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출장은 느닷없이 생겼다.
3개월째 우리집에 머물고 있는 윤영준 이라는 50대 초반인 그가 전 교민회장을 지낸 "유"를 따라 팍세를 간다고 했다.
그는 190센티에 미남에다 신사다.최근에 나와 같이 여러군데를 많이 다니는 편이다.같이 가고 싶었다.
이왕 빌리는 차편으로 여러가지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 6시반에 우리는 출발했다.가는길 처음으로 팍산에 있는 숯공장을 방문했다.경찰 남편을 둔 분미라는 여자는 나와 상황버섯으로 인연을 오래전에 맺었는데 최근에 숯공장을 멋지게 지어 일본,한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그러나 단가가 만만치 않았다.파가딩 이라는 재래시장엔 검은생강이 있었는데 오는길에 살려고 전화번호만 적었다.타켓에 들러 유회장 처남집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문을 열지않아 족발만 한봉지 얻어 사바나켓으로 향했다.얼마전 VJ특공대 프로에 한국인 대표로 숯공장을 소개한 김창운사장 공장을 방문했다.그는 부산사람으로 3년전에 처음 여기 왔을때 우리집에 묵었다.선금으로 준 돈을 회수하지못해 직접 왔었다.물건도 못받고 돈도 못받아 애를 먹다가 아예 공장을 만들어 버렸다.그동안 애를 많이 쓴 흔적이 고스란이 배어 있었다.
호주에서 공부하고있는 아들이 와있는데 든든 하다했다.숯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었다.그기도 단가가 만만치 않았다.
팍세에 새로이 개업한 "김씨네"식당에 오후8시경 도착했다.숙소겸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베트남 부인과 열심히 일했다.
무사히 도착한 기념주를 간단히 하고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일찍 이나라 최대 재래시장으로 가서 검은생가을 찿았으나 현재는 없고 11월깨나 나온다고 했다.평소 유회장과 잘아는
아줌마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후 다시 연락 하기로 했다.둘이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난 멈춘 시계약을 갈았다.3만킵(4천원)
해발 1200미터에 위치한 커피농장이 밀집해 있는 팍송으로 향하는데 2년전 집사람과 여행 한적이 있어 기억이 새로웠다.
일년중 가장 더운 지금에도 그곳 바람은 선선했다.일본사람들이 최근에 별장을 많이 짓고 있다했다.얼마전 까지만 해도 비엔쟌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던 조사장 이라는 사람이 비료상점을 제법 크게 운영하고 있는데 주방장하던 이나라 부인이 노련한 비료장사로 변해 있었다.그는 산에 약초를 체취해 한국 형제를 통해 제약회사에 납품을 해서 짭짭한 수입을 얻었다 했다.
두줄기 폭포를 구경한뒤 왇푸로 향했다.전에 기억을 더듬어 겨우 뱃전까지 갔으나 터무니 없는 바가지 요금으로 발길을 돌려 육지로 통하는 길을 찿아 나섰다.윤 이라는 친구는 길눈이 특이하게 밝다고 평소에 느꼈는데 이번에는 아예 추측으로 안가본 길을 한방에 찿아냈다.젊었을때 특수교육을 많이 받았단다.옛직업을 물으니 기밀사항 이란다.너무 늦게 도착해 전에 집사람이랑 사먹은
풀빵장사는 집에 가고 없었다.입장료도 엄청 올라 있었고 카트도 운영하고 있었다.다시 숙소로 돌아와 그동안 다른 일을 보고 있었던 유회장과 만나 어제처럼 식사와 간단한 소주를 한잔 한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도 유회장이 약속시간이 손님과 지연되는 바람에 지인이 하는 제재소를 먼저 방문했다.상당한 규모의 공장 이었으나 지금은 나무 공급이 여의치 않아 활발하지 못했다.주로 일본으로 수출한 회사 답게 품질은 괜찮아 보였으나 역시 단가 맞추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샘플만 몇개 얻은후 우리는 어제 찿지 못한 큰 폭포를 찿아 나섰다.
전에 집사람과 가장 인상 깊게 본 터라 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었다.생각 보다 쉽게 찿은 폭포는 수량이 적은 계절이라 예전 보다는 웅장하지 못했다.그래도 윤은 멋지다고 말하면서 같이 사진을 찍는데 바란스가 잘 안맞았다.머리하나가 작은 보들보들한 마누라와 같이 찍을 때는 못느꼈는데 머리 하나가 더있는 딱딱한 근육질의 남자와 찍을래니 많이 어색했다.
시간을 때울려니 어제갔던 시장을 한번 더 들렀다.어제 갈은 시계약이 2시간만 가고 멈췄기 때문이기도하고...
그러나 시계공은 보이지 않았다.이제 이나라도 순수함이 점차 변질 되어 가는 느낌이다.씁쓸했다.
어제 왇푸로 가기위해 건넜던 다리 입구에 있는 그랜드호텔에 커피 한잔 먹으면서 2시간을 때웠다.
오후5시경에야 유회장의 일이끝나 출발 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