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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곳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에 대해서
성모님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이 세상이 나약해지거나 왜곡된 신심으로 혼란에 빠져있을 때 자주 발현하셨다. 성모님의 발현 당시의 모습과 어떠한 메시지를 주시는지 발현지와 시대적 배경, 그리고 발현 모습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멕시코 과달루페
1531년 12월 9일은 멕시코가 스페인에 정복 당한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정복자들의 폭정에 시달리던 원주민들이 이교신의 모친을 위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였다. 과달루페란 말은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란 뜻의 인디언 말이다. 성모님이 '과달루페의 성 마리아로 불리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주셨는데 이 말이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옮겨져 순례지의 명칭이 됐다.
성모님의 모습은 인디언의 피부에 장미빛 옷과 푸른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손은 합장한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이었으며 스페인 식민치하에서 맨 처음 입교한 원주민 중 한명인 55세의 환 디에고에게 발현했다.
성모님은 환 디에고에게 “나는 평생 동정이며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한다.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동정심을 보여주도록 정성을 다해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 바란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디에고의 망토에 성모님의 모습을 새겨주었다. 발현 후 7년 사이에 800만명의 인디언들이 개종했고 전 미주대륙에 복음화의 기틀을 잡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 파리 뤼드박
1830년 프랑스 파리의 뤼드박에서 발현. 이때 프랑스는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사회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신심이 사라지고 있었으며,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고 있는 시기였다.
성모님의 모습은 지구위에 서서 두 팔을 활짝 펼치셨으며 뱀의 머리를 밟고 하늘색 망토를 두르셨으며 흰옷과 흰 베일을 쓰고 계신 모습이셨다. 성 빈첸시오 데 바울로의 '사랑의 딸' 수녀원 청원자였던 성녀 카트린느 라부르에게 발현했는데 당시 성모님 주주변에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들이 기적의 메달이라 부르는 메달도 보여주셨는데 앞명에는 성모님의 발현 모습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영어의 마리아 첫글자인 M와 십자가가 있으며 글씨 밑으로는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사랑을 뜻하는 하트가 나란히 새겨져 있는 메달이다.
“십자가가 멸시를 받으면 모든 인간은 더욱 고통에 잠길 것이다. 내가 보여준 모상 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 또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도 큰 은총을 충만히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메달은 급속도로 보급되었고 이를 통해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이라 불리게 됐다. 24년 후인 1854년 비오 9세가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했고 카트린느는 1947년 7월 17일 시성됐다.
▶▷프랑스 라 살레트
1846년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의 라 살레트에서 발현. 이때는 과학의 발달로 신앙이 뒷전으로 밀리고 자유사상가와 무신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성모님은 순백색의 부인복에 황금색 앞치마를 둘렀다. 어깨에는 장미술이 달린 망토를 걸치고 장미 면류관을 쓴 모습으로 1846년 9월 19일 토요일 프랑스 남부 라 살레뜨의 산기슭에서 멜라니 칼바트(15세 소녀)와 막시민 지로드(11세 소년) 두 어린이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께서는 "나는 너희들에게 매우 중대한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여기에 왔단다"라고 말씀셨으며 발현중 내내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 라 살레뜨에서의 성모님 발현은 발현 후 5년이 되는 1851년 9월 19일에 성교회로부터 인가되었다.
성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 밝히고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쳐 하느님과 화해하라. 내 말을 잘 들으면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 했다. 그 중에서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과 예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을 특별히 지적하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큰 흉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무시했으나 1846년이래 혹독한 흉년이 들어 유럽에서 100만명 이상이 굶어죽고 각종 혁명과 폭동이 일어나고 1870년 보불전쟁까지 터지자 회개의 순례객이 몰려들었다.
▶▷프랑스 루르드
1858년 2월 11일 프랑스 루르드 서쪽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에서 발현. 19세기 들어 극심해진 자유주의 사상 등의 영향으로 지식층의 교회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있었던 시기이다.
성모님의 모습은 흰옷을 입고 푸른색 허리띠를 둘렀으며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가난한 농부집안의 딸로 읽지도 못하고 쓸줄도 못했던 14세의 베르나데트에게 19회 발현하시면서 말씀해 주셨다.
자신을 ‘원죄없으신 잉태'라고 밝힌 성모님은 "회개하라. 회개하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땅에 입을 맞추어라…"라고 말하며 기도와 보속, 생활의 회개를 촉구하고 특히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매년 수백만명이 순례하고 있고 수천 건의 기적이 일어났다.
▶▷프랑스 퐁멩
1871년 1월 17일 프랑스 쁘리따뉴 메엔느 북쪽의 작은 마을 퐁멩에서 발현. 프러시아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웠으며 퐁멩의 청년 39명이 전쟁터로 떠나게 된 시점이었다.
허리띠 없이 별이 빛나는 짙은 하늘색 부인복에 검은 면사포를 쓰고 있었다. 핏빛의 그리스도가 못박힌 붉은 십자가를 양손에 잡은 모습으로 군에 간 형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기도하던 12살의 유젠느 바르바뎃트와 11살의 요셉에게 발현.
하얀 깃발에 “나의 어린이들아 언제나 기도하라. 하느님께서 곧 너희들의 기도를 들으시리라. 나의 아들은 너희 기도를 즐거이 허락하신다"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1월 28일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징집되어간 39명의 마을 청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아일랜드 녹
1897년 8월 21일 서부 아일랜드의 녹에서 발현. 가혹한 식민지 형법과 엄청난 소작료 등으로 착취당하며 대기근이 휩쓸고 있어 고통받고 있던 시기였다.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른편에는 성 요셉이, 왼편에는 사도 요한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제대 위에는 어린 양이 있고 그 주위에는 천사들이 돌고 있는 광경이 6~75살 마을 주민 15명에게 발현.
말씀은 없었지만 발현모습을 통해 구원의 위대한 주제를 알려주고 있다. 어린 양의 신비와 함께 성모님은 교회의 원형이라는 모습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성 요한은 교회의 옹호자요 전파자, 성 요셉은 부성적 사랑, 제대 뒷편의 십자가는 희생, 제대는 신앙에 필요한 힘의 원천을 계시하며 무엇보다 미사성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1979년 발현 100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다.
▶▷포르투갈 파티마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레이리아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서 발현. 세계 제1차 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발현 때마다 조금씩 달랐으나 흰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묵주를 든 양손은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선 모습으로 가난하고 순박했던 양치기인 루치아(10세)와 사촌동생 야친타(7세)와 프란치스코(9세)에게 여러 차례 발현했다.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 밝히고 세계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칠 것, 죄인을 위해 희생할 것, 성모성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러시아를 나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보속의 영성체를 하라…"고 말했다. 1917년 10월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1942년 10월 교황 비오 12세가 전 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성심께 봉헌했다.
▶▷벨기에 보렝
1932년 말 벨기에 남부 보렝에서 발현.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으며 주민의 반 이상이 공산주의 사상에 현혹돼 있어 지역이 전체적으로 냉담상태였다.
흰옷에 황금관을 쓰고 양손을 들어 티없는 황금빛 성심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9~15살의 다섯 아이들에게 발현했다.
‘원죄없이 잉태된 티없는 동정녀', ’천주의 모친 하늘의 여왕'이라 밝히고 “기도하라. 기도하라. 많이 기도하라.…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겠다.… 나의 아들을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희생을 바쳐라"고 요청했다. 보렝의 주민들이 냉담을 풀었고 첫해 순례자가 200만명이 넘었다. 병의 치유와 함께 영적인 치유와 죄인들의 회개가 줄을 이었다.
▶▷벨기에 바뇌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독일 국경에 인접한 벨기에 바뇌에서 발현. 히틀러 가 정권을 잡던 혼란된 시기였다.
루르드에서의 모습과 같이 흰옷에 푸른 띠를 두르고 있었다.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이고 합장한 채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비신자였던 12살의 마리에트 베코에게 발현했다.
자신을 ‘가난한 자의 동정녀'라며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고 밝히고 기도를 많이 하라고 요청했다. 1천개 이상의 성당이 '병자의 성모' 등의 호칭으로 봉헌되었고 바뇌 성모 국제기도회원이 전세계에 수백만명을 넘었다.
●● 성화에 담긴 영성 l 기도하는 성모
이 성화는 코라 구세주 수도원 성당에 들어서서 중앙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 두 번째 회랑 우측 둥근 지붕 아래에 위치합니다. 이 모자이크는 우리에게 강복을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제작되어 있는데,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 성모님이 손을 들고 우리를 위한 기도를 예수님께 바치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성모님과 여러 성인들이 머리를 숙이고 손을 들어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그리스어로 ‘데이시스’라 합니다. 데이시스는 ‘열(列)’ 또는 ‘행렬(行列)’이라는 뜻으로, 종교 용어로는 기도, 간청 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기 함께 싣지는 못했지만 성모님의 머리, 시선, 손은 모두 그 옆의 주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때처럼 성모님은 우리들의 어려움과 원의를 그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바로 이 모습으로 언제나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 기도하시고 전달해 주십니다.
성모님의 머리와 양 어깨에 그려진 금빛 별은 지난 1월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모님의 동정을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그리고 성모님 왼쪽 위의 ΜΡ(어머니)라는 글자는 그 반대편에 파손되어 그 일부만 보이는 ΘΥ(하느님의)와 함께, 여기 묘사된 분이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 즉 성모님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