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상대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아니고 도덕적 상대론도 아니며 인식론적 상대론(epistemic relativism, 인식론적 상대주의)이다.
극단적 상대론에 따르면 진리 또는 객관적 지식에 대해 떠드는 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객관적 지식에 이를 수 있는 방법론은 없다. 따라서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없다. 과학자들이 모범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믿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은 과학자들이 경멸하는 점성술이나 혈액형 성격론과 인식론적 지위에 있어서 다를 바 없다. 물리학자들은 뉴턴의 역학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더 진리에 근접했다고 주장하지만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방법론이 있다는 믿음은 환상일 뿐이다.
만약 극단적 상대론을 일관되게 지지한다면 인식적론인 측면에서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어떤 가설을 입증할 방법도 반증할 방법도 없으며, 두 가설의 우열을 가릴 방법도 없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 논하는 것은 다 부질 없는 짓인 것이다.
그런데 극단적 상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편리할 때에는 극단적 상대론을 포기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들은 이런 면에서 위선적이다.
과학 사회학자(sociologist of science)들 중에 소위 “강한 기획(strong program)”이라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과학의 역사를 좌우하는 것은 진리 추구가 아니라 이런 저런 사회적 요인들이다. 왜냐하면 객관적 지식을 세울 수 있는 제대로 된 기준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이 진화 생물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이유는 그것이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이론이기 때문이 아니라 즉 객관적 지식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경쟁을 강조하고 도태한 자들을 나몰라라 하는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본주의-정당화 가설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자연 선택이 강력한 이론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졌다는 가설을 강력한-이론 가설이라고 부르자.
이런 과학 사회학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도 자연 선택 이론이 진화 생물학계에서 정설이 된 이유에 대한 가설을 하나 만들어보겠다. 이것을 루소-야훼 가설이라고 부르자:
20세기까지도 여전히 서구 문화권에서는 야훼 신을 섬기는 기독교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서구 문화권 사람들은 야훼에게 “선택”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호강할 것인지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인상 쓰고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을 품고 있다. 그들이 설사 의식적으로는 “나는 아훼 신을 믿지 않아”라고 생각하더라도 무의식 수준에서는 그런 불안감에 시달린다. 왜냐하면 개인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진보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그러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루소의 외침이 사람들의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물론 두 번의 세계 대전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자 착취, 환경 오염 등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도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 선택”은 야훼에 의한 “선택”과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론이다. 적어도 자연 선택 이론은 그 이론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선택”과 “자연”에 대한 강력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20세기 후반이 되면 사실상 모든 진화 생물학자들이 자연 선택 이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강력한-이론 가설과 자본주의-정당화 가설과 루소-야훼 가설 중에 어떤 가설이 자연 선택 이론이 진화 생물학계에서 인기를 끌게 된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것일까?
극단적 상대론을 주창하는 과학 사회학자라면 당연히 세 가설 중 어떤 것도 입증될 수도 없고 반증될 수도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또한 세 가설 중에 어떤 것도 다른 것에 비해 인식론적으로 우월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정당화 가설이 옳다고 이야기한다. 적어도 자본주의-정당화 가설이 강력한-이론 가설이나 루소-야훼 가설보다는 더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위선이다.
이번에는 환경 오염에 대한 정책이나 법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다이옥신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있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이런 물질을 함부로 배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제초제·살균제 또는 다른 시료를 생산할 때 불필요한 부산물로 생기는 일련의 화합물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화합물 중 가장 독성이 강한 것들의 하나이며 인간에게 발암 위험이나 또 다른 질병을 야기할 수 있으며 제초, 살균제 이외 쓰레기 등의 소각 등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B%A4%EC%9D%B4%EC%98%A5%EC%8B%A0
그런데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현대 과학이다. 그리고 극단적 상대론에 따르면 현대 생리학이나 현대 의학 역시 현대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믿음일 뿐이다. 현대 생리학이 원시 부족의 주술보다 낫다고 볼 이유는 없다.
만약 정말로 극단적 상대론을 받아들인다면 다이옥신을 규제해야 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규제는 부당하다고 주장해야 한다.
극단적 상대론자 집 근처에 다이옥신을 엄청나게 배출하는 공장이나 쓰레기장을 만들어 보시라. 그들의 위선이 금방 들통날 것이다.
건축물 안전에 대한 규정은 결국 현대 물리학 이론에 의존한다. 하지만 극단적 상대론에 따르면 현대 물리학은 야훼 신에 대한 믿음보다 나을 것이 없다.
건축물 안전에 대한 규정을 몽땅 어기면서 집을 지은 다음에 “저는 정말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하느님께 집이 무너지지 말라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이 집이 무너질 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집에서 살아 보라고 이야기해 보라. 그들의 위선이 금방 들통날 것이다.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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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