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이 우주의 중심이고 예외적으로 고결하고 존경받을 만하며 우수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에 헌신하며 역사를 통하여 다른 나라에게 온화하고 관대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이 잘못된 것은 매사추세츠에 이주한 청교도들이 원주민의 땅을 빼앗기 위해 1636년 수백 명의 인디언들을 학살했을 때 이미 드러났다. 초기 이주자 윌리엄 브래드퍼드는 “플리머스 식민지 역사”에서 그 날의 사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불을 피해 도망친 인디언들은 칼로 살해됐다. 몇몇은 신체가 절단됐고 다른 이들은 긴 칼에 찔렸다. 이때만 400여 명을 죽인 것으로 추산됐다. 인디언들이 불에 타고 피가 개울을 이루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위해 이렇게 멋진 일을 계획하시고 적들을 섬멸함으로써 자랑스러운 승리를 쟁취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청교도 신학자 코튼 매더는 자신이 마치 영혼의 종착역에 대한 전문가라도 되는 것처럼 “그날 6백 명이나 되는 피쿼트족의 영혼이 지옥으로 보내졌다“고 썼다.
1492년 바하마제도에 상륙한 콜럼버스는 미국의 역사책들 속에서,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미국의 도시와 조각상들에 의해서 ‘신대륙을 발견’한 위인으로 칭송되고 있다. 사실은 황금에 눈이 먼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인디언들을 납치하고 노예로 만들고 손목을 자르고 학살했다. 이것이야말로 유럽의 제국주의가 행한 최초의 일이었고 이후의 역사 또한 그에 못지않게 잔혹했다. 미국의 교과서에 영웅적인 ‘서부 개척’ 또는 ‘서부 팽창’으로 표현되는 과정은 그 땅에 살고 있던 수백만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쫒아낸 일이었다. ‘서부 팽창’에는 멕시코 영토를 절반이나 강탈한 침략전쟁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멕시코 영토 탈취
20세기가 시작할 무렵 미국은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쿠바를 해방시키는 척하면서 점령하여 1959년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킬 때까지 지배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필리핀을 침략하여 오랜 기간 잔인한 전쟁을 치르면서 수십만 명의 필리핀인들을 죽였다. 그리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필리핀을 점령했다. 20세기 초반부에 미국은 중앙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에 해병대를 보내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점령했다.
미국의 중앙아메리카 침공 일람표 (23년간 24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미국은 한국과 베트남에서 공개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고 이란, 과테말라, 칠레에서 비밀리에 쿠데타를 부추겨 정부를 전복했으며 여러 나라의 독재자들을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최근에는 중동에서 하고 있듯이 미국은 세계의 인민들에게 피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사용해 왔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팽창을 은폐하는 구호이다. 미국 정부는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의 희망을 배신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5천만 명이 사망한 이후 ‘전쟁의 재앙으로부터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해’ 유엔이 창립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해외에서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국내에서는 여러 면에서 민주적인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군부독재가 통치하거나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통제되거나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택할 수 없는 많은 나라들에 비해 확실히 민주적이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에는 상당히 많이 부족하다. 건국 초기부터 정부는 거의 언제나 부유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왔고 노동자들보다 대기업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경찰과 군대에 의한 노동자 살해는 미국 역사책에서 외면되어 왔다. 정부는 대기업의 경제적 이익과 권력자의 정치적 야망에 따라 이 나라를 전쟁으로 내몰아왔다. 이 나라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흑인은 노예였고 1865년에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100년이 넘게 인종차별이 지속되었다. 인종주의의 유물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미국은 형무소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고 200만 명이 넘는 수감자의 다수가 유색인종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이 나라에서 신생아 다섯 명 중 한 명은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나며 유아 사망률이 미국보다 낮은 나라가 40개국이 넘고 쿠바도 그 중 하나이다.
미국 정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곧잘 ‘반미적’이라고 비난받으며 나에게도 그런 딱지가 붙었다. 이런 비난은 정부가 곧 국가라는 근본적인 오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부에 대한 복종이 애국이라는 관념은 정부가 국민 모두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이 국민들의 이익과 달랐음을 보여주는 기나긴 역사를 알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면 미국 정부와 미국 인민들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하면 얼마나 많은 대통령들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해왔고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거기에 영합해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종청소, 노예제,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적 정복,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벌였던 부당한 개입과 공격으로 점철된 미국의 길고도 어두운 역사를 직시해야만 한다. 우리는 미국이 역사상의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과 다르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을 깨트려야 한다. 미국을 통치하는 거짓말쟁이들과 살인자들에게서 나라를 되찾고 국가주의적인 교만을 거부할 때 우리는 평화와 정의라는 보편적 대의 속에서 인류 전체와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 나라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 충성을 다짐해야 한다.
우리가 국가에 뭔가를 빚지고 있다는 사상은 플라톤에서부터 연유한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시민은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고 국가는 부모보다 더 존중되어야 한다. 전쟁에서, 정의의 법정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당신은 정부와 국가가 지시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은 국가의 명령이 왜 부당한지에 대해 국가를 설득해야만 한다.” 이런 논리는 대단히 일방적이다. 국가는 강제력을 사용할 수 있는데 시민은 국가를 설득해야만 한다. 국가에 대한 복종이라는 이런 사상이야말로 권위주의의 본질이다. 우리는 이를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의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는 곳에서도 목격한다. 나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이 미국을 건설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난 1백년의 과거사는 역사가 예측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가장 변화가 느렸던 반(半)봉건제국 러시아에서 짜르 체제가 무너지는 혁명이 발생했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믿을 수 없는 변동을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히틀러와 스탈린의 협정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그 2년 후 독일군이 러시아를 침공한 것은 더욱 놀라운 사건이었다.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까지 진격한 독일군이 결국 패배하게 된 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전후의 세계 역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굴러갔다. 중국의 공산화, 폭력적인 문화혁명, 그 후의 자본주의 도입은 모든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오래된 서양 제국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그토록 순식간에 해체될 것을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프랑코 사후 스페인에서 유혈 사태 없이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하고 의회민주주의가 들어선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세계를 나누어 지배했던 미국과 소련은 자신의 영향력 아래 놓인 지역조차 통제할 수 없었다. 소련은 10년간의 무력개입 끝에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역사상 가장 잔혹한 폭격을 퍼부으면서 전면전을 일으켰으나 결국 철수했다. 핵폭탄도 단호한 국민들을 지배하는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
총과 돈을 갖고 있으며 자기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확고해서 영속할 것처럼 보이는 압도적인 권력도 자신들의 목적이 정당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다. 이란, 인도네시아, 필리핀, 루마니아, 동독, 폴란드, 그리스, 헝가리, 니카라과, 아이티, 쿠바와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부패한 독재자들이 국민들의 저항으로 권좌에서 끌려 내려와 도주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의를 위한 투쟁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작은 행동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때 어떤 정부도 억누를 수 없는 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
이런 글을 쓰거나 이런 글에 동조하는 사람은 반미주의자이며 좌익 빨갱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한국인 중에 특히 60대 이상의 노년층에 넘쳐납니다. 그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은 미국인 역사가 하워드 진(Howard Zinn, 1922 ~ 2010)입니다. 더구나 그는 미국의 핵심 지배집단인 유태인입니다.
하워드 진
예전에 내가 미국에서의 인디언 강제이주와 집단학살을 상세하게 기술할 때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사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내는 것이 불쾌했을 것입니다. 정의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힘없는 피해자를 외면하고 권세 있는 가해자에게 영합합니다. 자신에게는 그런 고난이 닥칠 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장담해서는 안 됩니다. 인디언이 겪었던 재앙을 한국인도 겪었습니다.
스탈린 시대였던 1937년 9월부터 11월까지 소련 당국은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 18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했습니다. 한인의 외모가 일본인과 비슷하여 일본인 첩자를 색출하기 곤란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출발 5~6일 전에 이주 명령을 통고받아 가산을 정리할 여유도 없이 화물열차에 태워진 한인들은 음식과 물도 공급받지 못하면서 한 달이나 걸려 카자흐스탄으로 이송 도중 2만 5천명이 사망했습니다. 불모지에 팽개쳐져 토굴을 파고 그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강제이주한 카자흐스탄
최초의 정착지에 세워진 기념비
강제이주 초기의 한인 가족
강제이주 기념탑 - 카자흐스탄
<참고서적>
권력을 이긴 사람들(A POWER GOVERNMENT CANNOT SUPPRESS)
저자 하워드 진, 2007
역자 문강형준, 2008, 도서출판 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