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적 속에 감춰진 것
“증산은 한반도의 미래에 서양귀신을 불러들이기 위해 막거리 사발에 되지고기 한 조각을 띄운 다음 그 자신이 창호지에 직접 그린 부적을 덮어 땅에 묻거나 삐뚤어진 지구의 지축을 바로잡기 위한 여러 가지의 부적을 사용하였다.”
프랑스의 어느 철학가가 철학의 기원을 찾다보니 한국의 부적에서 이 세상 모든 철학의 뿌리를 찾았다는 웃어 넘겨 버릴 수만은 없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부적하면 흔히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주술로 사용하는 일종의 도구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부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알게 모르게 그 힘을 발휘하여 왔다. 우선 우리가 매일같이 주고 받고 사용하는 돈을 관찰하여 보자. 거기에는 우리 모두가 믿고 사랑 할 수 있는 인물이나 탑 등의 상징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할 것없이 가지고 있는 도장도 알고 보면 개인의 행운을 상징하는 하나의 부적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기독교인들의 크리스마스 때 보내는 카드나 일년 내내 행운을 비는 연하장도 하나의 부적역할을 한다.
부적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조개껍질이나 호랑이 발톱, 송곳니, 돌 등에 인간이 염원하고 있는 상징들을 새겨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적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지금부터 6000년전 우리나의 좌부선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좌부선인은 우주의 모든 운행법칙에 도통한 도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모든 우주의 순리를 도식화하여 만법귀종(萬法歸宗)이라는 5권의 책에 그려 넣었다. 지금이 세상의 여기 저기에서 떠돌아 다니는 부적들은 대부분 점쟁이들이나 주술사들이 이 만법귀종을 인용하여 인간의 병을 고치거나 길조를 택하거나 아니면 귀신을 쫓는데 사용하는 지극히 낮은 단계의 부적들이라고 한다.
실제로 조선왕조 말에 강증산이나 김일부 선생 등은 이 좌부선인이 그린 우주운행의 법칙을 깨우쳤던 사람들인 것같다.
증산은 인간의 길흉이 아닌 우주를 거꾸로 돌게 할 수 있는 이른바 천지공사라는 대부적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증산은 한반도의 미래에 서양귀신을 불러들이기 위해 막걸리 사발에 돼지고기 한 조각을 띠운 다음 그 자신이 창호지에 직접 그린 부적을 덮어 땅에 묻거나 삐뚤어진 지구의 지축을 바로잡기 위한 여러 가지의 부적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서양식 논리로 굳어진 머리라면 이 증산의 천지공사를 결코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무당이나 주술사들이 부적을 그릴 때는 닭과 동물의 파나 빨강 물감의 주사(朱沙)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피와 같은 빨간색이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은 상징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귀신들은 빨간색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하여 귀신이 자주 나온다는 흉가집에서는 대문을 빨간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옛 신선들은 동물의 피나 물감이 아닌 염력을 사용하여 부적을 그렸다고 한다.
대학입시가 있는 날에는 부모들이 학교문에다 엿을 더덕더덕 붙인다. 그리고 수험생들은 아침에 찹쌀떡을 먹고 수험장로 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합격할 수 있도록 무당들이 그려준 부적을 옷 속에 지니고 시험을 치루는 풍속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부적은 어느 정도 효험이 있을가? 부적은 비단 대입 수험생들 뿐만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도 사용하였다. 히틀러는 고대 자이나교의 세게를 정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고대의 부적을 거꾸로 사용하여 세계정복을 위한 그의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한다.
부적과 풍수지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 병에서 술을 마시거나 고사떡을 먹기 전에는 꼭 병을 딴 다음에 술을 조금 쏟아버리거나, 시루에서 떡을 조금 뜯어 버린 다음 먹는 풍습이 있다. 지금에 와서 우리에게 단순히 쏟아 버리거나, 뜯어 버리는 하나의 관습이 되어버린 이 풍습은 옛날에는 신에게 기도드리는 공양에서 비롯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의 부엌에는 뒷벽 위쪽에 조왕단이란 찬장 비슷한 것이 있다. 옛 사람들은 그곳에 조왕님이 있다고 믿어 외부에서 음식이 들어오면 먼저 조왕님이 드시도록 올려놓은 다음에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머지 식구들이 차례로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어 고사를 지낼 때는 가신(家神)을 봉안하는 여덟 군데에 따로따로 음식을 차려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임산부가 출산을 할 때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주술사들이 콩을 쪼개 거기에 한문으로 밝을 명(明)자를 새긴 다음 그것을 임산부가 먹으면 아무리 난산이라 할지라도 아기가 그 의미를 알고 캄캄한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밝은 세상을 스스로 나온다고 한다.
사람 머리의 정수리에 있는 소용돌이 무늬를 우리는 가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숫구멍이 있는 자리를 뇌촌, 신문, 정문이라고 하며 이 정수리는 갓난아이가 숨쉴 때마다 팔딱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계와의 교신도 이곳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전해오며, 무당들도 이곳 노천으로부터 신령들과 대화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가마무늬가 있는 것을 가마터라고 하며 솥터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세속에서 단오절을 수릿날이라 부르는 것은 소도제의 신일 5월5일이 일년 중 가장 음기와 양기가 성한 날이며 사람의 기원을 비는 최적기이며, 하늘의 감응에 따라 풍년인지 흉년인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한 분기점을 삼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람의 정수리가 영계와 교신하는 신성한 곳인 것처럼, 솥터가 되는 성역에 솟대를 세우고, 천계와의 심부름을 위해 수리를 만들어 올려놓은 것은 새가 하늘을 날아 천계의 상제에게 인간의 뜻을 전달해 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설에는 사람머리의 가마터에 해당되는 지형을 솥을 얹어놓은 형상으로 ‘복부’라고 지칭한다. 우리는 이 집터나 무덤터에 천연적으로 솥을 엎어놓은 모양의 장소를 명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명당은 산과 강의 음양기운이 응축된 곳으로 자손들이 부귀를 누릴 수 있다고 전하며 실제로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은 대부분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그안쪽의 평평한 분지에 약간 솟아오른 솥을 엎어놓은 모양의 땅이 있음을 보게 된다. 비유하자면 이곳은 솥 안에서 음식이 끓어오른 곳이며, 장마철의 집중 폭우나 홍수의 피해에도 끄덕없는 곳이다.
인간은 상징을 표방하며 살다가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수많은 상징물로 가득차 있다. 하다못해 밤거리의 술집간판에도 하나의 상징성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상징의 의미에 따라 사람들이 몰려 다닌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상표가 하나의 부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인간은 의식을 이런 부적에다 붙여 버렸다. 그것은 인간에게 대단한 불행이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어느 특정한 부적이 붙어있는 의류나 신발을 입거나 신어야 하고 그리고 음식에서가지 어느 특정한 부적이 붙어 있는 것을 먹어야지만 만족할 수 있게 된 것같다. 확실히 부적은 미신이 아니다. 오히려 부적이 미신이라고 말하는 인간이야말로 부적들을 모두 불태워 버릴 필요가 있지 않을가.
오직 그때 인간은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