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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림길에 만난 소똥령 구름다리. 고성/김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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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고시설(通高之雪)이란 말은 통천과 고성지방이 예부터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해 생긴 4자성어다.
특히 진부령이 눈이 더 많이 내리는데 이곳에 백두대간 남한 종착지이자 고성 8경중 설경으로 이름난 마산봉이 자리잡고 있다.
마산봉은 산정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말등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택당 이식 선생의 시비와 한국전쟁 전적비, 진부령과 백두대간 표지석, 진부령미술관 등 수많은 사연과 상징물들이 설화처럼 남아있는 진부령 고갯길 남쪽으로 흘리 마을과 알프스스키장을 지키며 우뚝 서 있는 마산봉을 마주할 수 있다.
북한 삼방스키장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개장된 알프스스키장, 그 스키장을 품에 안고 있는 마산봉은 해발 1052m, 미시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백두대간 남한의 종착점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대간종주 산행의 기쁨과 감동을 가슴깊이 새겨두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간성의 주봉은 향로봉이지만 이곳은 민통선에 위치해 일반인의 내왕이 자유롭지 않아 향로봉과 마주선 마산봉이 그 주봉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마치 이북에 남겨두고 온 큰 형님을 대신해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활엽관목과 교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3월 하순 보랏빛 얼러지가 눈 속에서 밭을 이루고, 4월엔 취나물과 참나물, 고사리와 고비를 비롯해 다양한 산나물이 산을 덮고 있어 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산이다. 5월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산구름에 피어나고, 진홍빛 병꽃이 군락을 이룬다.
산정에는 90년대까지 군부대 소초가 주둔했던 건물 잔해물이 있었는데 백두대간 정비사업으로 상흔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그 자리에 이정표도 세워 놓았다.
▨ 산행
산악인으로 소문난 이선국 고성군 농정산림과장의 안내로 마산봉의 오름길에 나섰다. 이국적인 정취의 알프스콘도미니엄 주차장이 들머리의 시작점이다.
또 다른 오름길은 마산봉 산정 주둔 군부대 군용차량이 오르내리던 안흘리 오름길이 있었지만 비바람에 깊게 파여 나가고 관리를 하지 않다 이제는 들짐승이 다니는 길이 됐다고 한다. 콘도미니엄 뒷마당의 산자락에 들어서면 울긋불긋한 표지기와 국립공원의 입산금지 표지판이 버티고 있다. 계단을 따라 곧장 전나무 숲과 스키장 리프트 갓길을 따라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것이 대간 등산로란다.
들머리에서 오른쪽으로 150m가량 돌아 계곡을 가로지르는 낡은 섶다리를 만났다. 4~5m 길이의 통나무 다리를 건너 골짜기로 들어서 선바위골로 오르는 계곡을 따라 나섰다.
초입의 나무계단과 가파른 산길을 전문산악인을 따라 오르자니 가쁜 숨이 턱까지 차 올라 시작부터 체력이 고갈돼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짙은 신록의 전나무와 참나무 숲과 그 사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쉬다 깊은 계곡으로 접어들면 울창한 숲길이 산으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널찍한 너럭바위가 고인돌처럼 널려 있고, 산길 곁으로 온갖 들풀과 야생화가 산을 찾는 사람을 반갑게 맞는다. 향기로운 풀내음으로 더위를 식히며 20여분 계곡을 오르면 마지막 초록빛 이끼와 맑은 여울이 계곡의 끝을 알린다. 스키장으로 이어지는 정맥에서 다시 산정으로 오르는 마루금으로 내려서면 좁은 산길 곁으로 진초록빛 조릿대가 빈산을 지키고 있다. 마루금을 따라 산정까지 이어지는 오름길은 비교적 급하지만 가끔씩 산 아래를 돌아보며 일상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마산봉 산행의 맛이라고 할까.
산정에 올랐더니 파란 하늘과 향로봉이 눈앞에 있고, 그 뒤편으로 민족의 명산 금강산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가깝게 병풍바위가 눈앞에 성큼 다가서고, 금강산의 시봉인 신선봉이 산구름에 피어난다. 산 아래 도원저수지와 야트막한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온 산이 마산봉을 따라 일어선다.
마산봉에서 동쪽으로 곧장 이어지는 마루금을 400m 가량 숲을 헤치고 따라나서면 기묘한 바위들이 산길을 막아섰다. 각진 바위들이 군락을 이루는 이곳이 일명 곰바위다. 세상시름을 잊고 산 아래 선유실저수지와 해금강, 아름다운 동해안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눈부신 햇살과 가슴저며오는 가녀린 바람 소리와 함께 하면서 산행의 기쁨을 만끽했다.
내림길에서는 흘리마을에 늘어진 하우스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선 지금 피망 생산이 한창이다. 전국 우수명품 농산물로 인정 받고 있는 피망을 산지에서 바로 구매할 수도 있다. 또 옛날 국도 1번지로 한양을 오가던 소똥령 입구에 놓인 구름다리와 맑은 북천 상류에 발을 담글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호젓한 산중 갤러리인 진부령 미술관에서는 화가 이중섭 선생의 작품과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고려불교 불화가 전시돼 이곳을 찾는 관람객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진부령 고갯마루에서 만난 싱그러운 산채와 황태구이 등 맛있는 음식은 이번 마산봉 산행의 절정에 이르며 또 다른 묘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