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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09.15.PM7시)
유마경 불국품
보적의 게송
한 2분 내가 빨리 시작했다.
오늘은 유마경 시간인데 어떤 스님이 기도에 대해서 질문을 해왔다. 이것은 한국 불교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서 기도에 대한 정안(淨眼)스님의 질문인데 여기에 대해서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는데 여러 마디 말씀드리고 유마경 본강의에 들어갈까 한다.
*
내가 하나도 누른 것이 없는데 내 컴퓨터에는 채팅장이 안뜬다. 여러분 이름이 안뜨니까 조금 섭섭하다.
신도님들 창에는 다 뜨니까 그렇게 알고 시작하겠다.
기도에 관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정안(淨眼)-
안녕하십니까, 어른 큰스님.
질문도 질문다워야 대답할 맛이 나신다고 언젠가 큰스님께서 법문에서 하신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여 질문을 드리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너무 수준이 낮은 질문이라서 도리어 어른 큰스님의 기분만 언짢게 해드리는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금일도 화엄경 강설을 읽고 해설을 해주시면서 어른 큰스님께서 “내 마음 떠나서 달리 없다.”“내 마음과 내 정성을 담아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절 한자리를 한다.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부처님이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기도란 마음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 선조 임금의 정비였던 의인왕후께서 왜 자녀를 두지 못했던 것인지 그걸 생각하자니 기도에 관해서 궁금증이 들어서 큰스님께 여쭙게 되었습니다.
어른 큰스님께서도 아시는 왕비시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대로만 말씀드려도......
그 누구보다 순수한 모성애로 자녀 하나 두기를 간절히 발원하며 전국에 왕비가 시주하지 않았던 원찰이 없었고 매일같이 불경과 염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며 후궁의 자녀들까지도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녀처럼 아끼고 궁궐 나인이나 무수리에게조차 한번도 화를 내어 꾸짖는 법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조차 투기하는 법 없이 모두에게 후덕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대했고 그 사랑에 치우침이 없었다고 합니다.
기도도 열심히 드리고
보시도 열심히 하시고
신구의 삼업도 청정하게 자신을 잘 다스리셨던 분이시면
기도의 가피가 빠르고 분명했을텐데
남자가 아이를 임신해서 낳아 보고 싶다는 기도도 아니고
원수가 죽기를 발원하는 기도도 아니고
삶은 밤에서 싹이 나기를 바라는 기도도 아니었는데
어째서 이런 분이 그 소원 하나 이루지 못했을지 생각해보면서 제가 부처님이라면 아이 하나 점지를 해주고도 남았을텐데...... 하면서 드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위에 사연들을 길게 적고 두 가지 질문을 체계적으로 하셨다.
<<첫번째 질문>>
이처럼 아주 불가능한 기도를 드리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이 분명하고 간절한 가운데 복도 잘 쌓고 계행까지 잘 지킨 기도임에도 누군가는 원의 성취가 더디더라도 이루어지는데 누군가는 끝끝내 원을 이루지 못하는 기도가 있는건 왜 그런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기도, 우선 부처님 법에 과연 기도가 있는가?
이것부터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도 문제가 저도 참 궁금했었다.
기도는 평생 우리 불자들의 숙제다.
요즘은 씨베타(CBETA대장경) 라고 대장경을 1분안에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그 기능을 이용해서 ‘기도’를 검색해 보니 팔만대장경에는 기도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었다.
불교종류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 근본불교, 부파불교, 소승불교 대승불교, 비밀불교, 참 많다.
그리고 또 중국으로 넘어와서 선불교, 그다음에 국가가 어려울 때는 호국불교 그러다 보니까 사람의 바람이 많이 생기게 되고, 각자 바라는 바를 이루어 달라고 기도불교 복을 구하고자 하는 하는 마음에서 기복불교, 기도불교나 기복불교나 다 빌 기(祈)자 기도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불교가 있다.
역사가 그렇다 보니 중간에 그렇게 불교가 생긴 것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처음부터 생긴 것은 아니다.
솔직히 선불교도 부처님 당시 때 생긴 것도 아니고 호국불교 기복불교 기도불교 비밀불교 이 모든 것들이 다 부처님 당시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불교가 아니다 할 것은 또 아니다.
그런데 특히 한국불교에서 기도를 참 좋아하고 많이 하는데 기도가 ‘내가 바라는 바대로 어떤 문제를 걸어놓고 기도를 했는데 그게 성취되느냐 안되느냐’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기도 성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꽤나 많다.
그런데 부처님은 무엇보다도 깨달으신 내용이 모든 법은 인연으로 좇아 생기고 인연으로 좇아 사라진다.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이런 것을 철칙으로 알고 그렇게 깨달으셨고 그렇게 가르치셨다.
모든 것은 전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간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이 돌아간다.
개인의 문제나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문제나 세계적인 다행이나 불행이나 이런 등등이 전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지 아니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 인과의 법칙에 벗어나서는 사실 우리가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가 난처한 점이 많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을 보면
<<두번째 질문>>
몇일전 어른 큰스님께서 유마경 강의를 하시면서 기도를 하는 것도 세상사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부닥치게 되고 좌절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부닥치면서 느끼는 고통을 덜 느끼고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의인왕후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서 드는 궁금증이
☆ 기도란 개인의 간절한 원을 발하면서 그 원 때문에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그 원을 이루지 못했거나 현실속에 아픔을 느끼는 상황에서 덜 고통스럽고 빨리 아픔을 털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드리는 것이 기도인지 기도의 의미와 기도인의 자세에 대해서 어른 큰스님의 한마디 듣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후자다.
물론 제 말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그렇게 믿지는 마시기 바란다. 다른 특별한 안목의 설명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제 소신대로 말하자면 저는 후자다. 기도는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어떤 문제 때문에 기도한다면 거기에는 바라는 바가 있고, 바라는 바가 있으면 고통이 있게 된다. 결국은 그 아픔, 고통 그것을 소멸하기 위한 것이 기도다.
예를 들어서 자식을 얻기 위해서 기도했다. 결국은 그 사람이 자식을 얻으면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자식을 못 얻으니까 마음이 불안하다, 고통스럽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아닌가?
마음에서 고통스러운 것이 없고 더 이상 바라는 바가 없으면 그것으로 해결이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다.
기독교 성경 같은 데서도 예를 들어서 큰 돌이 물에 가라앉았는데 큰 돌을 보고 ‘돌아 물 위로 떠라 물위로 떠라 빈다고 돌이 물에 뜨겠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잘 알지 않는가?
모든 것은, 모든 법은 인과의 법칙이고 연기의 법칙대로 돌아간다고 하는 사실이다.
제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고심을 많이 하고 다른 큰스님들은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가를 두루 찾아보기도 했었다. 어떤 스님들은 기도를 전문으로 설명하는 책도 쓰신 분들도 있고 그렇다.
그런데 대만의 불광산사 큰스님께서 기도에 대해 어떤 신도가 질문하였는데 그에 대한 대답을 하신 것이 아주 내 마음에 들었다.
‘기도는 무엇을 불러오는가?
기도는 부처님께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신심을 일으키는 일 아니냐? 기도를 많이 하면 신심이 증장한다.’
그랬다.
아들을 못 낳는 아들을 낳게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자녀를 공부 잘 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없던 땅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던 집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다.
기도의 결과는 신심이 증장하게 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열심히 관세음보살 찾는 사람은 신심이 증장하는 것이지 그 외의 것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때 얼마나 환희로왔는지 모른다.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문제를 그렇게 해결해 주셨다.
저도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광산사 조실스님이 확실하게 짚어주니까 내 마음이 아주 흐뭇했다.
그 원인은 그 결과를 가져온다. 불명호를 부르고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은, 신심이 증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바랄 것이 없다.
여기 선조 임금의 정비 의인왕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위에서 적었는데 그렇다,
자식을 낳고자 하는 것은 의학적인 문제이다. 불보살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그 정성을 다하는 공덕은 있다.
기도하는 그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 신심이 증장하고 부처님 앞에 아주 환희심이 나고 부처님을 위하는 신심이 증장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아들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의학적인 조건을 만들어 줘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른 이치라고 저는 생각한다.
내 말이 꼭 맞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 알고 있다.
우리나라 불교는 여러 종류의 불교가 있다.
일반 신도들의 경우는 한 7, 80프로는 기도불교다 이렇게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입시철이 되면 자녀들의 성적향상 합격 이런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머니는 절에 와서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기도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정말 기도해서 성적이 올라가고 좋은 학교에 합격이 된다면 학생이 와서 기도해야 될 것 아닌가?
남이 기도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을 것 아닌가?
또 제대로 할지도 알 수 없다. 남의 일이니까, 아무리 어머니라도 당사자만큼 하겠는가? 물론 하긴 할 것이다. 시간도 돈도, 들이는 공은 상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런데 당사자는 와서 기도하지 않는다.
한쪽으로는 기도를 안 믿는 것 아닌가?
기도해서 성적이 좋아진다는 것 솔직하게 안 믿는 것 아닌가? 좋은 학교에 합격된다는 사실, 그거 기도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저는 그런 이야기도 한 적이 있고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은 그럴 만한 조건을 우리가 만들어 주고 그럴 만한 조건을 제시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돌아오게 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이치다.
불교는 진리 아닌가. 참다운 이치가 진리다.
참다운 이치를 깨닫고 내가 못 깨달았으면 부처님께 배우고 경전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불교다.
그렇게 해서 그 참다운 이치를 우리가 마음속에 지닐 때 내가 어떤 문제에 당면했다면 그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그것은 과연 참다운 이치에 해당되는가? 안되는가? 이러한 것을 판단할 수 있다.
정말 이 기도문제는 우리 한국불교에서는 큰 문제이다.
제가 이런 소리 하면 어떤 사람은 듣고 ‘아 스님은 잘 모릅니다. 기도는 하면은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물에 가라앉아 있는 돌이 뜹니다.’ 이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뜨게 하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장비를 갖춰서 돌을 건져올리는 일을 해야한다. 그래야 돌이 뜬다.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 해결을 기도로써 하려고 하지만 제가 팔만대장경을 전부 검색을 했는데 기도라는 낱말이 하나도 없었다.
기도불교는 근래에 생긴 것이다.근래가 아니라면 아주 후대에 생긴다. 후대에 생겼다고 진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후대에 생겼어도 진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한 번 우리 상식으로 잘 심사숙고하고 검토해야 할 일이다.
저의 기도에 대한 소신은 이와 같다,
*
다음은 유마경 공부에 좀 들어가겠다.
어제에 이어서 보적의 게송이라.
보적이라는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 되겠다.
<3>
훼예부동여수미(毁譽不動如須彌)하야 어선불선등이자(於善不善等以慈)로다
심행평등여허공(心行平等如虛空)이라 숙문인보불경승(孰聞人寶不敬承)이리요
비방과 칭찬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수미산과 같고
선한 사람, 악한 사람 평등하게 자비로써 대하시니
마음과 행동이 평등하여 허공과 같아라.
사람 중의 보배를 듣고 그 누가 공경하여 받들지 않
겠습니까.
부처님을 이렇게 찬탄한다.
부처님은 비방과 칭찬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수미산과 같다. 부처님도 참 비방을 많이 들었다. 특히 이교도들에게 많이 들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 주의주장이 있었는데 부처님은 바른 이치를 설명하고 인과를 설명하고 연기를 설명하니까 거기에 수긍을 하고서 납득이 가서 평생동안 다른 종교를 믿던 사람들이 전부 부처님에게 한꺼번에 몰려왔다.
잘 아는 마승비구를 통해서 사리불 같은 이, 또 목건련 같은 이 이런 이들이 몇 백명씩 제자들을 데리고 부처님에게 귀의를 했다. 그들의 스승이었던 이들은 얼마나 욕을 하고 비난을 했는지 말도 못한다.
그런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제바달다 같은 이들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제바달다 같은 친척이 부처님을 어떻게 하더라도 모함하고 부처님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려고 별별 음모를 꾸몄다. 부처님은 거기에 대해서 수미산같이 까딱하지 않았다.
비난과 칭찬에 수미산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또 선한 사람, 악한 사람 평등하게 자비로써 대했다.
제바달다같은 이에게도 나중에는 ‘그대도 부처님이다, 그대로 불성이 있는 부처님이다’ 라고 수기를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제바달다 덕택에 나는 성불하였다’ 하면서 ‘제바달다는 나의 스승이다’ 라고 까지 했다. 대단한 표현이다.
제바달다와 부처님의 관계는 불교의 큰 숙제였다.
제바달다와 부처님의 원결관계를 법화경을 결집하는 분들이 해결했다. 그 큰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법화경의 제바달다품이다. ‘제바달다는 나의 스승이다 제바달다도 부처님이다’ 이런 엄청난 표현을 함으로 해서 제바달다와의 오랜 원결이 다 풀어졌다.
그것이 부처님의 덕화이고 부처님의 큰 마음이고 불교의 큰 마음임을 그런 데서 우리가 읽을 수가 있다.
금봉세존차미개(今奉世尊此微蓋)하니 어중현아삼천계(於中現我三千界)와
제천용신소거궁(諸天龍神所居宮)과 건달바등급야차(乾闥婆等及夜叉)하며
지금 이 작은 일산으로 세존께 받들어 올리나니
그 가운데 우리가 사는 삼천대천세계도 나타나며
온갖 하늘과 용과 신들이 사는 궁전도 나타나며
건달바와 야차도 나타납니다.
앞에서 일산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었는데 오백명의 장자들이 그것을 하나로 합치게 되고 큰 하나의 일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하나의 일산속에는 우리가 사는 삼천대천 세계도 나타나고 온갖 하늘과 용과 신들이 사는 궁전도 나타나고 건달바와 야차도 나타난다.
그 일산을 세계일개(世界一蓋)라고 제가 표현했다.
세계일화(世界一花)와 같이 온세상을 하나의 일산으로 다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산에 온 세상이 다 나타났다.
실견세간제소유(悉見世間諸所有)는 십력애현시화변(十力哀現是化變)이라
중도희유개탄불(衆覩希有皆歎佛)일세 금아계수삼계존(今我稽首三界尊하나이다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부처님[十力]이 연민으로 이러한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대중은 희유함을 보고 모두 부처님을 찬탄하니
지금 저는 삼계의 어른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장자의 아들인 보적이 이렇게 부처님을 표현한다.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연민으로 이러한 변화를 다 나타낸 것입니다’
부처님의 힘으로, 부처님이 중생을 연민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본다.
우리도 잘 되면 ‘부처님 덕입니다’ 라고 하지 않는가?
불자들의 그런 자세가 얼마나 좋은가?
그것이 신심이다. 비록 부처님이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해도 우리 불자들의 자세는 그런 것이다.
‘대중은 희유함을 보고 모두 부처님을 찬탄하니
지금 저는 삼계의 어른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다음으로 보적의 게송 4번이다.
<4>
대성법왕중소귀(大聖法王衆所歸)라 정심관불미불흔(淨心觀佛靡不欣)하며
각견세존재기전(各見世尊在其前)하나니 사즉신력불공법(斯則神力不共法)이로다
큰 성인 법의 왕은 중생들의 귀의할 바라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뵙고 모두 기뻐합니다.
각자가 세존을 뵙되 눈앞에 있는 듯하니
이것은 신령한 힘이며 특별한 법입니다.
이런 표현이 계속 많이 나온다.
‘이것은 신령한 힘이며 특별한 법입니다’라고 하였다.
큰 성인이고 법의 왕, 왕중왕 왕가운데 왕이다.
성중성 성인 가운데 성인이다.
중생들의 귀의할 바라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뵙고 모두 기뻐합니다.
각자가 세존을 뵙되 눈앞에 있는 듯하니
이것은 신령한 힘이며 특별한 법입니다.
불이일음연설법(佛以一音演說法)하시나 중생수류각득해(衆生隨類各得解)하야
개위세존동기어(皆謂世尊同其語)하나니 사즉신력불공법(斯則神力不共法)이로다
부처님은 한 가지 음성으로 법을 연설하시나
중생은 종류 따라 각각 알아듣고는
모두 세존의 말씀이 같다고 하나니
이것은 신령한 힘이며 특별한 법입니다.
끝의 후렴은 똑같다.
부처님은 한가지 음성으로 법을 연설하시나 중생들은 종류따라 각각 알아듣는다.
제가 오늘 기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지만 다 제가 설명한 대로 고대로 알아듣는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알아듣는다. 전부 그렇게 되어 있다.
다행히 제가 생각하는 것하고 아주 가까이 근접하는 이해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같다고는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는 ‘모두 세존의 말씀이 같다고 하나니’ 중생은 종류 따라서 각각 알아듣고는 모두 세존의 말씀이 같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신령한 법이며 특별한 법입니다’
불이일음연설법(佛以一音演說法)커늘 중생각각수소해(衆生各各隨所解)하야
보득수행획기리(普得受行獲其利)하나니 사즉신력불공법(斯則神力不共法)이로다
부처님은 한 가지 음성으로 법을 연설하시나
중생들은 제각각 이해하는 바를 따라서
두루두루 받아 행하여 이익을 얻나니
이것은 신령한 힘이며 특별한 법입니다.
대충 이렇게 읽어서 그 깊은 뜻이 마음에 착착 와 닿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정말 여러 번 읽고 듣고, 읽고 듣고 심사숙고 하고 음미하고 열 번 스무 번 되뇌어 봐야 할 경전의 말씀이다.
경전이란 대개 그렇고, 특히 유마경 같은 대승경전은 뜻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 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깊은 뜻을 다 담고 있다.
부처님은 한 가지 음성으로 법을 연설하시나
중생들은 제각각 이해하는 바를 따라서
두루두루 받아 행하여 이익을 얻나니
불교의 경전과 가르침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것은 전부 사람들 따라서, 이해하는 바에 따라 두루두루 이익을 얻는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인데 중생수기득이익(衆生受器得利益)이라고 다 자기 그릇 따라서 자기 지식 따라서 자기 마음 따라서 받아들인다.
나하고 조금 다르다고 절대 그것을 가지고 탓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각각 다른 안목과 다른 소견을 가지고 사는 증거이기도 하다.
불이일음연설법(佛以一音演說法)하시니 혹유공외혹환희(或有恐畏或歡喜)하며
혹생염리혹단의(或生厭離或斷疑)하나니 사즉신력불공법(斯則神力不共法)이로다
부처님은 한 가지 음성으로 법을 연설하시나
어떤 이는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기뻐하며
혹은 생사를 싫어하여 떠날 생각을 내고
혹은 의혹을 끊나니
이것은 신령한 힘이며 특별한 법입니다.
부처님은 한가지 음성으로 연설하는데 어떤 이는 두려워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기뻐하기도 한다.
여기에 제가 불교 최초의 재가불자가 된 사연과 또 재가불자로서 부처님앞에 맹세하는 내용을 인용을 했다.
오비구 다음에 부처님의 여섯 번째 제자가 야사라는 비구다. 야사는 아주 부잣집 아들인데 친구들하고 놀러나왔다가 부처님을 뵙고, 친구들은 모두 돌아갔는데 야사 혼자 부처님에게 귀의를 했다.
친구들이 돌아가서 ‘야사는 부처님께 귀의해서 그만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니까 야사 부모들이 부랴부랴 부처님에게 쫓아가서 자기 아들을 데려가려는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와서는 전후사정을 다 듣게 된다.
부처님이 ‘옳다 잘됐다’ 하면서 인생의 문제라든지 중요한 이야기를 다했다.
‘무슨 내용을 말씀하셨다’ 하는 것은 크게 드러나 있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부부가 야사를 데려가려고 왔다가 오히려 제자가 되어 재가불자로서 첫 제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재가불자로서 부처님을 다 잘 모시겠다고 하는 선언을 하게 된다.
재가불자임을 선언하는 그 선언문이 이런 내용이다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부처님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며
어둠 속에서는 등불이 되어주시고
눈이 있는 사람에게는 와서 보라 하시며
갖가지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부처님!
이제 저희 부부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 부부를 재가(在家) 불자로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불ㆍ법ㆍ승 삼보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참 근사하다. 야사의 부모가 출가한 아들을 찾으러 왔다가 이와 같은 신심을 일으켜서 부처님의 첫 번째 재가신자가 된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진실로 신령한 힘이며 특별한 법이다.
이거 한 번 더 읽고 끝내겠다.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부처님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며
어둠 속에서는 등불이 되어주시고
눈이 있는 사람에게는 와서 보라 하시며
갖가지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부처님!
이제 저희 부부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 부부를 재가(在家) 불자로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불ㆍ법ㆍ승 삼보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법승 삼보 그리고 재가불자가 구성이 되는 시간이 되었다
*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고 들어오신 분들 쭉 한 번 이름을 열거해 보겠다. 많이 들어오셨다.
지금 84분이 지금 시청하고 계신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동참하고 계셔서 너무 환희롭다.
제가 자주 말한 화중생련(火中生蓮) 이라.
어려운 상황속에서 또 우리가 이렇게 비대면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듯이 사람은 죽으라는 법 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뭔가 또 새로운 길이 얼마든지 있다. 절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마시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슬기, 그런 지혜를 이끌어 내야할 줄 믿는다.
*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더 빛나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항상 굴러가서
만중생들의 마음의 미혹을 다 걷어버리고
모든 존재 모든 법이 전부 이치에 의해서 생멸하고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잘 깨닫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
(정안스님이 기도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기도에 대해 좀 파격적인 소리를 한 것 같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할텐데 조금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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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의 이치를 얼마나 펼쳐야 저런 의문이 풀릴까?'
알량한 자기 보따리 버리고,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만 철칙으로!
아집을 버리고 스님의 설명을 철칙으로..........!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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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ㅡ기도는 信心과 직결되어 있다.
*야사 부모님의 재가불자 선언문ㅡ항상 되새겨야할 아름다운 글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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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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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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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