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이런 점도...
다 지난 얘기고, 죽은 사람에게 상욕을 하는 것이 옳은 일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역사에 대한 중죄가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박사학위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지적인 면모였고, 다른 하나는 같은 죄도 사람을 가려서 미워한 독특한 잣대를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학사학위 없이 받은 박사학위는 분명 기네스북 감이다. 준 대학이나 받은 박사나 그들이 지나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 명예학위가 아니고 진짜 박사학위를 학사학위도 없이 받을 수 있었던 배짱, 그것을 인생 최대의 자랑으로 생각할 수 있는 덜떨어짐이랄까... “나는 개인적으로 세 가지 소원이 있었어요. 하나는 대통령이 되어 나라 일에 봉사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정식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었는데, 모두 이루었습니다. 박사학위는 러시아 외교부에 속한 외교아카데미에 정식으로 논문을 내고 구두시험을 통과해서 박사수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내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주된 이유는 장구한 세월에 걸친 민주화 투쟁과 헌신에 대한 평가가 첫 번째이고, 분단국가에서 55년 만에 대화의 길을 열고 평화의 가능성을 발전시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세계적인 지원과 노벨상위원회의 평가가 이유가 됐지요. 또 버마 민주화에 대한 지원과 동티모르 독립운동지원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데 노력한 점이 있었고요”(박명림의 김대중 인터뷰, 역사비평 2008년 가을호, 역사문제연구소, 60~61쪽).
두 번째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대한 그의 철부지같은 평가일 것이다. “이성계가 집권한 후 세종대왕대까지 우리나라는 좋은 정치를 누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길을 열어준 사람보다는 끝까지 고려왕조에 충성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위화도 회군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람들은 그때 이성계가 돌아오지 않고 최영장군의 말대로 했더라면 고구려를 되찾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략>...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온 일은 무모한 이 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할 뻔했던 1만여명의 농민의 자식들에겐 축복이었으며 올바른 결단이었습니다”(김대중, 나의 길 나의 사상).
이러한 김대중의 이성계에 대한 평가는 그가 평생을 인동초라는 닉네임 속에서 싸웠던 게 누구였는가를 생각한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경우와 이성계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가. 왕조를 창업한 이성계와 그렇지 못한 ‘박가와 전가’의 차이? 아니면 전시의 회군이라는 특수상황과 평상시의 쿠데타라는 특수상황의 차이? 아니면 농민의 아들들에 대한 자신의 편애거나 아니면 동향 출신 역성혁명가에 대한 오마주?
아무튼... 그래서 나는 오래 전에 그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 바 있었다(그때 나는 김대중이 그런 말을 했던 확실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지라 에둘러 표현했었는데 이번에 확실한 자료를 찾았다. 또한 당시 나는 분명 ‘엔파람’이라는 싸이트에 이 글을 올렸는데, 지금에 와서는 ‘올인코리아’라는 싸이트에서 무단 펌질한 것만 검색되는 지라 그것을 다시 사용했다).
“한때 3김 중 한 양반도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대해서 아주 높이 평가했다가 개망신을 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아마 고려의 무너져야 할 부패와 무능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무능하고 부패한 고려정권을 자신이 반대하는 유신정권과 등치해 놓고 보니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프로레타리아 혁명과 등치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혁명5.16 쿠데타와 유신정권에 대해서 목숨 걸고 반대하다가 뜬금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이뤄진 위화도 회군과 조선건국을 찬양(?)한 잣대가 무엇이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종교와도 버금가는 찬사 속에 묻혀 지금은 아무도 그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도 못 하게 됐지만 그게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자신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slekcj, '역사인식 결여된 정치인은 하자있다!', 올인코리아, 2007.7.23).
그 이후 지난 2008년 10월 중국 단둥(丹東)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려말 이성계가 회군을 했던 위화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위화도를 배경으로 부인 이희호 여사, 단둥시 관계자, 수행원들과 번갈아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는 내용의 기사도 찾아냈는데(연합뉴스, 2008.10.28), 이러한 김대중의 사고와 연결시켜보면 예사롭지 않은 구석이 있음을 보게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한 말, 사실 따지고 보면 이름 석자가 대수가 아니라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마디 말과 글, 그러니까 그 사람의 어록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특히 공인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