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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응석받이로 키워서 버릇이 없어졌다?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아이가 정말로 원해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경우와,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제멋대로 말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요구할 때, 가능하다면 물론 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정말 원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제멋대로 말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처럼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으면서 제멋대로 요구하는 것은 자신에게 관심을 좀 가져주라는 요구입니다.
부모의 무관심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구가 항상 거부된다면 어떻게 될까? 부모를 원망하며 문제아가 되던지,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 도취자(Narcissist)가 되어갑니다. 그럼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부모는 계속해서 제공하게 됩니다. 이 경우, 아이는 점점 제멋대로 버릇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어떤 물건이 아니라 엄마의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얻지 못한 채, 스스로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는 자기 도취자가 되어 갑니다. 또한 '버릇없는 어른'으로 성장해 갈 것임은 뻔 한 이치입니다. 그것을 보고 엄마는 "그렇게 제 뜻을 받아줬는데도..." 하고 말합니다.
그럼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까요? "저 사람은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제멋대로 키워서 저렇게 되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어른이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부모가 너무 응석받이로 키워서 아이가 저렇게 버릇없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전혀 잘못된 말입니다. 버릇없는 어른이 된 경우, 부모가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부모가 응석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응석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즉,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주의를 끌고 싶었을 때, 부모의 주의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응석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라는 요구는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할 뿐입니다.
'불안정한 애착'이란 애착이론 연구의 권위자인 보울비가 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응석받이로 자라 제멋대로 하는 어른이 되었다"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함으로서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이를 너무 응석받이로 키워서 제멋대로 된 아이들은 없습니다. 즉, 응석의 욕구를 해소시켜주지 못해서 제멋대로 된 아이가 된 것입니다. 응석의 욕구는 응석을 받아주면 해소됩니다. 아이를 제멋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은 부모의 무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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