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우 수련활동에 대한 재인식
박 만 규(교육수련원장)
1) 흥사단과 수련
한 세기 전 국망 전후의 그야말로 척박한 상황에서 도산은 동맹수련의 기치를 내걸고 청년학우회와 흥사단을 창립하였다. <덕체지 3육을 동맹수련>케 함으로써 건전한 인격을 이루고 신성한 단체를 이루어 민족전도대업의 기초를 짓고자 함이었다. 도산은 민족운동의 실천적 경험을 통해 일찍부터 건전한 인격의 형성과 협동 단합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절감하고 이를 위해 동맹수련의 방안을 창안하였다. 따라서 흥사단은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지향하는 민족운동 단체였지만 거기에 참여한 단우들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할 내용은 덕체지의 수련이었다. 말하자면 흥사단우에게 의무 사항으로 부과되어 있던 수련은 민족운동의 하위개념이었지만 그 선결요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족운동 단체를 표방하면서 수련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흥사단의 한계는 분명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가 처해 있던 열악한 상황 때문이었다. 이천만 민족 구성원의 대다수가 극도의 억압과 가난 속에 놓여 있을 때 흥사단 식의 수련활동을 주된 내용으로 하여 포괄할 수 있는 대상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흥사단에의 참여자는 원천적으로 소수의 자산층과 지식층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불가피하게 도산과의 인간적 친소관계나 지역적 연고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따라서 식민지 상황에서 수양단체를 표방하는 흥사단의 본질에 관한 찬반 논란이 비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사단은 당시 사회 속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단체로서 어쨌든 뚜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요인은 무엇보다도 도산이라는 큰 인물이 지도자로서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산은 늘 민족운동의 일선에 서 있으면서 덕체지 수련에 있어서도 그 자신이 가장 앞장 서 모범을 보여 주었다. 정직과 성실을 향한 변함없는 태도와 더불어 아령체조나 단전호흡, 다방면의 독서 등을 통해 덕체지의 수련을 스스로 생활화 하고 있었다. 조직 차원에서 흥사단우들에게는 동맹독서나 동맹체조 동맹저축의 실행 의무가 부여되고 장려되었다.
이처럼 흥사단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단체로서는 유일하게 동맹수련을 주요 활동으로 내걸고 존속해 왔다. 해방 후에는 민주시민을 지향하는 동맹수련 120개조 혹은 60개조가 공식 제정된 바 있으며 근래에는 중앙수련원이 발족되어 주로 입단 및 서약을 위한 단우 교육에 공헌해 왔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흥사단우로서 수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일상 속에서 생활화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2) 수련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
우리는 여기서 수련과 관련하여 다시 도산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도산은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민족운동의 전체 틀 속에서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동맹수련이라는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였으며 이를 청년학우회 및 흥사단이라는 하나의 실행 조직으로 구체화해 낸 인물이다. 그러면 도산은 수련을 과연 민족운동의 필요성에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강조하였던 것인가.
잘 알려져 있듯이 도산은 단지 한사람의 항일 독립운동가에 그친 인물이 아니었다. 민족지도자로서 그는 멀리 독립 이후까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당시로서는 선구적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였던 그는 또한 한국 민족의 흥망에만 관심이 한정되지도 않았다. 비록 민족의 독립 달성이 당면 과제로서 절박하였기 때문에 주된 관심과 활동을 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의 가치관 자체는 훨씬 크고 넓었다. 한민족의 독립과 번영은 물론이고 나아가 전 인류의 행복 실현을 궁극의 이상으로 삼고 있었다.
“우리 전 인류가 다 같이 절실히 갈망하고 또 최종의 목적으로 하는 바가 무엇이오? 나는 이것을 전 인류의 완전한 행복이라 하오,”
전 인류적 범위의 행복주의자 였던 도산은 사람이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외적 조건과 내적 조건이 함께 필요하다고 하였다. 가난과 폭력이 없는 문명사회가 외적 조건이라면 내적 조건은 사람들 가슴 속의 사랑이었다. 질서 있고 풍요로운 문명은 행복의 밑바탕으로서 그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행복을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충분조건은 사랑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우리 인류에게 궁극적 가치인 행복과 관련하여 사랑의 중요성을 간파한 그는 이를 애기애타(愛己愛他)라는 말로 집약하였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남에 대한 사랑의 중요함을 간명히 표현한 것이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애기와 애타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바로 수련과 봉사가 그것이다. 스스로를 향상시키고 심화시키고 확대시키는 수련 외에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가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관심과 시간과 금전을 바치는 봉사 외에 다른 사람을 달리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도산이 애기애타라는 말로 수련과 봉사를 그처럼 강조했던 것은 <전인류의 완전한 행복실현>이라는 그의 궁극적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런데 수련과 봉사는 기본적으로 여유와 여가를 필요로 한다. 정신적 시간적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행위인 것이다. 절대빈곤과 식민지 폭압의 시대에 선각자 도산이 심었던 흥사단이라는 수련동맹의 씨앗은 이제 곧 한 세기의 연륜을 기록하게 된다. 말하자면 동맹수련을 위한 수련동맹체로서 흥사단은 이제야말로 비로소 풍요롭고 자유로운 문명의 시대를 만나 제철을 맞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도산이 말한 애기애타의 근본 뜻을 헤아리면서 수련을 봉사와 더불어 행복을 향해 굴려가는 수레의 두 바퀴로 보고 그 적극적인 의미를 살리고 실천해 가야 하겠다.
3) 흥사단교육수련원의 역할
우리 모두는 변화를 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대개 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조건>의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 보다는 좀 더 나은 상태를 바라게 된다. 좀 더 높고 좀 더 깊고 좀 더 큰 나를 찾으려는 모든 노력이 바로 수련이다. 즉 수련이란 변화를 위한 나날의 노력인 것이다.
그러나 향상과 심화와 확장을 위한 수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변화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적지 않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깐 동안의 일회적 일시적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얻기 위해서는 역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특히 그 점이 무엇보다도 수련의 가장 큰 어려움인 것이다. 변화를 위한 대부분의 결심과 실행이 작심삼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같은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산이 제시한 처방이 동맹수련의 방법이었다. 동맹수련은 무엇보다 인내를 요하는 수련 활동을 각 개인의 결심과 의지에 맡겨두지 않고 여럿이 함께 격려하며 나아가게 함으로써 효율성과 지속성을 강화하려 한 것이다. 동맹수련을 위한 수련동맹의 결성이라는 발상은 수련방법론의 발전 과정에서 실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매 순간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체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인 것이다. 이때 수련동맹체로서 흥사단은 단우들은 물론이고 나아가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들 모두가 갖고 있는 변화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일차적 책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 흥사단은 단우들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단우들로 하여금 수련의 계기와 기회를 제공해 참된 만족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단 밖의 시민들에게도 변화의 체감이라는 보상을 가장 잘 줄 수 있는 매력 있는 단체가 되어야 단세 확장의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수련원은 단우 수련 및 시민 교육의 역할 수행에 가장 앞장 서야 한다. (글쓴이 박만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