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놈 (이정순)
"꽤엑! 꽤엑 꽥꽥!" 그날, 고요한 밤하늘을 뚫고 오리의 날카로운 비명이 숲속을 뒤흔들었다. "아! 오늘 밤에도 오리 한 마리가 저놈의 들고양이한테 당하고 말았군." 우리 오리들은 밤만 되면 무서움에 떨었어. 그 들고양이 놈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 우리 오리들이었으니까. 그때는 정말 살벌했었지. 이 호숫가에 이렇게 평화가 찾아온 건 순전히
착한 내 막냇동생 덕분이야. ‘아, 그놈이 없어지니까 이렇게 평화로운데… 사랑한다. 막내야. 오늘따라 왜 이리 목이 메지? 나는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해!’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호숫가는 한가롭기만 하다. 몇몇 오리들이 모래톱을 파헤치고 있을 뿐이다. 내 아기들도 모래톱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꽥꽥! 내가 먼저 찾았어.” “아니야, 이건 내꺼야.” 새끼 오리들이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티격태격 우기고 있다. 나는 꼭 나와 내 동생들을
보는 듯해서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도 그랬지.’ 해 질 무렵, 유난히 노을이 붉게 물든 오후였어. 나와 일곱 마리의 동생들이 엄마 오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었어. 그 날을 생각하자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카테파하 호수는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깨끗해 우리 오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어. 잔잔한 물결이며
호숫가 부드럽고 반짝이는 모래밭이며, 숲이 우거진 그늘은 우리 오리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게지. 그런데 어느 날 숲속에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는 바람에 엉망이 되고 말았어. 그 녀석은 숲속 주변을 배회하며 호시탐탐 우리 오리들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하룻밤 자고 나면 한두 마리씩 새끼 오리들이 없어진다고 야단들이었거든. 다행히 아직 내 동생들은
무사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어. 아빠는 늘 주의를 주었지. “절대 무리와 떨어져 행동하지 마라.” 아빠는 새끼 오리들이 자꾸 흩어지자 한곳으로 모으느라 애를 먹었어. “네!” "그리고 저쪽 잔디밭은 어제 민들레 죽이는 약을 뿌리더구나.” 그곳은 위험하니 접근 금지 표지선 쪽 근처에서는 놀지 말고 당분간 그곳 풀잎들도 먹으면 절대 안 된다고 아빠는 신신당부를 했었지. “며칠 전 옆집 아이들이 들고양이한테 또 당했잖니.” 엄마는 그 끔찍한 일을 회상이라도 하는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진저리를 쳤었어. 나도 그 날 그 들고양이 놈이 이웃 아기 오리를 물고 저 숲속으로 사라지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그 오리의 처절한 모습은 차마 눈 뜨고는 못 보겠더라. “요즈음은 도통 먹이조차 찾을 수 없으니 어찌 된 일이지?” 엄마가 새끼오리들을 돌아보며 걱정 섞인 말을 했었어. “아, 배고파 엄마.” 동생들이 아우성을 치고 야단이었어. “여보, 이러다간 내 아이들이 다 굶게 생겼어요. 들고양이
놈이 나타나지를 않나. 낚시꾼은 또 저렇게나 많이 몰려오는지. 원!” 호수 건너편에는 많은 사람이 낚시하느라 몰려있었어. “그러게. 물고기까지 줄어들고 있으니 걱정이네.” 아빠도 걱정스럽게 말했어. “아 흠, 형, 누나 심심해. 나도 끼워주라.” “싫어. 저리 가. 맨날 심술만 부리면서.” 다른 동생들이 모래톱에서 장난을 치며 모래 목욕을 하고 있으면서 막내를 끼워주지 않는 거야. "나도 하고 싶단 말이야." 다른 형제들이 한쪽에서 노느라 정신 없을 때 막내는 혼자 놀며 모레 집을 짓다 형제들이 지어놓은 모래 집을 그만 부수고 말았어. "잉, 부서졌잖아. 나는 왜 안
돼지?" "막내 너 또 부셨구나?" 둘째가 부서져 버린 모레 집을 보고 막내를 야단쳤어. 실수로 부서진 걸 형제들은 막내가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미워하지 뭐야. "형, 미안해. 하지만 나도 만들고
싶었단 말이야." “막내야 이리 온. 형이랑 물에 가서 놀자.” “정말?” 막내는 둘째의 야단에 울먹이다 금세 울음을 그치고 좋아하며 물가로 뒤뚱뒤뚱 달려갔어. 막내가
다른 형제들한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나는 안쓰러웠어. 먼저 물가로 간 막내가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찾아냈지 뭐야. 그 물고기는 아직도 파닥이고 있었어. 그게
화근이었어. “꽥꽥! 내가 고래만 한 물고기를 찾았어.”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오리들이 잰걸음으로 뒤뚱거리며 달려왔었어. “와, 크긴 크네. 이렇게 큰 물고기가 잡혔네. 근데 사람들이 왜 안 가지고 갔지?” 엄마도 달려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물고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어. “잠깐만, 혹시 낚싯바늘이 물고기 입속에 있는지 살펴봐야 해.” 엄마가 동생들을 막아서며 말했어. “큰일 날 뻔했어. 물고기 입속에 커다란 낚싯바늘이 들어있어.
여기를 봐. 가느다란 실이 입 밖으로 나와 있잖니.” “낚싯바늘은 아주 위험한 거란다.” 아빠가 낚싯바늘은 아주 위험한 거라고 강조했었어. “애들아, 아주 조심해서 먹어야 할 것 같아.” 엄마는 물고기를 다시 살피며 말했어. 나도 물고기를 살펴보았어. “아빠, 이 물고기는 너무 커서 낚싯줄이 끊어져 도망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구나. 그래서 낚싯바늘이 입속에 들어 있고." “첫째야, 네가 좀 도와줘라." 엄마가 내게 동생들을 도와주라고 말했어. 나는 동생들이 조심스럽게 먹을 수 있게 도와주었어. 동생들은 물고기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겨우 낚싯바늘이 있는 부분만 조금 남겨 두었어. 남은 물고기 입 밖으로 낚싯바늘이 삐쭉 올라와 있었어. 그 낚싯바늘은
갈고리 같은 것이 아주 위험하게 보였어. 착한 막내는 형제들이 밀쳐 내는 바람에 먹지 못했었어. 다른 동생들이 배가 부르자 막내에게 자리를
내주었어. 배가 고픈 막내는 낚싯바늘이 달린 조금 남은 물고기를 덥석 물고 말릴 사이도 없이 꿀꺽 삼키고
말았지 뭐야. “악! 안 돼. 막내야!” 엄마는 다급하게 막내를 말렸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어. “이 일을 어째, 막내가 낚싯바늘을 삼켰어요." “케엑 켁! 엄, 엄마 나 좀 살, 살려주세요.” 막내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어. “혀 엉!” 막내는 나를 힘없이 불렀어. 나는 막내를 꼬옥 안아 주었어. 막내는
나를 제일 좋아했으니까. “막내야, 겁먹지 말고 입을 크게 벌려 봐. 아빠가
곧 빼내 줄게.” 아빠는 조심스럽게 막내 입속에 부리를 깊숙이 집어넣었어. “켁 켁!” “조금만 참아라. 아가야. 오! 하느님. 사랑하는 이 아이를 살려 주세요.” 엄마는 간절히 기도했어. 동생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 나는
아빠가 막내 입속에 든 낚싯바늘은 빼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어. “후유!” 그때 아빠가 한숨을 쉬었어. “아빠, 빼냈어요?” “큰일 났구나. 너무 깊이 들어있어 도저히 빼낼 수가 없어.” 막내는 고통스러워 바동거리고 있었어. 그때 주변을 배회하던 들고양이 놈이 이 광경을 숲속에서
지켜보고 있었어. 나는 그놈 눈과 딱 마주치고 말았지. 뭐야. 들고양이 놈은 낮게 갸르릉 거리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어. ‘저놈이 막내를 노리고 있어. 하지만 어림도 없지.’ 사랑하는 동생을 저 녀석의 먹이로 줄 수는 없었어. 물고기 비린내가 저놈을 더 자극한 것이 분명해. 그놈의 눈빛은 소름이 쫙 끼쳤거든. 아빠가 목을 곧추세웠어. 동시에 내 깃털도 가시처럼 일어났어.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서 있기조차 힘들었어. “막내를 지켜야 하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어. 그때 들고양이 놈이 동생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어. “크아앙!” 나와 동생들이 막내를 에워쌌어. “저놈이 옆집 아이들을 물고 간 놈이야! 이번엔 어림도 없어." 아빠는 그놈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어. "이러다가 우리 모두 희생당하고 말겠어요." 엄마는 온몸으로 막내를 가로막으며 울부짖었어. 아빠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어. “저놈이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우리 모두 저놈의 밥이 될게 뻔해. 저놈이 다시 공격하기 전에
어서 피해! 여긴 내게 맡겨 두고, 너희가 안전하게 피하고
나면 아빠도 곧 뒤따라가마." "아빠! 막내는 어떡하고요.“ 내가 소리 질렀어. "어차피 막내는 못 살아. 시간을 끌면 막내는 더 고통스러울 뿐…” 아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보았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죽여야 하는데.' 아빠는 각오를 단단히 한 듯이 중얼거렸어. "야비한 놈! 설사 막내가 죽을지라도 네놈의 먹이로는 줄 수 없어." 나는 그 놈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어. 내가 소리를 지르자 움찔하며 그놈이 한발 짝 물러섰어. 여전히 눈엔 살기를 띠고 말이야. "첫째야, 위험 해. 비켜서!" "모, 모두 피해요. 어서 피, 피하라고요. 제가 저놈을 죽이고 말 거예요.“ "네가 무슨 수로?" 나와 엄마가 막내 앞을 가로막아서며 말했어. "우리가 저놈한테 한꺼번에 달려들어요. 그러면 도망갈 거예요.” 동생들도 막내를 에워쌌었어. “우리가 막내를 지킬 거예요.” 막내를 지키겠다는 나와 동생들의 각오가 대단했지. 말썽을 피울 때는 막내를 따돌렸지만, 위급한 사항이 되자 동생들은 막내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보탰어. 정말
동생들이 기특했어. “우리가 너를 끝까지 지킬 거다. 그동안 우리가 정말 잘못했어.
착한 동생인 줄도 모르고." 모두가 울부짖으며 막내를 얼싸안았어. “형아야, 누나야!” 그때 그놈이 우리 오리들을 항해 또 돌진해 왔어. "어서 피해!" 막내의 목소리가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어. 어디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꽥꽥꽥! 크 아앙!" 오리들의 울부짖음과 그놈의 울음소리가 뒤엉켜 숲속을 뒤 흔들었어. 우리 오리들의 깃털이 공중을 날아 흩어졌어. 그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어. "막내가 없어졌어요. 그놈이 물고 갔나 봐요." 모두 막내가 있던 곳으로 달려가 찾아보았지만, 막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어. 하지만 그놈은 아니었어. 그놈은 우리와 함께 싸우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그놈이 싸우다 말고 잔디밭 약 친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어. 나는 그 놈을 쫓아갔지. 그곳에서 막내는 제초제 친 민들레를 허겁지겁 뜯어 먹고 있었어. 독한
약 냄새가 확 풍겨왔어. "막내야 안 돼." 내가 소리 질렀어. "아빠 막내가, 막내가…" “불쌍한 내 새끼. 사랑한단다. 내 아가야.” 엄마는 울부짖었어. “케 엑 꽥!” “크아앙!” "막내야!" 모두가 들고양이를 뒤를 쫓았지만, 그놈은 막내를 물고 숲속으로 사라진 뒤였어. "꽤엑! 꽤엑 꽥꽥꽥!" 숲속에서 처절한 막내 울음소리가 들렸어. 달님도 슬픈지 구름 뒤에 얼굴을 감췄어. "꽤엑, 꽤엑 꽥꽥꽥!" 숲은 온통 우리 오리들의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지. “크아앙!” 호숫가는 한차례 천둥과 번개가 지나간 후처럼 고요해졌어. 뒷날, 사람들이 들 것에 호랑이만 한 죽은 들고양이 한 마리를 싣고 나가지 뭐야.
바로 그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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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우님, 그간 무고 하셨지요?
좋은 교훈이 깃든 동화를 읽게 되어 무척 반갑네요.
먼곳에 계시지만 왠지 가까이 있으신 느낌은 아동문학의 고리
때문인 것 같아요. 종종 토론토 문협카페에서 뵙기를 바라겠어요.
올해도 건강과 함께 건필 하세요.
이미숙 회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