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의 합법 활동기 : 1993년 이후 ~ 현재
운동권들은 1993년 민간인 출신 대통령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운동권과 좌익 세력들은 과거의 지하 활동뿐만 아니라, 합법적 활동도 동시에 개시한다. 좌익들은 기존의 다양한 단체들을 양성화하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라는 거대단체를 결성하고, 이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특히, 1998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이 초기 주로 내세운 이슈는 통일, 환경, 인권, 여성, 빈민, 노동 문제 등이지만, 그 내부의 주장은 대부분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연계되어 있다. 즉, 이들의 전술은 사회적 이슈를 내세움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이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지지 세력을 넓히는 것이었다. 반면, 기존의 보수계층은 승리감에 젖어 그 맥이 점점 사라지고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고, 타성에 젖어 살고 있던 시기이다. 이 시기를 시작으로 대학교의 수가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각 대학교에 좌익 성향의 교수들이 포진하게 되고, 변호사,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심지어는 대학 자체가 좌익 성향인 경우도 나타나는데 대부분 이 시기에 정규대학으로 승격되거나 설립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현재 시민들이 질려하는, 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이슈를 연결짓는, 자칭 시민단체의 약 70% 이상이 1998년 이후에 설립되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4년 6월 2일 김일성 조문 파동
1994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김일성이 돌연 사망했다. 이에 운동권들은 김일성에게 국가차원의 조문 사절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조문을 위해 密入北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학내에 빈소를 설치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정부는 이에 대대적인 主體思想 관련 조직들을 검거했다. 관련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들은 김세원(凡民聯 남측본부 광주전남연합 창립준비위원장), 오병윤(민주주의 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사무처장), 김양무(凡民聯중앙정책실장), 이종욱(서총련 의장), 설충석(韓總聯 대변인), 김종백(서총련 조통위원장), 최종민(서총련 동부지구 의장, 건국大 총학생회장), 이석준(고려大 동양사 2), 강희남(凡民聯 의장), 이종린(凡民聯 부의장), 전창일(凡民聯 부의장), 강순정(凡民聯 부의장), 안희만(凡民聯 간사), 신광수(법명 법탁, 평불협 상임부회장), 이지범(평불협 前 총무부장), 이영규(전남大 법대 학생회장), 문정우(전남大 부총학생회장), 정연철(고려大 총학생회 학생복지위원장), 이광훈(고려大 경제2), 전창근(고려大 경제3), 김준일(고려大 경제3), 최윤규(고려大 경제3), 남창유(고려大 경제3), 이창복(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공동본부장, 全國聯合 상임의장), 황인성(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집행위원장, 全國聯合 상임집행위원), 조성우(범추본 서명운동본부장, 민족회의 정책위원장), 이종순(전주대 총학생회장), 김정미(한국外大, 아랍어4), 이정익(한국한국外大 중국어3), 양태조(한국外大 인도어3), 최낙윤(한국外大 아랍어4), 최창우(지도위원. 사회개혁국민운동연합 의장), 권오창(지도위원. 통혁당사건 관련자), 최형록(지도위원. 전민중당기관지 편집인), 홍승문(의장. 진보민청 부의장), 최인기(노동위원. 마이크로세라믹 노동자), 김영호(노동위원장), 정승희(문화위원장), 이정아(총무국장), 방진옥(조직국장), 조혁(反美청년회 의장), 안성민(건국大 조국통일위원회 위원), 강한수(경상대 법대회장)김형남(동신대 4), 강선원(남총련 조국통일위원장, 목포대 총학생회장), 김성옥(전남大 총학생회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 단은경(원광대 정외과 4), 정현중(원광대 야간전자공학과4. 휴학), 안재구(前 경희大 강사), 최혁(우리청년회 회장) 등이다. 이들 중 조혁은 현재 北韓민주화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으며(反美청년회 참조), 최혁은 청년진보당 등을 거쳐 사회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95년 10월 1일 김동식 간첩사건
北韓노동당 사회문화부 소속 김동식(본명 이승철)과 박광남(사살됨)은 남파 간첩을 대동 월북하라는 임무를 띠고 1995년 8월 29일 남파되었다 군▪경에 의해 체포▪사살됐다. 이 사건과 관련, 서울경찰청은 11월 6일 全大協동우회 회장 이인영(전 고려大 총학생회장), 함운경, 우상호(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전 연세大 총학생회장) 등 3명을 국가보안법상 불고지 혐의로 긴급구속, 접촉경위 등을 조사하였다. 이후, 서울지법 형사 항소3부는 남파간첩과 접촉한 뒤 이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구속된 뒤 구속 적부심을 신청한 우상호氏에 대해서는 석방하였지만, 함께 구속적부심을 신청한 이인영과 함운경 등 2명에 대해서는 기각하였다. 이 때 관련자인 이인영, 우상호는 현재 열우당 의원이며(全大協 관련 사건 참조), 함운경은 全國聯合 간부, 청단협 간부 등을 거쳐 정치 활동 중이다.
1996년 1월 1일 자주대오 사건
경찰은 「자주대오」 사건을 발표, 『主體思想을 지도이념으로 한 이적단체를 결성하여 학내 불법시위를 주도하고 조직원들을 韓總聯 지도부나 총학생회 간부로 진출시켜 親北활동을 배후조정해 왔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유학식(전주우석大, 자주대오), 윤남철(원광大, 구국자주대오), 차성빈(원광大, 구국자주대오), 임성룡(원광大, 구국자주대오), 박종배(원광大, 구국자주대오), 서진배(충남大, 충남大활동가조직), 나호영(부산大, 자주대오사건), 김영덕(충남大, 충남大활동가조직), 김인용(부산大, 자주대오사건), 서순태(전남大졸, 남총련자주대오), 김미라(전남大졸, 남총련자주대오), 백몽인(전남大졸, 남총련자주대오), 정지문(전남大, 남총련자주대오), 김세희(전남大, 남총련자주대오), 강인철(전남大, 남총련자주대오), 양병일(전남大, 남총련자주대오), 박미승(전남大, 남총련자주대오), 이상민(전남大졸, 남총련자주대오), 김소영(전남大졸, 남총련자주대오), 강민구(전남大졸, 남총련자주대오), 박보석(전남大, 남총련자주대오), 조철진(전남大, 남총련자주대오), 장용길(내일신문기자, 자주대오사건), 여준성(상지대, 활동가조직사건), 이문수(상지대, 활동가조직사건), 정재호(상지대, 활동가조직사건), 김인봉(상지대, 활동가조직사건), 최혜선(상지대, 활동가조직사건), 김재현(상지대, 활동가조직사건), 김태현(부산外大, 자주대오), 김희영(부산外大, 자주대오), 장청호(부산外大, 자주대오), 문혜영(부산外大, 자주대오), 윤재호(부산外大, 자주대오), 김동(부산外大, 자주대오), 최원호(부산外大, 자주대오), 이병근(부산外大, 자주대오), 박영춘(부산外大, 자주대오), 류미선(부산外大, 자주대오), 이은경(부산外大, 자주대오), 원태식(부산外大, 자주대오), 김용관(제주大, 활동가조직), 김대경(제주大, 활동가조직), 김동현(제주大, 활동가조직), 예병남(釜山外大, 자주대오), 이지현(상지대, 활동가조직사건), 진병환(강원大, 자주대오사건), 조성호(강원大, 자주대오사건), 황원철(강원大, 자주대오사건), 황성순(강원大, 자주대오사건), 김태희(강원大, 자주대오사건), 박기춘(강원大, 자주대오사건), 홍성철(강원大, 자주대오사건), 공부재(진주경상大, 활동가조직사건), 이경하(진주경상大, 활동가조직사건), 김종길(진주경상大, 활동가조직사건), 박동주(진주경상大, 활동가조직사건), 안미경(진주경상大, 활동가조직사건), 정양덕(진주경상大, 활동가조직사건) 등이 구속되었다. 이 조직 사건을 통해 이제는 지하 세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主體思想이 대중화 되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konas) written by. 전경웅 <enoch2051@hanmail.net> 200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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