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생활 잘 하십시오”
저를 호출하여 형을 집행하는 것이 일이었던 검찰 직원분은 생각보다 친절하셨습니다. 서부 검찰청 9층 공판과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저에게 “어떻게 되는지 다 아시죠?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거에요.”라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8시에 차가 출발할 것이기에 들어가면 밥을 못 먹을거라고 하면서 짬뽕도 시켜주었습니다. 제가 대기할 1층 당직실에 있는 방으로 안내하고 헤어지면서 “그럼 수형생활 잘 하십시오.”라는 인사를 건내주었습니다.
검찰청에서 교도소로 저를 태워주셨던 검찰 직원분도 헤어지면서 저에게 “수형생활 잘 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사실 이 인사는 저에게 1년 6월이라는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분이 제게 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뭔가 저를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또 마음이 한결 놓였습니다.
그래서 큰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3일 째 살아보니 어떻냐고 물으신다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답하는 건 뻥일 것 같고 다만 낯선 이 곳의 질서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습니다. 감옥이라는 공간의 규율에 적응을 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공교육을 통해 학습된 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이곳의 규율을 예전의 경험으로부터 다시 기억해 내고 있습니다.
첫날, 둘째 날 밤에는 9시에 잠이 드려니 쉬이 잠이 오지는 않더라구요.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천정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바깥에서의 습관대로 불을 꺼야지 했다가, 이내 곧 이곳은 방 안에 전원스위치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자각합니다. 요일마다 살 수 있는 생활용품들이 있는데, 수면 안대를 장만하면 좀 더 익숙해질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힘을 내, 여기까지 달려왔잖아”
검찰에서 교도소까지는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왔습니다. 앞에 직원분이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데 마침 제가 즐겨듣곤 하던 채널에서 음악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목과 가수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많이 들어본 노래였습니다. “힘을 내, 여기까지 달려왔잖아”라는 가사가 묘하게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마포대교와 여의도를 지나며 이제 막 시작했을 벚꽃축제 생각이 났지만, 이 아쉬움을 잘 참았다가 2년 뒤 봄이 오면 실컷 누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 전에 지구가 망하지는 말아야 할텐데요.ㅋ
둘째 날, 이곳에서 저처럼 병역거부로 복역중인 김영배씨와 현민을 만났습니다. 영배씨는 의무과 검진을 받으러 가서 만났고, 현민은 제가 있는 사동에 영치품을 배분하러 왔을 때 만났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같은 소에 있으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없으니 다음에 만나면 잘 지내는지 제가 먼저 물어봐 드려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곳 신입방에서는 저를 포함하여 2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같이 계시는 분이 젠틀하시고 또 차분하셔서 큰 불편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늘 책을 보셔서 저도 차분히 책 읽고 글도 쓰고 있습니다. 중간에 한 번씩 수다를 떨구요. 비폭력대화에서 스스로를 공감하고 상대를 공감하는 연습을 해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없으니 생활이 많이 단순해졌습니다. 단순해진 삶 덕분에 온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이 시간에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도 한편으론 얼른 일을 시작하면 시간이 지금보다는 좀 더 빨리 가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방 점검을 하는 교도관 중에 저희에게 “수고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인사는 오히려 제가 그 교도관에게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제가 들으려니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보통 “수고하십시오”라는 말을 저는 타인의 서비스를 구매할 때 했던 것 같거든요. 아무튼 그 인사를 해 주신 교도관 분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상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직 신문을 받아보지 않고, 방에서 TV도 보지 않아서 바깥소식이 궁금할 법도 한데, 아직까진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조용히 책 보고 글을 쓰는게 마음이 편하기도 합니다. 오늘이면 친구들이 쓴 전자서신을 처음으로 받게 된다 생각하니 그건 기대가 많이 되네요. 그럼 다들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랫말처럼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시길
2011. 4. 13.
상쾌한 오전에, 날맹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