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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창세기부터 말씀을 들으면서 야고보서는 신약성서 중에 아주 중요한 책인데 역사 가운데 그 중요성을 인식 하지 못한 채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강조하면서 거기에 복음의 진수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야고보서가 기록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 것은 너무 중요하지만 구원 받은 뒤의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요한1서 2서 3서 이고 야고보서인데 이런 책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식을 못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믿습니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인데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의 동생이라 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다.
야고보는 의인 야고보라고 별명이 지어질 정도로 정말로 의롭고 거룩하게 살았기 때문에 흠 잡을 것이 없으므로 바리세인들도 야고보에게 시비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사도들 중에서 야고보라는 이름이 두명 정도 있는데 세베데의 아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43년~44년 정도에서 이미 순교하고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 교회에서 사도 못지않은 위치에 있었다.
예수님 동생으로서의 위치가 아니고 예수님에 대해서 바르게 많이 알고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건한 삶으로 인하여 초대교회에서 권위가 있었다.
처음에 야고보는 예수님까지도 불경건하게 생각 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허접하게 만들어 놓은 탈무드 미쉬나 칼라카 이런 교훈(세분화 된 안식일 규정 같은 것)들을 무시함으로(안식일은 그냥 편히 휴식 하면 될 것을 규정을 만들어 어떻게 쉬어야 한다는 것) 야고보의 생각에도 형님께서 왜 그런가? 하면서 이런 것에서 자유스런 예수님을 염려할 정도로 야고보는 경건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집회를 하거나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을 할 때는 혹시 말의 실수를 하여 말썽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을까 하면서 꽤 염려하는 모습으로 수시로 마리아와 함께 찾으러 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밖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소서 모친과 동생들이 찾나이다.”하니까 예수님께서 “누가 내 모친과 형제이냐!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나의 모친이요 형제니라!”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명이 있는데 이때도 야고보는 어머니와 함께 염려가 되어 예수님이 무슨 실수를 할까봐 노심초사 하며 틈만 나면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야고보는 경건하여 처음에는 예수님 하시는 일이 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말투가 가끔씩 복음서에 비춰진다. 예수님 하는 일을 석연찮고 못 미더워 했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예수님의 형제 중에서 바로 밑의 형제 인데 예수님을 가장 염려하고 못 미더워 했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어 벌어지니까 많이 낙심하면서 괴로워했다.
한편으론 능력도 있는 것 같았는데 싸워보지도 않고 쉽게 십자가에 맥없이 당하여 정말 죽으면 어떻게 하는가! 그 능력을 가지고 그냥 죽는가! 하면서 정말 평소에 형님이 하시던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빵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게 되었다.
가족들도 형제들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때 형제는 야고보를 지칭하는 것 같다.
한번은 명절이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있으니까 예수님에게 한마디 한다.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런 명절의 좋은 기회에 숨어 있습니까!” 하니까 예수님께서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너희의 때는 언제든지 갈 수 있으므로 너희 먼저 가라고 하면서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올라가지 않을 듯이 말씀하기에 야보고와 가족들은 예루살렘에 먼저 올라갔는데 잠시 후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걸음까지도 헤아릴 만큼 세밀하게 때를 맞추시는 것 같다. 야고보와 가족은 아무런 시간이고 갈 수 있는데 예수님은 올라가는 시간과 걸음이 맞아야만 여리고를 지날 때 소경 바디메오의 눈도 Em게 하고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게오를 결정적으로 만나고 또 예수님께서 타시고 입성할 나귀를 약속한 것도 시간이 꼭 맞아야 된다.
인간의 시간은 계획된 것이 없이 흐르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정확한 때가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과 잘 맞지 않던 야고보를 성경에서 조금 엿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시몬에게 보이시고 요한 야고보 등 제자들을 만나시고 도마에게 보이신 후에 야고보에게와 하는 말씀이 고린도전서에 있다.
야고보는 맹세하면 지킬 사람으로 떡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 하였기에 예수님께서 야고보를 찾아가서 “형제여! 네 빵을 초에 찍으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진다.
이런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하고 있다.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 기록 시기는 로마서가 기록되어 오직 믿음으로 하면서 오해가 있을 시기로 곧 어려운 시기가 닥치는 핍박 박해 환란 이런 것이 다가 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인내심과 지혜이다. 난세(환란이 닥치면)에는 인내와 지혜가 필수이다.
인내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범사에 가치 있는 일을 할 때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혜가 없으면서 인내심으로만 밀어붙이면 곰이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면서도 지혜가 있어야 함
정통파 유대인들은 일반학교를 보내지 않고 오전에는 일반학문을 가르치지 않고 성경과 지혜와 탈무드식 논쟁으로 고차원적인 영적인 것을 공부하고 일반학문은 오후에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하여 끊임없이 가르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똑똑하다.
난세가 오면
인내와 지혜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냥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믿음이 아니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난세가 오게 되면 소망이 있어야 한다. 소망이 있어야 인내가 된다.
형제사랑과 하나님 사랑(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물질적 세상적 욕망에 초연 할 수 있어야 한다.
갑자기 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걸려들게 된다.
속히 부 하려는 욕망이 있을 때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
말세에는 말조심을 해야 한다.
야고보서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정도 이다.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의 의미는 테스트와 금속을 재련하듯 연단의 의미가 있다.
우리말로는 시험 유혹 시련이 불분명하다. 환란과 함께 유혹이 따라온다.
사탄의 양손에는 유혹과 핍박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싸게 주지 않는다. 은혜를 가치 있게 여기는 자에게 주신다.
하나님 은혜를 값싸게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따라잡는 자 물고 늘어지며 찾고 찾는 자에게 주신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은 믿음이 없고 세상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믿음이 좋다.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온갖 시험을 당하지만 그 시험을 이기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인내해야 한다.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을뿐더러 친히 누구를 시험하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시험을 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유혹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마귀가 유혹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유혹하시지 않으신다.
자신이 하나님께 시험을 받고 있다든지 네가 지금 하나님께 시험을 받고 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마귀가 시험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묵인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마귀는 예수님도 시험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시험하는 자는 마귀이다. 마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험이 오면 믿음을 잃지 않는지를 시험하도록 악한 권력도 묵인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어려운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고 좋은 일만 계속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는 아멘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려움도 당하고 십자가도 지도 고난과 시련을 당할 것인데 새해엔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런 이기적인 기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어느 교회 집사님이 자기 교회 목사님의 기도를 비판하고 있다.
신앙생활에는 시험과 시련이 있지만 그것을 통하여 연단되어진다.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성경을 통해서 본다면 우주에 어떤 생명체도 없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첫 열매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우주의 첫 열매라는 사실에 감격하며 여간 어려워도 인내력과 지혜와 사랑과 세상유혹에 초연함과 매사에 말을 조심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기를 원한다.
19장부터 2장 되었으면 연결이 매끄럽겠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감정처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들은 정보를 충분히 생각하고 절제하여 말을 해야 하는데 상대방의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되받아 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의 상승으로 싸움이 된다.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성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게 되면 실수를 하게 된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기본자세는 같다. 온유한 자세
모세 5경인 토라에 담긴 내용 중에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살펴보면(신학자들은 율법시대는 지나갔고 지금은 은혜의 시대에는 율법은 상관없다고 하는 엉터리사람들이 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하라고 한 것이 248계명 금지의 율법이 365계명으로 율법613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율법613개항을 전혀 모르고 있고 기껏 몇 가지 정도 알고 있는 상태이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보다 더 좋은 법이 무엇인지 진짜 필요 없어 폐해진 율법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성령의 법은 마음판에 기록되어 있는데 언제 확인이 되는가 하면 문자로 기록된 것을 읽어보거나 설교로 들을 때 아멘으로 밝아지게 드러나게 되고 확인되어지는데 이것을 실천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행하게 되면 복이 된다는 것이다.
성령을 받아서 우리 마음에 심겨져 있는 것을 설교나 강의로 일깨어서 우리의 이성이 동의하고 결심해서 실천하기 까지는 우리가 아무리 성령을 받아 마음에 심겨져 있다하더라도 무의미한 것이고 성경책에 만 가지로 기록되어 있어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가 하는 일은 두 가지인데 이미 마음에 심겨진 도를 일깨워서 성경과 맞추어 사람들이 인격적 이성적으로 아멘으로 응답하게 되여 그 도를 깨닫고 실천하게 될 때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 어디를 봐도 율법을 완성하였다고 말씀하셨지 폐했다는 말씀은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율법을 가르쳐 보려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데 율법을 가르쳐 보려고 한다.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율법→ 행함→ 복” 단계가 뚜렷하다.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경건이 연습은 우리들의 혀로부터 시작된다.
경건은 말조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잠언에는 입이 열려있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경건의 3가지
1)자기 혀를 조심하는 것
재갈=말의 입을 묶어 놓은 이유는 사람을 물게 되면 치명적이므로 말이 입을 벌리긴 벌리되 입술만 벌려서 여물을 먹을 수 있게 자갈을 물려 입이 조금만 벌어지게 하는 장치이다.
사람은 마음에 말을 제어 할 수 있는 재갈을 먹여야 한다.
말을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되겠는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인지 상대에게 유익이 되는 말인지 생각해보고 말을 해야 한다.
2)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는 것
3)자기 자신을 지켜서 세속(세상풍속, 유행어)에 물들지 않는 것
2장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외모=외적 조건(재물, 학벌, 생김새)
교회에서도 외모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지만 목회자 모임에서도 보이는데 몇천명 모이는 교회의 목사가 오면 모두 일어나서 인사를 하며 관심을 보이는데 시골교회의 목사에게는 관심도 없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어떤 목회자는 자신을 소개 할 때 큰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소개한다)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대체로 가난한 사람이 믿음이 좋다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는데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부자는 세상을 차지 할 것이고 가난한 자는 천국을 차지 할 것이다. 부자가 천국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부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예수님의 비유가 진짜 바늘귀가 아니고 예루살렘에 가면 바늘귀라는 문이 있다는 설교를 많이 만들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진짜 바늘귀를 의미한다.
이것은 큰 과장된 표현도 아니다.
부자가 믿음 좋은 사람은 진짜 좋은 믿음이다.
부자는 얼마나 위험하냐하면 부자는 강도보다 더 무섭다. 왜냐하면 강도는 가져간 것을 뺏을 수 있지만 부자는 합법적으로 가져가므로 도로 뺏을 수 없다
부자가 부의 힘을 이용하여 정치까지 정경유착이 되면 부자의 횡포는 막을 수 없다
부자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믿는다. 부자에게 전도를 해보면 자신의 재물을 탐하여 접근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괜히 기분나빠한다.
중국 사람들이 돈을 밝히는 것에 대한 기사를 보고는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심각하다. 중국 사람들이 돈맛을 알게 되면 전도는 어려워진다.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런 말씀은 세상사람들보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죄와는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고 속아왔기 때문에 율법이 일어나서 우리를 정죄하게 될 것이다. 율법이상의 수준으로 살면 상관없지만 율법이하의 삶을 산다면 언제든지 율법이 정죄하게 될 것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전혀 구속을 받지 않는다.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교회 다니며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감정처리가 되지 않아 살인을 했다면 그 믿음은 가짜이고 다면 교회 다녔을 뿐이지 믿음은 없었다는 결과다.
교회 다니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은 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오해를 하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상당수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율법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의 믿음은 죽은 가짜 믿음이다.
참 믿음은 열매와 윤리가 따라 온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장 결론 26절에도 결론적인 죽은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이 한분이고 전능하신 것은 독사의 새끼들도 믿는다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은 십일조 한 푼도 떼먹지 않고 안식일 모두 지키고 열심히 믿으며 하나님께서 한분이시고 전능하시고 창조주이신 것을 완전히 믿지만 예수님께서 “너희가 어찌 지옥의 판결을 면할 수 있겠느냐!”고 책망을 받으신다.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런 사랑의 실천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을 때려잡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때려잡는 사람들이다.
이런 종교적 열심 가지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귀신들도 하나님 한분인 것 정도야 믿는다.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아무런 감격도 없고 감사도 충성도 봉사도 없으면서 단지 교회 다녔고 예배를 드렸다고 주일 지켰다고 하는 믿음 가지고는 구원 받을 믿음이라 하기 어렵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서 아니고 믿음으로서 구원 얻는 너무 것을 강조한 나머지 초대교회부터 성도들이 율법을 팽개치고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가는 것이 보이므로 이런 내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피로 우리의 죄는 모두 해결 되었으므로 예수 믿고 난 뒤에는 행함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조심도 하지 않고 경건도 없고 연습도 없으므로 세상에서 빛도 소금도 영광도 안 되므로 예수 믿고도 복 받는 것도 없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건강하지도 못하고 세상사람들이 걸리는 병에 걸린다는 것은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교회와 미국교회들이 잘못 배웠고 율법도 배우지도 않고 복음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들은 굉장한 신학 학문을 했다고 하지만 죽은 학문이고 죽은 기독교가 되었다.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마틴 루터 같은 대 학자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평가하는 실언을 한 것이다.
율법은 구원받은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땅에서 지켜 행할 때 거룩하게 되며 복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거룩한 삶을 실천하는데 율법이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 율법613조를 주보에 게시할 것인데 이것보다 더 잘 해야 될 것이지 이것보다 못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율법을 불완전하여 예수님께서 율법을 더욱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위식적인 것은 실상이 오니까 그 모형이나 그림자는 의식이나 형상은 폐한 것이지만 윤리는 한층 더 보강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더욱 보강한 것이 산상보훈이다.
앞으로 남은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1-3서를 배우게 되면 우리 믿음의 마무리 단계인 믿음의 마지막 손질은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의 실천은 일방적 사랑이 아니라 교재(코이노니아)로 되는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교재가 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 성도들과의 교재가 되지 않으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부터 요한 1서까지는 정말 중요한데
야고보서는 능히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는 소망을 말씀하고
요한은 진리 안에서 참 사람을 말씀하고 있다.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 믿음 소망 사랑을 제 점검하여 바울의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데... 하는 것을 좀더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는 중요한 책이다.
특히 한국교회 교인들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한 야고보의 내용이 절실하게 받아들여야 하겠다.
3장
야고보는 사도는 아니고 랍비(선생)로 장로이면서도 교육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교역자가 많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잘못 가르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일반 성도들이 받는 심판과 교역자가 받는 상이 다를 것이고 책임도 다를 것이다.
누구든지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큰 심판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쎄서도 모르고 잘못 행한 사람은 적게 맞을 것이고 알고도 잘못한 사람은 많이 맞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천국은 아무 형벌도 없고 천국은 어떤 부족함도 없는가! 천국가기 전에 심판이 있는데 지도자는 각별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사실이라도 덕을 세우지 못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세상에 어려운 직업은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일반적인 학교 교사든지 사회적으로 강의를 하는 강사들은 다소 말에 실수가 있더라도 미치는 영향이 영원한 운명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나 상식적인 면에서 잘못 가르칠 수 있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교역자가 잘못 가르쳐 어떤 사람의 영생의 길을 찾지 못하게 방해 하였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의 실수는 말 이전에 생각이 잘못 된 것이다. 생각이 치명적으로 잘못 된 것이 있다. 말의 생각의 근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하나는 위로부터 온 생각과 마귀의 생각이 있다.
위로부터 온 생각은 화평 양순 관용 긍휼과 선함이 가득한 결과가 나오지만 마귀에서 온 혀 밑에서 나온 생각은 지옥불과 연결되어 나온 생각은 이런 사람이 말은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온전하다=완벽하다=말의 실수가 없다
수양을 많이 해서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에 달려 있다.
혀 한번 조심하여 말을 조심하여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면 인생 전체를 절제하며 바르게 살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말의 실수가 많은 사람은 인생 전체를 불살라 버리는 결과가 된다.
기껏 쌓아서 결국은 불살라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 불이 지옥에서 올라온 불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생각을 잘못하고 말을 잘못하여 행동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로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으니까 말의 근원이 되는 생각이 중요하다.
말조심하기 이전에 생각부터 조심해야 된다.
내 마음에 들어온 생각의 근원이 어디인지 잘 분별하여 성령님인가 나의 착각인가! 마귀의 생각 인지를 우선 가려야 한다.
에스겔서에 보면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사람은 거짓선지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 것도 배운 것도 없으면서 말씀에 근거도 없이 자기 생각대로 떠드는 사람은 거짓선지자로 가는 지름길이다. 아주 위험하다.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배의 키는 배 덩치에 비하여 아주 작지만 배의 방향을 움직이는 것처럼 새치의 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말대로 삶이 따라간다. 대중가수 중에 자신이 노래 하는데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가수들을 떠올릴 수 있다.(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따라서 노래도 건전하고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사탄은 지체가 없으므로 사람에게서 제일 빌리고 싶은 것이 말을 할 수 있는 입이다. 누구의 입술을 빌려서 이관 시키고 싸움을 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마귀의 본분인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관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관하는 것이 마귀의 일이므로 얼마나 뭇사람의 혀와 입을 빌리고 싶어 한다.
리틀부다 어떤 스님이 미국에 와서 어떤 건축가의 아들을 보고는 인도의 유명한 고승이 죽었는데 이 아들로 환생했다는 것이다.
이 건축가의 친구가 갑자가 죽어서 충격에 빠져 있는 기간에 옛 스님의 말도 있고 해서 아들을 데리고 인도로 여행을 가게 된다.
인도에 가서 알게 된 것은 자기 아들로 환생했다는 유명한 고승이 한 사람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라 세 사람으로 환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가 리틀부다이다.
불교가 가지고 있는 환생윤해전생설을 주제로 한 것이다.
마귀의 열심과 치밀한 계획과 능력은 이탈리아 영화감독을 감동시켜서 인도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온 세계 사람들을 쉽게 우롱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마귀는 언제나 음침한 공동묘지에서 배회한다고 생각 하지만 천로역정에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귀는 교회에 들어와서 끊임없이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여 하나님과 성도들을 이관하고 관계를 어렵게 하는 일에 전문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말씀을 심지만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의심과 미움 시기 질투의 가라지를 뿌린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쁜 생각을 털어 버리지 않고 주의 하지 않으면 그 생각이 커지면서 더욱 상상을 하게 되고 결국은 말로 터져 나오면서 상처를 주게 되고 삶 전체를 불살라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온다.
그리스도인도는 90%가 속고 있다고 본다. 영적인 세계를 모른다면 자신이 온 전체를 마귀에게 통째로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
상한 감정의 치유(내적치유)를 한다고 의식을 약간 잠재워서 과거 누군가에 상처 받은 것을 생각나게 해서 치유하는 프로그램인데 어떤 사람이 좀 더 궁금하여 과거를 계속 거스러 올라가니까 전생이 나오면서 태어나기 전에 어느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여 그 주소를 찾아보니까 진짜 그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멍청한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속아서 그 유명한 예일대학에서 일반심리학이 아닌 초월심리학과가 생겨나게 되었다.
지미카터의 여동생 루스카터스덴플톤이 내적치유 한다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한국에도 건너오게 되면서 온 전국이 내적치유 한다고 시끄러웠다.
이 모든 것이 마귀에게 놀아나고 있는 모습이다.
책 제목이 “내 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인데 자신의 어린 시절이 기억나는 것은 누구나 있는 일이고 대수롭지 않지만 내 속에 나 아닌 어떤 아이가 울고 있다면 그것은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이 아니라 틀림없이 귀신이다.
영적분별력이 없으므로 신학대학이나 사람들이 까불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마귀가 길들여지겠는가!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좋은 사람 같은데 어떤 때는 아닌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되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에게 마음이 빼앗긴 상태이다.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총명은 이해력을 의미한다.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이런 시기와 다툼과 요한함은 마귀에서 오는데 이 사실을 모르면 일평생 마귀에게 속는다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겉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의 근원부터 화평케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겉으로 거룩한 척 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나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질책하셨다.
우리의 영적인 코드(주파수)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 성령님께 맞출 것인가 마귀에게 맞출 것인가에 따라서 열매는 차이가 난다.
사람의 마음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잘 알 수 없으므로 결국은 그 열매로 알 수 있다.
4장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끊임없이 우리 속에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를 잘 살펴서 철저히 회개하고 금식하기도 하여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이 세상의 잘못된 것을 비판하려고 한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세상의 잘못을 떠들다가 죽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허물을 들추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학문하는 세계에서 진리에 잘못이 섞였을 때는 냉철한 비판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야만 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
신학대학이나 대학 혹은 연구기관에서 교리나 학설이 잘 못 되었을 때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론을 냉철히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다.
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12절 까지 한 단락이 끝나고 13절부터는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암웨이의 세계 총제인 ‘리치드보스’는 사탄숭배자로 프리메이션 33도인 최고 급수의 사람이다. 1959년에 친구와 함께 창설하여 세계 80여개국에 지부를 두고 세계의 돈을 끌어 모으려고 한다. 자신이 판매한 물품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개한 직원이 판매한 이익금의 얼마를 주니까 아주 매력적으로 거기에 가담하게 된다.
교회에서 암웨이 정체를 알지 못하고 십일조 욕심에 수용하면서 성도들이 암웨이 고객으로 인식되는 어처구니없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되겠는가! ‘우리가 아무도시에나 가서 1년 유하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 뜻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인생 계획에 따라 살려고 한다.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나님의 뜻은 관심 없고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열심내는 것은 악한 것이다.
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율법에 명시 된 것은 지키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데 세상이 다양하게 발전하다보니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런 때는 우리 양심의 심겨진 법이 있는데 그것 양심이다. 예수 믿고 거듭났을 때 양심의 법이 훨씬 명료하고 예민해 진다.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있는데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나니까 양심이 예민하여져서 하는 행동을 볼 수 있다.
거듭난 사람의 양심은 선을 확실히 안다.
양심의 소리가 선을 주장하지만 자신의 위지로 양심을 누르고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된다. 율법조문에 문자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어도 양심에 따라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된다.
신약시대에는 문자로 돌에 새겨진 법이 아니라 우리 양심의 성령의 법이 새겨져 있다.
5장
야고보서 마지막 장에서도 처음에 언급 했던 인내를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세 중에 한결같은 것이 오래 참는 것이다.
바울도 사랑을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허물이 있고 부족하고 약점이 있기 때문에 이해하고 참아야 된다.
남의 허물을 낱낱이 들추어내면 세상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들어야 할 말씀이 있다.
세상에서는 돈이 많은 부자는 복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남을 착취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 주지 않고 부자 된 자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6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옳은 자(예수님)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 주지도 않고 부를 축적하기만 한 사람은 천국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기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 하셨다.
구약성경의 미가와 아모서도 야고보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예수님께서도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품꾼의 삯을 주지 않는 것이 하늘에 사무친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임금을 착취하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초대교회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다가 예수님께서도 오시지 않고 박해가 시작됨으로 인내심이 부족하여 옛 유대교로 돌아가든지 의심을 하게 된다.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원망은 자기 잘못은 없고 남을 탓하는 것이다. 결국 남을 비방하는 것이다.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감정에 치우쳐서 맹세하게 되면 맹세하게 되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말을 절제 하여야지 맹세까지 한다는 것은 진실이 결여됨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맹세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일생에서 세 번은 맹세 하는데 세례받을 때와 결혼서약과 직분 받을 때이다.
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기름은 소독의 효과와 상처를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우리의 생각은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고쳐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의 생각은 죄로 인하여 병이 들었고 죄가 있으므로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는 인과응보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 때 그 사람의 죄를 묻지도 않고 고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 사람의 병이 낫고 난 뒤에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았으니까 더 심한 병이 걸리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죄가 있지만 병을 먼저 고쳐 주십니다. 우리가 죄가 있더라도 하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병이 걸려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위축되어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경건한 이웃의 중보가 큰 힘이 된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하여 병이 낫게 되면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죄로 인하여 잘못으로 인하여 미혹 받고는 교회를 원망하면서 떠나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권하여 돌아서게 해야 한다. 귀가 여려서 미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자주 흔들리는 사람이라도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초대교회는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핍박에 낙심되어 넘어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권하여 돌아 올 수 있게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유혹에 넘어 갔던 사람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주님을 3번이나 부인 했던 자신의 이야기 하면서 그러나 주님이 다시 찾아오셨다는 자신의 간증으로 권면하면 설득력이 있어 많은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위로와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도 자신이 핍박당했던 것을 간증함으로 핍박에서 낙심되어 떠난 사람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이다.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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