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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은 강우량이 적어 한발로 고생한다는 소식이라 마음이 아픈데 이곳은 벌써 장마(梅雨)에 들어가서 한바탕 비가 지나갔습니다. 대기가 불안정하여 앞으로 상당히 축축한 날을 보내야 할 듯싶습니다. 건강히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저도 주일대사로 부임한지 오늘로 1년이 되었습니다. 차관을 그만 두고 중국에 가 있다가 발령을 받고 급히 부임하여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열심히 지낸 한 해였습니다. 간단히 근황을 전하면서 최근 한일관계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임 직후에는 3.11 동일본대지진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복구가 되고 부흥을 위한 체제정비도 끝나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40년간에 걸쳐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점에서 3.11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전대미문의 복합재해로 일본인 뇌리에 오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읽은 책에서 1923년 관동대지진이 大正민주주의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는데 3.11은 21세기 일본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되겠지요. 우리 국민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와 지원을 했던 사실도 일본 국민들 마음속에 남아 있고 일본인들을 만날 때마다 감사의 뜻을 밝힙니다. 진정한 이웃이 무엇인가 되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1년간 일본에 한국을 알리는 공공외교에 힘을 썼고 이를 위해 SNS를 적극 활용해 왔습니다.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동경주재 외교사절 가운데 처음으로 트위터뷰도 해 보았고 일본인 twitter follower도 많이 늘어 조만간 1000명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지방이 강한 일본인지라 열심히 지방을 순회하여 29개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지사 면담, 지방신문사 인터뷰, 대학 강연, 일한친선협회 격려, 지방민단 간부 간담회 등 빡빡한 일정을 통해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데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드라마, K-Pop, 한식을 중심으로 한류 붐이 일어 일본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앞으로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위한 노력과 함께 문학, 고전음악, 발레, 전통음악 등 우리의 수준 높은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요즈음 한일관계는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政冷民熱의 양상입니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최근 불거지기 시작한 과거사문제들로 인하여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군대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강제징용자 보상 판결 등 불행했던 과거사에 기인하는 다양한 사안들이 한일 21세기 파트너십 구축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양국 정치계의 빠른 신진대사로 양국 정치인 간의 네트워크 구축을 어렵게 하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입니다. 유동적이고 예측불가능한 동북아정세를 고려하면 양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탄탄한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더욱 분발하여야 할 시기라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한편 민간 차원에서는 한류 붐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도 무역적자의 개선과 3국에서의 협력 진전으로 상당히 좋은 여건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한류 붐은 새로운 Korea Town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신오쿠보역 근처를 가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전국각지에서 버스로 올라온 인파로 주말에는 통행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본 시청률 1위 후지TV에서 매주 40시간 한국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K-Pop 공연이 있으면 4만 명 넘게 들어가는 도쿄돔이 가득 찹니다. 700억불로 확대된 한일 통화스왑, 최근 3년간 1.7조에 달하는 3국에서의 협력사업, 작년 20%개선된 무역수지와 늘어난 대한투자 등 경제면에서는 좋은 뉴스들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한일 FTA도 실무차원에서 착실한 환경조성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한일관계는 2015년 수교 50주년을 맞습니다. 양국관계가 보다 안정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의 올바른 역사관과 함께 우리 국민들의 전후일본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루빨리 과거사 현안을 정리하는 한편 21세기 파트너십을 위한 다양한 공동프로젝트에도 힘을 쏟음으로써 과거-현재-미래를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구상 어느 인접국관계도 문제없는 곳은 없습니다. 이를 상수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를 잘 관리해갈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상수의 의미를 희석시켜나가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세계경제가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까지 금융 불안과 저성장의 위험에 노출되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기입니다. 또한 우리는 북한핵문제에 덧붙여 3대 세습으로 불안정한 북한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커져가는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은 바로 옆에 있는 우리에게 간단치 않은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강한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시대적 배경이기도 합니다.
역사문제의 해결은 정말 난제중의 난제입니다. 인내와 끈질김, 거기에 복합적 대응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일본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여 스스로 극복하게 하는 것이 좋겠지만 일본사회 체질상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일본은 20년 디플레와 대지진의 여파로 보수화경향이 강해져 과거로부터 눈을 돌리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대처해야 하여야 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일관계는 종종 파장이 있지만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마음속으로 가까운 이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2012년 6월 10일
주일대사 신각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