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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미셸 카레 및 외젠 코르몽
초연 1863년 9월 30일 파리 리리크 극장
배경 고대 실론 섬(지금의 스리랑카)
<2004.4월 베네치아 말리브란 극장 / 122분 / 한글자막>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마르첼로 비오티 지휘 /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
레일라........무녀. 브라만교의 여사제............아니크 마시(소프라노)
주르가........조개잡이 부족의 족장................루카 그라시(바리톤)
나디르........조개잡이 어부. 부족장의 친구.....야수 나카지마(테너)
누라바드.....브라만교의 고승.......................루이지 데 도나토(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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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1막>
해변에서 진주조개잡이 어부들이 그들을 보호해 줄 처녀 성직자를 기다리면서 주르가를 족장으로 추대하는 장면. 주르가의 어린시절 동무인 나디르가 예고 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과거에 베일을 쓴 아름다운 소녀를 동시에 좋아했는데, 당시 그들은 친구간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둘 다 그들의 사랑을 포기하는 대신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일을 떠올린다. 대제사장 누라바드가 여성 사제를 맞이하고, 주르가는 부족 대표로서 그녀에게 무녀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나디르는 그녀가 예전에 사랑했던 소녀 라일라임을 알아챈다. 그날 밤, 나디르는 예전에 그가 주르가를 배신하고 그녀를 따라갔었던 일을 떠올린다. 나디르가 잠이 들 무렵 잠결에 라일라의 노랫소리가 들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따라가보니, 그녀가 바위 위에 앉아 있다. 나부끼는 베일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살짝 비치자 그는 기뻐한다.
<2막>
라일라는 오래전 어떤 남자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답례로 목걸이를 받았던 일을 떠올린다. 나디르가 혼자 남아 있는 라일라를 찾아오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거부하지 못하는데, 둘 다 위험해질 것을 아는 라일라는 그에게 떠나줄 것을 애원한다. 총성이 들리고, 누라바드는 성스러운 신전의 규율을 위한반 낯선 침입자가 나디르라는 것을 밝혀낸다. 진주조개잡이 어부들은 격분해 라일라와 나디르를 사형시키자고 들고 일어나지만, 주르가가 대표인 자신만이 이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못박고, 두 사람에게 도망갈 것을 권한다. 그러나 누라바드가 라일라의 베일을 찢어버리자, 주르가는 나디르가 자신을 깊이 배신했음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사형을 명한다.
<3막>
새벽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주르가는 나디르를 죽이라고 명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데, 라일라가 등장하자 그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되살아난다. 라일라는 나디르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며, 오직 자신만 벌할 것을 애원하지만. 주르가는 그녀가 나디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친구의 사형 집행을 연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르가 역시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에 그는 질투심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라일라는 그를 저주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라며 그에게 맞선다. 날이 밝아 사형집행 시간이 다가오고, 라일라는 자신은 죽을 준비가 되었다면서 어부들에게 자신의 목걸이를 자신의 어머니께 전해달라고 요청한다. 갑자기 주르가가 목걸이를 잡아채고서 그녀의 뒤를 쫓는다. 화장용 장작더미 아래에서 나디르가 라일라에게 마음속으로 슬프게 작별 인사를 고한다. 갑자기 주르가가 나타나 저 하늘에 보이는 빛 한 줄기는 하늘에서 보낸 불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그 자리에서 흩어지기 시작한다. 주르가는 연인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자신이 불을 지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에 그가 라일라에게 주었던 목걸이를 보이면서 그가 이제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겠다고 말한다. 마침내 그들은 멀리 도망치고, 주르가는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느낀다.
=== 프로덕션 노트 ===
'나디르의 로망스', 그 황홀한 매력이 넘치는 오페라
<카르멘>을 작곡한 조르주 비제는 그에 앞서 약간의 오페라를 더 남겼는데 그중 <진주조개잡이>가 가장 유명하다. 나디르와 주르가의 이중창 '성스런 사원에서', 그리고 프랑스 특유의 오트-콩트르 전통이 남아있는 유명한 테너 아리아 '나디르의 로망스'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진주조개잡이>는 실론 섬, 즉 지금의 스리랑카를 배경으로 하는 이국 취향의 오페라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이 생긴 이탈리아의 세계적 오페라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는 남아시아 섬나라의 특징을 놀랍도록 뚜렷하게 포착하여 그윽한 감동을 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리릭 소프라노 아니크 마시(레일라)가 종교적 영성마저 느껴지는 놀라운 미성을 들려주며, 동양인으로 유럽의 중심부에 진출한 일본 테너 야수 나카지마(나디르)도 프랑스 리릭 오페라의 서정성을 잘 펼쳐내고 있다. 2004년 4월 실황.
=== 작품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채한울 글>
진주잡이
조르주 비제
이국적인 정취, 신비스러움, 동양적인 선율 등은 당시 유럽의 오페라 유행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고대 실론에서의 ‘사랑과 우정 사이’
고대 실론섬의 한 해안마을에 두 젊은 친구가 있다. 부족의 족장인 주르가와 오랫동안 고향을 떠났다가 이제 막 돌아온 나디르는 매우 절친한 관계였으나 한 때 레일라라는 여인을 동시에 사랑해 연적의 세월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도 없고 둘의 우정을 아무것도 방해할 것은 없다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다. 그 때 먼 나라에서 매년 브라만교의 고승인 누라바드가 데리고 오는 새로운 무녀가 당도하고, 주르가는 그녀에게 무녀로서 평생 베일을 벗지 말고 처녀로 지내며 진주 조개잡이들의 안전을 위해 빌 것을 맹세시킨다. 나디르는 그 무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레일라임을 알아차리고, 레일라 역시 나디르를 알아본다.
누라바드는 레일라에게 서약을 반드시 지킬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레일라는 과거에 한 남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비밀을 지킨 이야기를 하며 자신은 약속을 어기지 않음을 강조한다. 누라바드가 나간 후 나디르는 레일라에게 다가가 이제껏 쌓아온 사랑을 고백하고 레일라는 함께 있으면 안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나디르의 품에 안기고 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둘의 모습은 발각되어 누라바드는 둘을 벌하려 한다. 그 때 그곳으로 달려온 주르가는 족장인 자신에게 둘에 대한 처벌의 권리를 달라며 둘을 용서하자고 말하지만 이내 그 무녀가 레일라임을 알고 다시 한 번 벌어진 일에 대한 배신감으로 나디르와 레일라에게 사형을 명한다.
둘에게 사형을 명한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던 주르가에게 레일라가 찾아와 나디르를 살려달라고 부탁하자 주르가는 질투심에 불타 더욱 용서할 수가 없다. 처형준비가 다 된 그 때에 주르가는 레일라가 걸고 있던 목걸이를 보고 그녀가 자신의 생명의 은인임을 알게 되고 마을에 불을 내 사람들의 관심을 돌린 후 두 사람을 안전하게 도망시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누라바드는 마을사람들에게 주르가야말로 이 일의 원흉이니 그를 죽이라고 명하고 주르가는 몰매를 맞아 죽어가며 레일라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쥐구멍에 볕든 날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제는 이미 어린나이부터 작곡가로써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17세에 〈교향곡 1번〉을 쓰고, 19세에 오펜바흐가 개최한 오페레타 대회에서 공동 우승을 하고 로마대상도 받아 3년간 로마로 유학할 자격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로마에 있던 시절을 포함하여 그 후로도 몇 년간 작곡가로써 입지는 좋아지지 않았고 경제적 사정은 계속 나빠져서 당시에 파리에서 오페레타를 피아노로 편곡하는 일이나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이어나가느라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페레타를 피아노용으로 편곡하는 그의 솜씨는 매우 훌륭했던 덕에 음악가로서 그의 이름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고, 이때의 많은 편곡활동이 극음악을 짓는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던 와중에 파리의 오페라 애호가인 바레우스키(Walewski) 백작이 10만 프랑을 후원하며 기존 로마대상을 받았던 젊은 작곡가들 중에서 리리크 극장에 작품을 올릴 사람을 찾았고, 극장장의 선택으로 이 기회는 비제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쓰기만 하면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조건에서 비제의 창작의욕은 한껏 높아졌지만 이미 받아놓은 많은 편곡 일거리들 때문에 작업이 늦어져 해를 넘겨서야 겨우 작품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초연 당시에는 이 작품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아 비제가 살아있는 동안 재공연 되지 못했지만 예외로 베를리오즈는 이 작품을 옹호하였고, 작곡가 사후에 오페라 〈카르멘〉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함께 인기 있는 레퍼토리가 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트렌디 오페라
이 작품에서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소재들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이국적인 정서, 두 번째는 무녀의 등장이다. 사실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낭만성 가득한 환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머나먼 실론섬을 배경으로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 극은 관객들을 신비로운 분위기에 잠기게 만들었다. 거기에 비제의 장기인 이국취향의 선율과 동양적인 무대미술이 합쳐지면서 관객들이 경험하는 그 분위기는 배가되었다. 신성과 함께하기 위해 남자를 멀리해야만 하는 무녀의 이야기는 사랑이야기를 주로 하는 오페라에서 다루기 좋은 소재였다. 독신이거나 처녀여야만 하는 운명을 저버리고 사랑을 택한 더욱 극적인 사랑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진주잡이〉는 당시의 유행을 고려하여 대중들이 좋아하도록 만든 트렌디 오페라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나디르와 주르가의 2중창, ‘성스러운 사원 뒤에서’(Au fond du temple saint)
오랜 세월 고향을 떠났던 나디르가 귀환한 후 나디르와 주르가가 만나 부르는 2중창이다. 둘은 과거 매우 절친한 사이였으나 어느 날 사원에서 나오던 한 여인을 보고 둘 다 그 미모에 반해 결국 연적으로 사이가 나빠져 이날까지 헤어졌다가 이제야 다시 만난 것이다. 이제는 그녀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의 우정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다시 새롭게 우정을 쌓을 것을 다짐하는 우정의 노래이다.
나디르의 로망스 ‘귀에 익은 그대 음성’
새로 온 무녀가 자신의 임무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서약하고 주르가의 손에 끌려 사원으로 들어간 후, 목소리를 듣고 그 무녀가 레일라임을 눈치 챈 나디르가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부르는 아름다운 로망스이다. 테너들이 이 곡만 독자적으로 많이 부르는 레퍼토리이며, 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명곡이며, 팝송으로도 불려서 대중들에게는 더욱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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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5년 4월 10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비제, 진주잡이
이국풍 소재를 사용하여 억압하는 사회에 맞선 개인의 고뇌를 탁월하게 표현
비제의 나이 25세에 작곡. 1863년 파리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초연
두 친구가 한 여자나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은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20초 만에 반한 이성 때문에 20년 동안 쌓아온 우정을 포기할 수는 없어 두 친구는 함께 우정을 택하기로 약속한다. 테너와 바리톤 주인공이 함께 부르는 오페라 속 대표적인 남성 이중창 [신성한 사원에서]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노래다.
[카르멘]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카르멘] 이전에 1863년 파리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오페라 [진주잡이]를 초연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 아홉 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한 비제는 초기에 기악곡들을 작곡하다가 곧 극음악에 관심을 보여 오페라 작곡을 시작했다. 대표작 [카르멘] 이전에 이미 14편의 오페라와 오페레타, 연극 부수음악을 작곡했고, [진주잡이]는 25세에 작곡한 초기작이다. 비제가 로마대상을 받고도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오페레타 편곡 작곡가로 생계를 잇고 있을 때 테아트르 리리크 극장장 카르바요는 오페라 애호가 바레우스키 백작의 후원금으로 비제에게 공연 기회를 주고, [진주잡이]의 대본도 직접 구해주었다.
외젠 코르몽과 미셸 카레가 쓴 이 오페라의 대본은 원래 작곡가 마이야르를 위한 것이었지만, 비제에게 주어지면서 무대가 멕시코에서 고대의 실론 섬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종교적인 배경도 힌두교가 되었다. 미셸 카레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본을 쓴 당대의 유명 작가였지만, 의외로 그의 [진주잡이] 대본은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진주잡이]가 초연에 성공하지 못한 책임이 대본에 돌아오기도 했다.
가장 로맨틱한 테너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
3막으로 이루어진 이 오페라의 1막은 고대 인도 남부 실론 섬의 바닷가에서 시작된다. 천민 출신인 레일라(Leila. 소프라노)는 신비로운 미모와 뛰어난 노래 솜씨 덕분에, 진주 채취로 생계를 잇는 어느 부족을 위해 기도하고 노래하는 과제를 맡는다. 남자들이 바다에 들어가 진주를 캐는 동안 온종일 바닷가 바위 위에서 그들의 안전과 풍요로운 수확을 위해 힌두 신에게 기도하고 또 아름다운 노래로 노동을 격려하는 여사제가 된 것.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레일라는 새로 선출된 젊은 족장 주르가(Zurga. 바리톤)와 힌두 사제 누라바드(Nourabad. 베이스) 앞에서 정결 서약을 한다. 여사제의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남자도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경우에는 죽음의 벌을 받겠다는 약속이다.
한편 오랜 세월 객지를 떠돌다 돌아온 나디르(Nadir. 테너)는 형제 같은 친구였던 주르가를 다시 만나 [신성한 사원에서]라는 이중창을 노래하며 영원한 우정을 다짐한다. ‘어느 날 힌두 사원에서 함께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동시에 사랑에 빠져 서로 원수가 되었지만, 소중한 우정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그 사랑을 마음에서 몰아냈다’는 내용의 노래. 그러나 당시 나디르는 친구를 배신하고 그녀를 찾아가 사랑을 나눴다. 이제 이곳에 막 여사제로 도착한 여인이 바로 그녀임을 목소리로 알아차린 나디르는 추억과 욕망에 싸여 ‘지금도 들리는 듯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을 노래한다. 베냐미노 질리, 유시 비욜링 같은 미성 테너의 노래로 유명한 이 아리아는 물결 위에서 배가 천천히 흔들리는 듯한 나른한 반주와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이 기막힌 대비를 이루는 명곡이다.
2막. 별빛이 찬란한 밤, 사원의 폐허에서 혼자 밤을 보내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레일라는 지난날 나디르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두려움을 떨치려고 애쓴다. 그때 나디르가 나타나 레일라에게 자신의 열정을 새롭게 고백한다. 레일라는 나디르가 처할 위험을 생각해 거부하지만, 결국 그 열정에 감염되어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때 레일라를 감시하려고 이곳에 온 누라바드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성스러운 장소에서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며 두 사람을 비난한다. 주르가는 베일 속의 여사제가 과거의 그 여인임을 알게 되자 나디르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주르가의 심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폭풍우 묘사음악과 함께 3막이 시작되고, [폭풍우가 잦아드는구나]라고 무겁게 노래하며 주르가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여야 하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때 레일라가 찾아와 나디르는 결백하며 모든 게 자기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제게 자신의 영혼을 바쳤어요. 내가 죽을 테니 그를 살려주세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에서 소프라노 주인공 레오노라가 테너 만리코를 살리기 위해 바리톤 루나 백작에게 애원하는 것과 똑같은 내용이다. 소프라노에게 사랑을 못 받은 바리톤의 입장에서는 ‘불난 집에 부채질, 상처에 소금 뿌리기’인 셈이니 분노가 더욱 솟구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을 죽이겠다는 결심이 굳어진 주르가. 하지만 레일라가 목걸이를 풀어 어떤 마을 사람에게 주며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해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자(주르가에게 목걸이를 직접 건네는 연출도 있다) 갑자기 그 목걸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레일라는 오래전에 어떤 무리에 쫓기던 자신을 목숨 걸고 숨겨준 용감한 소녀였던 것. 그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와 여자를 살릴 명분을 얻은 주르가는 해가 뜨자 마을에 불을 지른다. 놀란 마을 사람들이 다들 집에서 달려 나와 불을 끄느라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주르가는 레일라와 나디르를 도망시키고, 결국 자신이 누라바드에게 처형된다.
사회집단의 규율과 개인적 감성 사이의 갈등
[진주잡이]는 '이국풍(異國風)'의 선도적 작품으로, 장 필립 라모의 [멋진 인도인들]이 초연된 이후로 유럽에서 꾸준히 인기를 끈 '이국풍' 유행의 대표작이다. 서양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실론 섬을 배경으로 여사제를 등장시켜 동양의 신비를 강조한 점을 이국풍으로 본 것이다. 음악에 나타난 이국풍을 분석한 음악학자들은 주로 기악 작품을 대상으로 삼았다. 음악적 스타일의 요소들이 감상자의 귀에 특이하게 들릴 경우 이를 이국풍이라고 칭하는데, 가장 뚜렷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리듬이며 때로는 선율 자체에서도 그런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감상자가 들었을 때 음악에 쓰인 음악적 재료가 뭔가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먼 곳, 미지의 세계의 정취를 느끼게 할 때 이를 이국풍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본이 있는 오페라의 경우에는 이국풍의 기준이 음악적 재료나 스타일보다는 작품 소재 자체나 배경 지역, 대본상의 대화 내용 등으로 결정된다. 음악극 속의 음악은 극의 플롯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음악적 재료로서 감상자의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 음악이 붙어 있는 가사와 함께 입력되기 때문이다.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라모의 [멋진 인도인들], 푸치니의 [나비부인], 비제의 [카르멘] 등이 이국풍 오페라의 좋은 예다.
구노의 영향을 받은 비제는 몇 년 후에 작곡한 [카르멘]보다 이 [진주잡이]에서 훨씬 고요하고 정제된 음악을 선보였다. 이 오페라에서는 '사회집단의 규율과 개인적 감성 사이의 갈등'이라는 작품 주제가 음악적으로 탁월하게 표현된다. 나디르의 [목소리 아리아] 뿐만 아니라 그가 레일라에게 다가오면서 부르는 12박자 바카롤(Bacarole) 풍의 노래는 장조와 단조의 연속적인 변환을 통해 억압적인 사회에 맞서 갈등하며 흔들리는 개인의 위태로운 내면을 보여준다.
[진주잡이] 초연은 비제의 기대와는 달리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1875년 [카르멘] 초연이 실패하고 비제가 석 달 뒤에 죽은 다음, 해외에서 [카르멘]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전작인 [진주잡이]도 새로운 조명을 받았고, 파리에서는 초연 후 30년이 지나서야 다시 공연되기 시작했다.
[CD] 바바라 헨드릭스, 존 에일러, 지노 퀼리코 등, 미셸 플라송 지휘, 툴루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89년, EMI
[DVD] 아니크 마시스, 나카지마 야수, 루카 그라시 등, 마르첼로 비오티 지휘,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 2004년 공연 실황, Dynamic(한글자막)
[DVD] 파트리차 초피, 드미트리 코르차크, 다리오 솔라리 등, 가브리엘레 페로 지휘,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파비오 스파르볼리 연출, 2012년 공연 실황(한글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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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7월 7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지금도 다시 들리는 것만 같다
비제 <진주조개잡이>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출세작이다. 당시 유행하던 이국취미(異國趣味)를 반영하여 만들었지만, 현지 음악을 채용하여 작곡한 것은 아니다. 제1막에서 나디르가 노래하는 아름답고 달콤한 로망스(romance=18~19세기의 사랑의 노래)는 테노레 레찌에로(테노레 레지에로, tenore leggiero=경쾌한 테너 목소리)의 아리아로 단독으로도 유명 테너들이 무대에서 곧잘 부른다. 한편 [진주잡이의 탱고]라는 ‘컨티넨탈 탱고’ 의 명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름답고 달콤한 로망스
고대의 실론 섬(Ceylon=스리랑카)이다. 진주잡이 어부들과 여자들의 모임에서 새로운 두령(頭領)으로 주르가를 선출한다. 그때 옛 친구 나디르가 나타난다. 둘은 옛날 레일라 라는 미인을 두고 다투었으나 이제 모두 잊고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다. 그 무렵 바라몬 교의 고승 누라바드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승(女僧)이 카누(canoe=통나무배)를 타고 와서 상륙한다. 나디르는 그 여승의 목소리를 듣고 레일라임을 알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그 순간 베일을 들어 올린 모습을 보고 분명 그녀임을 알고 사랑을 맹세한다. 고승 누라바드의 경고(警告)에도 불구하고 사원(寺院)을 찾아온 나디르의 뜨거운 사랑의 호소를 뿌리치지 못하고 레일라는 다음 날 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를 보낸다. 나디르는 신성한 맹세를 어긴 죄인으로 누라바드에게 체포된다. 두령 주르가는 격분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나디르를 우정으로 감싸지만 여승이 레일라라는 사실을 알자 분노와 질투가 치솟아 사형을 선언한다. 그러나 분노가 가라앉자 그는 자기가 보인 노여움과 행동을 뉘우치며 후회한다.
레일라는 죽음을 앞두고, 옛날 구출(救出)해준 한 도망자에게 받은 목걸이를 어머니에게 전해 달라고 주르가에게 부탁한다. 그 목걸이를 받아 든 주르가는 지난 날 도망 치다 구출된 더망자가 바로 자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 두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누라바드에게 이끌려 화형대(火刑臺)에 나타난 레일라와 나디르. 그때 갑자기 주르가가 마을에 불이 났다고 소리쳐 마을 사람들을 그쪽으로 달려가게 만들고, 실은 불을 지른 것은 자기라고 두 사람에게 고백하고 그들을 잡아맨 밧줄을 끊고 도망시킨다. 그 광경을 엿들은 누라바드가 이윽고 돌아온 사람들과 한편이 되어 앞을 가로 막고 나서는, 주르가를 쓰러뜨린다. 주르가는 레일라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숨을 거둔다. 오페라 대본은 꼬르몽(Eugène Cormon)과 까레(Michel Carré)가 썼다.
'지금도 다시 들리는 것만 같다'
지금도 다시 들리는 것만 같다,
야자나무 그늘 은밀한 곳에서
달콤하게 울리는 그대의 노래 소리,
산비둘기의 노래와 같아!
오 매혹적인 밤이여!
성스러운 황홀감이여!
아름다운 추억이여!
광기(狂氣)어린 도취여! 달콤한 꿈이여!
눈부시게 빛나는 별빛 아래,
지금도 다시 보이는 것만 같아,
저녁의 나른한 미풍이 베일을
문득 들어 올려 보여준 그대 모습!
오 매혹적인 밤이여!
성스러운 황홀감이여!
아름다운 추억이여!
광기어린 도취여! 달콤한 꿈이여!
아름다운 추억이여!
이 노래는 테너의 아리아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오페라 [진주조개 잡이]에는 레일라의 아리아며 2곡의 2중창 등 모두 감미(甘美)로운 곡들이며 너무도 고혹적(蠱惑的)이어서 오페라 전곡을 듣고 싶은 생각이 어느 새 없어지는 야릇한 오페라이다. 가사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불러일으키듯 관능적인 시를 나열하고 있으며 청년의 나른한 욕정이 그늘에 짙게 깔려 있다.
들을 만한 음반과 DVD
[CD] 끌뤼땅스(클뤼탕스 André Cluytens) 지휘, 빠리 오페라 꼬미끄 극장 관현악단/ 합창단(1955) 앙리 르게이(T) EMI
전형적인 오페라 꼬미끄 양식의 연주이다. 순 불란서적인 시정(詩情)과 투명한 아름다움을 이만큼 확실한 양식감(樣式感) 속에 완전히 용해시켜 우아하게 표현한 연주는 드물다. 진짜 불란서 음악의 향기와 에스쁘리가 어떤 것인지를 이 음반에서 만끽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끌뤼땅스(André Cluytens)의 유려하고 치밀하게 잘 다듬은 통솔력과 극적 표현력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불란서를 대표하는 가수진(Henri legay[Nadir], Martha Angekici[Leila], Michel Dens[Zurga], Louis Noguéra[Nour abad])의 기라성 같은 노래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녹음이 오래 되었다는 것이 유일한 흠일 것이다.
[CD] 삐에르 데르보(페이르 데르보, Pierre Dervaux) 지휘, 빠리 오페라 꼬미끄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60) 니콜라이 겟다(니콜라이 게다, Nicolai Gedda, T) EMI
역시 불란서인 다운 오페라 꼬미끄 연주이다. 주역인 미쇼(Janine Micheau)는 1976년에 72세로 죽은 불란서의 원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이며 이 레코드 녹음 당시 46세였다. 비록 쇠퇴기에 접어들기는 했으나 다른 가수가 흉내 낼 수 없는 남다른 감정 표현으로 가식 없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음의 눈부신 빛은 황홀할 정도이다. 그리고 블랑(Ernest Blanc)과 마르(Jacques Mars) 같은 당시 불란서 오페라계의 대표 가수를 갖춘 데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겟다(Nicolai Gedda)가 참여하여 일대 파노라마를 펼친다. 비록 불란서 출신 가수는 아니지만 겟다가 노래하는 ‘지금도 다시 들리는 것만 같다’를 한번 들으면 그 목소리의 마력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데르보(Pierre Dervaux)와 빠리 오페라 꼬미끄가 뿜어내는 화려하고 진폭 큰 오케스트라의 뉘앙스 또한 인상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금도 다시 들리는 것만 같다 - 비제, [진주조개 잡이] (내 마음의 아리아)
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2 / 박종호> ★★★
이 드문 작품의 귀한 영상이다. 비교적 유명하지 않은 성악가들로 높은 성과를 이루어낸 지휘자 마르첼로 비오티의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두 남성은 음성과 스타일에서 모두 좋은 대비를 이룬다. 특히 일본의 젊은 테너 야수 나카지마는 청아하고 매력적인 음성으로 어려운 아리아를 잘 소화한다. 아니크 마시스도 특유의 매력을 보이면서 시각적으로도 좋은 레일라를 보여준다. 작은 무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피에르 루이지 피치의 무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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