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2. 17. 월
편지
민문자
오늘은 편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편지는 안부나 소식, 또는 용무를 글로 적어서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모든 용무연락은 대체로 편지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은 편지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아주 드문 것 같습니다.
사춘기에는 연애편지, 사제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는 문안편지, 국토방위에 힘쓰는 군인에게 보내는 학생들의 위문편지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편지를 많이 쓴 편입니다. 어렸을 때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학자금을 대주시는 숙부께 편지를 쓰고, 여고 시절에는 같은 학년의 서울여고생과 펜팔을 하고, 초등학교부터 교사 시절까지 군인 아저씨에게 쓴 위문편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또 결혼 초에 일 년간 지방근무를 하던 남편과의 애틋한 편지도 한 보따리 있습니다.
가장 엄숙하게 생각하면서 쓰는 편지는 아마도 처음 사돈에게 보내는 문안 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천 년 시월에 딸이 결혼하게 되어 안사돈에게 예단과 함께 보낼 편지를 쓰느라 얼마나 오랜 시간을 쓰고 또 썼는지 참 애를 많이 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쓴 편지를 여기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 장(上狀)
새 사돈어른께 삼가 글월을 올립니다. 일렁이는 바람결에 가을이 묻어오는 계절입니다. 그 간에도 댁내 고루 평강(平康)하신지 삼가 문안드립니다.
기다리고 바라던 인연을 맺어 귀댁 아드님을 맞고 보니 실로 건강하고 밝은 외모에 재기가 넘치는 듯합니다. 이제 제 평생에 소원을 다 이룬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두 젊은이가 길일을 정하고 혼례식을 올리기로 혼약하여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여아는 본디 명랑 쾌활하고 상냥한 편입니다만 아무것도 교훈치 못했습니다. 저희 내외는 보배 중의 보배로 알고 사랑하다 이제 댁의 아드님을 맞이하여 한 쌍의 원앙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귀중한 인생의 재미를 혼자 보는 듯 애틋한 심정으로 미거한 여식을 귀댁에 보냅니다.
그러나 과연 귀댁의 높으신 법도와 엄숙한 예절을 받들어 행할 수 있을지 심히 근심이 앞섭니다. 다만, 높은 심덕을 힘입어 매사를 너그럽게 품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이 혼사로 만사형통하여 가화만사성 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천년 9월 7일
閔 上 狀
편지는 쓴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으므로 받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가까운 친지에게 편지를 써 봅시다. 편지는 더욱 정겨운 사이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은 편지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시낭송>
김남조 시인 약력
∙ 경북 대구 출생.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 졸업.
∙ 예술원 회원.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시집 16권, 수필집 12권, 콩트집 ∙ 편저 ∙ 논문 등이 있음.
∙ 일본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의 번역 시집이 있고,
∙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만해 대상, 일본지구문학상 등을 받음
출발 / 김남조
남은 사랑 쏟아줄
새 친구를 찾아 나서련다
거창한 행차 뒤에
풀피리를 불며 가는
어린 초동을 만나련다
깨끗하고 미숙한
청운의 꿈과
우리 막내둥이처럼
측은하게 외로운 사춘기를
평생의 사랑이
아직도 많이 남아
가슴앓이 될번하니
추스리며 추스리며
길 떠나련다
머나먼 곳 세상의 끝까지도
갖고 가리라
남은 사랑
다 건네주고
나는 비어
비로소 편안하리니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 바다》(1967년, 제6시집)
나목 / 김남조
잊어버리리
간절히 두 손으로 받아 보던
흰 눈도 잊었네
정은 제멋대로 박하고
사람은 제멋대로 아쉽고
인생은 아무 때나 찝질하고
골똘한 미각(味覺) 잊어버리리
불행한 이가 남기고 간 말도
그 미소도 잊으리
잎새를 떨어뜨리며 서 있는 나무
저 허허로운 낭만의 둘레
성스러운 달과 성스러운 해가
조용히 잔을 기울이고
부어 주는 저것은 무엇일까
세월은 제멋대로 가고
사람은 제멋대로 그립고
인생은 자주 물기 없는 선홍의 단풍
모두 잊으리
간절히 두 손으로 받아 보던
흰 눈도 잊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