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위대한 깨달음
사회성·감성교육연구소 소장 성진아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21년 5월 4일자에 실린 칼럼입니다.)
2020년 연말에 출간된 《위대한 깨달음》1이란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책은 영국의 프리랜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토모스 로버츠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심심해 하는 어린 동생을 위해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 주는 형식으로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후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면서 곧이어 그림책으로도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위대한 깨달음》은 미래에서 2020년을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겪기 전, 세상은 급격한 산업발전으로 인해 놀랍도록 빠르고 편리하게 변해가고, 사람들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쉽게 빨리 얻을 수 있게 된 반면, 가족 내에서는 대화가 사라지고, 갓난 아이들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자라며, 사람들은 매일매일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공허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산업화와 매연을 내뿜는 교통수단들로 인해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들이 차고 넘치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생태계는 파괴되고, 편리한 교통수단들로 인해 사람들은 뛰는 방법조차 잃어버릴 정도로 둔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인해 세상이 멈추어 버리면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고립되어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그제서야 자신과 가족, 주변의 세상에 눈을 돌려 살펴보게 됩니다. 그 후, 사람들은 점점 사랑하는 이들과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보게 되었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대신 두 발로 걷고 뛰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며, 지구를 오염시키던 매연이 점점 줄어들며 지구의 자연환경이 서서히 회복되게 된다는 희망과 위로는 주는 메시지로 끝이 납니다.
《위대한 깨달음》의 스토리처럼, 아직도 진행 중인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예기치 못했던 삶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는지요? 이 글에서는 학교현장과 교육을 둘러싼 변화와 관련된 깨달음에 초점을 맞추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정서적 돌봄의 장으로서 학교의 역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그동안 필자가 정기적으로 만나오고 있었던 대전(별무리 사회성·감성교육 연구모임)과 포항(초등 사회성·감성교육연구회)의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코로나 이후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교사들은 대부분 얼마나 학생들과 교실에서 만나는 시간이 소중하고 그리운 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교사들은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고 원격으로 수업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전에 해보지 못했던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동학년 교사들과 모여 함께 협업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전에 느끼지 못했던 교사들 간의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끼게 된 점을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필자가 부모교육 강좌를 통해 만난 학부모들 중에는, 아이들도 많이 힘들겠지만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에서 씨름하면서 부모 자신들도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지치고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이 일로 인해 학교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돌봄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는지에 대해 깨달았고, 교사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언론에서 비춰지는 기사들을 보면,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학생들의 학습격차에만 초점을 맞추며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들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시기에 중요한 것이 학업적 성취가 먼저인지 우리의 신체적·정신적 안전과 건강이 먼저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후자가 우선입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간이 얼마나 관계지향적인 존재인지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학생들은 예전보다 더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학교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지식습득을 위한 학습의 기회와 급식을 제공하는 장소일 뿐만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또래 간의 사회적 정서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이자 정서적 돌봄을 제공하는 곳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고립되거나 외로움을 느끼면 정서지능뿐 아니라 인지능력도 퇴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위기의 시기에 더더욱 학교는 학습보다도 학생들의 정서적 웰빙을 제공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불안감, 우울감, 외로움, 공포감, 분노 등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학습 능률도 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이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관리할 줄 알며, 비접촉의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의 감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며 연결되는 방법을 찾아나가도록 하는 사회성·감성교육이 학교에서 더욱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학부모에게도 필요한 공동체와 정서적 돌봄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형태의 교사연수와 교사학습전문공동체 모임이 중단되면서, 그동안 필자가 학교 현장에서의 사회성·감성교육의 전파를 위해 교사들을 지원하는 일이 오랫동안 완전히 멈추는 듯 했습니다. 필자는 사회성·감성교육에서 학생과 교사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며 공동체 놀이를 하고, 역할극을 하고, 서로 소통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들을 강조해 왔기에, 교사 연수나 교사모임 또한 대면으로 이렇게 활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줌(Zoom)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강의와 교사들과의 모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대안으로 어쩔 수 없이 활용하게 된 방법을 통해서도 소통이 가능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받고 연결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업주부로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학부모들은 더욱 더 간절히 이런 소통의 기회를 통해 공감받고 위로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진 (burn-out)은 학교현장의 교사들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소진을 겪으며 우울해하고 있으며, 이들에게도 정서적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가 지금의 시대에 더욱 간절히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필자에게는 새로운 사명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속적으로 만나며 자기 성찰과 배움이 일어나고, 정서적인 위로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학부모공동체를 세우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의 일환으로, 필자가 2020년 10월부터 두 달여에 걸쳐 진행한 ‘나를 만나는 그림책 산책’이라는 강좌를 통해 만난 학부모들과 함께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주 1회 줌(Zoom)으로 만나 그림책을 매개로 학부모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 성찰과 반성, 동기 부여가 일어날 뿐 아니라, 서로 공감하고 위로 받으며 힘을 얻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곳에서 이런 형태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학부모공동체가 생길 수 있도록 교육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제공되기를 바라며, 필자도 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공동체의 연대와 연민의 힘
《휴먼카인드》2에서 저자 브레흐만(2021)은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선한 본성에 의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이기적인 유전자가 아닌 이타적인 부분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왔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선한 본성과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을 모두 갖고 있는 복잡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가진 선함을 믿고 소수의 예외적인 사건을 과장하여 부각시키는 뉴스에 휘둘리지 않으며,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행동을 할 때, 더 나은 휴먼 카인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공감(empathy)을 연민(compassion)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고난과 고통을 겪고 있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 똑같이 고통스러움을 느끼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신 또한 에너지가 고갈되고 힘을 잃기 때문에, 타인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타인을 향해 따듯함과 배려, 보살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연민을 훈련하라고 제안합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와 개인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때, 특히 우리에게는 공동체 속에서 위로받고 치유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에 의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가 물리적인 환경에서 대면하고 협력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원하든 원치 않든 혼자서 하는 공부와 일, 놀이 등에 우리가 익숙해 지도록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언택트 방식으로라도 우리는 사회적 연결을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혼자 고립되어 혼자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속해 있는 모임, 가정, 학교, 조직,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특히 학교라는 공동체 속에서 모든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서로 연결되어 함께 기뻐하고 서로의 고통을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며 연대하며, 그 과정을 통해 치유가 일어나고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스타호크(Starhawk)의 ‘공동체(Community)’라는 글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공 동 체
우리 모두는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반쯤 기억 속에 또 반쯤은 마음 속에 그려보며,
그저 이따금 언뜻언뜻 볼 수 있는 그곳의 이름은
공 동 체
그곳에서는 말이 목에 걸리지 않고,
열정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맞잡은 손은 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리고
우리를 맞이하는 눈은 빛나며
우리가 스스로의 힘을 찾을 때마다
함께 축하하는 목소리가 있다
공 동 체 는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모은 힘이며
서로가 비틀거릴 때 잡아주는 팔이다.
치유가 일어나는 둥근 원이며
둥글게 모여 있는 친구들이다.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바로 그곳이다.
– 스타호크 (1982).《Dreaming the Dark (어둠을 꿈꾸며)》. Beacon Press.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