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이전 유형 가치, 사회구휼-중생제도의 공간 가치
구례 국포고택 안채·사랑채와 곡성 성륜당 안심당·육화당을 건립과 이건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그 의미를 정리해 보겠다.
첫째, 구례 국포고택 사랑채는 1920년, 안채는 1922년에 상량을 한 건물로, 안채는‘ㅡ’자형 가옥으로, 실용적인 가옥 구조이며, ‘사랑채’는 ‘T’자형 가옥으로 상이한 구조형식을 취하고 있다. 건립의 연대나 건립자도 정확히 알 수 있고 전통한옥과 근대기양식이 변용된 비교적 규모가 큰 민가이다.
둘째, 건립자 김택균과 아들 김종필는 대를 이어가면서 고아원 운영, 주민 구휼 등 사회사업과 자선 사업, 금란회 같은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하는데, 그 활동공간으로서도중요한 의미가 있다.
셋째, 1980년대에 곡성으로 이축하는데 일부 부재만을 제외하면 원형 그대로 옮겨 왔다. 종도리의 장혀에 기록된 당초 건축때의 상량 기록 부재가 그대로 사용한 점 등에 원형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근대기 한옥 건조물의 건축적, 유형적 특징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구례 국포 고택이 민가 건물이고, 성룬사 승당은 종교 건물이지만 용도나 기능에 있어서는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의미가 크다. 구례 국포고택은 김해김씨가 인물들이 사회 구제사업을 했던 공간이었고, 아산 조방원선생의 이축기에는 예술향수의 공간, 성륜사 승당으로서는 중생제도의 성소로 기능하고 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본질적으로 사회구제-문화향수-중생제도는 인류애 실천의 보편적 이념이기 때문이다.
8) 공동수, 1950년생. 광주 동구 산수동 거주. 2017.6.24. 김형수와 성륜사에서 면담한 내용을 정리.
9) 김형수와의 면담에서 공동수목수는 당시 구례 국포고택 안채와 사랑채의 건립연대는 100여년이 넘을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건 전 안심당(구례 국포고택 안채, 1984)
이건 후 안심당(곡성 성륜사 안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