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7주년을 맞아 태극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대함과 자랑스러움을 알리는 ‘태극기 특별 기획전’이 2월 29일부터 3월 7일까지 광주시청 1층 로비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기획전에는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의사가 일본 도쿄에서 일본 천왕이 참석하는 신년 관병식에서 결행한 폭탄 투척 사건에 앞서 태극기 앞에서 거사를 다짐하며 촬영한 사진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입수돼 국내에서는 최초로 공개되는 등 미공개 희귀사진 5점이 선 보이일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지부장 김갑제)는 3․1절 97주년을 맞아 ‘태국기로 본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태극기 특별기획전을 갖는다.
특별기획전은 2월 29일 오후 2시 광주시청 1층 로비에서 윤장현 광주시장 조영표 광주시의회의장, 광복회원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갖고 전시에 들어가며, 오는 3월 7일까지 1백 10여점(일본국 만행 사진 10점 포함)의 태극기 관련 중 대형 사진이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될 사진 중에는 1883년 최초롤 제작된 조선 국기를 비록하여 태극기 관련 문화재급 유뮬이 전시되며, 삼국시대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왔던 태극과 팔쾌의 기원부터 1882년 10월 2일 고종의 지시로 최초 국기를 제작하게 된 태극기 및 1882년 박영효가 만든 조선국기, 3․1독립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를 비롯한 근현대에 제작된 태극기와 사진이 전시된다.
특히 이번 기획전에는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의사가 일본 도쿄에서 일본 천왕이 참석하는 신년 관병식에서 결행한 폭탄 투척 사건에 앞서 태극기 앞에서 거사를 다짐하며 촬영한 사진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입수돼 국내에서는 최초로 공개되며, 1885년 프랑스파리외방선교회 신부 촬영 태극기 사진 1점, 1897년 프랑스파리외방선교회 신부 촬영 태극기 사진 1점, 1907년 순종황제즉위식 기념엽서(평양의 모습), 1947년 북한지역 태극기사진(월드피스제공) 등 미공개 희귀사진 5점도 선 보이일 예정이다.
또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기념식장 사진을 대형으로 제작하여, 이날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극우세력의 허구성을 사진 한 장으로 설명했으며, 6.25 당시 학도병들이 사용한 피 묻은 태극기, 올림픽과 월드컵, 아시안게임, 광주유니버시아드 당시 휘날렸던 자랑스러운 태극기 사진도 함께 전시된다.
광복회 광주전남지부 김갑제 지부장은 “광주시의 특별후원으로 이번 전시회를 갖게 됐다”며 “우리 태극기의 변천사를 통해 민족의 역사와 희노애락을 함께 느끼며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자”고 당부했다.
첨부 1. 행사개요 2. 미공개사진 3. 참고사항
[첨부 1]
삼일절97주년 태극기 97점 특별기획전 개막식
(2월 29일 오후2시)
- 명 칭 : 태극기로 본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개 막 식 : 2016년 2월 29일 오후 2시
- 장 소 : 광주광역시청 1층 로비
- 전 시 : 태극기역사 사진 77점 / 문화재청지정 태극기 20점 총97점
- 전시 기간 : 2016년 2월29일 ~ 3월6일 / 7일간
- 주최/주관 :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
- 후 원 : 광주광역시
- 자료 제공 : 월드피스, 아톰포토
- 미공개자료: (1) 1885년 프랑스파리외방선교회 신부 촬영 태극기 사진1점
(2) 1897년 프랑스파리외방선교회 신부 촬영 태극기 사진1점
(3) 1932년 이봉창의사 태극기 촬영사진(독일 함브르크에서 입수)
(4) 1907년 순종황제즉위식 기념엽서(평양의 모습)
(5) 1947년 북한지역 태극기사진(월드피스제공)
[첨부 2]
미공개사진
(1) 1885년 프랑스파리외방선교회 신부 촬영 태극기
(2) 1897년 프랑스파리외방선교회 신부 촬영 태극기
(3) 1932년 이봉창의사 태극기 촬영사진(독일 함브르크에서 입수)
(4) 1907년 순종황제즉위식 기념엽서(평양의 모습)
(5) 1947년 북한지역 태극기사진(월드피스제공)
[첨부 2]
참 고 자 료 (조선국기의 태동)
(1) 고종
“지금까지 조선에는 국기가 없었는데 이번에 청국에서 온 마건충(馬建忠)이 조선의 국기는 청국을 모방해 삼각형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 쓰도록 했다.
본국은 황색을 사용하지만 조선은 동방에 해당되는 속방이요 청색을 사용할 것을 지도하였으나, 국왕(高宗)은 이를 크게 분개하여 결단코 청국 용기(龍旗)를 모방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사각형 옥색 바탕에 태극의 도를 적,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역괘를 붙여서 이제부터 조선의 국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882년10월2일 시사신보 ”조선의 유신”중
(2) 1882년 박영효의 <사화기략>
“1882년 9월25일,맑음, 새벽4시 고베에 도착해 아침8시에 숙소인 니시무라야(西村屋)에 여장을 풀고, 누각에 올라가 경치를 구경했음. (중 략) 새로 제작한 국기를 누각에 달았음.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메우고, 네 모서리에는 건(乾),곤(坤),
감(坎),리(離)의4괘를 그렸음. 이는 일찍이 상감으로부터 명령을 받은바 임.”
“국기를 새로이 만드는 일은 이미 지시 받은 바 있으므로 대, 중, 소 크기의 세 개를
만들어 작은 것을 보내드립니다.”
“일본 배를 타고 가던 중 국기 도안에 대하여 일본주재 영국영사(애스턴)에게 ‘각 국 국기에 대해서 잘 아는 영국인 선장과 의논’해 보라고 했음. 선장은 ‘태극과 팔괘의 색깔은 뛰어나지만, 팔괘가 복잡하고 다른 나라에서 모방하기 불편하니 4괘 만을 그려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음. 선장에게 대,중,소 크기로 세 개를 만들도록 해서 작은 첨부물로 보냄.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이 우리 국기를 그려갔으므로, 우리도 세계에 홍보 할 필요가 있음을 상부에 보고 바람.”
(3)1883년3월6일 조선국기 반포
박영효가 4개월 전 일본에서의 조선국기 홍보요청에 따라 고종은 ”이미 제정된 국기를 팔도사도(八道四都:8개 도의 관찰사와 개성,광주,수원,강화 등 4개 도시의 유수)에 지시하여 널리 홍보하라.”고 반포
(4) 태극기의 어원
‘조선국기’, ’고려국기’가 ‘태극기’라고 불리우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19년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 부터였다.
1910년 한일합방을 통하여 조선에서는‘조선국기’대신 ‘일장기’를 게양하게 되었다.
합방 후 국.내외에서 지속 된 독립운동은 1919년3월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 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고, 전국적으로 3월1일 사용 할 ‘기’를 제작하였는데, 그때 ‘조선국기’로 부르던 ‘기’이름을 일본인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 부터, ‘조선국기’는 ‘태극기’로 새롭게 불리우기 시작하였다.
20160228_보도자료(태극기전시회)-수정.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