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6>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김옥엽 (시인, 문학평론가,서울신학교교수)
2월 초, 우리 종로시찰회에서 베트남으로 수련회를 갔다 왔다.
월요일 출국 전 주일 밤 보따리를 싸는데 아랫입술 밑 턱 쪽으로 피부에 콩알크기의 발그스럼한 무언가가 두 개 생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최근 몹시 일도 많은데다 고민까지 하느라 잠도 못자고 무리한 건 사실이지만 이게 대상포진의 시초인 줄은 몰랐다. 뒷날 아침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심상치 않은 느낌을 가졌지만 에고 모르겠다 비행기에 올랐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부풀어 오르니까 동행하는 분들이 걱정하기 시작하고 쑤시고 아파왔다. 덜컥 겁이 났다. 세상 최고의 통증인 대상포진에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낯선 곳에서 여행 중이라 치료도 받을 수 없으니.. 그야말로 기도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 아닌가? 첫날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깊이 잠든 남편을 깨웠다. 란닝 팬티만 입고 자는 사람을 깨워 고개를 들이밀었다. 침대에 앉은 양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얌전히 그리고 정중히 말했다.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의 안수가 필요합니다. 남편은 얼굴과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주었다. 믿습니다, 했으니 믿고 잠들었다고 해야겠지만 사실 불안불안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더 이상 부풀지는 않고 심한 통증이 없어졌다. 놀랍고 감사했다. 면역이 떨어지면 걸리는 이 병으로 죽을 만큼 고생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고 통증에 못 이겨 입원한 병원에서 펑펑 우는 사람도 겪었던 터라 심해지면 어떡하나 일행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봐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흘을 지났는데 다행히 통증은 견딜만한 정도를 유지해 주었다. 그리고선 돌아오자마자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순포진이 아니고 분명히 대상포진인데 얼굴에서 더 이상 번지지도 않고 통증도 별로 없다면서. 그런데 의사자신은 본적이 없지만 아주 드물게 심하게 아프지는 않는 대상포진도 보고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기적이시네요’하는 게 아닌가!
‘네에’하면서 돌아왔지만 속으로 수없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래 그 밤에 기도를 들어 주신거야, 오밤중에 자다가 속옷 바람으로 안수기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목사 마누라 말고 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응 우후훗 하고 걸어오다 아히고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지난 3월5일, 마크 리퍼트 미 대사가 테러로 25센티 과도에 오른쪽 볼과 양쪽 손에 큰 자상을 입고 새빨간 피를 흘리는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은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 나아가고 있고 몇 달 후면 흉터도 줄어들 것이라 한다. 한미동맹과 양국의 관계에 손상이 갈까 했던 걱정은 그의 말대로 비온 뒤 더 굳어지는 땅처럼 오히려 ‘함께 갑시다’라는 말과 함께 더 단단해졌다. 그렇지만 그 일은 놀랍던 기억마저 없앨 수는 없는 사건으로 한미 역사에 옹이처럼 남게 되었다.
리퍼트 대사의 얼굴이 가렵다고 하니 나아가는 증거라고 한다. 아마 피부 밑에서는 새 조직을 치열하게 만들어 올리느라 독하게 근지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이후에 자상의 자국은 적어진다 해도 대사의 인격과 양국의 우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불의의 사고에 대한 경각심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상포진을 약 한톨 안 쓰고 나았다고 열심히 간증하지만 두 달이 더 지났는데도 얼굴 턱 가운데 팥알 같은 상처가 흉터처럼 남아있다. 명색이 여자인데 없어졌으면 하지만 얼마나 갈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옹이처럼 굳어있는 자국을 볼 때마다 그때의 간절함과 기도의 응답을 기억하고 대책 없이 매달리던 나를 불쌍히 여기고 견디도록 해주신 은혜를 깨달으라고 남겨놓은 것인가?
명상시인 류시화는 이렇게 말했다.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 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란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