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의 분화된 계급적 공간질서 에 대한 예시적 묘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구조는 그 상징적 특성들을 공간 속에 투영시켜 드러낸다. 또 역으로 공간은 계급의 분화된 모습, 즉 위계와 통제를 드러내준다. 안소니 기든스는 사회이론적 수준에서 이 글의 동기가 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ぢ계급사회에서 공간분화는 계급분화의 주요양상이다. 공간적인 계급분화의 주요양상중 하나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다양한 지역적 で계급분화と의 침전작용이다.っ
그는 사회 이론의 중요 쟁점 중의 하나로 위와 같은 계급분화에 따른 공간분화의 문제, 즉 공간적 현존과 부재의 문제를 제기한다. 즉 현대의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자연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관계가 표출되는 역동적 개념으로서 이해되며, 자본주의의 지배적 논리와 모순을 투영 혹은 생산해내는 장으로서 기능한다.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리적 결정론으로의 이행에 대한 우려, 사회구조라는 개념에서의 공간적 이미지의 강조로 인해 で공간자체의 중요성と으로서 충분히 강조되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위에서 제시된 이러한 で공간분화と의 문제의식을 추상적 사회이론의 수준이 아닌 구체적인 공간 텍스트의 분석을 통해서 경험적 수준에서 확장시켜보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공간을 で사회의 각 세력들에 의해 구조화된 의미と 즉 문화,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이해하며 이를 で읽고자 readingと한다. 다시말해 공간을 인공물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문화적 실천, 의식, 행동들이 수직적, 수평적으로 구조화된 텍스트로 간주하며 이를 で읽기と라는 일련의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의미를 설명하고자한다. 이러한 기호학적 방법은 사회를 질서잡힌 전체 체계의 모습으로 즉 법칙학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현실의 의미를 유동적으로 다시 말해 주체가 달라짐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생산되고 경쟁하고 갈등하는 장소로서 사회를 취급한다. 의미의 체계로 보여지는 사회적 현실의 구조화된 과정을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Ⅱ. 본 론
1. 공간의 역사 - 일상 도시공간의 사회적 형성
분석의 대상이 될 지역으로는 계급분화에 따라 위계화된 공간 구성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판단되어지는 서울의 한 지역을 (서초3동의 주거지역 일대) 표본적 분석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곳은 자생적, 전통적인 구도심의 주거지역이나 최소한의 주거공간마련을 위해 한치의 여유도 없는 과밀주택지역을 형성한 주거지역과는 매우 다르다.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원주민들-주로 도시빈민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아파트와 백화점 등 새로운 부르주아적 주거-소비-문화 공간이 형성된 것이다.
서초3동 일대는 원래 10여년 전만해도 화훼농가 밀집지역인 꽃마을과 도시빈민들의 판자촌이 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강남개발 붐의 막차를 탄 이 지역에서 이들이 생활의 터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대략 지하철이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철거되기 시작한 꽃마을과 판자촌들은 법원단지가 (흔히 で법조타운と이라고 불리움) 들어서자 - 그들 で원주민と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 대부분 철거되어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재 이지역의 경관을 이루는 것들은 고급 아파트, 백화점, 스포츠 센터,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이다. 이 새로운 터전위에 들어선 건물들과 그 안의 사람들은 이전의 그 땅의 점유자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도 구석에 몇 채의 판자촌들이 남아서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으나, 이들은 존재하지만 시선을 끌지는 못하는 공간이다. 새로운 부르주아적 도시공간이 이렇게 서울 시내에 한 블록 추가된 것이다.
이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분짓는 뚜렷한 경계선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몇가지 매개를 통해서 지역적 동질성을 확보한다. 소비의 동질성, 이동 (교통수단)의 동질성, 거주민들의 육체ㅗ정신의 동질성 등이 그 매개이다. 이러한 매개들을 통해 이지역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어진다.
で쇼핑센터と는 이름 그대로 이지역 소비의 중심 즉 지역구성원들의 삶을 규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で센터と의 역할을 한다. 스포츠 센터는 또하나의 중심이 되는데 이는 소비 공간에서 구성된 육체의 이미지를 で건강と이라는 내적 육체유지의 이데올로기와 접합시키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공간이 이 지역 주민들의 삶에 있어서 중심 공간이 되며 일상생활과 여가는 이들을 중심으로 주변의 부수적 소비공간으로 뻗어간다.
여기서는 이 지역의 공간구도 속에서 주요경관을 이루며 지역 주민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포섭하고 있는 대표적 공간들 (백화점, 스포츠 센터 및 편의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계급적 분화양상 및 이를 매개로 한 일상영역에서의 권력의 미시적 통제 양상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중심부 공간 (1) : 쇼핑센터
- 차별화, 위계화된 で소비의 유토피아と
백화점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종류의 상품을 부문별로 진열하여 파는 대규모의 소매점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백화점은 운영상의 특징으로 상품류별로 부문화하여 제조업자와 직거래함으로써 대량직접구매에 따른 저가구입을 꾀하고 이를 상대적으로 싸게 팖으로써 대량판매에 따른 상품회전 횟수를 높여 비용을 줄이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합리적 유통기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분석 대상으로 삼고자하는 백화점은 이러한 사전적으로 정의된 백화점의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부정하고 역으로 그것을 전도시킴으로써 분화된 계급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이곳으로 한 번 들어가보기로 하자.
서초동에 위치한 이곳 삼풍백화점은 여느 백화점과 달리 정문 출입구가 한산하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1층 정문 출입구로 백화점에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주변의 아파트촌에 사는 자가용 이용고객들이며 이들은 정문 출입구보다는 지하 주차장을 통해서 곧바로 백화점 매장으로 들어간다. 대중교통수단과 이 백화점은 잘 어울리지 않으며 따라서 백화점 앞 버스 정류장은 항상 한산한 편이다. 또 근처의 지하철 역에서 내려 걸어오는 이나 쇼핑백을 들고 지하철역에 서있는 이의 모습은 어쩐지 이 백화점의 이미지와 걸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정문으로 들어갈 때나 나올 때, 걸어서 들어가는 이들보다 그들 옆을 스쳐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가용차들이 더 많은 광경이 오히려 여기서는 자연스럽다. 이 백화점을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입구 자체가 소비공간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위계를 부여해주는 일종의 기호학적 검색기 역할을 한다. 일단 이 검색기를 통과하면 백화점 1층의 매장안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백화점의 구조는 1층에 커다란 호텔 로비같은, 벽면이 유리아트리움으로 장식된 공간을 가운데 두고 왼쪽으로는 백화점건물이, 오른쪽으로는 스포츠 센터, 은행, 병원 등의 복합건물이 양날개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문에서 곧장 연결된 호텔 로비같은 공간에서는 각 시즌과 자체 기획에 맞춰 특별기획된 상품들이 전시 판매된다. 여름에는 수영복과 골프용품, 겨울에는 で밍크코트 특별전と, で스키용품 특별전と 등이 적절한 시기에 맞춰 번갈아가며 열린다. 이는 1층 로비의 공간이 약간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계절상품에 대한 충동구매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비상설적인 매장은 이곳에 한정된다. 곧 백화점동으로 걸어들어가면 이곳에서부터 이 백화점 고유의 소비공간이 연출된다. 로비에서 왼편 날개건물인 백화점동은 이 지역의 상류계층의 고객들을 상대로 한다.
서울 특히 강남의 백화점들은 외국의 백화점들처럼 층수에 따라 상품의 가격대가 달라지는 수직적 분화 대신 백화점 전체가 나름대로의 계층별 고객층을 지니면서 수평적으로 분화되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이 백화점이 노리는 고객층을 위해서 그에 걸맞는 특징적인 디스플레이 기술과 최고급 메이커 선택의 판매전략이 요구된다. 1층과 2층은 여성고객들을 대상으로 한다. 백화점의 주요 공간인 1, 2층이 여성들에게 할당된 것은 아마 그들의 소비능력 내지 특권을 백화점이 높이 평가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1층은 외제 화장품, 수입의류, 보석, 악세사리 등을, 2층은 고급디자이너 의류 등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1층에서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외제의류, 화장품들은 그 곳에 있는 국산 제품들보다 보통 2,3배 내지 5배가까이의 가격차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곳은 백화점 1층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곳과는 다르게 크게 붐비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백화점이 풍부함의 상징이라는 말이 반드시 적용된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외제구두, 의류와 유명 디자이너들의 で작품と들은 매장에 그리 많이 진열되어 있지 않다. 고급품은 오히려 너무 풍부해질때 그 희소가치가 떨어진다. 진열대위에 올려진 구두와 옷은 그것이 그리 흔한 것이 아니며 소수의 선택된 구매자들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러한 희소성과 구매고객들에 대한 선택과 배제의 단적인 예가 이 당시 1층에서 열리고 있던 이벤트 중 하나인 で우수고객초대 보석전と행사이다. 손님은 왕이라는 모토가 지배하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고객들을 우수한 고객과 열등한 고객으로 구분, 평가해 선별적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이다. 우수고객은 평소 구매실적이 우수한, 그리고 그것이 백화점 신용카드에 성적표의 성적처럼 기록이 올라간 고객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과 희소성의 원칙외에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품의 신비감을 연출해주는 분위기의 조성이다. 상품들은 그 자체의 물질성이 아니라 상표의 희귀성과 그를 연출해내는 장소의 신비감에 의해서 고급품의 자격을 얻는다. 각 상표들은 그 이름에 알맞는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상징적인 디스플레이와 가구들을 통해 메이커의 특성을 부각시킨다. で폴로と매장은 원목가구를 통해 고풍스런 영국귀족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で크리스챤 디오르と는 밝은 조명에 모던한 가구배치를 통해 세련된 프랑스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공간 속에서 행사되는 권력은 고급의상에 대한 신뢰에 의거한 권력이다. 이들 상표에 최고의 값이 매겨짐으로써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자들, 즉 특정 (문화적)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은 이러한 수많은 관계속에서 특정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한 신입회원들 신참자들,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과 대립된다. 상품생산 영역에서의 대립은 그 상품소비 영역에서의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대립도 만들어낸다.
한편 차별화는 판매구매의 단순한 영역을 초월한다. 소비의 욕구를 고상한 문화적, 예술적 이미지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항상 준비된다. 백화점 4층의 특설매장 (정식명칭은 で삼풍아트홀と)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일정기간은 상품을 파는 특설매장의 역할을 하며 또 다른 기간은 문화행사가 개최된다. 이 당시 이곳에서는 で수입의류전と이 열리고 있었으며 며칠후에는 고객을 위한 음악회 공연이 열릴 예정이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얼마전 열린 で영국대전と과 같이 영국수입품의 판매와 왕실의상전시회 및 민속악단의 공연이 동시에 개최되기도 한다. 문화적 소비, 즉 소비행위가 예술인 동시에 예술이 소비되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에게 자극되는 욕구-ぢ당신은 문화인입니다. 고급예술에 걸맞는 고급의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っ 혹은 ぢ저기 서있는 영국귀족을 보십시오, 당신과 같은 정체성 없는 서울의 부르주아에겐 저런 で귀족적인 품위と가 필요합니다. 영국으로부터 직수입된 이 옷을 입어보십시오.っ- 는 소비행위를 통해 주체를 상품이라는 왜곡된 대상과 일치시킴으로써 해소된다.
이러한 개인적 욕구의 자극과정의 귀결은 바로 사물자체에 가치가 부여되고 다른 모든 것 (문화, 예술, 지시, 여가 등)에 사물로서의 가치가 부여되는 물신숭배적 논리, 즉 소비의 이데올로기의 강화이다. 문화사회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왜곡과 전도의 과정 속에서 보다 미묘한 기준에 의거한 사회적 서열이 이루어진다. 보드리야르의 지적대로 일상적인 재화를 소비하는 방식자체가 일종의 희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물은 공간 및 그 사물의 사회적 성격보다 덜 중요하다. 따라서 사물의 경우 균등화의 경향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균등화의 작용은 で공간と에 의해서 저지되고 공간속에서 강제된 차이의 질서, 즉 차별화의 기능이 작용하게 된다.
결국 소비는 하나의 차이와 위계를 생산해내는 계급적 제도이다. 소비가 사회적 관계를 균등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시.공간적 구조속에서 사회내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제품들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그것들의 집합적 배치와 전체적인 모습, 이 사물들의 서로간의 관계, 그리고 그것들의 전체적인 사회적 원근법만이 의미를 갖는다.
3. 중심부 공간 (2) : 스포츠센터
- 나르시시즘과 훈육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서 백화점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 바로 스포츠센터이다. 소비문화는 육체에 대한 양식화된 이미지를 끊임없이 증식시킴으로써 소비와 육체관리는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언뜻 보기에 백화점 1층의 의상코너와 지하 1층의 식품부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인 듯하다. 이 양 공간을 모순없이 연결시켜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스포츠센터이다. (많이 드십시오, 그래도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저 마네킹 위에 걸려있는 옷을 당신도 입을 수 있습니다.)
기율 (정해진 일과를 통한 육체관리)과 쾌락주의는 더이상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소비문화 속에서는 육체유지를 통해 육체를 복종시키는 것이 만족스러운 외모를 달성하고 육체의 표현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제시된다.
ぢ최고급 쇼핑과 함께 예술적 문화공간에서 레포츠 및 여유로운 휴식공간까지っ -
で21세기의 쇼핑문화공간と임을 자랑하는 이 백화점의 선전문구이다. 이곳을 찾는 많은 쇼핑객들은 구매고객인 동시에 백화점동 건너편에 연결되어 있는 스포츠센터의 회원이다. 이들은 쇼핑을 하러와서 볼일을 본 후 옆동으로 가서 운동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운동을 하러 왔다가 문득 구매의 필요나 충동을 느끼면 쇼핑을 할 수도 있다. 스포츠 센터를 규칙적으로 찾는 이들은 백화점도 역시 규칙적으로 자주 드나들게 되므로 백화점측은 스포츠 센터 자체의 운영으로 이윤을 챙기는 동시에 고정된 백화점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문제삼고자하는 것은 이러한 소비 - 스포츠 레저의 연계를 노린 백화점측의 교묘한 상술이 아니라 소비문화의 공간에서 한 영역을 차지한 이 레저, 스포츠공간이 어떻게 소비문화의 경향에 걸맞는 주체의 자기유지 -혹은 육체관리-의 방식을 체계화해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 스포츠 센터가 비록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쇼핑-문화-스포츠의 이상적인 복합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쇼핑공간에 들어가는 것만큼 쉽지않다. 이곳에서는 강남의 스포츠센터들이 대개 그렇듯이 한달치의 회원은 받지 않고 평생회원만을 받아들인다. 현대인, 특히 서울에 사는 이들에 있어 건강유지의 공간을 부여받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올림픽을 전후로 생긴 몇 군데의 (다분히 전시적 효과를 노린) 사회체육시설을 제외하고는 체육활동이 가능한 대부분의 공간은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이러한 다양한 레저 -스포츠 시설을 갖춰놓은 실내 스포츠센터라는- 공간은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며 노동시간으로부터 면제된 계층에게만 허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중상류계층에게 건강은 지상명제이자 어떠한 금전적 손익계산도 초월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이들에게 있어 ぢ건강이 최고야っ라는 절대적 진리명제는 ぢ건강을 위해서라면 돈은 문제가 안된다.っ라는 진리명제를 자연스럽게 도출하게한다.
일단 이러한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이곳에 들어가보도록 하자. 이 스포츠센터는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층은 사우나탕과 휴게실, 라커룸 등의 휴식공간이 자리하고 2층은 수영장, 골프연습실, 체력단련실, 에어로빅장 등이 배치되어 있다. 1층의 공간은 주로 휴식과 사교적인 기능에 맞추어져 있다. 운동을 전후하여 사람들은 사우나탕과 휴게실에서 담소를 즐긴다. 여기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은 대개 건강과 관련된 담화들이다. 의례적으로 상대방의 건강 상태를 묻거나 건강에 관계된 새로운 정보들을 교환한다. 자신의 육체관리의 필연성, 육체에 대한 소홀함의 자책 등은 이 공간에서 개인의 도덕성, 성실성의 준거와 연관된다.
본격적인 육체관리의 실천을 위한 공간은 2층에 마련되어 있다. 2층의 구조는 가운데 유리벽에 둘러싸인 수영장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에어로빅실, 골프연습실, 라켓볼장, 체력단련실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쇼핑을 하듯이 각 방을 둘러보다가 한 공간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또 각 공간들은 서로 다른 용도로 쓰임에도 불구하고 각 방들이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에게 시각적으로도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유리벽을 통한 공간 개방이 어떠한 미적 효과를 지니는지 모르겠지만 각 공간의 이용자들은 어떤 시설을 이용하든지 자신의 육체를 다른 이용자들에게 항상 드러내보여야 하는 동시에 자신 또한 다른 이들의 육체의 감시자가 되는 구조이다. 더 나아가서 체력단련실과 에어로빅실 등은 중앙을 향해 트인 유리벽 외에도 3면이 거울로 둘러싸여 있다. 운동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하면서 혹은 에어로빅을 하면서 사람들은 타인들뿐 아니라 자신의 육체도 거울을 통해 구석구석까지 감상 혹은 감시할 수 있다. 이러한 육체의 대상화 과정들 속에서 육체는 단지 건강유지를 위한 훈련의 장소를 넘어 자아도취 즉 나르시시즘의 장소가 된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의 과정은 상업화에 의한 물신화된 육체생산의 과정을 넘어서서, 자기의 육체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욕망을 생산함으로써 복합적인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생산한다.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감시는 이러한 거울과 유리벽을 통한 대상화 과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운동실 곳곳에 붙어있는 안내문과 지시문은 (예를 들어 で고혈압관리요령と, で운동전의 주의사항と 등 각종 금기와 지시) 예방의학의 지식에 기반하여 육체관리의 효과적인 요령과 금기를 제시하며, 자기건강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빈틈없이 꾸준히 자신의 육체를 점검해나갈 것을 요구한다. 부르주아적 육체관리는 표면적으로는 타율적인 규율에 얽매이기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습성에 따라 차별화되는 듯하다. 그러나 위의 문구에서처럼 모든 개인들에게는 예방의학의 체력기준에 따라 규정된 체력의 で함량と이 적용된다. 개인들은 맹목적으로 혹은 유희를 위해서 수영과 에어로빅을 하기보다는 궁극적으로는 체계적인 육체관리의 기준 속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자신이 で건강と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푸코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러한 예방의학의 체계적인 지식의 성장이 권력관계의 확장 그중에서도 사회공간에서의 육체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기제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고찰을 통해보건대 우리는 이 시대의 육체관리의 대표적 공간인 스포츠센터가 사회과정속에서 지니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육체가 개인의 취향과 습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관리된다기보다는 육체의 전시를 용이하게 하는 소비문화의 다양한 공간들속에서 나르시시즘적 욕망의 대상으로 물화된 육체,그리고 육체관리의 기준이라는 체계적 지식을 통한 통제의 매개로서의 육체로 길들여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4. 주변부 공간 : 편의점
- 24시간을 지배하는 공간
백화점이 격리된 공간속에서 で완전한 세계と, 즉 새로운 소비의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면, 편의점은 일상의 주거공간에 밀접하여 で축소된 완전한 세계と를 만들어냄으로써 또하나의 일상적 소비패턴을 창출해내는 전위부대 역할을 한다.
이 지역의 주택가와 상가를 지날 때 가장 눈에 자주 띄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요즘 급속도로 도시지역에 확산되고 있는 편의점이다. 백화점이 소비의 유토피아로서 소비왕국의 절대군주이긴 하지만 이 거인의 치명적 약점 중 하나는 시간적 제약이다. 이 약점을 파고들어 온 것이 소규모성과 공간운영의 유연성, 시간통제로부터의 자유의 장점을 갖춘 편의점이다. 그러나 백화점과 편의점이 적대의 관계는 아니다.오히려 백화점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에게 편의점은 그와 유사한 유형의 소비공간을 소규모로 축소해 24시간 제공함으로써 소비의 감각과 패턴에 있어 일관성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인 것에 더 가깝다.
첨단 유통정보시스템에 기반한 편의점은 유통기능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구매자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공간관리 기능에서도 첨단을 달린다. 편의점에서는 동네 구멍가게에서와 같은 어둡고 불결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밝은 조명은 다른 종류의 점포들보다 이곳을 훨씬 두드러지게 만들어주며 구매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특히 밤에) 길을 지나가다가도 편의점의 밝은 조명에 시선이 끌리게 되면 필요도 느끼지 않으면서 뭔가 살 것이 없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 또 내부를 환히 드러내보이는 유리벽을 통해 사람들은 물건 뿐 아니라 안에서 물건을 고르는 데 열중인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구매행위를 하는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유리벽을 통해 안팎으로 내보임으로써 자신을 주객관적으로 대상화한다. 따라서 편의점은 분산된 도시공간 곳곳에서 で소비하는 주체と를 구성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대부분이 거대자본 또는 외래 자본인 편의점은 도시전역 그중 강남지역에 밀집해 있는데 이러한 편의점의 공간적 확산과정은 마치 자본의 도시 게릴라전을 연상시킨다. 이것으로 볼 때 소득수준이 편의점이용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며 중산층이상의 생활양식에 편의점이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편의점의 차별적 분포 및 확산과정은 지역간의 분화된 계층구조를 소비공간을 통해 가시화시켜주는 예로도 이해될 수 있다. 결국 편의점은 일상생활의 자투리 공간까지도 で소비하는 인간と유형을 위해 이용하는 세련된 자본주의적 지배양식의 하나로 볼 있다. 이러한 공간 지배와 분화의 방식은 더이상 단순, 천박한 방식이 아니라 서구적인 상호, 휘황한 조명, 갖가지 문화적 상품들과 과잉친절이라는 세련된 이념화의 방식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Ⅲ. 글을 마치며
위의 공간 묘사는 처음의 의도 즉 특정 지역내 개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다양한 공간들의 총체적인 연관관계에 대한 묘사와 분석이라는 의도에는 다소 못미치게 이루어진것 같다. 특히 하위 공간 분석에 있어 여러 공간들을 한꺼번에 취급했기 때문에 각 공간을 구성하는 독립된 차원에서의 기호학적 의미요소에 대한 정치하고 세밀한 분석의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간분화와 계급의 문제를 사회분석의 경험이론적 수준에서 사고함에 있어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출발하여야 한다는 입장은 확보한 것 같다.
첫째, 사회에 관한 분석적 수준의 이론체계를 구축함에 있어 공간 관계를 규명해내는 것의 중요성, 즉 계급의 공간적 분화에 따른 새로운 위계와 통제의 과정을 밝혀내는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이 글에서의 논의를 종합해볼 때 공간을 자기완결성에 입각한 폐쇄체계 및 새로운 혼란을 대표하는 범주로서 받아들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공간 접근은 계급주체들의 구체적인 실천 영역에서 드러나며 사회적 세력들의 관계를 반영하는 で공간의 정치성と이라는 범주로 보완되거나 대체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둘째,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때, 억압은 일상화된 방식에서 일어나며 그것의 중요매개는 소비와 연관된 자본지배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의 억압은 단순한 가치전도 및 물신숭배화의 과정을 초월해 욕망자극을 통한 소비적 자아의 정체성 구성,육체를 통한 의식의 통제 등 대단히 정교한 방식으로 인간의 의식을 조종, 통제하
는 미시적 지배의 메카니즘이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던 공간현상이란 것도 공간의 계층적 분화속에서 자본의 생활영역 침투를 통한 이윤추구의 논리와 이에 따른 계층적 양극화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각각의 공간들은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독립된 단위라기보다는 서로 일정한 공간구성의 논리와 유형을 공유하고 보완해줌으로써 기능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과 권력은 공간의 생산과 연결에 큰 영향을 미치며 공간의 소비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해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공간에 대한 이해의 방식도 한 공간을 독립되고 자기완결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개인주체들의 일상적 생활을 지배하는 공간들의 상호연관 및 복합적 효과를 염두에 두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간의 분석에는 예의 기호학적 접근과 동시에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보완함으로써 시간의 축에서 공간의 축으로 이동된 자본주의적 지배양식을 규명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