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별곡<461호> / 2020. 11. 16 (월) / 맑음
에어컨 한 대 놓아드릴까요?
○…시간보다 일찍 들어선 장성본당의 마당에는
가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성모동산과 성당주변에 잘 가꾸어 놓은 나무들은
계절이 농익어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쩜 그렇게 잘 돌보았는지 수목원에 온 듯하다.
이주민 미사시간까지는 아직 반시간도 더 남아 있어서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높이 달린 창문의 스테인드글래스를 통해 들어온
가을 오후의 햇볕이 제대 깊숙이까지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오래전에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숙제를 받았기에
늘 자리에 앉으면 바라보지만
내 눈에는 아무런 변화도, 반성도, 반응도 없다.
한참 바라보다 보면 졸리지는 않아도
눈은 어느새 스르르 감기고,
자세만 십자가를 똑바로 마주하며 게슴츠레 떴다 감았다 한다.
열려 있는 낮은 창문으로는 가을 바람이 슬금슬금 불어온다.
감실의 붉은 성체등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예수님이 얼마나 갑갑하실까?’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체가 적합하지 못한 곳에 보관되거나
방치된 것을 보면 몹시 마음 아파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이
조심성 없이 모셔지고 방치되어 있다면
소중한 곳에 모셔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아마 그 당시에는 미사 후에 남은 성체를
정성껏 보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프란치스코의 성체 공경은 유별나다.
성체가 지극히 거룩한 예수님의 몸이기에
그 성체를 만지는 사제는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예수님의 몸을 만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존경해야한다고 가르치셨다.
그 이후에 교회는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감실을 깨끗하고 화려하게 꾸미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는 예수님의 몸이다.
매 미사 때마다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마태복음 26,26)에 따라
면병을 축성하여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나누어 먹고,
남은 것도 예수님의 몸이기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감실에 정성스럽게 모셔놓는다.
보통 신자들은 감실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는 거의 없다.
일 년에 한번 성목요일에 빈 감실을 볼 수 있고,
매 미사 때마다 삐끔히 열어놓은 감실 속을
잠깐씩 멀리서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다.
신자들은 그저 성당에서 감실 안에 계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묵상을 한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났다.
우한 폐렴으로 집에 틀어박혀 있는 우리도 갑갑한데,
꽉 막힌 작은 감실 안에 계실 예수님은 얼마나 갑갑하실까?
‘아니야,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점이야.’
하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그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밀폐된 공간 안에 있으니 부패할까 걱정스러웠다.
바싹 건조된 살점은 밀폐된 공간이라도 괜찮을까?
그래도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가르침과 밀폐된 감실이
뭔가 조금 부조화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성체가 예수님이건, 예수님 몸의 한부분이건
아무래도 감실에
에어컨 한 대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아니면 창문이라도….
<461-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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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 대단한 발상입니다.
그 또한 사랑에서 기인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