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사는 절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융성을 위해 고려 명종 25년(1195)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
흥국사 입구에 세워진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홍교 (보물 제563호)
1639년 (인조17년) 계특대사가 세운 다리로 높이 5.5m, 길이는 40m 이다
홍교는 사바세계와 불국정토의 상징인 계류 안쪽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홍예 중심머리돌에 용머리를 새긴후 돌출시켜 계곡을 굽어 보게 한 점이나, 홍예 난간 양쪽에 귀면상을 조각하여,
잡귀의 접근을 막아주는 것 등은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신앙적인 요소들의 표현이다.
영취산 흥국사
대웅전 (보물 제396호, 고려명종 1195년)
흥국사 대웅전은 1690년 봄 통일스님이 사부 대중의 힘을 모아 확대 개창한 흥국사 본전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면적 163.05㎡)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느낌을 준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미륵보살(좌)과 제화갈라보살(우)이 좌우에서 협시(脇侍)하고 있다. 또한 고주 후벽에는 흙벽에 한지를 덧붙여 반가사유(半跏思惟)의 백의 관음(白衣觀音) 벽화를 모셨다.
흥국사 대웅전은 영취산 줄기에 자리잡은 배치 구도부터 범상치 않으며, 조선조 중기 이후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포(多包)집 형식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인데, 건물의 기초가 되는 기단(基壇)은 직사각형으로 잘 다듬은 돌을 2단으로 반듯하게 쌓고 그 위에 납작한 돌(甲石)을 깔았다. 정사각형 초석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기 때문에 마당에서 바로보면 장중한 느낌을 준다.
흥국사 대웅전을 다른 말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한다. 이는 중생을 이 고통의 세계로부터 고통 없는 피안(彼岸)의 세상으로 건너게 해주는 도구가 배이며, 이 배를 용이 호위하므로 용선이라 한다. 이 용선이 바로 반야(般若), 즉 지혜를 의미하는 것으로 지혜를 깨달아 저 피안에 도달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법당은 이러한 지혜로써 중생들을 건진다는 의미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곳곳에 바다와 배를 표현하고 있다.
대웅전 기단에 바다 속에서 사는 게를, 갑석에 거북이를 나타내어 바다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법당 앞에 있는 석등(石燈)이 거북이 등에 올라있어 이를 뒷바침하고 있다.
대웅전 목조 석가여래 삼존불(보물 제1550호)과 후불탱화(보물 제578호)
이 삼존상은 흥국사 대웅전의 주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협시 보살상의 보관 뒷면에는 각각 자씨보살대명숭정(慈氏菩薩大明崇禎), 제화보살대명숭정(提花菩薩大明崇禎)이라는 명문이 타출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이 삼존상이 수기삼존상(授記三尊像)으로 17세기 전반의 숭정연간(1628~1644)에 조성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삼존상은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서 양감이 잘 표현되었으며, 손과 발의 표정이 잘 살아있고, 옷 주름이나 장신구의 표현도 유려하다. 불상은 17세기 조각의 단순함을 잘 반영하고 있고, 두 보살상은 자연스러운 자세와 장대한 신체비례를 보여준다.
17세기 전반의 상으로 이와 같은 크기의 보살상을 동반한 삼존불이 드물고, 도상과 양식면에서도 조선후기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상으로 평가된다.
흥국사 영산회상도는 1693년 의천(義天), 천신(天信) 두 스님이 "원하옵나니 이 공덕으로 누구에게나 두루 비치어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소망을 담아 그린 것이다.
석가여래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나란다'에서 영지 법회를 주재할 당시 모습으로,『법화경』이 지닌 의미를 압축하여 묘사하였는데, 설법 모임에 참가하여 법을 청해 듣고 있는 모습이 한결같이 밝다.
불화(佛畵)로서는 드물게 보물로 지정된 이 그림은 임진왜란 이후의 불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처럼 석가여래를 한복판에 크게 배치하였고, 주제를 뚜렷이 살리고자 큰 인물은 자세히, 작은 인물은 약간씩 원근법을 사용하였으며, 끝이 없는 천공을 흑색으로 짙게 처리하고 있다.
범종각
해우소 (화장실)
흥국사는 여수시 중흥동 산17번지 영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영취산은 전국에서 진달래로 유명한 산으로
산 전체가 30~40년생 진달래가 빼곡히 자생하고 있어, 봄이면 산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드는 곳이다.
'전라도 순천부 영취산 흥국사 사적'의 기록에 따르면, 흥국사는 1195년 (고려 명종 25년)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창건 되었으며,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보사찰로 이절이 흥하면 국가도 흥한다는 뜻으로 '흥국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흥국사는 임진 왜란때 좌수사였던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700여명의 승려 수군이 의병 활동을 한 근거지로
이것은 정유 재란때 왜군이 흥국사를 완전히 전소 시키는 빌미가 된다.
흥국사는 보조국사가 흥국사에서 송광사로 옮긴 후 흥국사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어 100여년 가까이 토굴과 같았다고 하며,
이후 원나라 침략 때 모두 불타고 사찰은 폐사가 됐다고 한다. 이후 1560년 법수대사가 흥국사를 재건하였으나,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소실 되었고, 1624년(인조2년)에 계특대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흥국사에는 보물 제396호인 흥국사 대웅전과, 보물 제 563호인 흥국사 홍교, 보물 제 578호인 영산회상도,
보물 제 1331호인 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등의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다.
흥국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로, 흥국사의 대웅전은 중생을 고통 없는
피안의 세상으로 건너게 해주는 도구인 배(반야용선)로 표현하여, 대웅전 기단에는 바다 속에서 사는 게를,
갑석에는 거북이를 나타내어 바다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고, 법당 앞에 있는 석등은 거북이 등에 올려 놓아
바다를 건너고 있는 대웅전 (반야용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것이 이채롭다.
흥국사 홍교는 1639년(인조17년)에 계특대사가 화강암으로 세운 다리로 흥국사 입구에 있다.
국내에 있는 무지개형 돌다리로는 가장 높고 길며, 주변 경치와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고 있다.
높이 5.5m에 다리의 전체 길이는 40m이다.
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는 1759년(영조 35년) 무렵에 제작된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존만을 전체 화면에 꽉 차도록 그린 단독불화 형식의 괘불화로 폭이 5.6m에, 높이는 13m에 이른다.
영취산의 영취ㆍ진례 두 봉우리를 기점으로 자내리와 정수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두 줄기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점에 있는 이곳 흥국사는 영취산 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나라와 운을 같이 하는 비보, 호국 사찰로써의
무거운 무게를 벗고 아름답고 한가로운 산사로 모습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