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학림사의 가을]
수능시험이 오늘로 끝이 났습니다.
법우님들 또 법우님들 가족 가운데 수능 시험 보신 분들이 있을 테지요.
이렇게 또 한 해의 입시를 마감하게 되네요.
기도도 열심히 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모두들 고생하셨고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남은 것은 그저 다 맡겨버리는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냥 아무런 생각하지 말고 아무런 분별하지 말고 그냥 나몰라라 하면서 '나'라는 것을 쑥 빼 놓고서는 모든 것을 진리의 운행 속에 모두 맡겨 버리세요.
좋고 나쁜 대학을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고 또 그건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대학 나쁜 대학은 없어요. 좋은 과 나쁜 과는 없어요. 다만 서로 '다른' 대학이 있을 뿐이고, 서로 다른 학과가 있을 뿐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좋고 나쁨이 아닙니다. 다만 서로 다를 뿐. 서로 다른 개성이 존중되어질 뿐입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써 부처님의 성품이 나투어질 뿐입니다.
이 대학을 가도 괜찮고 저 대학을 가도 괜찮습니다. 이 전공을 택해도 좋고 저 전공을 택해도 좋습니다.
어디에라도 고집하고 '꼭'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고정짓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고 진리와 멀어진 마음입니다.
어리석은 우리의 고집과 욕심이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다 놓아버리세요. 이 정도는 가야지, 이 정도 성적은 받아야지라고 고정짓지 말고 고집하지 마세요.
그런 건 없어요. '내 자식인데 이 정도는 되야지?' 그건 나 자신 스스로 무명의 어둠 속에 갖히는 일입니다. 스스로 괴로움의 무덤을 파는 거예요.
반드시 이 대학 정도는 가야한다거나 반드시 무슨 학과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이런 것은 우리 안에서 스스로 고집하는 것일 뿐.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고정짓는 순간 괴로움은 우리를 목죄어올겁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 그건 우리를 공부시키는 재료일 뿐입니다. 왜 우리가 거기에 휘둘려야 합니까. 바깥 경계에 휘둘려야 할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다른 친구는 시험을 잘 봤다는데, 다른 엄마는 자식이 성적이 좋다는데, 우리 애는 왜 이런가!
정말 정말 정말이지 그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예요. 그런 비교는 나를 더욱 어리석게 만들 뿐이고, 진리와 멀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으로써 완전합니다. 성적이 좋았을 때 나 자신이 완전해 지고 보다 멋있어 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미 우리는 완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우울해 하고 즐거워 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우월감을 느끼는 그 마음을 잘 관찰해 보세요.
모르긴 해도 큰 공부, 아주 큰 공부가 될겁니다.
비교 속에서 나를 판단하고 자식을 판단하지 마세요.
성적이나 숫자를 가지고 자식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나는 다만 나일 뿐입니다. 자식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아름답습니다.
수능 성적이 나가 아니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어느 학과를 나왔느냐가 나가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그것이 '나'라고 고정지을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라면 거기에 놀아날 것도 없고 함께 속아서 휘둘릴 것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공부 못 하는 아이도 없고 공부 잘 하는 아이도 없고 모든 아이들이 대자연 속에서 즐겁게 활짝 웃으며 뛰어놀 수 있고 자신감 있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저는 그리워합니다.
이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숫자 놀음에 이제 더이상 휘둘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 엄청난,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휩쓸리고 있고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어리석게 만드는 이 세상의 어리석은 놀음에 끼어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수능 시험일에 저는 또 한번 생각합니다.
우리 모든 아이들이 대자연 속에서 환한 웃음으로 뛰어놀 수 있는 그러한 놀이와 자연 속에서 또 벗들 가운데에서 온전한 진리를 몸소 터득할 수 있는 교육. 그런 세상을...
알량한 성적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세상.
성적을 가지고 아이들을 전국적으로 일등에서 꼴지까지 줄 세우지 않는 세상.
그런 판단으로 우리 아이들이 얼굴 찡그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우리 아이들의 지상목표가 돈 버는 일이라거나, 좋은 대학 가는 일이라거나, 좋은 직장 취직하는 일이라거나, 좋은 차, 좋은 집,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이라거나, 그런데 있지 않은 세상.
지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하고, 친구들 딛고 일어나서 내 등수를 올려야 하는, 서로 싸우고 서로 비교되고 서로 서로 차별되는 학교가 아니라
서로 웃고 서로 마주보며 서로 아껴주고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그런 학교.
그런 학교 그런 세상은 없을까.
삶의 목표가 대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며 어우러지는 삶이어도 좋고,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부여도 좋고, 가난하지만 최소한의 의식주로써 만족하는 삶,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삶이어도 좋으며,
그도 아니면 그저 가족이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삶이나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거나 그냥 그냥 열심히 살겠어요라는 답변이 나올법한 그런 삶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런 세상.
요즘의 교육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안타깝고 또 이미 그렇게 자라서 깊이 쇄뇌되어 이제는 바꾸어 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우리 어른들도 안타깝고 그렇게 어리석은 제도만을 자꾸 기술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행정당국이나 나랏사람들도 모두다 안타깝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해도, 설사 몇몇분들께서 그래 맞는 말이겠다 하고 맞장구를 치더라도, 이 말이 내 삶에서 실천되기는 어려울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건 그만큼 내가, 우리 어른들이 이 세상에 쇄뇌당했고, 그런 고정관념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어요.
돈 많이 벌어야 하는,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하고... 하는 등등의 그런 것들로 평가받고 또 남들을 평가하는 그런 세상에 우리도 물들어 있어서 그래요.
그렇지 않다면 나 먼저 그 엄청난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깨고 나올 수 없는데, 수행자라고 하는 우리가 그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 자식을 바꾸고 우리 주위 사람들을 바꾸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어요?
깨고 나오면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그건 여간 힘든게 아니예요. 그 틀이 너무 견고하고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는게 수행자의 일입니다.
수능 시험일에 우리 모두 좋은 수행하고 좋은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첫댓글 "정말 정말 정말이지
그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예요."
--네, 정말이지 그것땜에 마니 마니도 괴로웠답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으로써 완전 합니다."
--완전 할 렵니다.
이렇게 귀중한 글을 아이들 학창시절에 접할 수 있었다면
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텐데여~.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