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선덕여왕]은 표절이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 저작권침해사건에 대한
방송작가 성명서
사단법인 한국방송작가협회(이하 협회)는 설립 이래 지금까지, 협회 회원들에게 자신의 저작권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질 것을 요구해왔고, 그와 함께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높은 도덕성을 가질 것을 요구해왔다. 협회는 그동안 2500여명의 회원들 개개인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나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한 회원에게는 법률적 판단과는 별도로 자체적으로 해당회원에게 자격정지, 제명 등의 강도 높은 징계를 해온 바 있다. 이는 협회 회원작가들 스스로가 표현과 창작의 자유에 대한 기준을 엄격히 지켜야만 드라마 산업, 더 나아가서는 문화산업 전반에 건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여, 협회는 이번 ‘드라마 [선덕여왕]의 저작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도, 항소심에서 저작권 침해 판결이 선고된 후, 즉각 저작권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를 소집하고, 해당 작가인 김영현, 박상연 작가에게 드라마 [선덕여왕] 대본과 뮤지컬 대본 ‘무궁화의 여왕, 선덕’ 등을 제출하도록 하여 저작권 침해에 관한 심리를 진행하였으나, 심의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드라마 [선덕여왕]이 해당 뮤지컬 대본 ‘무궁화의 여왕, 선덕’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심의위원회가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과는 달리, 드라마 [선덕여왕]이 뮤지컬 대본 ‘무궁화의 여왕, 선덕‘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본 이유는 두 작품 간의 문자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없었고, 반면 항소심 재판부가 저작권 침해의 판단 근거로 삼고 있는 ‘역사적 오류’의 유사성은 사극 드라마 작법의 보편적인 ‘역사적 저작물의 기본 재료’ 또는 상투적 전형적 설정에 해당하는 것이며, 의거관계에 있어서도 작가와 방송국의 관계, 방송국 조직 내부의 복잡한 관계를 볼 때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작가들은 이번 ‘드라마 [선덕여왕]의 저작권침해 사건’의 항소심의 근거가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근거로 적용된다면 이는 작가들을 저작권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있어 가장 근본적 행위인 ‘표현과 창작’을 위축시킬 수 있어 이를 신중하게 고려한 협회 저작권심의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하는 바이다.
방송작가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작품의 창작 활동에 앞서 많은 기록들을 조사하고 참조하나, 출판·공표되지 않은 기록이나 작품 혹은 저작권 등록이 되지 않은 작품들을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TV 드라마 방송을 위하여 방송사와 접촉을 하나, 방송에 직접 참여하는 몇몇에만 그치는 것이 현실이고, 방대한 방송사 조직의 직원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만약 항소심의 판단을 받아들인다면 작가들은 본연의 창작활동보다 ‘혹시 유사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작품과 ‘이를 접촉했을 가능성 있는 방송사 직원’을 찾아내는데 더 많은 열정을 쏟아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구전되거나 추정될 수 있는 異說로 여겨지는 이야기에 관하여 구체적 표현이 전혀 다름에도 그 표현 하나하나를 소거한 채 추상적 ‘공통의 역사적 오류’를 찾아 두 작품 간의 유사성의 근거로 삼는 것은, 방송작가들을 포함한 창작자들에게 공동으로 소유되어야 할 창작의 재료를 1인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작가들로 하여금 한 점의 어긋남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상상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 보여준 하나의 異說인 ‘정조암살설’이 이후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무수히 많은 역사저작물로 창작되었고 이는 다시 학계에 영향을 미쳐 새로운 연구가 진행된 사실을 알고 있다. ‘정조 암살설’은 역사에 기록, 확인된 바 없고, 재판부가 지적하는 이른바 ‘역사적 오류’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료로부터 추정된 상상의 영역이며, 드라마 [선덕여왕]과 뮤지컬 대본 간에 지적된 역사적 오류들(미실과 덕만의 대립 등) 역시 ‘화랑세기’ 등의 사료로부터 추정가능한 상상의 영역인 것이다. ‘정조 암살설’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공통의 역사적 오류’라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를 논하지 않는다. 많은 작가들은 이러한 역사적 오류를 통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체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작가들은 이러한 점에서 저작권심사위의 심의결과를 통해 이번 항소심 판결이 단지 두 작가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창작자에게 창작과 표현에 있어 그 자유를 속박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임을 공감하고, 이에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호흡해온 TV드라마 방송작가들이 더 창작활동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기반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호소하고자 한다.
이런 취지에서 협회 회원인 최완규 작가는 ‘연대탄원을 제안하며’라는 글을 통해 대법원 상고심에 동료 드라마작가들의 연대서명 탄원을 제안하였고, 이에 협회장인 이금림 작가는 물론, 박정란, 정성주, 이정선, 장영철, 강은경, 이경희, 박경수, 김이영, 박지은 작가 등등 125명의 드라마작가들이 이미 서명에 동참하였으며 많은 작가들이 표현과 상상의 자유를 보호받고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