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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중에 있었던 발언들을 정리한 후기입니다.
운동의 통일단결 이야기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운동하는 방식 차이도 있다. 어려운 문제다. 활동하는 분들은 나름 논리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이거는 중요하다 강령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원칙이라고 받아들이는 사고틀, 근본적인 사고방식들이 있다. 그거는 고민해서 장애가 되니까 풀어야 한다 생각하는데 그래서 변증법이 중요하다. 변증법의 몇 가지 원칙만 생각해도 그럴 필요가 없는데 자꾸 그렇게 빠진다. 그 중 하나가 분석적이면서 종합적인 사고해야 한다. 북한이든 중국이든 소련이든 통째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거는 안 된다. 분석적으로 봐야하고 그 중에서 무엇을 받아 들일거냐 종합해 나가야하는데 실천적 관점으로 현실적 관점으로 해 나가야 하는데 현대 사회전반을 보면서 새롭게 구상해 나가는 작업을 주체적으로 해야한다. 주사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옛날 교과서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다. 두 번째는 칸트류의 사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제일 큰 게 영역별로 가르는 습성이 있다. 오성은 오성, 이성은 이성, 감성은 감성 가르고 섞어서는 안 되고, 너무 칸막이 치는 사고,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주도권을 가지고 영주권을 가지고 유지하려고 하는 내부의 패권문제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섞여서는 안 될 것처럼 생각하고,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어떻게 같이 가야할 것인가 고민이 잘 없고, 제반운돌들 간의 유기적 관계와 경중을 보는 사고가 취약하다. 그 중에 또 한가지가, NL/PD 갈라 질 때 주요모순이 뭐냐로 문제가 됐다. 마오가 굉장한 이론적 역할을 했지만, 그 중의 하나가 모순의 보편성 이야기할 때, 한 가지는 만물을 모순으로부터 설명하려면 곤란하다. 실제로 만물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있고 중층적으로 봐야할 모순이 있는거지 무조건 모순으로 봐서는 안 된다. 왜 모순을 봐야하나 할 때, 우리 삶을 결정적으로 좌지우지 하는 심각한 문제기 때문에 보는거지 모순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모든 것을 모순에 맞추려다가는 형이상학적으로 말려든다. 모순의 보편성 얘기에서도 금과옥조로 생각할 게 아니라 모순도 상대화 할 필요가 있다. 차이가 중요할 때도 종종 있다. 인정할 필요도 있다. 거기에 너무 연연할 건 아닌데, 주요모순을 하나로 잡는 문제, 그거는 일본 쪽에서 시비를 건다. 주요모순은 하나여야 하는가? 하나라는 말이 마오가 쓸 때에도 한 개가 아니라 한 종으로 썼다. 정파 분열의 중요한 요인이다. 한 종이라고 쓸 때 마오 본인의 글이 이상한 게 있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 전체에 주요모순은 노동과 자본이다. 이거는 변하지 않는다. 발전과정이 끝나기 전에는. 그러다가 나머지 것들은 모두 영향을 받고 규정받는 부차적인 것들이다. 거기 부차적인 것에 제국주의와 식민지간의 모순도 포함된다. 온갖 모순들이 다 포함된다. 처음에는 주요모순이라고 쓰다가 나중에 근본모순으로 바뀐다. 기본모순으로 번역도 할 수 있다. 근본모순에 들어가는 것이 자본과 노동 간의 모순이다. 그들이 근본모순이고 나머지는 그 영향을 받는다고 한동안 쓴다. 그러다가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지면 일시적으로 제국주의와 그것에 저항하는 인민간의 모순이 주요모순이 된다. 주요모순 개념으로 쓴다. 마오 자신이 근본모순 개념으로 썼다가 전략적으로 필요할 때 들어가면 주요모순이라는 개념으로 일시적으로 쓴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도 주요모순이라는 말은 안 쓰더라도 약한고리 개념을 쓴다. 주타겟으로 약한고리 집중해야 한다고 하고. 계보가 비슷하다고 느낀다. 같이 가는데 현실적으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 역량 대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할 때는 주요 타켓 잡아서 하는 거는 필요한데, 지금처럼 사회가 복잡할 때, 복잡하면서 하나로 하려 할 때 잘 안 풀릴 때, 고민을 해야하지 않나. 근본모순이라는 자본과 노동의 모순도, 엥겔스 논의로 보자면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간의 모순, 이것도 자본주의 근본모순이다. 이것이 노동과 자본의 모순으로 표현되는 거고, 한 종이다. 노동과 자본의 모순이 제국주의로도 표현된다. 그게 두 개의 모순이 아니라 한 종이라는 말이 연결된다. 그런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모순, 갈등 있을 수 있다. 생산과 소비 간의 모순도 있을 수 있다. 늘 있는 건 아니지만, 어긋나니까. 거기서도 모순이 생길 수 있고. 생산력과 생산과계의 모순은 없다가도 생길 수도 있고,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북돋다가 어느 순간 장애가 되면서 모순 관계로 빠지고 이런 관계도 있다. 한 대립쌍 속에서 근본적으로 늘 존재하지만 폭발하거나 충돌하거나 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도 있고,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의 다른 측면 내지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측면이다. 이거를 세 개의 모순이라고 이해할 거냐 한 종이라고 생각할거냐. 제국주의 문제도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문제이기 때문에 같이 가야 한다. 이거를 모순을 하나 찾자고 그럴 게 아니라, 모순의 실제 상태들이 어떻게 연루되어 있고, 어디에 집중적인 역량을 쏟을거냐 하는 고민, 한국사회에서 관심들이 천차만별로 갈라져 있는 상태에서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체제변혁과 연결해서 같이 갈 수 있을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경로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운동의 통일이라는 것도 조금씩 풀리지 않겠는가. 사고방식 상의 약간의 전환들, 그러면서 밑바탕에 깔려 있는 패권주의적인 욕망이라든지 조직을 키우고 싶은 욕망들, 경험상으로 저 놈들은 안 돼하는 선입견들을 어떻게 극복해 가느냐는 이거는 또 다른 실천론적인 문제다.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해결될 수 있다. 현재의 한국경제 자체가 눈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한국 경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세계경제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것들이 운동 통일을 위한 전반적인 발판이 되지 않겠는가. 물적 토대 문제도 있고 동시에 사고전환들도 동시에 해야 되는 느낌이 있다. 어떻게 하면 통일하느냐는 고민거리다. 운동통일만 대대적으로 이뤄진다면 막강한 거다.
한반도의 객관적 정세가 미국과 이북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평화협정으로 간다면 남한은 제외하고 북한하고 미국의 문제로 가면 남쪽 내부의 통일문제보다 어쩔 수 없이 남북이 서로 좋든 싫든, 남쪽 체제가 바뀌든 어떻든,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적으로 가야하는 객관적 정세가 오면 내부적 통일보다 그게 먼저 오게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한다.
그렇게 즐거운 상황은 안 올 거다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고 외적인 여건에 밀려간다. 독일 통일 48년 이후에 통일을 위한 과정을 보면 조금 역사가 길지만 독일은 400개로 쪼개져 있다가 나폴레옹 들어오면서 40개로 줄어들 때 봉건 제후들은 자기 봉건영주국을 지키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절대 통일할 마음이 없었고, 나폴레옹 침공 당했다는 거에 대해서 통일이 안 돼서 그랬다는 문제의식이 젊은이들 사이에 확대되면서 통일운동이 학생운동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성장하면 제후들이 가차 없이 탄압한다. 끝없이 통일운동이 민중으로부터 일어나면 억압하고 이러다가 48년 혁명기쯤 오면 독일도 서서히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니까 자본가들 사이에서 관세를 없애자 화폐통일하자 경제적인 욕구가 크니까 자본가적 관점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게 자꾸 절실해졌다. 대표하는 인물이 비스마르크다. 비스마르크는 융커, 지주인데 자본가로 변신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보고 밀어 붙인거다. 밑으로부터의 통일이 아니라, 토지 귀족과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통일이 됐고 그게 독일이 나중에 반동화 되어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가는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됐다. 한국도 미국과 북한간에 어떤 관계가 됐든 간에 현재까지 실현가능한 움직임들 상당수는 밑으로부터 통일 운동이 아니고 자본가들의 블루오션이다. 북의 싼 노동력과 남의 자본이 결합해서 획기적으로 발전시키자. 북에 자원이 많다 하면서 그런 경제적인 필요가 자본논리로만 관철이 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남쪽 자본가들 정주영처럼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같은 관점에서 북한에 투자도 하고 북한도 외교로서 하는 부분이 있는데 남쪽자본가들이 대부분 미국과 관련이 깊으니까 통일이 된다하더라도 북한에 투자를 하면 갈등으로 가지 않겠나. 필연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나 이남의 자본이나 산업자본, 금융자본의 이해가 있고 북한에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은 욕망도 있고, 이북이랑 교류해서 대치 안하려는 의지도 있는데 왜 안되냐. 미국도 핵도 없앨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미국 자본에 진출할 수도 있는 길이기도 한데 못된다고 본다. 미국의 전략 자체가 군산복합체이고 남북이 갈등해야 하고, 그래서 안 되는 거고, 이남의 자본도 결국은 미국의 이해에 의해서 안 된다. 남북이 자본에 의해서만 아니라 이북의 힘이나 물리력에 의해서 주도되는 측면들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미국이 평화협정 문제가 떠오르고 미군철수 문제가 제기되는 거고, 미군철수가 되면 이남의 자본이나 자배 계급들은 미국의 조건 내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날라 가버리면 물리력 잃어버려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는거고 미국은 동북아나 미군철수 되면서 일본의 미군철수, 필리핀 미군철수 한편에서 그런 요구가 있어서 트럼프 정부가 재정적자가 많으니까, 해외로 가지말고 국내로 보호무역으로 가자는 요구가 있지만 결국은 미국의 또 다른 열망이나 패권이 더 크기 때문에 안 된다. 미국 내부에도 자본 논리로 보면 세계화가 유리하고 그렇게 가려는 욕구가 있지만 내부에서도 칸막이 치는 게 훨씬 더 필요하다고 갈등하는 요소들도 있을 것 같다.
국가보안법 얘기하니까 독일은 사회주의자법이 있었다. 비스마르크가 사민당 분당하면서 만들었는데 그게 폐지된 게 사민당이 1당 되면서 10여년 만에 폐지되었다. 그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만 치면 70년인데 일제강점기까지 포함하면 1907년 일제가 보안법을 만들고 치안유지법 만들고, 대한민국 넘어가면서 국가보안법으로 계승된 건데 1당이 아니더라도 압박을 해낼만한, 압력이 있어야 강력한 정치력이 있어야 폐지해 낸다.
국제주의 문제로 늘 남북문제를 피해온 것이 있다. 국제주의가 근거가 된다. 남북을 다른 국가로 분리해서 보자는 건데. 그쪽도 국제주의 관점에서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적대시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로 묶어서 풀어야 되는 건 아닌 독립성을 가지면서 상호호혜정도로 보고, 국제주의 관점을 가져야만 미제국주의 단계를 넘어설 수 있으나까 남한의 변혁과 맞물려서 전 세계 노동자들 사회주의 세력들 결합하자고 할 때 북이 차지하는 비중이 뭐냐, 북이 절대적이냐 아니면 여러 사회주의 세력 중에 하나로 중국 등과 더불어서 다룰 거냐는 문제가 있다, 그 동안 민족 문제라는 것은 지상 과제로 늘 한쪽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데, 그런 측면이 있어서 막상 북에서 내려와서 행사하는 거 보면 말이 금방 통하고 뭔가 그런 측면이 있다. 스탈린식으로 이야기하면 경제 체제가 갈라지면 다른 민족인데, 그렇더라도 합쳐질 수 있는 잠재력은 엄청나게 큰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 다른 사회주의 세력과는 구분해야 하는 비중이 있다. 국제주의라는 말로 덮을 것이 아닌 특수한 비중을 어떻게 제대로 설명할거냐, 그렇다고 북하고 관계를 제대로 못 맺으면 남한에서 운동은 불가능하냐 고민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거를 안 하는 것도 문제니까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게 뭐냐 구체적으로 봐야한다. 답이 간명하지 않다.
그동안 공약수를 먼저 만들어서 최소한 강령이라도 만들어서 같이 당을 만들자 하는 운동들이 강령 자구 가지고 싸우다가 깨지더라. 그것보다, 관념론적인 목적론적인 거시적인 목표설정을 통해서 거기에 동의하느냐부터. 예를 들어, 노동자국가 동의하느냐, 한국 사회가 인구구성이라든지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자본독재와 싸울 수 있기 위해서는 노동자로 가야하지 않느냐, 동의한다면 동의하에서 개별적으로 들어가서 과거사를 어떻게 볼거냐 뭘 배울거냐 논재하자, 정책을 뭘 만들거냐, 논쟁하자. 이런 틀 안에서 좋기는 거대 당도 만들어지면 좋고, 구체적인 당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대안도 만들어지고, 논쟁해서 지면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접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관철시키고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
주요 모순을 정권 민중 간의 모순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 이재명 정권에 대한 가능성 평가는 적극적으로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한게가 뭔지 드러내고, 문재인이 노무현 거슬러 올라가서 김대중까지도 있지만 노무현과 삼성 간의 관계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다. 돈 받고 시작한 거, 그 이후에 삼성연구소 다 들어간 거, 맨 앞장에 서 있던 게 문재인이고, 삼성 X파일 덮어주고 윤석열 끌어들여가지고 노무현 개혁에 발목 잡기도 하고 핵심이다. 다 들춰내는 거, 그 와중에 있는 이재명은 어느 위치인가 드러난다. 민주당 정권의 성격 문제, 이면에 있는 음모론적인 요소들, 음모론이 지어낸 거면 황당하지만 음모를 꾸며 가면서 하는 거면, 검찰들이 파일 만들어서 주무르고 하는 것들의 실상들, 해처먹는 것들 밝히는 거는 굉장히 중요하다 민주당 정권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가야할 필요성을 명확히 하는 것, 민주당 정권에 대한 면밀한 평가 한계 밝히는 거는 계속 필요하다. 지금도 이재명 정권에 기대가 있다. 지지하는 사람들이 건강하다. 그거는 어떻게 평가할 거냐. 이재명 정권이 됐을 때 근본적으로 자본독재와 각을 세울만 하냐, 원천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데 자본주의 틀 안에서 움직일거고, 그럴 때 노동자 독자 세력이 성장할 수 있냐, 더 희미해지는 거냐, 전선이 없어지는 이런 효과가 나타날 거냐, 윤석열 같은 쓰레기 같은 놈과 이재명을 똑같이 볼 순 없지만 이재명이 지니는 근본적인 한계는 어떻게 평가하고 넘어설 거냐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거는 중요하다. 현재 정권 퇴진의 열기를 활용해서 제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틀 궁극적인 한계, 그래서 노동자 독자세력화가 되어야 할 필요성 자본과 싸우기 위해서, 거기에 압도적인 다수가 들어가야 하는 끌어들일 수 있는 논거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 정권퇴진투쟁에 핵심적인 요소다. 문재인을 어떻게 볼 거냐. 아직 신화가 있다, 노무현 신화도 있고 어떻게 깰거냐 중요하다. 늘 밑에 깔려 있는 거는 변혁 전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전망 없이 이재명은 괜찮겠지 하면서부터 그 다음에는 같이 갈 수 없나까지 나온다. 같이 가는 게 힘들다는 판단이 서게 정권퇴진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해야 한다. 엥겔스가 ‘노동자당’이라는 글을 썼다. 1880년대 쓴 건데 영국에는 노동자세력이 정조직화 되어있는데 왜 노동자를 대표하는 당이 없냐 왜 토리당과 휘그당 중에서 선택해야 되고 거기에 급진파란 놈이 끼어서 가끔 딴 소리 하는 거, 우리나라 진보당 계열하고 보수 자유 요 구조 영국이 딱 이 구조다 19세기 말에 왜 독자세력이 없냐. 차티스트운동 끝나고 난 다음에 사라졌다. 독일만 해도 있다. 독자세력화, 정치세력화해야 한다 하는데 남 얘기 같지 않다. 한국은 그 시대 영국보다 엄청나게 노동자 세력이 있는데 왜 못하냐.
독일 사민당 출발 모델이 떠오른다. 한 쪽에서는 변혁 전망을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 ‘노동자국가’ 가려는 거냐, 자본주의 틀 내에서 하려는 거냐 할 때는,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의 역할, 이른바 헤게모니가 중요하다, 얼만큼 설득할 수 있고 현대 자본주의 한계를 얼만큼 명확하게 들춰낼 수 있고 이거는 살아있는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런 거라도 있었으면, 그런 거라도 제발 해보자.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사회를 바꿀까,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평등한 사회로 갈거냐 할 때, 그렇게 가게 만드는데 걸려 있는 장애 요인들, 인간적인 조건들, 욕구의 문제들, 사고방식의 문제들이 즐비하다. 다 인간 문제다. 맑스주의자들, 서구맑스주의까지 포함해서 열심히 분석해서 왜 이렇게 인간이 안 변하느냐, 인간들이 어떤 욕구를 가지고 어떻게 이상한 생각해서 자꾸 이렇게 가는가, 인간에 대한 연구는 어디든 할 만큼 한다. 변혁적인 관점에서 하느냐, 지배적 관점에서 하느냐는 다르다. 경영학 쪽에서도 엄청나게 심리분석하고 한다. 변혁적 관점에서 왜 안 변하냐 놓고 보는 거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는 현재 조건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만 무엇을 통해서 인간을 바꾸려고 들 건가 볼 때, 우리가 미제의 식민지야, 이것 때매 바꾸려고 하는가, 못 살겠다 때매 바꾸려는 거냐, 우리를 지배하는 힘이 과연 돈 문제냐,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냐, 주체성의 문제냐,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 떠들어 대는 말의 99%가 돈 문제다. 그거가 안 풀릴 때는 사람들이 뭔가 해야 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계급 문제가 핵심이 된다. 맑스가 한 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문제를 이야기할 때, 결국 자본주의가 자기 발전 논리에 의해서 결국 갈 데 까지 가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현대 자본주의가 보여 주고 온 거다. 이렇게 가면 더 이상 갈 데가 없구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맑스 시대보다 더 심하다. 전 세계가 성장 둔화 정체되고 공황 쏟아지고 하니까, 이런 것 속에서 왜 인간들은 못 바꾸냐 보니까, 그 동안 지배해 온갖 메커니즘이 있다. 그걸 까발려야 극복해야 할 거 아니냐, 변혁에 대한 욕구를 버린 것까지 포함된다. 변혁사고까지 버린 정치 풍토, 1%도 안 되는 자본가들이 압도적으로 자본가 비슷한 부류들을 만들어 놓은 거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거냐의 문제가 된다. 본질로 들어가면 경제적으로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 근본문제다. 최근에는 점점 더 가시화 되고 있는 거고, 전쟁문제로, 환경문제로 드러나니까 이러다가 안 된다가 눈앞에 다가온 거다.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늦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할 만큼이라도 해보자. 우리가 승리할 거라고 보장된 거는 없다. 우리가 제대로 싸워서 노동자국가라도 만들어서 자본을 제압해서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전 세계적으로 그나마 인간답게 살도록 사회를 바꾸 수 있느냐 아니면 이것들이 끝까지 꼬장 부려서 전쟁 일으켜서 폭망 할거냐는 장담할 수 없다. 후쿠시마가 저걸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 또 어디가 터질지도 모르고 하나 터지면 박살나는 것 아닌가. 우크라이나 전쟁할 때도 러시아에서 핵 쏠까 말까 생각까지 하는 거 아닌가. 미국 애들은 소핵들 쏘면 끝나는 거다. 누구말로는 핵 폭발로 열반에 드는 핵열반이 기다리고 있다고도 하는데 그런 위기 앞에 있다. 이성적으로 총체적으로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느냐 시간 싸움을 하는 거다. 그냥 내 버려 둬도 그 안에서 버티면서 바퀴벌레처럼 살 수 있다. 폭발 한 다음에도 조금 살아남다가 열반하기까지 시간은 걸릴 거다. 성공 못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개선되기도 하고 이겼더라도 상당 부분에서는 제약을 받기도 하고 온갖 갈등들이 계속 될 거다. 그래도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뭐냐 찾아야 한다.(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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