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회 시애틀문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심사평>
다양한 수필의 새로운 좌표를 향하여
수필은 예술이다. 아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 다 맞다. 주제가 새로운 틀을 만나 창작되면 예술, 즉 창작 수필이 되고 소재 수준에서 신변잡기로 흐르면 비창작 수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의 수필은 창작 수필과 비창작 수필로 대별된다. ‘수필, 이렇게 쓴다.’라고 강의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 수필의 다양성을 한정하는 행위는 수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무한한 수필의 봉우리를 어찌 어느 한 길로만 한정해서 안내한단 말인가.
이런 점에서 다양한 수필을 만날 수 있었던 17회 신인문학상 심사는 매우 즐겁고 기뻤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분명하게 주제를 형상화시켰던 폴 챙님의 <어쩌다 호퀴엠은 우리 집이 되었나>는 드물게 만난 창작 수필이었다. 그러나 창작 수필의 영역을 형상화에만 맡겨 두게 되면 여타의 다양성이 줄어들기에 박미라 님의 <나는 나무에 핀 꽃이 좋다>도 심사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주제 구축 상 불필요한 서사가 끼어든 흠은 있었지만 진한 감동으로 마무리돼 독후감이 좋았다. 하여 서로 다른 의견을 합의로 정리해 두 작품 모두 우수상으로 천(薦)하기로 했다.
박영호 님의 <옥자 구멍>도 독후감이 좋았다. 수필가 적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이분의 글은 위트가 있고, 글을 공들여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락 구성을 좀 더 연습한다면 발전의 여지가 크겠다. 이복희 님의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였다. 그래서 두 작품을 가작으로 밀게 됐다.
여타 작품의 경우, 공모전의 요구 사항을 간과한 글도 있었고, 소재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수필과 소설 양식의 형태를 혼동하거나, 언어를 문자로 나열하면 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보였다. 그냥 글이 되는 건 아니다. 기둥과 지붕이 있어야 집이 되는 것처럼 글도 뼈대를 세워야 글이 된다. 수필이 더 이상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닌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20세기에서 건너온 지 24년이 지났다. 21세기의 ¼를 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변화는 20세기 고속도로 속도가 아니라 21세기 아우토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붓(筆) 가는 대로(隨) 쓰는 게 수필’이라고 가르치는 수필 강사도 있다. 문인협회 특강에서 태연히 이리 말하는 강사를 만날 때는 참으로 마음에 먹구름이 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수필의 전범(典範)이라 하는 피천득은 2007년에 작고하셨고, 한흑구는 1979년, 새로운 수필의 전범이라 하던 목성균은 2004년에 작고하셨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생성 예술이 대두된 현시점에서 그분들의 전범은 일정 부분 낡았다.
세기를 건너오며 한국의 수필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형상과 개념>>을 통해 이관희 선생이 창작 수필=형상화 수필의 기치를 높이 든 지 20여 년. 그러나 선생은 수많은 수필가를 길러낸 모 수필가의 수필을 수필 어느 갈래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셨다. 그 모 수필가는 언어를 조탁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언어를 허공에 띄워 놓고 그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는 분의 수필 창작법은 형상화 창작법과 또 다른 것이었다. 이처럼 수필은 쓰는 사람의 개성과 역량에 따라 각기 다르다. 창작=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양근 선생은 수필의 맥혈기(脈穴氣)는 알고 쓰자, 주장한다. 누구나 이렇게 높은 수준의 수필을 쓸 수는 없다. 입문자에겐 자못 어려운 경지다.
입문자가 자신의 역량과 개성을 돌아보아, 적어도 자신이 쓰는 수필이 비창작 수필인지 창작 수필인지만 구별하고 시작해도 수필의 벌판은 다양하게 펼쳐질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좌표를 설정하고 꾸준히 걸어 튼실한 작가로 성장하기 바란다. 동료로서 네 분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김학인, 김윤선, 공순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