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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법륜 #첫설법 #응윤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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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법륜(初轉法輪)의 의미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
깨달음을 얻고 난 부처님은 더할 수 없는 평온함에 이르셨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깨달음을 알리고자 하신다. 당신의 깨달음을 전할 인물로 처음으로 떠올린 이는 알라라 깔라마였으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어서 웃다까 라마뿟따를 떠올리셨는데, 그도 역시 세상을 떠난 뒤였다. 결국 부처님은 마지막까지 함께 수행하다 바라나시로 떠난 다섯 비구를 찾아가기로 결심하신다. 그리하여 초전법륜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럼, 초전법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1) 부처님 깨달음의 보편화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후 49일 동안 진리를 깨달은 이로서의 완전한 기쁨을 누리셨다. 그 깨달음은 곧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기에 부처님은 번뇌로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알리고 싶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깨달음을 대중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고 생각하셨다.
“내가 도달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고요하여 숭고하다. 단순한 사색에서 벗어나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착하기 좋아하며 아예 집착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모든 행이 고요해진 경지, 윤회의 근원이 모두 사라진 경지, 갈애가 다한 경지, 탐착을 떠난 경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경지, 그리고 열반의 도리를 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율장 「대품」에 전하는 부처님의 마음이다. 설법을 주저하시던 부처님은 사함빠띠 범천의 권청을 받고 대중교화에 나설 것을 결심하신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신다. “나 이제 감로의 법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그리하여 마침내 다섯 비구에게 중도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전법이 시작된다. 다섯 명의 수행자 중에서 안냐꼰단냐가 맨 먼저 아라한의 경지에 들었으며, 이어서 네 명의 수행자도 차례로 아라한이 되었다. 이 가르침을 초전법륜이라고 한다.
초전법륜은 부처님의 깨달음이 부처님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가능함을 말해주는데, 이는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 보편화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불교 교단의 탄생 예고
부처님의 초전법륜은 불교 교단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보편화될 수 있다면 이를 따르는 무리가 생길 수 있음을 말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단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섯 비구가 아라한이 된 후 야사라는 바라나시의 부호의 아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는데, 아들을 찾으러 온 야사의 부모는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며, 야사를 찾아온 친구들도 모두 출가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60명의 성자가 탄생하게 되며, 재가신자까지 존재하는 어엿한 교단이 되었던 것이다.
(3) 부처님 깨달음의 목적은 중생 교화
우리는 여기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혼자서 그 법열을 즐기고 안주하실 수도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경전에는 사함빠띠 범천의 권청을 듣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깨달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계셨다. 범천의 권청을 듣고 당신의 깨달음을 알아들을 이가 있음을 확신했을 뿐이다. 그렇게 볼 때 부처님 깨달음의 목적은 애초에 중생 교화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초전법륜에 의해 인류의 스승이자 대도사이신 부처님이 진정으로 탄생했다고 하겠다.
(4) 불교의 근본교설인 ‘중도’론의 확립
아울러 초전법륜에 이르러 부처님의 근본교설이 정리되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는 엄밀히 말해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전달하기 힘든 진리이다. 그런데 그 진리가 언어로 표현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초전법륜이다. 그 최초 설법의 내용은 중도이자 팔정도, 그리고 사성제이다. 다음은 쌍윳따 니까야의 「초전법륜경」((SN 56:11)이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따라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극단이 있다. 그것은 저열하고 통속적이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이며,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따르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눈과 지혜를 생기게 하며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눈과 지혜를 생기게 하며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로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알아차림[正念], 바른 집중[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참으로 이 중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눈과 지혜를 생기게 하며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을 얻었다.”
부처님의 첫 설법 하시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도 얻어야 한다. 첫째, 시절인연을 기다려야 한다. 둘째,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셋째, 전법이야말로 불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명심해야 한다.
왼편과 오른편으로 치우치지 말고/ 바르게 중도를 마주하여 돌아갈지니
불조의 안신처를 알고자 하는가/ 서리 후에 국화가 뜰 가득 피었네
勿偏於左勿偏右 正面中間歸去來 欲知佛祖安身處 霜後黃花滿院開
-응윤경암(應允鏡巖, 1743∼1804), 「강동으로 순 스님을 보내며(送淳師之江東)」
첫댓글 부처님시대에도 지금사는것 과 다르지않았을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지금 저희들도
빨리 알 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생각 해봅니다.....
"바르게 중도를 마주하여 돌아갈지니 불조의 안신처 를 알고자 하는가 서리 후에 국화가 뜰 가득 피었네"
저는 중도가 제일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시절에는 사람들이 말귀도 빨리 알아들은것 같은데...
저는 몇년을 들어도 잘 못알아 들었는데 알아들어도 실천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답답 하기도 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시절 인연을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럼요,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보살님은 잘하고 계십니다.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