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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싸우는사람들[자연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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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추천도서 스크랩 김재규는 박정희를 왜 쏘았는가?.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김재규평전-추천서적-
김형희산야초 추천 0 조회 145 14.12.26 04:5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김재규는 박정희를 왜 쏘았는가?.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김재규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김재규와 10·26에 대한 제4심

역사의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문영심 지음/신국판(152×255) / 정가:15000원 / 분야:사회 /368쪽/2013년 10월 23일 발행

 

연락처:02-3700-3250(마케팅) 02-3700-3255(편집)

ISBN : 9788994973166 03300정가:15000원

10?26 34주년을 앞두고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가 나왔다. 그동안 10?26과 관련한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김재규와 10?26에 대해 철저하게 드러난 사실만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한 책은 없었다. 이 책은 강신옥·안동일 등 김재규 변호사들이 34년간 고이 간직해온 자료와 기억, 가족의 증언, 김재규와 운명을 함께 한 박흥주·박선호 등 5명의 충직한 부하들이 남긴 이야기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경기대학교 김재홍 교수가 어렵사리 입수한 <박정희 살해사건 비공개 진술>, 그 외 방대한 자료들의 토대 위에 있다. 이 책은 김재규 변호사들이 검증한 최초의 10·26 정사(正史)라고 할 수 있다.

 

 

27년간 텔레비전 다큐멘타리를 써왔으며 등단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 문영심은 그녀의 이력에 걸맞게 이 책에서 다큐의 사실성과 소설적 재미를 결합해냈다. 그녀의 책 속에서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독재자 박정희와 그를 에워싼 군상들은 인간의 체취를 물씬 풍기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책을 읽는 내내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나 희곡을 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작가는 그동안 밥을 벌려고 방송작가로서 일하는 동안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오지 않았다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유신 말기에 청춘을 보낸 작가는 이 책을 쓰는 1년여 동안 매일처럼 유신의 악몽에 가위 눌려야 했다.

 

 

김재규. 1976년 12월4일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34개월 동안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사람. 그는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박정희를 저격해 살해하고 1980년 5월24일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의 심장을 쏴버린 박정희의 오른팔. 유신을 허물어 버린 유신의 핵심.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치밀하게’ 일을 저지른 사람. 모순으로 가득한 그의 행동 탓에 그동안 그와 관련해 너무나 많은 구구한 억측과 오해가 뒤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작가가 이처럼 혼란스런 그의 언행을 따라가면서 떠올린 핵심 단어는 ‘역설’이다.

 

 

대한민국 권부에 총성이 울린 것은 세 번이었다. 박정희가 나라를 지키라는 군대를 이끌고 한강 다리를 건너 서울로 쳐들어와 초병을 죽이고 5·16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것이 맨 처음이다. 그 박정희를 김재규가 총으로 쏘아 살해한 사건이 10·26이다. 그 뒤 군부의 전두환·노태우 일파가 다시 군을 이끌고 권력을 장악한 것이 12·12 쿠데타이다.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고 국헌을 문란케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성립하는데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쿠데타는 두말할 나위 없는 내란죄다. 그러나 김재규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으려고 움직인 흔적도 없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군사독재를 끝내려고 거사를 했는데 내가 집권하면 역시 군사독재가 되기 때문에 나는 집권할 생각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노태우는 나중에 내란죄로 기소돼 각각 무기징역과 12년형을 받았지만 사면됐다.

 

박정희는 기소조차 되지 않고 국립묘지에 묻혔다. 내란죄를 저지르지 않은 김재규만 사형당했다. 김재규는 내란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도 못 되고 내란죄로 처형된 셈이다. 김재규 사건 자체가 우리 역사의 모순이며 역설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전두환의 합수부가 주도한 군사법정이 의도한 대로 김재규가 단순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정희를 살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받아들이게 된 데서 우리 현대사가 일그러지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이나 정치인조차 김재규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폄하했다. 혹시라도 그가 민주화의 공을 독식할까 두려워해 탄원서에 서명하는 것조차 꺼렸다. 당시 모두가 그가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사형당하는 것을 방치하고 말아 신군부가 다시 등장할 빌미를 주지 않았는지 저자는 의심한다.

 

 

 김재규가 민간법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으며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면, 김재규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자유로운 언론이 국민에게 알렸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과는 훨씬 달라지지 않았을까.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피를 흘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여기게 되지 않았을까. 저자가 새삼스럽게 10·26을 끄집어내 햇빛 아래 말리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저자는 김재규 33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김재규가 부마항쟁으로 전쟁터처럼 변한 부산 시내를 암행했을 때 우연히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게 됐던 사람이다. 그는 작가에게 그 날 김재규와 박흥주가 최루가스에 맞아 초주검이 된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는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나중에 신문을 보고 자기가 만난 사람이 김재규란 걸 알고 언젠가 시간을 내 고인에게 인사나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뒤늦게나마 고인의 빈소를 찾게 됐다고 작가에게 털어놓았다. 30여 년 전에 딱 한 번 만난 사람의 마음속에도 당시 김재규의 절박함과 고뇌는 잊을 수 없을 만큼 뚜렷하게 각인됐던 것이다.

 

 

김재규를 직접 만나본 이들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국선변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김재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던 인권 변호사도 당연히 처음에는 그를 변호하는 데 시큰둥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지 30분 만에 자신의 생각이 180도 바뀌는 것을 의식하며 당혹스러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도 마치 오래 전에 떠나보낸 연인을 그리듯 고인의 묘를 찾는다. 거사 30분 전에야 겨우 김재규의 뜻을 전해들은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군부의 갖은 유혹과 협박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한마디도 김재규를 비난하지 않고 묵묵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단순히 김재규의 인품이 고결해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작가는 당시 그들은 박정희가 왜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또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재규밖에 없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정보부를 채홍사로 삼아 한 달이면 열흘이나 여자 연예인이나 여대생들을 강제로 끌어다 주지육림의 파티를 벌이며 부마사태를 “야당의 사주를 받은 ‘뽀이’들이 저지르는 난동”쯤으로 받아들였던 박정희와 그를 에워싼 군상들.

 

이 책은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야수이자 괴물이었다는 걸 분명히 말해준다. 저자는 김재규를 둘러싼 이 같은 역설과 모순에 분노하는 이들이 있는 한 김재규가 그토록 원했던 제 4심, 즉 정당한 문민의 재판은 열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근혜 시대, 다시 김재규를 읽는다

 

 

김재규 장군은 부마항쟁의 동지이며 광주항쟁의 희생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김재규 장군에게 역사적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유신의 괴물이 되살아나는 이 어두운 현실에서, 시대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이 깊은 사색과 용기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재규 장군의 10·26의거를 역사적으로 함께 확인하는 그날이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름답게 꽃피는 날입니다.

 

 

-함세웅 신부

군부 정권은 물론이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에도 김재규 장군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금 김재규 장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삼문 같은 사육신도 250년이 지난 후에야 충신으로 인정받은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면 김재규 장군도 반드시 역사의 재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 책은 그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강신옥 변호사

저자소개

 

문영심

 

정시에 출근하는 일이 싫어서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27년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썼다. 수백 편의 방송 원고 중 2006년에서 2011년까지 매달렸던 <물은 생명이다>를 대표작으로 여긴다.

 

 강원도 양구로 귀촌해서 야생화 탐사에 재미를 붙이며 살고 있다. 귀촌 후에 장편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출판했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억압과 통제를 체질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귀중하게 여긴다. 유신 말기에 청춘을 보낸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렇듯이 유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을 괴로워한다.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소설적 재미를 결합시킨 평전을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김재규평전 -----------------------------

 

 

우리나라 근대사에는 두 번의 10·26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10·26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0·26이며, 두 번째 10·26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사살한 197년 10월 26일 10·26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지만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조국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목숨을 던져 실천한 숭고한 독립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10·26, 거침없이 내딛고 있던 유신 독재를 멈추게 한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할 근대사의 오류입니다.

 

두 번째 10·26, 김재규를 역사적으로 온당하게 평가하려면 우리는 현직 중앙정보부장, 심복 중의 심복이었던 김재규가 주군으로 모시고 있던 박정희에게 왜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지은이 문영심┃펴낸곳 (주)참언론 시사IN북┃2013.10.25┃1만 5000원

ⓒ 임윤수

<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지은이 문영심, 펴낸곳 (주)참언론 시사IN북)에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목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는 5·16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총으로 흥한 자 총으로 망하는 게 진리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부하의 총부리 앞에서 비참히 고꾸라지는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습니다.


박정희는 유신으로 영구 독재를 꿈꾸고, 독재의 칼날만을 휘두른 게 아니었습니다. 박정희는 사흘이 멀다 하고 권력과 돈으로 여성의 성을 능멸했습니다. 때로는 딸보다도 어린 여성들까지도 잠자리에 들였습니다. 안가에 끌려간 여성들이 박정희와 함께한 잠자리는 권력으로 자행한 성폭력이며 독재자에게 당한 성 매수입니다.

 

대통령의 '행사'는 소행사와 대행사로 나뉜다. 소행사는 대통령과 젊은 여성이 간단한 만찬 겸 술자리를 갖고 나서 잠자리를 하는 것이고, 대행사는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이 참석해서 두어 명의 여성을 데리고 술과 여흥을 즐기고, 여흥이 끝나면 대통령이 점찍은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걸로 마무리된다. 이런 행사가 사흘에 한 번, 한 달이면 열 번 가까이 있었다. - 본문 52쪽

 

박선호

 

"네.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 과정을 알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 본문 270쪽

 

 

김재규는 박정희와 동향이자 육사 동기입니다. 박정희 주변 인물들 중 최측근 중의 최측근입니다. 누리고 행사할 수 있는 권력도 막강했습니다. 김재규는 망나니놀음 같은 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점차 강경해지는 정국을 풀고, 좀 더 부드러운 정치를 펴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권력에 도취한 박정희는 그 도덕성이 점점 파렴치해졌습니다. 독재를 옹립하기 위한 폭력은 점차 망나니처럼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은 캘린더가 새로 나오면 캘린더에 나오는 여자모델들을 구경시키고 박정희는 골랐습니다. 그러면 그날 당장 여자를 잠자리에 들여야 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죽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차지철의 추임새를 즐기면서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선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는 걸 공공연히 말하곤 했습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박정희가 자행하는 만행을 김재규는 더 이상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재규는 스스로의 몸을 던져 유신의 뿌리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몇 번이나 기회를 엿보던 김재규가 드디어 유신의 원흉인 박정희의 숨통을 끊어 놓으니 그게 바로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발발한 두 번째 10·26입니다.

 

 

김재규가 품었던 혁명 다섯 가지 목적은 박정희를 죽어야 했던 이유

 

독자서평---

 

 

나의 여동생이나 자식과 같은 여인들이 날마다 강제로 끌려와서 권력자에게  순결을 빼앗겨야 하는 아픔을 지켜 보는 것은  울분이 끓어 오르는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였으리라.....

 

날마다 박정희에게 순진한 여인들을 강제로 가져다 바치고 권력의 단맛을 빨아 먹던 경호실장 차지철을 당신이 지켜 보았다면  그를 처단하려고 하는 울분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남자는 여자의 눈물앞에  마음이 약해 진다....

 

어쩔 수 없이 박정희앞에  강제로 끌려오다시피한 여인들의 살려 달라고 눈빛을 지켜 볼 수 박에 없었던 3성 장군 김재규와 권력자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여인들을 박정희에게 가져다 바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군인 박선호 대령은 ....그 끔찍한 행위를 더 이상 저지르지 않기 위해...  박정희를 처단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당신이 날마다 당신의 딸과 같은 힘없는 여인들이 강제로 몸을 빼앗겨야 하는 광경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면... 당신은 울분이 터져 나오지 않았을까?.. 당신이라면,,,,그런 몹쓸 짓을 더 이상 지켜 보지 않기 위해 그 권력자를 죽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당신이라면....  그런 불법을 자행하는 더러운 일에 종지부를 찍자고 하는 제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이 박정희의 머리에 총을 쏜 이유는 울며 불며 매달리고, 살려 달라고 하는 그녀들의 외침 때문이였을 것이라고...남자는 여자의 눈물앞에서  정의감을  되찮으려고 한다..

 

박정희의 성적 노리개가 되면서 한과 눈물을 쏟았던 수많은 여인들의 모습이 그들에게 정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변화 시킨 것이 아니였을까?.

 

나는 생각한다..... 일국의 장군까지 지낸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도덕적인 관념은 그의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었을 것이라고.....그리고 군인 이라면 군인다운 명예를 지키려는 심성이 내재되어 있었을 것이라고....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연예인들과 여대생들의 절규앞에.... 그들은 독재를 끝쟁내야할 ... 당위성을 찾게 되었고... 그리고 거사를 성공리에 끝마치게 된 것이리라....

 

당신이라면.....  그냥 침묵하고 .. 당신의 딸과 같은 자식들을 박정희에게 가져다 바치겠는가?... 당신에게 묻고 싶다... 이 질문에 답을 해 보아라....

 

 

 

************************

 

오늘이 10월 26일이다.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고그로부터 70년이 흐른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쐈다.

 

그리고 오늘 2013년 10월 26일, 나는 시사IN북에서 출간한 문영심 작가의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를 읽은후기를 적기위해 이런 저런 장사준비를 모두 제쳐두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글을 쓴다는 행위를 함에 있어 어느정도 마음의 평정이 유지된 상태라야 정상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은두 말 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은 떨려와서이 상태로 과연 내 마음속의 느낌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자꾸만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문영심 작가와 내가 만난 것은 대체 어떤 억겁의 인연이었을까 하는 생각의 실태래까지 엉켜서 분명 쓰고자 하는 목적은 하나인데 가지는 수천 수만갈래인 까닭에 입안의 침까지 바싹바싹 마른다.만약 문작가와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터이고 그렇다면 굳이 지나간 역사의 상처와내 젊은 날의 초상을 겹쳐가며 아픈 생채기를 들춰내는 일 따윈 하지 않았을텐데...그래도 하여간 이 책의 후기를 적는 일은 어차피 해야만 넘어갈 일이다.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러나 반드시 뒤돌아보고 기록하고 아파해야만 지나가리니.

 

이 책은 김재규 개인의 평전이지만 우리 현대사의 물꼬를 어느 한 순간 완전히 바꾸어버린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역사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지만 오스트리아의 사상가 스테판 츠바이크는

'역사란 승자를 옳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얼핏 같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 말임을 눈치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10.26 김재규의 거사로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 일당이 12.12 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는데 일단 성공했지만전두환 일당은 잠시 승자가 옳다는 자가당착에 빠졌던 것일 뿐 결국 역사를 자신의 기록으로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고 국헌을 문란케한 행위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문화 되어있다.헌법대로라면 박정희는 내란죄의 원조이며 전두환 노태우는 최초 내란의 자양분으로 무럭무럭 성장해서 다시 내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사생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양지바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고 전두환, 노태우는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고도 사면 복권 되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고 있는 중이고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기는 커녕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는 내란죄로 처형되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듯 이 책은 시종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다.국민들이 보는 언론 앞에선 지극히 다감하고 정이 많은 대통령으로 보여지기 위한 쇼를 하면서도 이면에선 자식 또래의 여성들을 노리개로 삼는 것은 물론 정권의 유지를 위해선 투옥과 고문 심지어 국민을 향한 발포까지도서슴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야수와같은 대통령의 역설,

 

 

유신체제 유지를 위한 온갖 악역의 선두주자던 중앙정보부장이 유신의 심장을 쏘았던 역설,민주화 투쟁으로 인해 끊임없는 핍박을 받아야 했던 변호사, 재야인사들이 김재규의 구명을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던 역설,박정희 독재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사후엔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국민정서의 역설 등등...

 

현 시점에서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는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치밀하다'라는 평가가 어쩌면 가장 정확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아직 그의 사후, 역사의 재판은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16세기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가 복권되는데는 무려 50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고조선 세조때 죽은 단종과 사육신은 숙종때 사면 복권되었으며 이승만에 의해 간첩죄로 사형당한 조봉암은 2011년에야 무죄를 선고받지 않았던가.

 

나는 언젠가는 김재규가 다시 햇빛 아래로 나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반드시 그럴 날이 올 것이라고 믿지만 10.26이 일어난지 34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여전히 암담하기만하다.

 

사실 그동안 10.26과 김재규에 관한 이야기는 이 곳 저 곳에서 단편적으로 많이 소개되었고 나 또한 이 책에서처럼세세한 재판과정의 내막과 그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의 개요는 그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이런 일화도 들은 적이 있다.

 

그 해 겨울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이 포승줄에 묶여 재판정으로 가기 위해 끌려나오던 어느 날,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그런데 앞서 걷던 김재규의 고무신이 벗겨져서 김재규가 맨발로 눈길을 걷게 되었는데 뒤를 따르던 부하 한 명이 땅에 엎드려 입으로 김재규의 고무신을 물어서 김재규에게 갖다 신겨드렸다고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던가. 

 

나는 당시 그 이야기를 듣고 김재규와 부하들 사이에 어떤 끈끈한 인간애가 흐르고 있었는지 김재규가 부하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그 부하들은 김재규를 얼마나 존경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아, 그로부터 흐른 세월이 얼마인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이리도 내 가슴이 아픈 것인지...

 

10.26 그날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살면서 될 수 있으면 20대를 뒤돌아보며 생각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내게 그 시절은 너무나 아픈 시절이었다.

 

그런데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를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나는 요즘 다시 아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 같다.

 

어차피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조급증을 내느니 차라리 느긋하게 세월을 기다릴 수 있게되니 말이다.

 

無風天地花開 無露天地無結實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필 수 없고, 이슬 내리지 않는 곳엔 열매도 없다.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에 바람이 불 날이 오지 않겠나, 이슬 촉촉히 내려서 열매 풍성할 날도 오지 않겠나.

 

 

가을이라지만 10월 26일 오늘, 양구는 영하 5도까지 내려갔다.추운 날씨다.  춥고 긴 겨울을 차가운 감방과 재판정을 오갔을 고인들의 지독했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돌아보며김재규장군과 박선호 과장, 박흥주 대령, 유성옥, 김태원, 이기주 경비원...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를 열망했던 댓가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했던 이들의 명복을 빈다.이 가을, 지난 여름 내 불면 스러질 듯한 여린 몸으로 이 책의 집필을 위해 고민하고 아파했을 문염심작가의 건강을 또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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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두가지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권력앞에 단물을 빨아 먹고 살아가는 기생충과 같은 자들이 있고.. 권력에 맞서 정의를 외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불법에 대하여 눈을 감거나 불법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은 모두  한통속이고 한편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은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다.. 배부른 돼지는 옳고 그름을 모른다. 그져 배부르게 해주면 그만이다....

 

오직 배부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모두 기생충과 같은 자들과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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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5.03 15:41

    첫댓글 그러으로 마지막날에 공평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필요한 것이죠! 한번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한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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