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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자료 스크랩 파루시아 와 마라나타
sarmy 추천 0 조회 92 09.12.20 17: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파루시아
'파루시아'는 '오다'(마26:50), '이르다'(요7:6)란 뜻을 지닌 동사
'파레이미'의 현재 분사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도착', '임재'(臨在)란 일차적(一次的)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신약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반적인 '방문'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 되었으나
(고전16:17 )대부분의 경우 이 땅에 왕으로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헬라적 용법이 통치자의 공식적 방문이나

또는 신적 존재(神的 存在)의 현현(顯現)을 나타낼 때 사용 되었다는 사실도 관련(關聯)을 갖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24회 사용되었으며

그 가운데 15회가 이 세상(世上) 마지막에 있을 그리스도의 도래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마24:3, 27, 37, 39. 고전15:23. 살전2:19. 3:13. 4:15, 5:23. 살후2:3, 약5:17, 벧후3:4, 12. 요일2:28).

이러한 사실(事實)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만왕의 왕(王)으로서의 강림(降臨)하심이며
하나님의 신성을 지닌 심판주로서의 강림임을 함축적(含蓄的)으로 보여 준다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죄(罪)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하여

초림(初臨)하신 예수는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비천 한인간의 모습으로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상(地上) 사역도 사람들의 질고(疾苦)와 고초를 겪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림의 양상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 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파루시아'(mara,naqa)라는 용어에서 발견(發見)할 수 있습니다.

즉 이제 당신이 일단 성취(成就)하신 구속 사역의 최종 실현인 천국 구원은 물론 사단의 무리에 대한
최종적(最終的) 심판까지 함께 수행하러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권세(權勢)를 가진 왕의 임재와 같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계1:7), 영광 중에(마24:39),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살후1:7-8).

또한 재림시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일어나며(살전4:16) 그리스도를 맞기 위해 생존한 성도들의 변형이 일어나고
(고전15:51),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한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딤후4:8).

그리고 동시에 주님은 악한 세력을 파멸시키는 왕이시며 심판주로서도 오실 것입니다(계20:1-2).

'파루시아'라는 말은 바로 이런 모든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장차 영광 중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믿고 소망(所望)해야 합니다.



2. 마라나타
'파루시아'가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영광(榮光)을 보여 주는 용어(用語)라면
'마라나타'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는 성도들의 자세를 보여 주는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시 유대인들이 평상시(平常時) 사용하던 아람어의 음역(音譯)인 이 말은 '마란'과 '아다'의 복합어로서

'마란'은 '우리 주'를 의미(意味)하고 '아타'는 '오다'란 단어의 명령형 혹은 청유형으로서 '주여 오시옵소서'란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 가운데는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認定)한다는 것과 또한 다시 오시겠다는
주의 약속을 신뢰하는 신앙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표현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하는 기도의 한 형태로서

기도하는 신앙의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이 용어에는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섭리자(攝理자)로서

기도의 대상임과 동시에 이 세상(世上)을 공의(公議)로써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분이심을 신뢰한다는 의미(意味)가 내포(內包)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속히 오시기를 바라고 청하는 신앙도 내재(內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도는 아무나 드릴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므로써 심판주요 구속주로서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것을 고대하며 기뻐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구(懇求)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숙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며

'마라나타'의 기도를 드려 올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되어 사람들이 즐겨 사용(使用)하는 '

파루시아'와 '마라나타'란 용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두 용어는 비록 짧지만 만왕의 왕이시며 심판주로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움과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고대하는 성숙(成熟)된 성도의 아름다운 삶의 자세를 함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현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도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이미 가졌던 파루시아와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럴 때만이 현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은 자인 사단이(엡2:2)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도
좌절치 않고 장래의 영광(榮光)을 바라보며 약동하는 환희 속에서 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랜드 종합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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