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둥지
한 인 석 (수필가)
“꼬꼬댁 꼬꼬꼭. 꼬꼬댁 꼬꼬꼭”
벚꽃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청풍호의 구불구불한 강변도로를 따라 고향집에 당도하니 뒤꼍에서 마치 장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요란스럽게 목청을 돋구고 있는 닭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차던지 나도 모르게 발길이 소리나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실하게 생긴 누런 암탉 한 마리가 소 외양간 구석 짚단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짚북데기 속에다 알을 낳은 모양이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하는 터라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다가가 닭이 다른 곳으로 가길 기다렸다가 짚북데기를 헤쳐보던 난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질 광경을 목격했다. 어두컴컴한 그 속에는 굵직굵직한 탐스러운 달걀이 족히 한 바가지는 될 듯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엄연히 커다란 닭 둥주리가 있어 다른 닭들은 모두 거기에다 알을 낳는데 유독 이놈만이 숨어서 알을 낳은 까닭은 무엇일까? 행여 제 알을 품어 병아리로 깨고픈 모성본능 때문은 아닐는지.
여기까지 생각하니 어릴 적 기억이 불현듯 생각나 그 중에서 방금 낳은 듯한 따끈한 알을 골라서 유리컵에 톡 깨어 넣고 보니 노른자가 절반도 넘는 것 같았다. 여기에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꿀꺽 마셨더니 식도를 따라 따끈하게 전해지는 감촉이 어릴 적 먹던 생 달걀 맛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같이 입맛에 맞는 인스턴트 음식들이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해도 입에 벤 어릴 적 길들여진 입맛은 지울 수가 없는가 보다.
지난여름 연분홍 봉숭아 꽃잎이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흐드러지게 달렸던 고향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비쩍 마른 모양의 이상하게 생긴 닭들이 뒤란과 이어진 야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저것이 닭인가 괴물인가 할 정도로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아홉 살 짜리 아들놈이 E․T 닭이라고 하루종일 따라다닐 정도로 벼슬은 희끄무레해 가지고 눈은 초점 잃은 동태눈 같고 모가지와 꽁지 털은 다 빠져서 마치 털 뽑다 도망쳐 나온 생 닭처럼 비슬거리며 뛰어다녔다.
어머니께 이유를 물어본 즉, 양계장에서 알을 다 빼먹은 폐계 닭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한 마리에 이천원 씩 팔고 있기에 다섯 마리를 샀더니 덤으로 한 마리를 더 주더라고 했다. 도저히 닭 구실을 못할 것 같은 모양새를 보고 내가 “저런 쓸모 없는 닭을 뭣 하러 샀느냐” 고 어머니를 책망했더니 빙긋이 웃으며 하시는 말씀. “넉넉잡아 석 달만 기르면 토실토실 살이 올라 토종닭처럼 맛있는 닭이 될 꺼 라고” 하시던 기억이 생각났다.
아니 그럼 그때 그 비쩍 마르고 털 빠진 닭이 이렇게 토실한 닭으로 변해 알을 낳고 있단 말인가? 그렇구나. 어머니 말씀대로 그토록 볼품없던 늙은 닭들이 이렇게 효자노릇을 할 줄이야 …
삶의 환경이 바뀌면 이처럼 신기한 일이 일어날수도 있구나. 이는 곧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무언의 암시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양계장의 돌아서지도 못할 만큼의 좁은 공간에서 가공된 한가지 먹이로 더도 덜도 아닌 똑같은 정량의 배급을 받아먹으며 마치 알 낳는 기계와도 같이 하루 한 개의 알을 어김없이 생산해야만 했던 닭이다.
닭의 운명이 원래 그런 것인 줄로만 알고 오직 먹기 위해 살아가던 늙은 닭은 이렇게 또 한번 변화를 겪으며 제2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토정 이지함 선생이 이곳 금수산에 은거할 당시 풍수지리상 금계포란 (金鷄抱卵)형 이라 했다고 전해지는 닭 계 자 (鷄) 에 알 란 자 (卵)의 이름을 가진 조그마한 마을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것이 멀리서 보면 천상 닭이 둥주리에서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예로부터 집집마다 닭을 유난히도 많이 길렀던 것 같다. 70년대 초에는 도시락 밥 위에 계란 후라이 하나만 들어있어도 모두들 부러워할 정도로 계란은 귀한 것이었던 것 같다. 난 가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른들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닭장으로 들어가곤 했다. 알 둥주리에서 생 달걀 두 개만 몰래 꺼내서 삼거리 구멍가게에 가져가면 라면과자나 알사탕을 마음대로 바꿔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달걀의 가치가 이렇게 높았으니 닭고기는 귀한 손님이 오시던가 명절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좀처럼 맛볼 수가 없었던 특별한 음식 이였으나 닭을 많이 기르던 우리 집에서는 가끔 닭고기 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이른봄 아들녀석이 학교 앞에서 달달 떨고 있는 제 주먹만한 노랑 병아리 두 마리를 사왔다. 밤새 병아리 삐악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나서 이튿날 궁리 끝에 들은 이야기가 있어 전구를 연결해 불을 켜서 상자 안에 넣어 따뜻하게 해 줬더니 그 다음부터는 신기하리 만큼 잘 자랐다.
밖에 내어놓으면 재롱도 떨며 한달 쯤 되니 제법 날개와 꼬리도 나오고, 물먹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이들이 안고 다니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학교에 갔다오면 매일같이 쌀을 불렸다가 잘게 부숴 참깨를 섞어 먹이를 만들고 온갖 정성을 다 들였는데, 어느 날 따스한 기온이 아파트 앞 화단에까지 내려앉자 세상구경을 시켜준다고 밖에 내놓았다가 그만 실종되고 만 것이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아이들이 찾아 다녔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이튿날 한 마리는 죽은 채로 발견되고 또 한 마리는 영 찾지를 못했다. 짐작 컨데 도둑고양이가 물어간 듯 싶다. 아이들이 한동안 대성통곡을 하더니 화단에 묻어줬다고 한다. 직접 체험하는 것으로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려다 오히려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만 심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찐했다
짚북데기 속에 알을 낳고 목이 터져라 소리치던 암탉을 보니 저 닭도 이런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을 텐데…, 용케도 살아나 양계장으로 팔려와 평생 알을 낳는 것으로 밥값을 하다가 늙어 그것도 제대로 못하게 되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헐값에 내 팽개쳐졌다는 생각을 하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생전 먹어보지 못했던 고소한 애벌레며 나긋나긋한 풀잎 같은 것들을 배불리 먹고, 너른 야산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날개 짓도 해보고 그 동안 몰랐던 자유를 한꺼번에 누리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계생무상 (鷄生無常) 이 아니고 또 무엇이랴 !
알을 낳고 그토록 크게 소리친 것도 어쩌면 그 동안 좁은 공간에서 날갯짓 한번 해보지 못하고 마치 「계란제조기」처럼 살아온 날들에 대한 한 서린 울음소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장하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목청껏 외쳐라. 네 속에 있는 서러움을 목이 터지도록 토해내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거라”
이는 우리네 인생사와도 별반 다를 데가 없는 것 같다. 한 직장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다 바쳐 일했건만 나이 들어 별 도움이 안된다고 헌신짝 버리듯 양계장의 늙은 닭처럼 등 떠밀려 내몰린 오십 고개 우리의 가장들.
그들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그동안 못했던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저 닭처럼 벼슬을 세우고 목청을 돋우며 얼마든지 무지갯빛 삶을 설계할 수 있으리라.
“나는 자유다. 지금부터는 내 맘대로 산다” 라고 외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