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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무형문화재 제12호 고분양태 보유자인 송옥수 선생이 양태를 결고 있는 모습. 고운양태의 결에서 제주 전통의 아름다움과 제주여인의 숨결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 ||
양태 한 개 제작 2~3개월 소요…재료공급도 어려워
빈 초가 활용한 전시장 등 문화보전 대책 마련 시급
전통 관모공예인 양태 중의 최고 양태는 최고급 재료인 날대 등을 엮은 '고분양태'였다. 양반들이 쓰는 갓의 밑 둘레 밖으로 넓게 바닥이 된 양태는 햇빛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제주에서는 삼양과 화북, 신촌, 와흘 등에서 제작했으며 현재 삼양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까다롭고 긴 제작공정 탓에 전수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명맥유지를 위한 문화유산 가치 활용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가치와 고된 노동
"내 동침아 돌아가라/ 서울 사람 술잔 돌 듯/ 어서 재개 돌아가라/ 이 양태로 큰 집 사고/ 늙은 부모 공양하고/ 어린 동생 부양하고/ 일가친척 고적하고/ 이웃사촌 부조하자"
양태를 결으며 불렀던 민요의 한 구절이다. 양태가 제주 생활에서 생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양태는 '높은 가치' 만큼 '노동의 대가'도 상당했다.
양태를 만드는 첫번째 공정은 대나무를 얇게 깎은 '대오리'를 만드는 것이다.
4~5년 된 대나무 솜대를 40~50㎝씩 잘라 마디를 없애고 6㎜로 잘게 쪼갠 후 안쪽의 연한 부분을 칼로 깎아낸다. 이를 가마솥에 넣어 5시간을 삶은 뒤 며칠을 말린다.
말린 대오리를 넓적한 가죽으로 만든 무릎장을 무릎 위에 놓고 또 칼로 끓어내 종이처럼 얆게 만든다. 굵은 대나무를 섬유처럼 가늘게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양태의 날이 되는 '살(사죽)'의 한 끝을 2가닥의 실로 새끼 꼬듯 돌리면서 엮는다. 최상품인 '고분양태'가 되려면 살의 수가 500가닥이 필요하다. 하품(下品)인 '제량'이 보통 300가닥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하나의 '고분양태'를 제작하려면 2~3개월이 걸린다.
최근 여기에 '어려움'이 하나 더 추가 됐다. 바로 재료 공급이다.
옛날에는 제주산 '양죽(凉竹)'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전남 담양군에서 직접 대나무를 공수해야 한다.
고양진 무형문화제 제12호 고분양태 전수교육조교는 "현재 제주에서 생산되는 대나무는 마디가 짧고 품질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실이 나오지 않아 고분양태를 만들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현재 가장 큰 어려움에 '재료값'이라고 했다.
고 조교는 "전수조교비로 월 30만원을 받는다. 그런데 재료를 한번 구입하는데 30만원"이라며 "배우고 싶고 하고싶은 일이라 하고 있지만 대가가 없어 힘이 빠질 때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무형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도가 떨어트리는 셈"이라며 "고된 노동 탓도 있지만 노동에 대한 대가 없기 때문에 전수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문화유산 활용방안 고민 필요
두 번째 어려움으로는 무형유산 계승을 위한 바탕이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홍선행 전수장학생은 "전시관이나 전수관 등이 만들어져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고분양태의 경우 망건장, 탕건장, 총모자 등의 갓 일과 달리 도구가 커서 개인이 들고 다니며 연습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갓일의 경우 바구니에 말총 등을 담아 다니면 되지만 고분양태에는 지름 1m에 가까운 양태판과 부피가 큰 양태구덕, 대오리, 대칼 등의 도구가 필요하다.
제주시 사라봉공원에 제주시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이 있지만 많은 부피로 인해 공간 이용이 불편하다는 것이 전수인들의 입장이다. 실제로 이러한 어려움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들다.
홍 전수장학생은 "고분양태의 경우 도구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개인이 들고 다니기도 쉽지 않다"며 "심지어 한 곳에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호소했다.
홍 전수장학생은 이어 제주시 민속문화재인 삼양동 초가와 올레길을 활용한 방안을 제안했다. 전시장으로 활용함에 따라 전통 계승 뿐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써의 보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재 비어있는 초가를 활용해 양태를 전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전통계승과 더불어 문화유산으로써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제주도에 건의해볼 예정"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삼양의 오랜 전통인 고분양태 제작과정을 초가집에서 시연하는 등의 재현 행사를 통해 제주전통의 맥을 유지하고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가집 부근의 삼양동 유적지와 올레길을 활용해 관광상품으로써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속문화재 활용 여부와 관리, 예산 등에 대한 고민이 전제 돼야 하지만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다.
고분양태의 경우 재료생산이나 제작과정의 어려움으로 직접적인 콘텐츠 활용이 어렵다는 점을 역이용한 문화유산활용 방법이 될 수 있다.
홍 전수장학생은 "전통은 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대에도 이어져야 질 수 있는 계승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초가 활용 계획도 이 일환의 작업이다. 고분양태와 같은 가치 높은 문화유산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도와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소진 기자
고분양태 현재 전수 상황은? | ||||||||||||
고분양태는 1998년 4월8일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당시 고 강경생 선생이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됐으나 2001년 10월 별세한 후 2002년 5월8일부터 송옥수 선생(90)이 보유자로 활동 중이다. 일곱 살에 고분양태를 배우기 시작한 송 선생은 아홉 살부터 본격적인 양태작업을 시작했다. 80년의 한평생 세월을 양태작업에 쏟아 부은 셈이다. 현재 전수교육조교는 고양진 선생(74)이다. 송 선생 슬하에 들어간 것은 15년 전. '시 삼촌'인 송 선생을 모시며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수장학생은 홍선행 선생(53)이다. 홍 선생은 고양진 선생의 둘째 딸로 고분양태 전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최근 고분양태를 전수 받는 학생들이 2명 더 늘어났다. 바로 홍 선생의 첫째딸 양윤희씨(31)와 둘째딸 양윤정씨(29)다. 고분양태의 전통 전수 기록을 담당하는 홍 선생을 도와 활동하고 있으며 기술도 함께 배우고 있다. 전수장학생을 목표로 정진중이다. 이로써 고분양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모두 5명으로 4대에 걸친 '가족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폐막한 제53회 탐라문화제 무형문화재 전수체험관에서 고분양태 시연중인 송옥수 보유자(왼쪽부터)와 고양진 전수교육조교, 홍선행 전수장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