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1535
 
 
 
카페 게시글
세종시의 미래 스크랩 3무 도시 `함평`의 창조 경영 - 이석형 함평군수 이야기
복숭아 추천 0 조회 314 10.11.22 08:2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사는 열악한 지역을 끌고 오면서 몸소 체험한 경영철학을 말하고자 한다. 군수로 당선되기 전에는 KBS에서 교양쪽 PD생활을 12년간 해왔다. 그 시절, KBS PD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남자 나이 40세 전후가 되면 한 번쯤 자기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정리하는 시기가 아닌가 하여 만 39세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과감히 터닝 포인트를 삼고 정치에 입문하여 고향땅 군수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당선이 된 후에 어떻게 군을 발전시킬까 고민하느라 잠이 오질 않았다. 전라도 전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지역이었고 쌀 주산지여서 황금기가 있었지만, 필자가 군수가 된 1998년의 함평은 3무(無)의 도시였다.‘ 천연자원’,‘ 산업자원’,‘ 관광자원’이 전혀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파산 직전의 주식에서 함평을 인수한 격이었다. 복지예산과 공무원 급여를 제외하면 군수가 군의 발전을 위해 쓸 예산은 거의 없었다. 전국에서 가장 장수(長壽)군이라고 말하지만 전부 노인뿐이니 일꾼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큰 사찰이나 높은 산, 이렇다 할 특산물도 없었고, 하다못해 역사에서 귀양을 온 사람도 없는 동네였다. 그러나 어떤 책임을 맡고 일을 하면서 가장 무능한 사람은‘탓하는 사람’이다.

돈 없다고 예산 탓하고, 이것밖에 할 수 없다며 제도와 권한을 탓하는 사람은 다른 일을 맡겨놔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국에서 가장 잘사는 강남구를 맡은 것보다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함평군을 맡은 것이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면 일어나서 함평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고민했다. 삼성 본사를 함평으로 이전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비전이 있겠지만 농업인구가 71%였으니, 농업을 간과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는 마지기당 몇 섬 수확이라는 양의 개념이었으나 앞으로는 질의 개념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 친환경농업을 개발해야만 한다. 그래서 공직자들과 농어민 단체들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다들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맡은 기간 잘 지내다가 가라는 반응이었다.

전국의 백화점과 공판장, 전문 유통업자들을 만나보았지만‘함평’이라는 상품은 매력이 없었다. 딱히 끌리거
나 떠오르는 것, 즉 브랜드가 없었다. 함평이 지리산 계곡이었거나 철책 근방이었다면 청정지역 이미지로 친환경농업이 어울리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억지였다.

무심결에 날아가는 나비를 바라보다가 필자가 KBS PD시절에 잠깐 다뤘던 나비가 떠올랐다. 나비로 축제를 하면 세계 최초의 나비축제가 되니 블루오션으로서 선점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함평을 친환경농업지구로 각인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농업소득은 점점 줄어들 테니 농업 외 소득으로 경쟁력을 창출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1세기 문화관광환경의 세기를 맞이해서 나비축제는 해볼 만한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깃을 학생으로 잡았고, 생태체험형식으로 추진하여 부모들도 덩달아 오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8년에도 IMF 상황 속에서 실업자 구제책으로 많은 예산이 내려왔다. 그런 예산으로 보통 풀 베고 하천 청소를 하는데, 함평은 그 예산으로 꽃을 많이 심었다.

유채, 자운영 등을 많이 심었는데, 이미 꽃 축제는 다른 지역에서 많이 하고 있으니 꽃은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나비를 날게 하여‘나비 보러 오라’고 말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러나 젊은 군수가 뚱딴지같이‘나비’이야기를 한다면서 다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항상 밀어주시던 아버지마저도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PD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더욱 세심하게 준비하게 되었다.

꽃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지만 나비를 구하는 일이 문제였다. 그래서 아웃소싱으로 제주도에서 나비를 잡아와 교미를 시키고, 비닐하우스를 200평 정도 만들어서 나비를 풀어놓고 나비생태관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1999년 5월 어린이날에 오픈했는데, 기적을 보게 됐다. 순식간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이다. 나비축제가 성공하리라 짐작도 못했던 지역민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아 주변 슈퍼나 식당은 물건파동 현상이 일어났고, 집에서 쉬던 경찰들이 수많은 인파로 인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축제가 끝나자 드디어 주민들은‘이제 뭔가 되려나 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함평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처음 본 것이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도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고, 군수의 말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소중한 성과였다.

군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인사철만 되면 사람들이 군수에게 돈을 싸들고 찾아 왔다. 돈을 안 받는다고 말하고 돌려보내면 세 번까지 다시 찾아왔는데, 오직 일로써 승부하자고 설득했다. 군수로서 모범을 보이고 원칙을 세웠더니, 점점 일하는 분위기로 변화되었다.

나비축제가 대단하다고 평가할 만한 것은, 외부의 기획사 한 사람을 받아들인 적 없고 전부 자체 토론으로 이뤄낸 것이다. 그래서 차별화가 되었다고 본다. 매사에 관광객 입장에서 보았고 가장‘함평스럽게’, 보고 가는 관광지가 아닌 체험하는 관광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비축제가 성공하자 여러 지자체에서 덩달아 나비를 주제로 한 다양한 생태관을 짓기 시작하며‘따라하기’
에 나섰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는 했다. 그래서 더욱 차별화하기 위해 국내가 아닌 세계로 눈을 돌렸다.

나비곤충을 산업화시키기로 하고 나비엑스포를 준비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중앙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이후에‘나비’성과가 매우 좋았다고 판단했는지 전부 동의해주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통과하여 드디어 지난해에 나비축제 10회를 맞아 엑스포를 열게 됐다. 세계곤충학회 모든 회원이 참여하여 그들과 공동으로 개최했다. 그래서 나비곤충만은 미국에 가든 유럽에 가든 함평이 메카로 소문이 나 있다.

곤충이 많이 멸종돼 가고 있지만, 만약 곤충이 모두 멸종되면 모든 동식물도 4, 5년 후면 따라서 멸종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나비곤충이 멸종된다면 과일이나 곡식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곡식이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지 않은가. 곤충은 이렇게 인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에서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곤충을 가지고 축제도 하지만 산업화를 이룬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
이제는 엑스포를 세계곤충학회와 함평군이 각국을 돌면서 축제를 해보자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나비곤충과 엑스포, 축제를 통해서 함평의 모든 농축산물은 나비 브랜드이다. 지금까지 천만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처음 축제에 다녀간 초등학생들도 이제는 성인, 즉 소비자가 되었다. 함평이라는 지역이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의 함평에 대한 강한 이미지보다는 이제는 전체가 나비곤충 콘셉트로 가고 있다. 휴지통도, 가로등도, 민박집 벽지도, 덮고 자는 이불도 나비 천지다. 함평에 와서 걷고 잠을 자도 나비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요즘 골프에 있어 가장 뜨는 선수 하면 신지애다. LPGA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 신지애가 함평골프고등학교 출신이다. 농업이 어렵다 보니 함평농업학교에도 학생이 줄었다. 폐교 직전이었다. 학교를 살리기 위한 고민에 들어갔다. 제주처럼 골프학과를 만들까 하다가 아예 골프학교로 전향하기로 했다. 전통 있는 학교를 바꾼다고 하자 유지들이 또 나서서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기 손자들도 농업학교에 보내려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결국 골프고등학교로 과감히 전환했다.

 
골프와 연계하여 골프장 관리, 조경을 접목하여 취업의 문을 더 넓게 열었다. 이제는 전국에서 몰려와 매년 100여 명이 탈락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또 공립학교다 보니 골프를 해도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명문특 성화고등학교가 되면서 신지애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함평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전국적으로 뜨고 있는 것은 모든 아이템들이 블루오션이었기 때문이다. 황금박쥐는 1999년 1월에 폐광에서 발견했다. 그 전에도 함평에서 살았겠지만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만화 속에서나, 전설속에서나 나오는 황금박쥐가 우리 함평에 산다는 것은 필자의 눈을 빛나게 했다. 그 황금박쥐를 통해서 어떻게 특별한 효과를 창출할 것인가 연구에 들어 갔다. 환경상품을 가지고 보존만 하자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본다. 보존과 수입이 되고 다시 환원해야 보존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극성스러우니 공개하면 열흘도 못 갈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이크로 카메라를 설치해서 관찰할까 생각했는데, 황금박쥐는 초음파를 발사해서 조그만 쇠붙이가 있어도 안 된다고 한 다. 그래서 쉽게 가기로 했다.
 
금을 1톤 사서 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어놓으면 세계적인 환경상품이나 문화관광상품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자 주변에서는‘나비’는 어쩌다 잘된 것인데 이건 안 될 거라며 반응이 냉담했다.
그러나 조형물을 만들어 놓으면 손해가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금이 사라지거나 닳는 게 아니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와 관광산업 등을 생각하면 일거양득 이상의 소득이 있을 터였다. 그래도 반대의 소리는 높기만 했다.

그래서 우선 중앙정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30억원을 요구했지만 10억원만 받았다. 그것으로 군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농로, 도로 포장을 줄이고 여기에 투자하자고 역설했다. 1톤에서 양보하여 162킬로그램을 사서 홍익대학교에서 제작했다. 지난해에 황금박쥐 조형물을 선보였는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작은 조형물이지만 관광객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텔링 작업도 하고 있다.
 
2005년 4월, 신안 앞바다에서 뱀을 밀수하다가 걸렸다는 뉴스를 보니 그러면 두어 달 보관하다가 나중에 소각 해버릴 것은 뻔했다. 그 뱀들을 빌려서 나비생태관에 함께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곤충뿐 아니라 파충류까지 분야를 넓히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관세청장에게 어렵게 허락을 얻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자들이 복병이었다. 나비축제에 수입 뱀을 전시한다며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마침 홍보비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네거티브 홍보로 전략을 바꾸었다. 축제 때 뚜껑을 열자, 줄이 두 줄이 되었다. 한 줄은 나비를 보러 가고, 한 줄은 뱀을 보러 가는 줄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뱀을 키우는 사람, 뱀을 연구하는 사람을 다 만났다.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복지부에 예산을 신청하면서 올해 170억원을 확보했다. 뱀 생태관도 짓고 있다. 뱀 생태관에 대해서도 여러 방면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우선 뱀 생태관을 만들어서 아마존의 아나콘다, 코브라도와 같은 큰 뱀들도 들여오지만, 애완용 뱀도 수입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자연생태에 잘 어울리는 뱀 생태관을 지을 예정이다.
독도 안 죽을 정도로 먹으면 좋다고 한다. 그래서 뱀 독을 이용한 신약 개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보양쪽과 연결한 방향도 생각하고 있다. 뱀도 특수가축으로 봐야 한다고 본다. 야생에서 뱀을 잡아먹는 것은 불법이라고 하겠지만, 키워서 사용한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그린투어리즘을 넘어서 헬스투어리즘을 바라보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상품이 성공하리라 본다. 이렇게 항상 가능성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다.
 
현재 함평군은 30만 평 정도에 국화를 심어서 10월 29일부터 25일간 국화축제를 열고 있다.

중국, 일본시장을 다 살펴봤지만 규모와 품질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 역시 상당한 농업외 소득을 창출해내고, 지역 이미지 브랜드를 창출해내는 상품이 되고 있다.

국가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지만 지역의 지도자도 잘 뽑아야 한다. 정당 위주보다 사람 위주로 사람을 뽑으면 일본 이상으로 지방이 다 발전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본이 강대국이 된 것이 중앙정부가 잘해서일 수도 있지만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그 단체마다 문화가 있고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CEO나 교수 등 인텔리 계층의 투표율이 매우 낮다. 그렇다 보니 잘못 선택해서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이제는 기업 이상으로 잘살기 위해서 그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경영자들도 이를 위해 함께 뛰어야 한다고 본다.

 

 

이석형 군수는 10년 넘게 함평군을 맡고있는 3선 기초 단체장입니다. 천연자원, 산업자원, 관광자원이 없는 지역을 오히려 특성화된 지역으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입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할때 설득력과 과감한 투자로 지역발전의 블루오션을 창출했다고 합니다. 나비축제, 골프고등학교, 황금박쥐 등.. 항상 가능성을 찾아 몸부림을 치는 그의 이야기에 많은 동기부여와 힘을 받습니다^^

 

성공과 꿈은 항상 반대와 장애라는 다리 너머에 있다는 것을 잊지않고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화이팅!!

*********************************************************************************

창조적 발상 나비효과의 날개짓

 

지난 12 10, 강남 한국과학기술 회관 대회의실에서열린 제 65회 골드명사 특강은 이석형 함평 군수가 강연을 맡았다. ‘블루오션과 창조경영이라는 이 날의 강연을 통해, 이 군수는 누구나 현재의 위치에서 창조적 리더십을 펼칠 수 있음을 참석자들에게 전달했다. (편집자 주)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이는 잘 알려진 과학이론, ‘나비 효과. 과정 속의 작은 차이가 큰 차이의 결과를 부를 수 있음을 의미하고, 지구촌 한 구석의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저는 군수를 하기 전에 KBS에서 12년 동안 PD를 했습니다. 남자 나이 마흔 전후에는 살아온 삶과 남은 삶에 대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저는 그때 제 자신의 DNA가 방송국의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장을 했던 DNA, 그래서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정치를 해 보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군수는 처음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연을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공영방송국 PD라는, 안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과감하게 선택한 것이다. 오늘날 그가 일으킨 함평군의 변화, 그 작은 날갯짓이 펼쳐졌던 셈이다.

진정한 경쟁력은선점에서 나온다

이석형 군수는 정치인으로서의 출발로 지방을 택했다. 중앙 정치 역시 지방 정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곳이 바로 현재 군수로 있는 함평군, 이곳은 이 군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향에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소위 3·3·3이 이뤄져야 합니다. 첫째 조부부터 본인까지 3대가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어야 한다는 점, 둘째 본가·처가·외가라는 세 가문이 공들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아부·치부·공부, 3부를 평소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아부는 조직관리를 의미한다고 이 군수는 덧붙였다. 함평군에서 자란 이 군수의 3·3·3이 잘 이뤄졌는지, 그는 첫 정치도전에서 군수로 당선됐고 현재까지 3선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저는 제 고향 함평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인수인계를 받아보니 연간 관광객 18 5천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노인인구(65세 이상 기준, 당시 25%), 그리고 천연자원, 관광자원, 산업자원이 전무한 고장이었던 겁니다. 심지어 강진의 다산 정약용, 담양의 송강 정철 선생 같은 역사적 인물 하나 없었습니다. 신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렇게 당선 이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새벽마다 군청 뒷산에서 고민을 하던 이 군수에게 희망의 빛이 보였다. 바로 산에서 바라 본 읍내, 그 중심에서 흐르고 있던 하천이었다. 이석형 군수는 하천을 끼고 기획상품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우선 꽃을 심었다. 그리고, 이미 다른 여러 지방에서 펼쳐지고 있는유채 꽃 축제가 아닌나비를 생각해 냈다.


“간부회의 때, 꽃 축제를 펼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저는 함평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다른 지역, 다른 기업에서 성공한 아이템을 카피해봤자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2, 3등 밖에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선점하자고 했지요. 그게 나비였던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나비 축제’, 오늘날 함평을 지방자치단체 성공의 신화로 만들어 준함평 나비대축제함평 세계나비곤충엑스포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커다란 성과 이룬다
그렇다면 이석형 군수가 수많은 아이템 중나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젝트 화면 가득한 나비를 바라보며 이 군수는 기획의 배경을 설명했다.“현대 농업은 이미 양이 아닌 질의 개념으로 승부를 해야 합니다. 생산 지역에 친환경 이미지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강원도 청정지역과 같이 함평에도 친환경 농업지역이라는 이미지 콘셉트에 나비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미 지역경제는 농업만 가지고는 경쟁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농업 외의 소득 창출이 중요한데나비라는 새로운 문화의 캐릭터 산업으로 함평을 부흥시키고자 했습니다.”


1999
5 5 11. 이 군수의 창조적 발상, 나비대축제는 개막했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대성공을 거뒀다. 함평의 지역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군청 관계자 및 주민들의 자신감은 커졌다. 주민들의 자원봉사와 공무원들의 원활한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특히 군은 축제의 모든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꽃을 구해 심거나, 풀어 준 가축 잡기 대회, 미꾸라지 잡기 대회 등 관련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생각을 조금만 하면 아이템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저는 지금도 일을 하기 싫은 사람은 각종 탓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직장 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창조적 리더십을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


브랜드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고, 예산이 부족하다면 기획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투자유치에 나서고……, 이 군수와 함평군이 이뤄낸 성과는 지방자치 역시 창조경영 리더십을 발휘하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물론 이 군수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세계곤충학회와 공통으로 세계 최초의나비곤충 엑스포를 개최했고, 골프고등학교와 보건고등학교를 지역 내 설립했으며, 황금박쥐 모형을 제작하여 국내 및 해외에전시 출장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작년 11월에 펼쳐 진함평 국화축제역시 여전히 이 군수와 함평군의창조적 경영이 멈추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행사였다. 강연의 마지막, 이 군수는 다가올 지방 선거에서 각 지역의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참 인재를 뽑아달라는 메시지를 참석자들에게 전달했다.


“1998년 연간 관광객 18 5천명의 함평이 이제는 4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20세기가국부론 시대였다면 21세기는향부론 시대’, 즉 도시와 도시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세계 아닙니까. 지역마다 창조 도시를 만들면 그것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함평의 명물 '나비축제' 성공스토리 공개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남이 성공한 아이템을 짝퉁으로 카피하면 아무리 잘해도 영원한 2등이고 3등이다.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해야 한다."

 

이석형 함평 군수는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아시아경제와 휴넷이 공동주최한 휴넷 골드명사 특강에서 '블루오션과 창조경영'이라는 주제로 함평군의 성공비결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석형 군수는 함평군을 오늘날 유동인구 400만의 전국적인 관광지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KBS에서 10년간 PD로 재직하다가 39살의 젊은 나이에 함평 군수에 출마, 민선 2, 3, 4기 군수로 지내면서 함평군의 나비축제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힘써왔다.

이 군수는 "군수에 취임했을 당시 함평군은 전국에서 노인인구비율은 가장 높고 천연자원·관광자원·산업자원은 전무했으며 함평군을 찾는 관광객 수는 연간 185000명 정도에 그쳤다" "이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나비축제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IMF 당시 경기활성화와 함평천 개발을 위해 심었던 꽃을 바탕으로 함평만의 ‘기획상품’을 구상했는데 기존에 심었던 꽃을 주제로 한 유채화 축제 등을 해보자는 의견이 주종을 이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유채꽃은 이미 제주도가 선점한데다 전국 곳곳에 심어져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 심어진 꽃에 나비를 더해 어린아이들이 생태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나비축제를 생각하게 됐다"고 나비축제의 추진과정을 설명했다.

1999
5월 시작된 함평군 나비축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2008년에는 세계나비엑스포를 열게 됐다. 함평군은 이 엑스포를 통해 직접수익 134억원를 벌어들였으며 관광객 126만명을 유치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이 군수는 "나비축제는 단순히 관광상품의 기능만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를 통해 함평지역 농산물은‘나비’와 연관돼 친환경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더 나아가 함평군의 나비축제는 나비의 화려한 무늬와 다양한 종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신약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함평군은 황금박쥐마을, 국향축제, 뱀 생태공원 등을 개발해 함평군만의 특화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 군수는 이 외에도 함평군 지역 내 정원 미달 고등학교 문제의 해법으로 특성화된 고교를 제시해 함평농고와 월야고등학교를 함평골프고등학교와 전남보건고등학교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함평골프고등학교는 올해 LPGA에서 눈부신 성적을 거뒀던 신지애 선수를 키워낼 수 있었고, 전남보건고등학교는 타지에서 학생들이 찾아오는 학교가 됐다.

이 군수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만을 찾아 이를 꾸준히 개발한 것”을 오늘날 함평군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그는 “블루오션이나 창조경영 이런 말들을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전부 주변에 있는 것들”이라며 “과감하게 선택하고 이를 추진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

 

 
다음검색
댓글
  • 10.11.22 11:44

    첫댓글 창조경영! 지방자치단체의 살길이지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