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는 자의 소리가 광야에 있는가? (이사야 40:3).
이사야서에 아래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사야 40:3; 개역개정).
이 본문을 다시 정렬해 보겠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사야 40:3).
문제 1) 여기에서 사막이라는 단어가 문제입니다.
두 번째 줄(2련)의 '광야'는 바르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줄(3련)의 '사막'은 잘 못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사막도 광야도 아니고 '아라바' 입니다. 아라바는 어딘가요? 아라바는 요르단 골짜기가 사해를 만나기 전의 수 km 부분 입니다. 이스라엘의 현대 지도를 보면 이것과 조금 다르게 아라바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즉, 사해의 남쪽에서 시작하여 홍해에 이르는 긴 부분을 아라바라고 하는데 광야처럼 척박한 곳입니다. 성경시대에는 아라바를 사해에 도착하기 전의 요르단 골짜기 끝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비드가 아들 아브샬롬의 난을 피하여 아라바를 건너 갔다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제가 늘 이야기 하듯이 성지에는 사막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 하십시요.
그러면 이 사실을 반영하여 개역개정을 이렇게 다시 개정하여 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아라바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사야 40:3).
그리고 한글 번역에 사소한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를 할 것이니 무엇이 정리되고 있는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 2) 그런데 읽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구절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ק֣וֹל קוֹרֵ֔א
בַּמִּדְבָּ֕ר פַּנּ֖וּ דֶּ֣רֶךְ יְהוָ֑ה יַשְּׁרוּ֙ בָּעֲרָבָ֔ה מְסִלָּ֖ה
לֵאלֹהֵֽינוּ׃
고대 히브리어 본문에는 구두점이 없습니다. 어디를 끊어 읽어야 하는지는 독자가 정합니다. 따라서 이 원문을 두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① 외치는 소리가 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내라!
아라바에서 우리의 하나님을 위하여 고속도로를 곧게 하라."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외치는 소리' 즉, 음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광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냥 소리가 어디에선가 나는 겁니다.
그 소리가 광야에 길을 내라고 합니다. 길을 준비하라는 게 아니라 길을 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예비하라'는 재고해야 할 번역입니다. 식당에서 우스운 꼴을 자주 봅니다. 종업원이 와서, 음식을 식탁에 놓으면서 한다는 말이, "식사 준비해 드릴게요"라고 합니다. 이미 가져다 놓으면서 준비를 한다고 하니 우습습니다. 차라리 "식사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 구절의 옛 번역이 그렇습니다. 실은 본문은 여호와의 길을 내라 즉, 만들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라바에서 고속도로를 곧게 하라고 합니다. 평탄하게 하라가 아닙니다. 평탄한 것은 바닥이 고른 것입니다. 곧게 하라는 것은 방향이 구불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평탄하게 하라"는 오역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의 고속도로는 지금의 고속도로와는 개념이 달랐겠습니다. 대로, 큰 길, 넓은 길이라고 번역해도 될 법합니다. 그런데 제가 고속도로라고 번역한 이유는 뭘까요? '메씰라'라는 단어는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철길 같이 곧은 길을 뜻합니다. 거침없이 달려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속도로라고 번역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는데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②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있다.
"여호와의 길을 내라!
아라바에서 우리의 하나님을 위하여 고속도로를 곧게 하라."
이 가능성은 외치는 소리 즉, 음성이 광야에서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길은 어디에다 내라는 건지 장소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 어디에나 여호와의 길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는 위의 ① 번 번역에 대한 해설과 같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아라바에는 이미 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 즉, 요르단 강의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오고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크고 곧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양쪽 사이의 교통을 더욱 원활하게 하여 하나님이 왕래하시기 좋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위의 두 번역들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답을 할 수가 있습니다. (1) 이 구절을 쓴 사람은 어디에 있는냐 하면 요르단 강의 서쪽에 있습니다. 아마 예루살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 본 순서는 예루살렘 --> 광야 --> 아라바 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부터 길이 없는 광야에 여호와 하나님이 다니실 길을 내고, 이미 길이 있는 아라바에서는 그 길을 넓히고 곧게 하라는 것입니다. 저의 눈에는 서쪽 예루살렘에서부터 동쪽 요르단 골짜기까지 좍 길이 생기는 환상이 보입니다. 따라서 광야와 아라바가 지리적 연관성을 이루는 ① 번 번역이 여기에 맞습니다.
(2) 히브리어의 독특한 평행법은 우리가 ① 번을 선택하여 읽도록 합니다. 즉, 이 구절은 이렇게 조판을 하여야 합니다.
ק֣וֹל קוֹרֵ֔א
בַּמִּדְבָּ֕ר פַּנּ֖וּ דֶּ֣רֶךְ יְהוָ֑ה
יַשְּׁרוּ֙ בָּעֲרָבָ֔ה מְסִלָּ֖ה לֵאלֹהֵֽינוּ׃
외치는 소리가 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내라!
아라바에서 우리의 하나님을 위하여 고속도로를 곧게 하라."
2련과 3련은 같은 것 또는 대비되는 개념들을 반복하거나 이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어 평행법의 특징입니다. 2련의 '광야'는 3련에서 '아라바'로 다시 나타납니다. 2련의 '여호와의 길'은 3련에서 '하나님을 위한 고속도로'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만약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다'하고 광야를 1련으로 올려 버리면 2련과 3련이 댓구 또는 대칭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번역은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외치는 소리가 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내라!
아라바에서 우리의 하나님을 위하여 고속도로를 곧게 하라."
그러면,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1) 왜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광야를 경유하여 아라바까지 훤하게 길을 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곰곰히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이 글에 대한 조회수가 20회가 넘는 시점에 제가 그 답을 해설하여 매어 달겠습니다. (2) 침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인가?
첫댓글 무심히 흘려 읽었던 성경구절을
한구절 한구절 다시 재해석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설교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교수님 통해 이스라엘 역사에 관심이 깊어집니다. 샬롬~^^
이스라엘 역사를 깊히 알면 한반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낙관적인 미래는 아닙니다만......
성경은 모든 구절이나 단어가 70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고대 랍비들이 가르쳤어요. 그러므로 그 뜻을 다 알기 어렵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기본적인 사항이라도 잘 알기 위해서는 다시 다 뜯어 보아야 합니다. 무심히 보면 안 되지요.
궁금하네요~ 다시한번 침튀기며 열변을 토하시는 교수님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유나도 뵙고싶데요~^^
네. 저도요. 그럼 빨리 오세요
스터디모임이 있습니까? 좋은 글 유익한 글 읽다보니 더 많이 궁금해지네요
네 있습니다. 베이트 미드라시 모임 입니다. 소그룹 입니다. youaremyhonor@gmail.com 으로 연락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연락드릴게요
어이쿠 이거 벌써 조회수가 20회가 되었습니다. 왜 광야와 아라바에 길을 내라고 했는지 답을 달아야 할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큰일 입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요.
세례요한이 외치는자의 소리이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는데요 그 의미를 헬라어에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예수님이 천국을 얘기하는지요
@순례자 평안하시죠 목사님!! 많이 바쁘셔서 아직도 답이 없으시네요?? 우짜든지 기다리겠습니다.
@영광을 주님께 제가 게을러서 탈 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말씀하시지요. 고대 유대계 문서에서 예수님의 말씀만큼 천국을 설파하는 문서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지에 사막이 없다는 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그런데 강의 시간을 통해 사진을 볼 때면 꼭 사막으로 보여지기도 했어요
우리의 고정인식이 참으로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슴을....
교수님께서 내신 과제를 찾으러 왔다가 이방저방 구경하고 다닙니다 성지의 지리를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면서요 열심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1학차 최명애
하나 하나 읽어가면서 새로운 흥미를 느낍니다.
답이 궁금합니다
20인중 한 명으로 글 올립니다.
귀한 내용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수님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한글성경만 그대로 봐서는 성경의 정확한 의도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한글성경에 번역된 사막이 사막이 아닐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왜 교수님께서 그렇게 이스라엘에 대해 공부할 것을 강조하시고 성경지리를 함께 병행하면서 성경을 볼 것을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제가 참 모르는게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하지 않으면 무식한 소리를 강단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칩니다. (주성규~*)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