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우위가 곧 시장의 우위가 되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상공인은 언제나 시장 경쟁의 약자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기업 자본이 골목상권까지 침투되면서 일정 부분 경계를 유지하던 소상공인들의 시장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소상공인들의 하락세는 날로 커져 갔다. 대부분 1인 체제로 구성되어 있는 소상공인들의 단순한 구조는 대기업의 압도적인 자본과 전문화된 인력 자원을 상대하기에 너무 연약했다.
흔히 골목 상권으로 대표되는 소상공인 시장의 붕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 비중이 30%가 넘는 한국 경제 구조의 특성상 소상공인의 붕괴는 곧 한국 시장 경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정책적 안정망이 지난 12월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은 5인 이상의 소상공인들이 모여 협동조합 설립을 가능케 한 법안으로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소상공인들이 조직화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이로서 소상공인은 합법적으로 법인격을 부여받아 개발, 구매, 생산, 유통 등 전반의 경제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어 가격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고 분산되어 있던 제반 시설과 인력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어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여러 명의 소상공인이 모여 대기업 자본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 경제 정책의 핵심인 경제 민주화의 개념과 이어진다. 경제민주화의 주요 내용은 균형성장,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로 이뤄져 있다. 새로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은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방법적 대안으로 평가될 만큼 시장 경제의 균형과 분배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협동조합의 개념은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같은 협동조합은 소상공인의 요구에 의해 탄생했다기 보다 국가의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즉, 일반 소상공인들은 협동조합에 대한 요구가 있더라도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었다. 이번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 설립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목적을 띈 협동조합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되는 비영리 법인으로 금융·보험업을 제외하고 공익사업을 40% 이상 수행하는 협동조합을 뜻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 민간 영역의 복지·나눔 활동, 공공 이익 실현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그 의미를 같이 하며, 사회적 기업과 연계해 보다 다양한 사업 효과을 노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유럽연합 전체에서 ‘부유한 지역’ 5위권 안에 랭크된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협동조합을 통해 기대 이상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협동조합 경제 비중이 45%나 되는 볼로냐는 1인당 소득이 4만 유로로 평균 임금은 이탈리아 전체 평균의 2배 이상이며, 실업률은 3%에 불과하다.
스페인 재계에서 10위권에 드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역시 성공적인 사례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금융, 제조, 유통, 지식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총자산은 54조원, 연매출액은 30조원에 이른다. 작은 난로 공장에서 5명의 공동 창업자로 시작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현재 8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도 이같은 협동조합 시스템은 높은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의 최소화하면서도 소상공인의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적 대안인 것이다. 이같은 기대감은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된 지난 12월 한 달동안 총 128건의 설립신고와 인가신청이 접수되며 소상공인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또 다른 기대감은 조합원의 의결권에서 나타난다.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출자금에 관계없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진다. 기존의 소상공인인 시장 경제 속에서 단 한번도 경제 주체나 정책 주체로서 드러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규모가 영세한 소상공인도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어 현장 중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협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존 기업 시스템의 뿌리였던 수직적 구조의 관료제에서 벋어나 조합원 중심의 수평적 구조로 진행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은 특정 자본이나 특정 설립자가 중심이 되는 기업형 구조가 아닌 조합원의 요구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되기 때문에 조합원 개개인의 요구와 공동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수평적 구조로 설립, 운영되어야 한다.
물론 시장 경제의 특성상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지고 운용하는 자금이 증가되면 자연스럽게 수직적 구조로 진행되겠지만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지 않은 초기의 협동조합에선 수평적 구조를 유지·보수해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제반 시스템을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향후 3년간 한국 협동조합이 나가야할 방향으로 사료된다.
또 한국의 초기 협동조합은 기존 노동조합의 사각지대에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 확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협동조합이 노동조합이 담보하지 못하던 경제적 울타리로 작용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이겠지만 협동조합의 본연의 목적인 공공의 이익 달성에 대한 부분은 아직 미지수다. 노동조합이 담보하지 못하던 노동 안정망이 협동조합이 대신할 경우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또 다른 경제 세력화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전문적인 인력과 설비를 갖출 가능성이 미비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례로 발전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만약 이 같은 사례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나타난다면 전문적인 인력과 설비를 확충해 공공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협동조합의 설립 기준이 낮아져 협동조합의 수가 무분별하게 증가될 가능성이 크다. 협동조합의 수가 무분별하게 증가되면 시장 경쟁이 더욱 심화되어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더 가중될 우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전문화된 감사 시스템과 지원 수단을 마련해 경쟁력있는 협동조합을 육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협업 컨설턴트를 정부 차원에 각각의 협동조합에 파견하는 것도 일종의 해법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협동조합은 부실한 한국 내수 경제 구조의 정책적 대안으로 손색이 없다. 소상공인 경제 비중이 높은 한국의 특성을 잘 이용하면 유럽 지역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협동조합 사례를 능가하는 모델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협동조합 역시 시장 경쟁 속에서 움직이는 경제 주체이기 때문에 시장 경쟁력 확보가 성공을 위한 주요 관건이 될 것이다. 이미 탄생한, 그리고 이후에 탄생할 한국의 협동조합은 최우선으로 구조적 시스템을 완성하는데 주력하고, 그것이 완성된다면 대기업과 경쟁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전문화된 인력과 설비를 확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