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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테디입니다.
오늘은 아주 재미난 소식을 한가지 전하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는 7월 16일부터 8월 19일까지,
새로운 피스로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2016 열 번째 피스로드 - "아무도 모르는 유럽"]
이번 피스로드팀이 가는 '발트 3국'(Baltic States)은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이름조차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유럽'이니까요. ^^
아무튼 저는 얼마 전, 피스로드 팀이 방문할 나라들 중 발트 3국에 미리 다녀왔습니다.
사전 협의된 프로그램들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서였죠.
자 그럼,
발트 3국에 대해 처음 들어본 분들이나 관심 있으신 분들은 재미로,
머잖아 피스로드에 참여할 친구들은 사전 답사하는 기분으로,
시작해볼까요?
출발~
<탈린 / Tallinn>
저는 먼저 'Air Baltic'을 타고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탈린에서 핀란드 헬싱키까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불과 80km 떨어져 있지요. 에스토니아는 오랫동안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 독일 등 주변국의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1918년 독립선언과 이후 독립전쟁을 벌이는 등 20세기 초에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독일과 소련이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를 영향권으로 나눈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밀약으로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들었지요. 이후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깨고 전쟁을 일으켜, 잠시 나치 독일의 영향권에 들기도 했다가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1991년 독립 때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있었습니다. 지금도 러시아 인이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많습니다. 에스토니아는 1991년 발트 3국의 독립으로 이어진 '노래 혁명'을 이끌며 독립합니다. 독립 이후 2004년에 유럽연합(EU)에 가입했으며, 2011년부터 유로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 동화 속의 마을이 떠오르는 탈린 구시가지의 모습 한편 탈린에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1930년대, 연해주, 즉 지금의 러시아에 정착 중이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쫓기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흐르고 흘러 더 이상 강제 이주와 같은 비극은 없었지만 생계 유지를 위해 많은 고려인들은 여기 저기 떠돌게 되었죠. 그 중에는 이곳 에스토니아에 정착하게 된 고려인들도 있습니다. 탈린에 도착한 날, 피스로드 프로그램 점검을 위한 현지 사전 미팅이 잡혀있었습니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길, 공원에 앉아 잠시 쉬는 중 고려인 한 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곳엔 언제 오셨어요?" "그때, 소비에트 국가 때 여기로 들어왔지." "혹시 조상분은 언제 카자흐스탄으로 가셨어요?" "일천구백삼습칠(1937) 때 저기래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거기서 싹 살았지. 우리 할아버지랑. 그때 이래 스딸린. 암서(알죠) 스딸린? 스딸린, 레닌 할 때 그때 이래 스딸린이 싹 여기로 데려왔지 무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때 할아버지도 가신 거예요?" "예, 그때. 그래 우리 거기 살았지." ▼탈린의 한 바닷가 공원에서 만난 세르게이 김 할아버지 이어 오늘의 목적지, 피스로드 팀이 방문하게 될 탈린 시내의 고려인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의 이름은 '아리랑'. 멀리서 'RESTORAN ARIRAN'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입니다. ▼아리랑 식당의 내부(좌)와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 에스토니아어로 된 메뉴판(우) 사실 고려인 식당들은, 물론 모두 한국 요리를 제공하지만, 그 맛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인들의 이주 역사를 따라, 한국 음식들이 오랜 기간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현지화를 거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 점검 차 미팅이 잡혀있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죠. 일단 밥부터 먹었습니다. 저는 이 식당에서 된장국을 주문했습니다. 겉모습은 좀 달랐지만, 맛은 의외로 한국에서 먹던 된장국과 비슷했습니다. 김치는 백김치처럼 시원한 맛이었습니다. 된장국과 함께 먹는 밥맛에 오랜만에 한국 생각이 나더군요. 맛있게 식사를 한 뒤, 차를 마시며 미팅을 시작했습니다. 피스로드 팀이 만나게 될 고려인, 러시아 사할린에서 태어나신 아저씨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현재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45년째 살고 계신 분입니다. 이번 피스로드 팀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의 고려인들과 교류가 많았던 선생님께 고려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역사, 고려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한국과 한국 사람, 그리고 탈린의 고려인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배울 예정입니다. ▼아리랑 식당에서 마상길 선생님과 함께 다음 일정은 탈린 구시가지 프로그램 점검입니다. 매일 12시, 탈린 구시가지에 있는 관광 안내소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입니다. 탈린 관광청이 운영하는 구시가지 도보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토니아 대학생들의 재미있는 소개와 함께 동화 속의 마을이 떠오르는 탈린 구시가지 곳곳을 누비며 숨어있는 이야기와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KUMU' 탈린에는 에스토니아에서 제일 큰 미술관인 'KUMU'가 있습니다. 'KUMU'는 에스토니아 어로 미술 박물관이란 뜻의 'Kunstimuuseum'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에스토니아의 고전 미술, 근대 미술, 현대 미술이 전시된 이 곳은 미술을 통해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4층이나 되는 박물관에는 층별로 시대가 나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2층에는 고풍스러운 유럽의 고전 미술품이, 3층에는 위압갑이 드는 소비에트 시절 미술품이, 4층에는 컴퓨터 등을 이용한 현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도시인 타르투에서 만날 '노래 혁명'과 관련된 작품도 있습니다. 1991년 노래 혁명에 앞장서 독립을 이뤄낸 사람들의 사진입니다. ▼작품제목 : 함께 노래한 사람들 'KUMU'에 포함되는 근처의 'Kadriorg Palace'에도 다녀왔습니다. 그 유명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아내인 예카테리나 1세를 위해 지은 저택입니다. 내부에는 16~20세기의 고전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고, 미술품 말고도 화려하고 독특한 내부구조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는 곳입니다. 외형의 화려함 말고도,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사실 이 건물은 그랜드 피아노 모양으로 생겼거든요. <타르투 Tartu / 에스토니아> 타르투는 에스토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타르투 대학교를 비롯, 고풍스러움과 젊은 열정이 함께 만날 수 있는 도시입니다. 타르투에 도착한 뒤, 타르투 시청 광장을 지나가다 학생들이 분수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모습에서 젊음과 생기가 느껴집니다. ▼타르투 시청광장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는 학생들 젊음의 도시 타르투는 발트 3국의 독림으로 이어진 '노래 혁명'의 진원지입니다. 총과 탱크에 맞서 손에 손을 잡고 무려 600km나 이어진 사람들이 발트 3국의 국경을 넘어 함께 자유와 평화를 노래한, 노래 혁명. 노래 혁명의 중심에는 에스토니아가 자랑하는 '라울루피두'(Lauluidu)라는 유서깊은 노래 축제가 있습니다. 1869년부터 시작된 노래축제는 지금도 5년마다 열리며 에스토니아 전 국민이 즐기는 유서 깊은 축제입니다. 그 라울루피두가 시작된 곳도 바로 이 곳 타르투입니다. 피스로드 팀은 먼저, 노래축제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노래축제 박물관'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어서 역사가 깊은 타르투 대학교 음악 대학에도 방문하여, 노래 혁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예정입니다. ▼ 타르투 대학교의 모습 ▼타르투 대학교 음악 대학의 전경(좌)와 교내 도서관(우) 저는 '노래 혁명'과 관련하여, 타르투 대학교와 피스캠프의 협력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협의를 위해 타르투 대학교 음대 교수님과 도서관장님을 만나 미팅을 가졌습니다. ▼노래혁명에 대하여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신 타르투 대학교 도서관의 시르예 올레스크 관장님 미팅을 마치고 관장님은 저에게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노래가 담긴 '에스토니아 애국가 모음집'이란 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타르투에서 만난 사람들' 저는 타르투에서 노래혁명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당시 30세로 탈린에서 노래 혁명에 함께했던 얀 아저씨는 소련 시절 누리지 못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기뻤고, 노래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렸던 마리아 씨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듯, 자부심이 넘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또 꼬마 시절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사람들과 손을 잡고 노래한 일을 기억하는 30대 아저씨, 스텐도 만났지요. 그리고, 노래 혁명 이후에 태어나서 책으로 배웠다는 수많은 대학생들도 만났습니다. 인류는 온 세상 곳곳에서 불의에 저항하여 수많은 혁명을 거쳤습니다. 혁명의 진행과 운동 방식은 제각각이었지요. 세상에는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 더욱 알려져있지만, 보다 드라마틱하고 실질적인 결과물을 낳은 것은 사실 에스토니아의 '노래 혁명'입니다. 피스로드 팀은 이 '노래 혁명'의 발자취를 따라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와 증언을 듣게될 것입니다.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긴 여름 해가 집니다. <리가 Riga / 라트비아> 다음은 에스토니아 타르투를 떠나서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유럽연합(EU)에 속한 두 나라 사이에는 출입국 심사는 없습니다.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는 '아르누보'(Art Nouveau) 건축 양식으로 유명합니다. 아르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예술(New Art)이라는 뜻으로, 19~20세기 유럽 전역에서 새로움을 찾아 생겨난 예술철학을 말하지요. 물론, 건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유럽은 새로운 양식의 아르누보 건축물로 다시 태어났지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새롭게 꾸민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도 아르누보 건축가로 분류됩니다. 당시, 도심의 무려 40%나 아르누보 스타일로 다시 꾸며진 리가는 유럽에서 아르누보 건축양식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라트비아 리가에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르누보 건축물. 구시가지에서 아르누보 박물관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아르누보 건축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리가 대성당의 모습 리가 시내에선 길거리 공연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리가 시내에서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시원한 자연이 펼쳐진 숲 속에 라트비아 전통 박물관이 있습니다. 옛날에 타던 마차, 라트비아 전통 놀이, 나무껍질로 만든 공예품 등 옛날 라트비아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만날 수 있지요. '라트비아 전쟁 박물관' 라트비아 전쟁 박물관에서는 아주 오래된 지도부터, 20세기 초 라트비아 독립 전쟁, 일본의 만주 침략과 세계 2차대전, 소련 등등 라트비아와 관련된 크고 작은 전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아르누보와 음악의 도시, 리가를 떠날 차례입니다. <빌뉴스 : 또 하나의 피스, 우즈피스> 리가를 떠나 향한 이곳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에 한 시장에 들렀는데, 싱싱한 딸기를 많이 팔고 있었습니다. 물방물을 머금은 싱싱한 딸기를 한 입 앙~ 하고 베어 물고 싶단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빌뉴스에 도착한 날, 빌뉴스 시청광장에서 한국 사람들이 주최한 한국을 알리는 작은 축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는데, 많은 외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간단히 축제를 관람한 후 발걸음을 재촉하여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빌뉴스 구시가지에 근처에 흐르는 빌넬레 강 건너에는 '우즈피스'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진짜 나라는 아니고, 강 건너 마을(우즈피스)에 사는 사람들이 "재미 삼아" 만든 나라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만든 작은 나라들을 '마이크로네이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작은 나라라고 무시해선 안됩니다. 한 국가 답게 대통령과 장관, 대사 등 정부의 요인도 있습니다. 건국일인 4월 1일에는 여권도장도 찍어줍니다.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 마을이란 뜻의 우즈피스는 사실, 예전엔 범죄가 빈번한 지역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살기 시작하면서 범죄 지역에서 예술가 마을로 탈바꿈한 것이죠. ▼강 건너 마을 '우즈피스'의 입구 우즈피스는 헌법도 있는데요. 이 헌법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법으로 유명합니다.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우즈피스의 한 벽면에 붙어있는 우즈피스 현법을 한번 살펴볼까요? - 우즈피스 공화국 헌법 - 1. 모든 사람은 빌넬레 강 근처에 살 권리가 있으며, 빌넬레 강은 모든 사람 곁을 흘러갈 권리가 있다. 2. 모든 사람은 추운 겨울에 지붕 아래서 따뜻한 물로 몸을 데 권리가 있다. 3. 모든 사람은 죽을 권리가 있다. 단, 의무는 아니다. 4. 모든 사람은 실수할 권리가 있다. 5. 모든 사람은 독특해질 권리가 있다. 6. 모든 사람은 사랑할 권리가 있다. . . . 21. 아무도 폭력을 휘두를 권리는 없다. 23. 모든 사람은 이해할 권리가 있다. 24. 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25. 모든 사람은 어느 국적이든 가질 권리가 있다. . . . 31. 모든 사람은 독립해야 한다. 32. 모든 사람은 각자의 자유에 대한 책임이 있다. 33. 모든 사람은 울 권리가 있다. . . . 37. 모든 사람은 옳지 않을 권리가 있다. 38. 모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 . . 마을을 거닐다가 우즈피스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Come here! Join us together!" 저를 반기는 사람들, 잠시 그들과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질문 공세가 쏟아집니다. 어떻게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냐며 신기해하더군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즈피스 헌법의 정신에 따라 사람들과 함께하며 저도 긍정의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사실 우즈피스 프로그램은 제가 사전에 협의하여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곳에서는 미팅이 잡힌 것도 없었지요. 피스로드 팀은 이 마을에 방문하여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할 예정입니다. 마치, 제가 이번 출장 중에 우즈피스에 방문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던 것처럼요. 우즈피스 근처의 산에 올라가서 빌뉴스 전경도 보고... 산에서 내려와 구시가지로 돌아가는 길에 빌넬레 강가에서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는 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다음으로 갈 도시인 카우나스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하네요. 그들과 함께 앉아서 리투아니아와 빌뉴스, 한국과 태국, 여행 그리고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날 빌뉴스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열렸습니다. 그날 저녁은 축제에서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빌뉴스 구시가지를 떠났습니다. <카우나스 : 리투아니아 전통박물관> 이번엔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 였던 카우나스 근처에서 렘시스케스(Rumšiškės)의 리투아니아 전통 박물관에도 다녀왔습니다. 리투아니아 역시 시원한 자연과 함께 옛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꾸며 놓은 곳입니다. 이렇게 출장 여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출장의 주요 목적은 사전 협의된 피스로드 프로그램의 점검이었지만, 이번에 진행할 [2016 열 번째 피스로드 - "아무도 모르는 유럽"]이 무척 재미있으면서 또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임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피스캠프가 최초 유럽에서의 피스로드를 기획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3년 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게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였지요. 이번 출장을 통해 지난 4년 여의 기획이 결실을 맺은 느낌입니다. 제가 이번에 다녀온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부터, 독일, 폴란드, 그리고 몰타까지, 이제, 우리가 함께 갈 차례입니다. 이번 출장 중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만난 배낭여행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마지막으로 띄우며, 피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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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진진한 여행이 되겠군요~ 테디 잼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나이가 좀 어렸으면 이런 여행 함께 해볼텐데 아쉬움~~~
안녕하세요! 테디입니다. 이번 출장을 통해 더 넒은 세상을 만난다는 여행의 단순한 진리와 아무도 모르는 유럽인 발트 3국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답니다. 승언, 경언에게도 안부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오! 즐거운 출장을 다녀왔군요. 멋져요, 테디!
이번 로드여행도 기대됩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