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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일 스크랩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을 치료하는 진정한 치료약은 순전한 교리와 설교이다/ 존 라일
강대식 추천 0 조회 46 13.08.16 18: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악을 이길 무기는 사도 시대 이후의 복음주의적 진리뿐

 

첫째로, 오늘날 우리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올바른 도구를 알고 있습니까? 로마 가톨릭과 불신에서 오는 악, 옥스퍼드 운동론, 합리주의 신학에서 오는 악, 노동자 계층에서 오는 악, 지식층에서 오는 악들이 우리 주위에 퍼져 있고 사방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러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진정한 치료약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적을 만나게 될 때 휘둘러야 할 무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과연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까?

 

저는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을 치료하는 진정한 치료약은 백 년 전 이미 효력을 인정받았던 바로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이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설교할 때 선포했던 것과 동일한 순전한 교리, 동일한 종류의 설교가 바로 그 치료약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 즉 새로운 제도, 새로운 가르침, 새로운 신학, 새로운 의식, 새로운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올바르게 선포되고 제대로 사람들의 양심과 마음과 의지에 깊이 파고드는 오랜 진리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백 년 전 영국에서 부홍했습니다. 저는 그것 이 지금도 다시 부흥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복음주의적 진리를 신실하게 선포한 설교를 통하지 않고 이루어진 선한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도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백 년 전 전달된 교리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승리도, 어떤 영적인 성공도 없었습니다. 합리주의 신학이나 옥스퍼드 운동이 이교도나 무신앙, 부도덕을 정복했다고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나라 전체가 기독교화 되고 교구 전체가 복음주의화 되며 마을 전체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온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행해진 선한 일들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언제나 복음주의 교리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시대에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지난 세기의 단순하고도 예리한 우리 선조들의 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그 교리를 설교함에 있어 동일한 마음을 품고 동일한 은사를 받은 설교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잉글랜드나 웨일즈의 어떤 지역에서든 그림셔나 로우란즈, 횟필드와 같은 자를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오늘날을 염려하는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얼굴과 그런 설교 앞에서 의식주의, 합리주의적 신학, 불신과 같은 것들은 힘을 잃고 시들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 교리 수호, 설교, 실제의 삶 등에서 보이는 오늘날의 수준 저하

 

다음으로, 지난 세기 복음주의 선조를 따라가기로 고백한 사역자들이 왜 그들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그 질문은 대단히 세심한 주의를 요할 뿐만 아니라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분명 다루어야 할 질문입니다. 백 년 전 승리를 거둔 교리가 이제는 낡고 진부하며 힘을 잃어버렸다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몇몇 이들의 마음속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의심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그 질문에 줄 수 있는답은 완전히 다른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난세기 위대한 선조들과 비교했을 때 복음주의적 국교회인들에게 어떤 점이 부족할까요?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아주 구체적인 문제들부터 살펴봅시다. 그들은 교리에서 선조들에게 뒤떨어집니다. 그들의 교리는 선조들만큼 풍성하지도, 분명하지도, 담대하지도, 비타협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강한 주장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치 연약한 갓난아기가 혼자 걷는 것을 안심하고 볼 수 없다는 듯이 언제든지 보호막을 치고 자신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제한하고 수정할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그들은 설교자로서도 선조들에게 뒤떨어집니다. 그들은 열정도, 불을 뿜어내는 듯한 뜨거움도, 깊은 묵상이나 예화도, 솔직함이나 거룩한 용기도, 지난 세기를 특징 지을 수 있는 언어의 위대한 단순성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무엇보다도 삶 속에서 선조들에게 뒤떨어집니다. 그들은 그림셔나 플레처처럼 한 가지에만 집중하지 못합니다 곧 그들은 세상과 분리된 하나님의 흠 없는 사람들이 아니며 어느 곳에서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서 오직 진리를 설교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판단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비난받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일에만 마음을 쏟는 그런 사람들도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 진실을 외면하려고 해봤자 소용 없는 일입니다. 사실, 저는 대부분의 영국의 복음주의 사역자들의 수준이 지난 세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뒤떨어져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편안함과 인기, 더 이상 박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사역에 있어서는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들이 사역의 생명력을 좀먹었습니다. 교구 체제의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과장되고 과도한 집중이 사역을 시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적이고 독창적이라는 평판을 쫓으려는 불합리한 몸부림들이 사역의 저주가 되었습니다. 관대하고 자비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고 싶고 모든 이들과 좋 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사역을 마비시켰습니다. 이렇듯 역병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주의 사역자들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일단 영국의 복음주의 사역이 지난 세기의 길로 돌아가게만 한다면 저는 우리가 그때와 동일한 성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단지 우리가 선조들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 붙잡아야 할 진리, 복음주의 신앙, 참된 소수의 강함, 일과 기도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저는 우리의 사역이 번성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영국의 ‘복음주의’ 신앙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조롱히는 자들과 경멸하는 자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주의 신앙을 단단히 붙잡고 결코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냐님의 진리로서 복음주의 신앙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결코 그것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 진리의 편에 서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질병과 죽음의 시간과 심판의 날에 우리 편에 서 줄 것입니다.

 

둘째,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주의 진리를 위해서 마음을 다하여 일하기로 결단하십시오. 모든 이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구역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없는 소수라는 이유로 결코 가만히 서 있지 마십시오. 비록 직장에 서, 은행에서, 군대에서, 배에서, 가정 안에서도 우리가 홀로 서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백 년 전 영국을 뒤흔들었던 소수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승리하게 되는 것은 진리이지 숫자가 아닙니 다. 테르모필레의 3백 명이 페르시아의 백만 명보다 승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수가 적을지라도 마음속에 복음을 품고 있다면 가톨릭과 사탄 세상의 수천 수만의 군대보다 더 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영국을 다시 부흥케 해 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팔이 결코 짧지 않으며 그분께서 이미 행하셨던 일을 다시 행하실 수 있다는, 그리고 백 년 전 영국에서 그토록 강력하게 역사하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큰 일을 행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합시다. 우리 사역자들 안에서 그분의 일이 부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세대를 위해서 지난 세기의 복음주의자와 같은 자들을 일으켜 세워 달라고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신 분께 간구합시다.

 

그분께서는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일을 기꺼이 행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간청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추수하시는 하나님께 밤낮으로 청합시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마9:38)라고!

 

- 존 라일, 「18세기 영국의 영적 거성들」, pp 62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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