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도(有學道)
유학도에는 견도(見道)와 수도(修道) 단계가 있는데 견도는 소승 4과(四果)인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가운데 처음인 수다원과 즉 예류과입니다.
4과는 습기가 얼마만치 제거가 되고 안 되었는가 하는 깊고 옅은 차이 뿐인 것이지 모두가 다 성자의 지위입니다. 처음에 수다원과(須陀洹果)는 예류과(預流果)라 하는데, 범부의 경계를 떠나서 성자의 경계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죽고 살고 분별 시비하는 생사망의 그물을 벗어나는 단계입니다. 마치 새가 채롱을 벗어나듯이, 사실 우리 중생들은 아직 성자가 못되는 지금 새장에 갇혀 있는 새나 똑같습니다. 아무리 푸득거리고 잘난 척해도 내나야 새장에 갇혀 있는 새나 다름없습니다.
예류과에서는 생사망을 출리(出離)해서 금강불성을 견증(見證)합니다. 진여불성자리, 우리 자성을 현관(現觀)으로 직접적으로 직관해버려야 비로소 예류과인 성자의 지위에 참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견도(見道)요 견성(見性)입니다.
어록들을 보면 견도 견성 가지고 굉장히 많이 싸웁니다. 견성은 훨썩 높고 견도는 밑에 라고 하지만, 불경을 보면 어디를 보아도 다 똑같은 개념입니다. 다만 종파성 때문에 자기 종파가 제일 옳고 다른 것을 폄하하는 데서 자시비타(自是非他)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또는 정말로 견도를 하고 견성을 했을 때는 경계가 같아버리니까 하등 시야비야(是也非也)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견성을 못하고 참다운 견도를 못한 사람들은 섣불리 문자(文字) 가지고 분별하고 따집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경계를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수도(修道)는 보살십지(菩薩十地)로 말하면 초지(初地)부터 10지로 점차 닦아 나가는 것이 순서 아니겠습니까마는 4과(四果)에서는 그런 것을 다 합해서 말합니다.
사다함과(斯陀含果)는 인천(人天)에 한번 생을 받은 후에 열반에 든다고 일래과(一來果)라 합니다. 인간에나 천상에나 욕계(欲界)에 한번 오는 과입니다. 예류과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욕계번뇌가 다 소멸한 것이 아닙니다. 불경에 보면 욕계9품 번뇌 가운데서 6품이 떼어졌지마는 3품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욕심의 찌꺼기 때문에 다시 욕계를 한번 와서 열반에 든다는 과입니다. 열반에 든다는 것은 진여불성과 하나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래과(一來果)에서는 욕계에 한 번 올 수 있는 정도 밖에는 번뇌가 안 남았으니까, 함부로 파계무참한 짓은 못하겠지요. 우리 범부지에서는 그야말로 '진날 개 사귄'격으로 뗄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지겨운 번뇌가 욕계 번뇌입니다.
그 다음 아나함과(阿那含果)는 불환과(不還果)라 합니다. 다시 욕계에는 안 온다는 경계입니다. 색계나 무색계에는 옵니다마는 욕계에는 다시 올 필요가 없습니다. 욕계의 사혹(思惑)번뇌인 9품을 다 떼었기 때문에 불환과라, 다시 욕계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수혹(修惑․思惑)을 모조리 끊어버렸으니 다시 욕계에 돌아올 필요가 없습니다.
번뇌를 견혹과 수혹으로 구별하여 말합니다. 견해에 따르는 번뇌는 견혹(見惑)이라 하는데 견도할 때에 몽땅 떼어버리는 것이고 사혹(思惑) 즉 수혹(修惑)은 일체 사물의 성품을 모르거나 정의(情意)에 따른 번뇌로서 점차로 10지까지 올라가면서 다 끊습니다.
견도할 때에는 '나와 네가 없고 모든 것이 본래로 일미평등 한 진여불성이다' 이런 도리에 장애가 되는 견혹을 끊고 바른 도리를 확실히 증명하는 경계입니다. 확실히 증명하는 것은 금강불성(金剛佛性)을 견증(見證)해야 되는 것입니다. 금강불성을 견증하지 못할 때는 항시 의심이 남습니다. 일상생활에도 눈으로 보고 실제로 체험하면 의심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자꾸만 시야비야 합니다.
②무학도(無學道)
그 다음 아라한과 즉 무학도(無學道)입니다. 아라한과는 이른바 멸진정을 성취해서, 번뇌를 다 멸해버려서 다시 번뇌가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온전히 깨닫습니다. 불생불멸한 도리를 확실히 증(證)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근본불교가 우리한테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점차로 닦아나가는 순서가 바르고 스스로 공부를 점검할 때나 남의 공부를 점검해 줄 때에도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이상으로 근본불교의 수증(修證) 체계를 대체로 마친 셈입니다. 너무나 번쇄한 교리를 대강만 간추려 말씀하게 되니 피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법회는 전문적인 연구가 아닐 뿐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 다 섭렵했던 것을 재확인하고 넘어가는 의미에서 살펴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댓글 소중한 공부 감사드립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안하시며
성불하소서 ! 부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