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제노바 출신의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유럽에 알린 이후, 아메리카대륙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그중 아메리카 정복및 탐험사업에 열성적으로 뛰어든 국가는 바로 '스페인'이었습니다. 1492년은 스페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이 겹쳤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신대륙의 존재확인과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했던 최후의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일명 레콩키스타(국토 회복운동)이라 불리는 '그들 스스로 불리는 성스러운 전쟁'이 끝나면서 설자리를 잃은 스페인의 가난한 병사들과 귀족들은 미지의 땅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나아갔죠. 그와중에 아스텍과 잉카등의 거대한 황금제국이 알려지고, 코르테스와 피사로같은 인물들이 이런 제국들을 정복하고 때부자가 되는것을 본 스페인의 열혈 탐험가및 정복자들은 제2의 아스텍 혹은 잉카를 찾기위해 미지의 세계를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1500년대 초반 스페인인들은 아직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은 중세적사고 방식을 지녔고 당시 기술상 탐험장비가 매우 부실했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리는 허황된 소문을 고지곧대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라고 불리는 스페인 출신 정복자및 탐험가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젋음의 샘'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후안 폰세 데 레온과 그의 탐험로
젊음의 샘은 영화: 캐리비안 해적 4에서도 언급되는 실존 콩키스타도르인 후안 폰세 데 레온(Juan Ponse de Leon)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폰세 데 레온은 1493년 콜럼버스의 2차 항해당시 부관으로써 여러번 아메리카 대륙 탐사에 나선 적극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협력하지 않는 원주민이 있으면 자신의 애완견인 베르세리요(스페인어로 황소라는 뜻)에게 물어뜯겨 죽이게 만드는 아주 잔인한 인물이었습니다.
폰세 데 레온은 1508년, 푸에르토리코 지역을 정복하여 그곳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학살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는 한 원주민으로 부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오늘날 플로리다 남부에 위치한 비미니 섬에 나오는 샘물은 '한모금만 마셔도 젊음을 유지할수 있다'는 정보였습니다. 이에 그는 본국 스페인의 국왕인 페르난도에게 '일종의 정복허가증'을 받아내고 1513년, 원주민들을 앞세워 '젊음의 샘'이 위치하는 지역으로 안내토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젊음의 샘을 찾지못했으며, 대신 일부 원주민 마을을 찾았지만 분풀이로 그곳을 잔인하게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폰세 데 레온은 1521년까지 젊음의 샘을 찾아다녔지만, 전설속의 샘은 코빼기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1521년 7월, 원주민들이 쏜 화살을 맞고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와 그의 탐험로
폰세 데 레온은 허탕만 치고 죽었지만, 1521년 코르테스가 '전설속의 황금제국이라 믿었던' 아스텍 정복이 대성공에 거두게 되면서, 이러한 젊음의 샘 존재가능성에 대한 가능성도 매우 높아져만 갔습니다. 폰세 데 레온의 대타를 이은 젊음의 샘을 차지하고자 한 정복자는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Panfilo de Narvaez)였습니다. 그는 과거 자메이카와 쿠바를 정복한 적이 있었으며, 라이벌이었던 에르난 코르테스와 아스텍 주도권을 쥐고 싸우다 패배한 자였습니다. 코르테스에게 패배하여 한동안 감옥에서 지냈던 그는 출소하자 마자 '라이벌이었던 코르테스가 아스텍을 정복하고 후작직위를 받는 때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르바에스는 자신역시 '뭔가를 찾을' 욕심이 생겼고, 그 타겟은 과거 폰세 데 레온이 찾고자 하는 젊음의 샘이었습니다.
욕심이 가득찬 나르바에스는 1526년, 당시 스페인 국왕인 카를로스1세에게 '정복 허가증'을 받고 1527년 6월 27일,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젊음의 샘과 황금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납니다. 그는 과거 폰세 데 레온의 루트를 따라 플로리다 반도를 구석구석 들쑤시고 다니었습니다. 나르바에스는 폰세 데 레온과 마찬가지로 잔인하고 흉포한 인물로써, 한번은 '토착 원주민인 오시타 부족의 추장'이 말을 안듣는 다는 이유로 칼로 코를 베어버린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플로리다의 원주민들은 나르바에스와 같은 스페인출신 탐험가및 정복자들을 매우 불신하게 되었고, 그들이 오면 직접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웠습니다.
나르바에스의 원정은 결국 현지 원주민들의 공격만 거세게 받은채, 허탕만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526년 11월 하필이면 미국을 강타하는 허리케인이 플로리다에 들이닥쳤고, 나르바에스와 병사 대부분이 이 허리케인이 휘말려 '실종'되고야 말았습니다.
에르난도 데 소토와 그의 탐험로
나르바에스는 실종되었지만, 아직도 젊음의 샘을 꿈꾸는 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과거 피사로의 부관으로, 잉카정복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산티아고 기사단원중 하나로서 쿠바의 총독직위까지 차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가지고도 욕심에 가득찼던 데 소토는 이윽고 폰세 데 레온과 나르바에스가 실패했던 '젊음의 샘'을 찾기 위한 원정을 계획하였습니다. 그역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정복허가증'을 받아내고, 1539년 5월 18일, 폰세 데 레온과 나르바에스가 행하였던 루트 그대로 플로리다 반도에 상륙했습니다.
이로써 오늘날 미국 남부에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는 에르난도 데 소토의 원정이 시작된것이었습니다. 데 소토는 플로리다부터 시작해, 미국 남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으며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현지 원주민들은 과거 나르바에스가 저지른 악행을 알고있었으며, 데 소토또한 아주 악질중에 악질로써, 협력하지 않는 원주민을 자기 애완견 먹이로 주는 잔인한 인물이었기에, 그를 전혀 도와줄 마음도 없었습니다. 에르난도 데 소토는 미국 남부의 명물 '미시시피 강'의 존재를 최초로 알리는 등의 탐험적 업적도 이뤄냈지만 그 안에는 '젊음의 샘'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학살과 약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여튼 그는 미시시피 강을 발견했지만, 하필 그때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고 결국엔 사망하고야 맙니다. 그의 시신은 부하들에 의해 미시시피 강에 수장되었으며, 젊음의 샘을 찾겠다는 그의 꿈도 단번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스페인출신 정복자및 탐험가들은 수많은 원주민들을 살육하고 약탈하면서 '젊음의 샘'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것을 찾아낼려고 했으나, 대부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플로리다 남부에 있다고 전해지는 이 전설상의 샘의 실체를 파악하려던 정복자들의 발길에 약 50년이 채 되지 않아 미국 남부의 원주민들은 그들이 옮겨온 전염병에 때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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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활님 옛날 글 보니까 저 중 일부는 원주민 부족에게 그렇게 많은 씨를 뿌렸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진시황 :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