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쟝>
12월 12일. 아침에 눈을 번쩍 뜨니 5시 30분. 급히 준비해서 어두운 계단을 도둑고양이모양 살금살금 내려와 택시를 잡아탔다. 상하이역에 도착하여 전날에 기차시간표를 보고 미리 써두었던 메모지를 꺼내었다. '07:49 出發 →11:08 到鎭江'.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다 표를 받아들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혼잡한 역 앞에서 한참 기다리다 플래포옴으로 나갔으나 기차표에 기차 號數가 적혀있지 않아 여승무원에게 물었더니 그냥 타라는 시늉을 했다. 왠지 굉장히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우리나라 새마을호의 친절했던 여승무원이 떠올랐다.
상하이 출발 07:49. 곤산, 수저우, 무석, 상주, 단양을 거치는 동안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상하이나 충칭의 임정청사가 베이징의 자금성(紫金城)보다 더 귀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구경하노라니 시간은 벌써 11시 반을 넘었고 곧 전쟝에 도착했다. 일단 오늘 돌아갈 기차표부터 예매했다. 아침에 서두른 통에 배는 고파오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길은 막막했다. 일단 박물관부터 가야겠다싶어 택시에 올랐다. 이곳의 택시는 대체로 상하이나 항저우보다 허름했고 요금도 싼 편이었다. 겨우 박물관에 내렸는데 점심시간이라고 1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허탈한 마음에 되돌아 천천히 내려오는데 길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린 배부터 채우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鎭江市 西郊賓館이라는 꽤 그럴싸한 곳이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건물 2층에 식당이 있었는데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약간 소란했다. 중국식으로 이것저것 시켰는데 혼자 먹기에 민망할 정도로 많이 나왔다. 상하이보다는 인심이 후한 것일까? 혹시나 하여 목원소학교를 물어봤는데, '잘 모른다'고 했다. 다시 '수륙사항(水陸士巷)로를 아느냐'고 했더니, 지도에서 찾아주었다. 유아원이름도 '아는 대로 다 써보라'고 했더니, '李家大山幼兒園', '機關幼兒園'이라고 쓰기에 궤관유치원으로 들었던 이름이 '機關'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어 위치를 확인하니 수륙사항로와 비슷하게 일치했다.
사실 필자는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깊이 연구하지도 않은 입장이라 임정이 전쟝에 있었을 때 어디에 기거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모른다. 단지 한국인이고 중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기에 임정관련 지역을 둘러보고 싶어 몇 가지 책을 찾고 임정관련 다큐멘타리를 구해 보고 자료를 수집했다. 다큐멘타리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고 좋았으나 그곳을 직접 방문하고자하는 사람에게는 약간 부족한 면이 있었다. 관련지역의 위치가 지도상에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고 한국식 발음으로만 방송된 부분이 많았다.
임정요인들이 항저우로부터 이곳, 전쟝에 온 시기는 1935년 10월경이었고 수륙사항 58호 기관유아원자리에 여장을 푼 것으로 되어 있다. 목원소학교와 임정요인과도 관계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1925년 박병강이 항일에 관한 연설을 한 것으로 되어 있고 1935년 임정요인들이 다시 이곳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또 전쟝박물관에는 박병강의 글씨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수륙사항으로 갔다. 「大市口」라는 곳에서 내려 수륙사항로(水陸士巷路)에 도착하여 차례로 번지를 확인하며 가다가 결국 58번지를 찾았는데 아파트형 건물이었다. 약간 실망하여 뒤를 돌아가 보니 유치원이나 관공서 비슷한 건물이 보여 서편으로 돌아가니 정말 반갑고도 반가운 이름. '市及機關幼兒園'이라고 적혀진 명패가 나타났다. 얼키설키 꼬인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잠겨진 대문 틈새로 한 컷 찍고 돌아 나오면서 혹시나 목원소학교가 이곳 어디에 있는가하여 이곳 저곳 두리번거리며 나오다가 건강로(健康路)라는 곳에서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이 있어,'木園小學'이라고 쓰며 아느냐고 했더니 '木園'이 아니라 '穆園小學'은 있다고 해서 '정확히 어디냐'고 했더니 지도에는 표시하지 못했다. 일단, 유아원 위치라도 다시 확인해 보기로 하고 되돌아가던 중에 군부대가 하나 있었는데 부대명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해방군 342423부대였던 것 같다. 여하튼 이 길이 산문구가(山門口街)였고 이 길과 수륙사항(水陸士巷)길이 만나는 지점에 상가가 있고 이곳에서 20-30m만 들어가면 바로 '市及機關幼兒園'이다.
목원소학(穆園小學)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고 메모장을 보였는데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택시가 왔길래 물었더니 역시 '모른다'고 하여 난감하였다. 일단, 택시라도 타고 찾아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올라탔다. 아무래도 목원소학이 오래되었을 것 같아 제일 오래된 小學으로 가자고 했더니 팔차항소학(八叉巷小學)으로 데려다 주었다. 들어가 살펴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그곳 관리인에게 목원소학을 물었더니 보탑로(寶塔路)에 있다며 아까 그 택시 운전자에게 설명해 주었다. 택시 운전수는 그래도 잘 몰랐는지 복잡한 시장길을 헤치며 물어 물어 어느 골목까지 와서는 그냥 '들어 가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골목길을 들어섰고 작은 학교를 지나 보탑횡로(寶塔橫路)가 끝나고 양가문(楊家門) 17호라고 적힌 집 옆에 목원소학(穆園小學)이라고 명패가 걸려 있었다. 반가워하는 것도 잠깐,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옆 문방구,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잠깐 볼 수 없느냐'고 통사정을 했으나 일요일이라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야속한 마음이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밖에서 몇 컷 찍고 돌아 나와 박물관으로 향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박물관 옆 백선공원(伯先公園)에서 맞은편 길, 대용왕항로(大龍王巷路)로 들어섰더라면 목원소학을 훨씬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쟝박물관은 벽돌건물로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다. 공사중이라서 그런지 전시 유물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전쟝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초기(AD205-220) 수도였다. 박병강의 글씨를 찾으려고 살폈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전시 유물을 구경하다가 뜻밖에 '靑瓷博山香薰'이라는 자기(瓷器)를 보았는데 특이하게 우리나라 '百濟大香爐'〔금동용봉봉래산대향로〕에 조각된 산 모양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백제대향로는 찬탄을 자아내기에 손색이 없다.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비의 어느 瑞氣가 어린 새벽, 교묘하게 또아리를 튼 영험한 향나무 꼭대기에 신령스런 길조가 앉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전쟝이 백제와 가까웠던 오나라지역이였기에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차후에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시간이 약간 남을 것 같아 박물관을 빠져 나오자마자 전쟝의 명물 금산사(金山寺)로 향했다. 날이 어둑해 오는 것 같아 먼저 자수탑(慈壽塔)에 올랐다. 맨 위층에 올라 바라보니 북(北)으로 장강(長江)이 유유히 흐르고 서(西)로는 탑영호(塔影湖)의 물결이 잔잔했다. 다시 천천히 경내로 내려왔는데 맨 뒤쪽부터 자수탑, 장경루(藏經樓), 대웅보전(大雄寶殿), 정문순으로 사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이하게 정문건물 중앙에는 팅팅하게 살이 오른 노승상(老僧像)을 모셔놓고 좌우주변에 사천왕상을 비치시켜 놓았는데 그 크기가 장대했다. 금산사 서편 하천을 건너 탑영호로 가서 천천히 거닐며 바라다 보이는 자수탑은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택시를 타고 나오는 길에 그윽한 그 모습이 아쉬워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렸고 아스라히 언덕을 넘어서고야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전쟝은 우리로서는 여간하여 가보기 힘든 곳이지만 꼭 다시 한번 방문하고픈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