증과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대는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육신이라는 부담스러운 짐을 지고 자주 한탄하기 마련이다. 이는 그대가 영적 수련과 하나님에 대한 묵상 기도를 꾸준히 하지 못한 까닭이다. 따분한 현세의 삶과 마음의 메마름을 끈기 있게 참는 것이 유익하다.
우리는 주님의 위로를 받을 자격이 없거니와 어떠한 영적 은혜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지 않고 어둠 가운데 그대로 버려 두셔도 마땅하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심하게 그리고 자주 거역했고 여러 가지로 크게 죄를 범했으므로 벌을 받고 고통을 당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아무리 잘 생각해도 우리는 지극히 작은 위로조차 받기가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마땅하지 못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고마우시고 인자하신 주님은 당신의 선하심을 깨우쳐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방식을 초월하여 위로를 베풀어주신다. 주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베풀어주실 만큼 우리가 무슨 일을 하였을까. 우리는 아무런 선한 일도 행한 기억이 없으며 언제나 죄를 범하기 일쑤였고 회개하는데도 항상 지체하였다. 우리는 온갖 벌과 경멸을 받아 마땅하고 주님의 백성으로 불리는 것조차 부당하다. 그러나 주여!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가 어둠의 땅 곧 죽음의 그늘로 뒤덮인 그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동안이라도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시어 자신의 처참한 신세를 괴로워하게 하소서. 당신은 불쌍한 죄인에게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겸손하게 되는 것 외에 더 무엇을 요구하시겠나이까. 진실한 회개와 겸손에서 비로소 죄를 용서받을 희망이 생기나이다. 죄를 겸손히 회개함은 주께서 받아들일만한 일로써 그것은 당신 앞에서 유향의 향기보다 더욱 감미로운 향기를 뿜어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면 사람의 위로가 무슨 대수이랴. 그러나 사람의 위로는 물론 하나님의 위로가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꿋꿋이 참고 기다리는 것은 또 얼마나 위대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