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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치유, 정상인 음악회.
밀알복지재단 필리핀 세부지부
이 슬 미 단원.
파견 전 꿈꿔왔던 이상과 다른 현실.
처음 현지 지부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세부라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이 가득 했다. 관광지로도 유명한 세부에서 청명하고 맑은 바다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들뜬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현지 지부가 위치한 곳은 예상과는 다르게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시골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우리가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시작 했던 곳은 쓰레기마을(덤싸이트) 인데 쓰레기 더미로 인해 악취가 심하게 나는 곳이었다. 쓰레기 마을이란 곳을 가기 전 사진으로 살짝 보았지만 실제로 보니 더 처참하여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덤싸이트에 사는 아이들은 우리가 굉장히 낯설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갑고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처음으로 이 아이들을 만났지만 천사같이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란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예쁘고, 예쁜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 속,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이곳에서 푸르른 바다를 생각하며 들떠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둘째 날에는 루도라는 공동묘지에 갔다. 거기선 묘지위에서 사람들이 먹고, 자며 생활하고 있었다. 차가운 묘지위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감기로 고생하고 있었다. 감기뿐만 아니라 염증이나 종기를 비롯한 피부병, 여기 저기 베이고 찔린 상처 등으로 아픈 사람이 즐비했고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숨어 살고 있어 치안도 좋지 못한 곳이었다. 그리고 공동묘지 위치가 시내 번화가 주변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더 위축되어 있었고, 아이들 특유의 해맑은 웃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또, 이곳은 외부의 화려한 생활과 정반대 여서, 마치 버려진 공동묘지처럼 아이들이 동떨어지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구걸하는 것을 유일한 돈벌이로 여기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과자를 나눠 줄때면 받은 과자를 몸에 숨기고 다시 달라고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작고, 여린 아이가 본능적으로 생존 하려고 하는 모습이 엿보여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또, 아이들을 치료 할 때면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치료하는 단원들이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루도에서 아이들과 활동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을까를 간접적으로 본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까웠다. 우리가 진행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조금이나마 아이들을 웃게 해주고 싶었고, 속으로만 앓으며 말하지 못하는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었다. 우리가 업무를 수행하는 여러 사업장 중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땅은 바로 이바바오 지역이었다. 필리핀 밀알 세부 지부가 이바바오 지역에서 운영하는 파그라움 센터(뜻: 희망)를 만들기 전에는 영국 군인들이 와서 일부 지역의 많은 여성들이 성 포로로 잡혀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 센터를 건축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좋지 않은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고 하셨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곳은 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이 있는 땅 이였을 텐데, 왠지 멀리서부터 고통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제는 이 많은 이바바오 주민들이 희망의 센터로부터 하나, 둘 희망의 빛을 놓지 않고 바라보며 나아가기를 마음 깊이 바랬다.
내가 생각했던 세부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하늘과 바다, 또 맛있는 과일들이 즐비한 관광명소였다. 하지만 그 생각이 이면에 가진 수많은 가슴 아픈 일들을 망각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예쁜 웃음 뒤에 있던 상처를 6개월간 바라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 아이들에게 있는 응어리진 상처를 작고, 작은 손길이나마 치유해 주고 싶어졌다. 한국에 가서도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간절히 그 아이들이 치유되기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프로젝트 공모전 이야기.
먼저,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아이들에게 가장 좋을 것인가를 놓고 회의를 자주 가졌다. 많은 의견 중, 장애와 비장애 아이들의 통합 음악 프로젝트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의 동의하에 프로젝트 주제로 결정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많은 악기를 사러 다닐 때에 악기를 손쉽게 사는 경우도 있었지만 없어서 못 사는 경우나 악기가 손상되어 있는 경우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또, 기타와 비트박스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세 명의 후보자 분들을 만났고 그 중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좋은 분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태권도복은 한국에 계신 이한나 단원 아버지의 지인께서 후원해주셔서 띠만 구매했다. 장애 아이들은 어디서 추천을 받아야 하나 걱정했는데, 지부장님의 도움으로 Mia(현지 지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의 구성원)가 다니고 있던 Central Elementary School에서 아이들을 추천 받을 수 있었다. 비장애 아이들은 이바바오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악기의 선호도롤 설문으로 조사한 후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둘씩 나누어 2명은 태권무팀, 2명은 악기팀을 담당하기로 하고 연습을 시작 하였다. 멘토단원(기현쌤)과 하진수 단원은 열심히 태권무를 찾아 연습 했고, 한나와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세 곡을 정하여 연습을 시작 하였다. 학교에서도 힘들었던 리코더를 배우려니 막막하였지만, 아이들을 생각 하며 열심히 연습 하였다
10월 말쯤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는데, 참여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파그라움 센터의 활동 때 봤기 때문에 얼굴은 익숙했지만,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기에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친밀함을 형성하기 위해 이름 ,나이, 좋아하는 색깔과 음식, 자신이 닮은 동물이 뭔지 얘기했고, 서로의 이야기에 깔깔 웃기도 했다. 이어서 진행한 놀이 활동으로 인해 첫 만남의 어색함이 조금씩 사라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난생 처음이라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건지 어렵고 복잡했지만 차근차근 음계부터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장애 아이들과 연습을 했던 날, Central Elementary School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을 때는 조금 어색했지만 에너지 넘치는 Aaron 이라는 친구 덕분에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장애 아이들 중 Johnlloyd 란 아이가 눈에 띄었는데, 이 아이는 나무에서 떨어져 청각장애가 생겼다고 했다. 청각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감각이 남들 보다 뛰어나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곳에 와서 장애 아이들(Mia, Kate, Aaron, Johnlloyd, Jonny, Jerris)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행복했다. 장애 아이들과 비장애 아이들이 함께 연습하고 여러 활동을 할 때, 아이들이 장애 아이들을 편견 없이 대해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장애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 한국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장애인들을 편견으로 봤던 지난날의 시간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리코더를 배우거나 연주해 본 적이 없어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도 시 라 솔 파 미 레 도>를 반복적으로 가르치면서 익힐 수 있게 했다. 또, 손들이 작아 구멍을 다 막을 수가 없어“도”를 못 잡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이들이 “도”를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 둘 연주곡을 완주 할 수 있을 때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초반의 열정은 11월이 되면서 식기 시작했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공연이 있어 연습을 빠지는 횟수가 적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학교 때문에 못 나오는 경우가 많아 힘이 들었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오는 아이들이 있어 위안이 되었고, 그 아이들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 과정도 쉽지 않았다. 구매한 단체복에 로고를 새기기 위해 프린트 하는 곳에 가져다 드렸는데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만들어져서 실망했지만 모두에게 입혀 보니 깔끔하고 예뻐서 신이 났다. 결국 모든 것이 다 가장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합창을 연습할 때 처음에는 장애 아이들만 수화를 하기 로 하였는데, 장애 아이들이 동떨어져 버린 것 같다는 한나의 의견으로 모든 아이들이 수화를 연습하기로 했다. 덕분에 합창 할 때 모두가 하나가 된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공연 날에는 여러모로 허둥지둥 했지만, 파그라움 센터의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잘 마칠 수 있었다. 호응도가 좋아서인지 아이들도 신이 난 모습으로 공연을 잘 해주었다. 공연을 마치고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내 마음이 더 행복해졌다. 장애 아이들 또한 너무나 행복해 했고, 아이들의 부모님들께서 우리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더 따뜻해진 하루였다.
이젠 1월9일 메인 콘서트만 남았다는 거에 기대도 많이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수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준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을 뽑자면 단체복을 구매하는 것이었는데 한 군데에서 모든 옷을 살 수가 없어서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갔던 곳에서 다행스럽게도 남은 단체복을 모두 구매할 수 있어서 눈물 나도록 행복했다. 대망의 음악회 날, 공연 할 장소에 일찍 가서 아이들이랑 함께 했던 활동을 담은 사진들로 공연장을 예쁘게 꾸몄다. 리허설을 할 때, 카메라가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살짝 긴장한 것 같았다. 각자 맡은 임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모든 것에 흐트러지지 않게 아이들에게 주위를 주며 계속 살폈다. 생각보다 큰 무대와 많은 사람들로 인해 아이들도 떨렸는지 최선을 다해 공연을 하였다. 너무 기특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들이 모두 수화를 하며 합창을 하는 데 가슴에 갑자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방학 때에도 계속 연습 나와야 해서 힘들었을 텐데 여기까지 잘 따라온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통합 프로젝트에 걸맞게 모두가 하나가 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공연을 마치고 아이들이 무대로 올라가 춤을 추며 노는 것을 보고 우리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그땐 너무나 부끄러워하던 그 모습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 우리가 한없이 가까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공연을 잘 마친 기념으로 Jollibee에서 아이들과 섞여 재밌게 얘기하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파그라움 센터에서 지금까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이제 자주 볼 수 없는 생각에 너무 아쉬웠다. 프로그램 종료 후 장애 아이들의 부모님들의 인터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Kate란 아이가 무표정에다가 내성적인 성격으로 우리와 말도 잘 섞지 않았는데, Kate 어머니와의 인터뷰에서 학교에 있었던 일도 말하지 않았던 아이가 공연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수다스럽게 얘기 했다는 걸 듣게 되었다. 또, 연습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아파서 연습을 못나올 때에는 너무 아쉬워 했다는 것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고, 엄청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Aaron 어머니께서 “공연을 할 때만큼은 우리 아이가 정상인처럼 보였다.” 란 말을 해주셔서 모두를 감동 받게 했다.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도 이 말은 6개월 동안 있으면서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따뜻했던 말이었다. 어머님의 말처럼 HAPPY TOGETHER 음악회의 순간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없었다. 모두가 하나가 된 모습과 마음으로 참여했던 <정상인 음악회>이었다. 내 마음 깊이 남은 많은 기억들을 모아보니 통합 음악 교육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내 생애 이렇게 뜻 깊은 순간들을 보낼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했다.
아침 이슬 같이 빛나는 슬미 사랑하고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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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메가 수가 초가되어 사진을 올리지 못함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