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고 정당하게 영접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요점이 가지는 진리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여러분의 영혼 사이에 있었던 거룩한 거래를 엄숙하게 숙고해 보라. 그저 건성으로 해치우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바닥이 썩어 있는 배에 타고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배를 타고 지금 영혼의 대양을 항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주님께서 불같은 눈으로 각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여러분이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모든 시험을 견뎌내도록 할 것이다. 믿음의 문제는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여러분이 믿음의 진실성을 분변하고자 한다면 먼저 여러분의 믿음에 ‘선행되는 사항들’ 즉 성령의 예비적인 역사가 영혼 속에서 일어났는지 돌아보라. 성령의 역사들은 흔히,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의 영혼 속에서 그 믿음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비추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영혼에 ‘빛을 비추시는 일’은 믿음에 있어서 필수적인 선행사항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눈을 열어 우리 자신의 죄를 보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문제의 해결책이 있음을 알게 하시기 전까지는 믿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성령의 이 작용이 믿음의 본질과 시간적 순서에 있어 가장 처음에 놓이는 것이 이치이다. 이후 영혼 속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의 서곡인 것이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행26:18).
이처럼 믿음에 있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그 분명한 ‘빛’이 없다면, 그 믿음은 ‘눈먼’ 것에 불과하다. 정말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 그 전에는 보지 못하던 죄와 비참함을 보게 하셨는가?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셨다면 죄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관점은 이전과 완전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벽이나 종이 위에 그려진 ‘사자’만 보다 길에서 진짜 사자를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죄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지각은 ‘죄를 뉘우치는 일’을 수반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여러분의 헛되고 부질없는 마음은 죄로 인한 각성으로 찔리고 고통을 당해야 한다. 회심하는 자들이 당하는 영적 고통은 정도나 기간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믿음은 어떠한 고통도 없이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죄의 각성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신 결과이다. 그 빛이 우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도록 조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비참을 알게 된 영혼은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절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절망감은 자신 속에 구원의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영혼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그들의 절망감이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몰아간다.
그들은 영적인 여러 위무들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었던 자들이다. 자신의 마음을 고쳐먹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했던 자들이다. 저 역시도 한때는, 그저 조금 회개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더 엄격한 행실을 하면 다가올 진노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런 저의 생각의 침대가 너무 짧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해 그런 모든 것들은 찌끼와 배설물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굽의 갈대’와 같은 그것들을 의지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넘어지게 하고 나를 찔러 상처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성적 감각의 세계’ 안에 구원에 대한 어떠한 소망도 없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각성과 절망은 영혼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을 향해 ‘갈망하고 울부짖게’ 한다. 여러분이 살아왔던 지난날의 삶의 자취들을 되돌아보라. 하늘을 우러르며 그러한 울부짖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적이 있었는가? 그것은 믿음이 영혼 속으로 들어왔다는 하나의 좋은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애통한 마음의 울부짖음은 믿음의 길을 닦는 ‘믿음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분은 믿음이 여러분의 영혼에 어떤 것들을 ‘수반’하는지 점검함으로써 여러분의 자신의 믿음에 대한 진실성을 검증할 수 있다. 이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믿음을 통해 그 전과는 다른 심령의 기풍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믿음의 문제에 대해 더 큰 ‘진지함’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의 영원한 상태에 관해 가장 진지한 염려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은 겸비하고 자신을 낮춘다.
자신의 곤비함을 깨달은 영혼은 곧 ‘갈망하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시냇물을 간절히 찾는 사슴이나, 그늘에 들어가 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말도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영혼만큼 간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직전 영혼은 ‘갈등의 상태’에 빠진다. 영혼은 소망과 두려움, 용기와 좌절 사이에 서있게 된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을 향하여 나가는 수밖에 없다. 여러분과 같은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내게 오는 자는 결단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6:37). 이 말씀을 의지하여 일어나라. 이 소망으로 영혼을 고양시키라. 여러분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라.
- 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pp 156-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