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뮤클의 발상과 전개
뮤클의 착안은 꾀 오래 전에 시작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2010년 여름 베트남 사파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그 곳의 아이들을 돕겠다고 마음을 먹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금 사업으로 시작 되었는지, 아니면, 연우시에서의 전문직 강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사들이 활동 할 수 있는 모델을 구상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2010년도 즈음 해서 다수의 동호회 클래스를 만들어서 경연대회를 갖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 시작 하였던 것 같다.
2011년 여름에는 본부 및 연습실을 갖춘 수원에서 이를 추진하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루”라고 지었었다. 루는 사파에서 만난 아이의 이름이었다. 수익금으로 사파 어린이들에게 예술학교를 지어주겠다는 원대하지만 대책없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의 시뮬레이션은 그럴 듯 했다. 200명 정도의 시민들을 모아서 여러 개의 클래스를 만들고 구민회관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몇차례 구청 담당자와 접촉을 하기도 했다.
사파에서 찍어온, 아기를 업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커닿랗게 넣은 포스터와 전단지를 만들어서 수원 전지역을 돌며 홍보했지만, 10명도 안되는 인원으로 겨우 하나의 클럽이 만들어졌고, 참가비도 제대로 접수하지 못한채 몇차례 시범 수업이 진행 되다가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2013년도에는 계획이 좀 더 구체화 되었다. 처음 발상은 동호회에 교육 담당자들을 초대 해서 기존 사업인 연우시에 대한 영업을 촉진시키고자 하였다.
정다움, 정경화, 김현아 3명의 강사가 함께 시작했다. 역시 처음 시뮬레이션은 원대했다. 우리는 강남, 사당, 종로, 구로, 수원에 각각 동호회를 만들어서 운영하면서 준비가 되고 기회가 되면 공연을 가질 계획이었다.
이 서비스의 이름을 “직장인 퍼포먼스”의 줄임말로 [직퍼]라고 하였다.
초반에 직퍼는 순조로워 보였다. "내가 찾던 바로 그런 동호회" 라면서 온오프믹스를 통해 신청자들이 몰려들었다. 두세차례의 무료특강을 진행하고 나면 하나의 클래스가 만들어졌다. 1인당 월 참가비는 7만원으로 댄스 학원보다도 저렴했다. 정원이 초과 되어서 더 이상 인원을 못받는 클래스도 생겼다.
하지만, 2013년 9월 30일 첫 공연 일정을 잡았을 때는 토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의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많은 참가자들이 9월 30일 공연 참가가 불가하다고 했고, 클럽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직퍼의 운영 시스템에 하나 둘 와해 되었다. 공연 결과물에 대한 강사들의 뜻도 일치하지 않아다. 어떤 팀은 막 신생 되어서 공연을 준비하기 조차 어려웠고, 어떤팀은 3분, 어떤 팀은 20분 이상의 공연을 준비하기도 했다. 대학생들로 서포터즈를 구성하였지만, 역할을 명확히 주지 못했고, 어떠한 매리트나 비전을 심어주기 어려웠다.
9월 30일 우리는 강남에있는 한 호프를 빌렸고 초 저예산으로 조잡하게 무대와 조명 장치를 꾸몄다. 그리고 5팅 정도가 공연을 하고는 프로젝트를 일단락 하면 종료 하였다.
연우시의 주요 서비스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연 예술 교육이다, 교육 담당자가 교육을 의뢰를 하면, 장소가 모두 셋팅이 되어 있고, 참가자들도 그 자리에 모두 모여 있다. 우리는 강사를 파견하고 강의를 잘하면 그만이었다. 투자하는 에너지와 비용 대비 수익도 충분한 매리트가 있다. 이와 같이 기업과 기업간의 거래를 하는 비즈니스를 Business to Business 즉 B to B라고 한다.
반면 뮤클과 같이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Business to customer 즉, B to C라고 하는데, 나는 지난 6여년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연예술 교육을 하면서, 특히 신입사원 퍼포먼스의 경우에는 3 ~ 4시간씩 5~6회 교육을 한 후에 무대에 올리는 형태의 교육인데, 우리는 여기에 전문성을 쌓아왔고, 자신감과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연우시의 주주나 주변 지인들은 내가 B to B 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을 말렸다. 에너지가 있다면 B to B 사업에 치중해서 회사의 매출을 늘리라고 설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난 뮤클을 반드시 해내고 싶었다. 실패가 거듭 될수록 난 우리만이 뮤클을 해낼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이 일을 해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신입사원 퍼포먼스에 참여한 신입사원들은 기업의 가치와 경영이념을 내재화 하기 위해서 공연을 만들고 무대에 오르지만, 이와 함께 각각 개인적으로는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멋진 무대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들은 교육 기간 동안 공연 예술에 매료 되었고, 무대에 오른다는 생각에 열정을 끄집어 내면서, 동기들과 화합을 이루어냈다. 이것은 거의 화학 작용에 가까웠다.
우리는 초점 여기에을 두고 뮤클의 가치와 이론을 점차 발전시켜 왔다. 물론 그 이론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논문의 형태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기업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참가자들이, 뮤클을 신청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부터 신청을 한 후 첫 수업을 기다리는 설레임, 교육을 진행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멋진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개개인의 삶의 의욕, 열정, 사회성, 인간관계 등에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 되었다.
물론 이러한 효과들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헬스클럽을 끊거나 아침에 조깅을 시작하거나 동내 댄스 학원, 권투 체육관에 등록을 해도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화를 위해서 더욱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2013년 9월 30일 파티로 직퍼가 종료된 이후에도 몇차례 더 여러 개의 클래스를 동시에 일으켜서 페스티벌을 여는 시스템을 일으키려는 시도했지만, 시작 하기 조차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작년 2014년 11월에 강사진들로 구성된 연우시의 새로운 사업 팀을 구상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뮤클 팀이 만들어졌다.
11월 말부터 나와 6명의 강사진은 거의 매주 모여서 뮤클의 교육 프로그램과 운영 시스템에 대한 협의를 하였다. 여러 가지 발전 과정을 거쳐 6월에는 여러 개의 클럽을 동시에 개설해서 공연을 하자는 그림까지 그렸다.
나는 내가 그리는 시뮬레이션이 절대로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여 주었다.
오랫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논의하고, 연우시의 활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지인 가희가 일본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마중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주로 청년 취업이나 니트족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사람마중은 고용노동부의 고용촉진 지원금 사업인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을 인가 받아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올해부터 제도가 바뀌면서 이전에는 고용센터로부터 참가신청자들을 양도받아 교육프로그램을 지원 했던 것과 다르게 올해부터는 인가 기관들이 참가자들을 직접 모집하게 되었다.
때문에 고용노동부로부터의 지원이 더 늘어났고, 사회적 기업인 사람마중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가희는 뮤클이 취업 준비생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고 취업에 대한 침체된 의지를 끌어 올려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취업성공 패키지와 뮤클의 연동을 제안하게 되었다.
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그렇게 하여, 취업 준비생들이 취업 성공패키지와 뮤클을 동시에 신청하게 되면, 사회적 기업 사람마중에서 참가비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나머지 참가비는 취업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수당으로 환급 받는 형태로 취업 준비생들은 뮤클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뮤클의 출시와 고용노동부 정책의 시점이 잘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뮤클은 직장인들에게는 일탈과 존재감을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열정과 자존감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서 출시가 되었고, 우리는 온오프믹스, 오티알, 집밥, 네이버 청년감성 카페등과의 제휴를 통해 참가자들을 모집하기 시작 하였다.
우리는 취업성공 패키지에 큰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뮤클의 존재를 최대한 취업 준비생들에게 알릴 수 있는 매체를 찾아 고민 했고, 국내 1위부터 5위까지의 모든 취업 포탈 사이트와 접촉 했다. 모두들 관심은 있었지만, 당장 뮤클이 얼마나 좋은 컨텐츠로 대중들에게 노출 될 수 있을지는 장담 할 수 없었다.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극장을 잡고 12개의 뮤지컬과 4개의 댄스 클래스를 오픈 할 수 있은 연습실과도 계약을 해 놓은 상태였지만, 취업 포털 업체를 메인 스폰서로 확보하는 것은 좀처럼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기존의 마케팅 제휴사를 통한 홍보는 우리의 목표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 한 유명 취업 포털 업체에서 우리의 프로젝트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담당자는 한 종편 TV를 통해 뮤클을 프로그램으로 제작는 그림을 그렸고, 방송국과 회사내의 결정권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 막연한 가능성이 우리의 목표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한동안 피가 마르는 듯 했지만, 결국 방송 제작은 무산 되었다. 그 결정이 난 것은 3월 말경이었다.
우리는 몹시 지쳐있었고, 무기력해졌다.
참가자들에게 모두 환불을 해주고 프로젝트를 종료할 가능성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방송 제작이 무산되면 프로젝트를 접을 각오였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한다면, 다시 뮤클을 일으키기가 어려울것이 자명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하고,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당초 16개의 클래스를 뮤클 강사팀 인원에 맞게 6개로 줄이고, 공연장을 600여석의 1관에서 200석의 3관으로 다움 그레이드를 요청 했고, 강남 사당 홍대 연습실에 연락을 취해서 대관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수업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참가 신청자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4월 20일 경에는 이미 모든 클래스의 오픈 정원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년 11월 목표가 6명의 강사들이 각각 하나씩 클래스를 오픈해서 6월에 첫 수업을 시작하는 거였다.
그렇게 보면 우린 비록 16개 클럽 오픈은 도달하지 못했지만, 처음 세운 계획보다는 더 진보된 성과를 올렸다. 결국 5월에 뮤클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2015 뮤클 5월 5일 화요일 바로 어제 저녁 수원에서 첫 클래스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