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것은 '관계'
박 은 미 헬레나 (품 심리상담센터)
청소년 시기는 청소년 자신에게나 청소년 자녀를 양육하는 어른들에게나 갖가지 고민을 안겨 주는 시기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뭘 어떻게 하며 이 시기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 시기의 어려움을 반증한다. 게다가 어른들은 청소년 시기를 공부하는 시기로만 규정할 뿐,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다른 돌파구를 찾아주는 일에는 손을 놓고 있다. 각종 스포츠나 기술을 배우는 일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도 있지만,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비율은 낮아 자신의 바람을 성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청소년은 일부에 불과하다. 또 운동선수나 기술을 습득하여 전문가가 되는 길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잘 아는 어른들은 그런 활동은 그저 취미로 하는 게 좋다고 여길 뿐, 적극적으로 권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남는 일은 공부뿐이다. 아주 흔한 청소년 사례 2 가지를 소개한다.
A 는 초등 6학년 남학생으로 키가 이미 170센티가 넘는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하고 머리가 좋아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데도 학교성적은 좋은 편이다. 그런데 신체적인 조건상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물리적인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전에 힘을 휘두르는 법을 터득해서 화가 나면 아이들을 때리거나 기물을 부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를 힘으로 제압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고, 엄마를 집에서 쫓아낸 적도 있었다. A 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빠인데 직장이 지방에 있어 주말에만 집으로 오니, 엄마는 그냥 아이 눈치를 보며 달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A 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야구를 하겠다고 하는데, 부모는 그 힘든 길을 왜 가냐며 반대다.
B 는 중학 3학년 여학생으로, 1학년때까지만 해도 학교생활을 잘 했지만, 학업에 대한 압박감으로 학교 밖의 생활에 눈을 돌리면서 중2 시기를 소위 '놀면서' 지냈다. 가족 모두가 힘겨운 1년을 보내는 사이 아빠는 딸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었고, 엄마만 아직 딸을 챙기고 있다. 다행히 B 는 마음을 다잡고 학교생활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상담에 응했는데, 그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B 는 상담을 자주 연기하거나, 상담하러 오지 않으면서 갖가지 변명을 했다. 마음잡겠다는 새로운 생각과 기존의 행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B 자신이나 지켜보며 기다리는 어른들이나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B 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관심이 있다 해도 하기 귀찮다고 했다.
"그냥 지금처럼 실컷 놀다가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실컷 놀다가'의 내용인 즉, 부모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용돈이 떨어지면 후배 청소년에게서 빼앗은 돈으로라도 당장의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감각적인 쾌락에는 불행한 결과만 있을 뿐, 결코 끝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부모들로서는 속수무책인 상태로 자녀의 무기력을 안타까와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를 청소년 개인의 치기어린 생각으로 돌리면 그만일까. 많은 부모들이 명목상으로는 가족의 생계, 특히 자녀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건강한 자녀 양육과 친밀감을 향상시킬 유대의 시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더 크게는 내 가정의 안위와 물질적인 부의 축적이 최고의 가치일 뿐, 이웃과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은 배부른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 전체를 휩싸고 있는 현실이다.
초, 중등 교육과정의 시기(12년간)는 청소년들이 또래집단이라는 관계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시기이자, 부모-자녀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인생의 멘토가 되어 줄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망도 더 확장되어야 할 시기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부모들은 자녀와의 강한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을 담보로 자신은 물질적인 부의 축적에 몰두하고 자녀에게는 학업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만이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며, 설령 이 시기에 놓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나중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것은 언제든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부모-자녀 사이가 깨어지기까지의 시간은 아주 짧지만, 회복하는 데는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할 정도로 긴 시간이 소요된다. 상당한 노력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기 쉽지만, 그만큼 오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행복이다. 어른들이 실제의 삶에서 청소년 자녀에게 보여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이 '관계를 통한 행복'이 아닌가 한다. 지금 청소년 자녀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자녀에 대한 외적인 바람은 모두 내려놓고 자녀와의 관계 회복을 우선 순위에 놓으시기를 요청드리고 싶다.
첫댓글 우리는 좋은 엄마 아빠 예방주사를 미리미리 맞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좋은 글들을 통해서...
미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