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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송초등학교 총동창회를 마치고.. 옛 친구들
2011.06.14. 19:34
http://blog.naver.com/leegy60/40131586869
6월!
초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37여년만에 찾은 추억속의 교정, 그리운 친구들..
어언 50줄에 들어 흐르는 세월을 어쩌지 못하고 다들 많이변한 모습들이었지만
동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도 그저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다들 일상으로 잘 돌아 갔겠지..
바쁘다는 이유를 핑게로
나는 그동안 동창회에 한번도 참석을 하지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동창회를 찾았다.
'74년도에 졸업을 했으니 어언 초등학교를 졸업한지가 40년이 가까워온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쏘아보낸 화살과 같다고 했지만
무심한 세월이 너무 듯없다..
설래는 마음을 안고
아침일찍 집을 나선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지난 날 회상에 잠겼다.
숙희, 영숙이, 선옥이, 명옥이, 광자, 정택이, 창주, 창하 우선 떠오르는 얼굴들이다.
만나면 얼굴이나 알아볼까..
숙희는 어떤 모습일까?
고맙게도 계절이 바뀔때면 친구들 근황과 함께 간간히 메세지를 보내오는데
그 옛날 예쁜 모습은 간직하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행복한때 어느새 교정이 시야에 든다.
그옛날 내가 걸어간 추억속의 길..
교문을 들어서기 직전 차안에서 바라본 길인데 차를 세우고 잠시 바라보았다.
그때는 비포장의 흙길이었는데 관사는 온데간데 없고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곡식이 심어져있는 우측의 밭에는 관사가 있었고 관사의 모통이를 돌면 마중물을 부어 퍼올리는 펌프가 설치된 셈이 있었는데 방과후 너도나도 마른 목을 축이곤 했다.
교정 전경
내가 다닐때는 맨 좌측만 2층이었고 나머지는 그옛날 목조건물 이었는데 많이 변한 모습이다.
철봉대..
이철봉대는 그 옛날 그대로인것 같다. 이자리에서 서서 한참을 바라 보며 추억속에 잠겨보았다.
운동신경이 둔한 나는 오른쪽 제일 낮은 곳에서만 놀았던 기억이 난다.^^
맨처음 들어선 2층건물..
이 교실은 내게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생전 2층건물을 보지 못했는데 2층건물이 들어서니 모두들 신기해 했다
신축 후 처음에는 독서실로 사용하였는데 당시 나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책읽기는 좋아했고 책이라고는 교과서만 구경하다가 재미있는 수많은 책들이 있다는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셜록홈즈의 모험을" 재미있게 읽었던게 생각이난다.
이곳은 내 독서의 시발점이다.^^*
2, 3학년때 생활한 교실로 향하는 계단이다.
오른쪽으로 화장실이 있고.. 비스듬히 돌아오르는 계단이 한참 길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조그맣고 초라한 모습으로 한걸음에 올라졌다.
사라진 교실..
2, 3학년때 생활하든 교실이 있던 자리다.
철망이 쳐진 울타리 너머로 교실은 온데 간데없고 옛 추억을 드듬으며 올랐는데
사라진 교실로 인해 참으로 허무하고 아쉬었다.
이 교실에서는 강보 선생님이 우리반을 김일우 선생님께서 다른반의 담임을 맡았던 기억이 나는데
두분 선생님 께서는 어디에서 지내시는지 건강하신지 궁금했다.
본관 뒤 교정으로 오르는 중앙계단..
기억속에는 그렇게만 높아보였던 계단이었는데 역시 초라하고 너무도 작았다.
이곳도 많은 추억을 간직한 장소이다.
우측 계단옆으로 철재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사라지고 없었다.
미끄럼틀은 선배들이 초칠을 해놓아 정말 미끄러웠고
머슴아들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장소였다..
중앙계단을 오르며 바라본 본관 뒤 언덕이다.
이곳에는 과일나무(자두나무 등)가 있어 따먹었던 기억이 있다.
2, 3학년 교실이 있던 자리..
교실은 온데 간데없고 텅빈 운동장에 테니스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너무 쓸쓸하고 허무했다.
저 뒤쪽으로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고 울타리 넘어로 개울로 이어지는 샛길이 나 있었다.
신풍에 사는 정택이랑 친구들이 그곳으로 등 하교를 했던 기억이난다.^^
가로막은 울타리..
울타리넘어 뒷쪽으로 오르면 4, 5학년때 공부한 최고 높은곳의 교정이다.
저 언덕에도 좌 우측으로 계단이 있었던 기억이나 추억속의 길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잡초만 무성하고 울타리가 길을 막아 갈 수 가 없어 허무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사라진 교실에 허무한 마음을 안고 중앙계단을 내려서며 바라본 좌측 조망이다.
본관 옆으로 좌측 교정으로 오르는 길..
본관을 뒤로돌아 가장 추억이 많이서린 교정으로 올라 본다.
추억이 서린계단..
이 계단에는 나만의 추억이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참 못했던것 같다.
가정사가 있어 할아버지 할머님손에서 자라다 보니 교육 환경도 그랬고
간간히 학교간다고 집을 나서고는 학교는 가지않고 산에서 중간치기(땡땡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아침일찍 집을 나서 등교를 한 나는 우연히 대봉이랑 같이 등교를 하였는데
시술냇가 신풍냇가를 지나며 지체를 많이하였고
안동앞 길옆 개울에서 찔레도 꺽어 먹고 하다가 그만 지각을 하게 되었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수업을 시작한 교정은 조용하고 사람하나 없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이 계단의
중간지점까지는 올라 왔지만 교실에 들어설 용기가 나지않아 이계단에 주저 앉아 있는데
계단 뒤 교실에서 수업을 하던 저 학년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혼이난 기억난다.
그때 대봉이는 공부도 잘했고 모범생이었는데 나랑 어울리다가 곤욕을 치렀지 아마..^^*
종말이랑 학선이
혼자서 교정을 돌아 보는데 종말이랑 학선이가 합류했다.
없어진 교실을 아쉬워하며 셋이서 교실이 있던 자라랑 교정을 돌아 보았다.
4, 5학년때 교실이 있던 자리..
교실은 온데 간데 없고 우거진 숲에 잡초만 무성하다.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면 이곳에서 생활한때가 재일 그립고 추억도 많다.
많은 기억속에 특히 생각나는 것은 장혜자 선생님과의 추억이다.
뒤풀이때 배신에 사는 상희가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는 가슴아픈 추억하나 반추해본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가정사로인해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할머님 손에서 자라며 어린마음에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 날은 설명절이 끝난 후 였던것 같다.
명절을 맞아 생전에 오시지않던 어머님께서 고향을 오셨다.
엄마는 그때 부산에서 사셨는데 명절 연휴가 다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엄마와 헤어지는날이라 아침부터 학교가 가기 싫었다.
억지로 등교한 나는 오전 내 엄마생각 뿐이었다.
오전 시간이 다하고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지금이라도 집에가면 엄마를 볼 수 있을까
아직 부산으로 가시지 않고 집에 계실까 도망이라도 갈까
등 수많은 생각속에 점심시간이 다하고 5교시를 맞았다.
장혜자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오셨고 급장인 창하가 일어서서 차렸 경례를 하는것도
잊고 창밖의 보리밭을 바라보며 꼴똘히 엄마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날따라 선생님께서는 기분이 언짢았는지 갑자기 나를 교탁앞으로 불러 냈다.
교탁앞으로 불려나간 나를 선생님은 다짜고짜 회초리로 마구 때리시고는 인사를 하고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화가난 나는 인사도 하지않고 자리로 들어와 버렸다.
선생님은 또 다시 나를 불려냈고 머리며, 종아리며 닥치는데로 두둘겨 맞은 나는
또다시 인사를 하지않고 그냥 들어와 버렸고 재차 불려나간 나는 두둘겨 맞다가
선생님의 회초리를 뺏어 그만 선생님께 달려 들고 말았다.
나를 감당하지 못한 선생님께서는 책을 챙겨 교무실로 돌아가셨고 나는 집으로 왔다.
다음 날 등교한 나를 본 선생님께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셨는데
나는 부모가 안계시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제서야 나의 가정사를 안 선생님께서는
이 후 부터 쭉 내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던것 같다.
숙희에 의하면 선생님께서는 대구에 사신다고 하시는데 꼭 한번 뵙고싶다.
4, 5학년 교실을 돌아 산으로 오르는 길..
교실옆으로 소각장이 있었고 이길을 따라 산으로 곧장 올라 놀던 기억이 새롭다.
점심시간에 남자애들은 교실에서 식사를 하지않고 산에올라서 도시락을 먹곤 했다.
왜 그랬는지..
추억의 화장실..
4, 5학년때 사용한 화장실인데 계단을 내려와서 이곳에서 볼일을 봤다.
교정 상 운동장의 풀러타너스
체육활동하며 놀던 곳이다. 잡초만 무성하고 그때는 손목 굵기만한 플러타너스 였는데
아름드리로 자라 있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것이겠지요..
녹쓸은 미끄럼틀..
미끄럼타며 놀던 그때 친구들의 함성이 들리는듯한데 흐르는 세월속에
친구도 떠나고 후배도 떠나고 아이들도 떠나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 녹쓸고 초라한 모습으로
덩그라니 홀로 남아 이렇게 쓸쓸함을 안겨주었다.
망초대 무성한 상 운동장..
그때 그시절 열심히 뛰어놀던 운동장이었건만
녹쓸은 미끄럼틀, 낡은교실은 세월의 듯없음을 말해주고 망초대 무성한 운동장으로
허무하고 쓸쓸함이 밀려와 알 수없는 서러움 한움큼 내려놓고 돌아섰다.
상 운동장에서 바라본 운동장 전경이다.
동창회 행사장 텐트가 둘러처져있고 중앙좌측에 우리동기들의 앉아있는 모습도 보인다.
은행나무
교정을 한바퀴 돌아서 내려오니 이 은행나무가 나를 반겼다.
교정이 다 변했지만 이 은행나무만큼은 그때 그시절 그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학년때 교실이 있던 자리..
이곳에 은행나무 옆으로 차량이 주차한 자리에 목조건물로 지워진 1학년 교실이 있었다.
그 건물에서는 황세월, 월유골, 소재리 등 3동의 아이들이 한반이 되어 같이 공부를 한것 같다.
동창회가 열리고 있는 운동장 전경
29회 졸업생이 앉아있는 모습들 좌측 옆에는 30기 후배님들..
광자랑 종말이
흐르는 세월에 많이들 변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중년이 아릅답기만 합니다.
우아한 중년이 되어 정말로 많이 변한 모습으로 나타난 학선이..
숙희 그리고 여러친구들..
신풍에 정호, 삼수, 소재 성구, 배신에 상희, 현옥이 그리고 규옥이..
숙희는 그 옛날기억에 참 예쁘기도 한것 같았는데 많히 변해 있었다.
상주시청 선거관리사무소에 근무를 한다고 했는데 동창회 결성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해주고 있다.
숙희랑 규옥이 등등 몇몇 친구들의 수고로 이렇게 만남의 장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수고한 숙희랑 규옥이에게 감사를 드린다.
반갑다 친구야!
오랜만에 본 소재리 성배, 성구, 순기, 신풍에 우철이, 종석이..만나서 반가웠다.
좌측으로 부터 차례로 황세월 광자, 시술에 영이, 동복이 신풍에 종석이 정호
광자, 철호, 영이, 동복이 순기
촤측으로 부터 동복이, 순기, 삼수, 정호, 숙희,
우측 뒤로 돌아앉은 꼭지, 상희, 성구, 친구야! 다들 반가웠다.
돌아앉은 배신에 꼭지, 상희, 대조에 대봉이 신풍에 건수, 배신에 영길이, 신풍에 달수,우철이
대봉이, 신풍에 정택이 진옥이 철호 시술에 영이 신풍에 신영이..
오랜만에 여러 친구들 이름을 불러본다..
좌측부터 차례로 숙희, 대봉이, 상희, 꼭지, 학선, 종말이, 광자, 정택이, 진옥이, 철호, 신영이, 규옥이
다들 아이스크림 맛있게 먹고있다.^^
규옥아 동창회 꾸린다고 정말 수고 많았다.
신풍에 정택이 진옥이 철호..
유난이 친하게 지냈던 정택이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
너의 이마도 듯없는 세월을 말해주고 있구나.^^*
종말아 광자야 아이스크림 맛있니 ^^*
정말 오랜만이었다. 세월속에 모두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아름답고 우아한 중년이었다.
종말아! 나중에 시간나면 마고촌에 도자기 구경한번 가볼께..
그리고 너의 친구라는 김의숙님은 이지역에서는 그쪽분야에 매우 알아주는
꽤유명한 인사란다. 작품도 유명하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숙희.. 숙희야! 아아스크림 맛있니 ^^*
밴드에 맞춰 한곡 부르는 철호, 그리고 29회 친구들..
29회 동기들이 본부석 무대에 올랐습니다.
열창을 하고 있는 시술에 동복이..
교문에서 단체 기념사진도 한컷~
개인사정으로 일찍귀가한 친구들이 아쉽다..
교문앞 등하교를 하던 길
이길을 따라 6년을 걸어서 다녔다.
사택이 있던 자리
이곳 사택에는 이용덕이라는 소사분께서 사셨다.
안동으로 질러가는 샛길
교정에서는 동창회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살며시 빠져나와 이번에는 교정 외곽을 한번 돌아 보았다.
이 길은 교문을 나서 안동을 가로질러 가는 샛길이다.
하교길에는 신작로를 따라 가지 않고 이길로 많이 다녔는데 한번 올라 봤다.
추억의 맷등
이곳도 추억이 있는 장소라 카메라에 한번 담아 본다.
나는 할머님 밑에서 자라다 보니 운동회같은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우울했다.
운동회날은 음식이랑 푸짐하게 가져와 맛있게 먹고 재미나게 놀았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5,6학년의 운동회로 기억되는데 시골학교의 운동회날은 가족과 함께하며 잔치날이 된다.
나는 운동회를 한다고 할머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남들은 젊고 예쁜 어머니가 오지만 할머님이
오시는게 그때는 그렇게 창피했기 때문이다.
운동회가 시작되고 얼마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가족이 오지않은 나는 먹을게 있을리 없다.
수돗가에서 찬물을 한바가지 퍼먹고 세수를 하고 나무밑에 쭈그리고 앉았는데 대봉이가 찾아왔다.
그래서 저소나무 밑에서 대봉이 어머님께서 해오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참으로 가슴시린 어린날의 추억이다..
그 옛날을 추억하며 혼자서 샛길을 따라 안동으로 향했다.
사라진 샛길
얼마간 오르니 농노길 뿐이고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저 풀숲사이로 경사진 길을 한참을 내려서면
안동인데.. 잡초만 무성한 이곳에 서서 잠시 그 옛날을 추억하다 돌아섰다.
추억속의 새점빵..
그때는 교문앞 가게를 새점빵이라 불렀는데 왜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옛날 건물은 사라지고 그자리에 이렇게 현대식 조립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저곳에서 라면땅과 고무과자 사탕 등을 사먹은 기억이 난다.
장혜자 선생님이 거주하셨던 사택
큰 키를 이용해 담장 안도 한번 들여다 보았다.
그때는 마루가 있었던 건물로 기억 되는데 이건물도 새로 지워 졌나보다.
방과 후 이사택에서 선생님과 함께 콩도 까고 선생님을 도와 드렸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이사택의 텃밭에 콩이랑 여러가지 농사를 짓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상희가 기억하는 그 일이 있은 후
나의 가정형편을 아신 선생님께서 이 후 많은 관심과 함께 사랑을 주셨다.
총동창회가 끝나고 배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신에 상희 시술에 동백이, 소재 용만이, 월유골 학선이..
배신에 영길이.. 만나서 반가웠다.
상희야! 너는 기억력이 너무 좋구나..
장혜자 선생님과의 일을 그렇게 까지 잘알고 있을줄은 정말 몰랐다.^^*
시술에 숙희..
숙희야! 동창회 주선 한다고 수고많았다.
많이변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중년이니 걱정하진 마라.^^*
회장인 규옥이도 수고 많았다.
29회 동기회를 이끌어준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왼쪽부터 월유골 학선이, 소재 영희, 시술에 영이, 그리고 ? , 숙희, 돌아앉은 꼭지
모두들 만나서 반가웠다.
숙희 옆에 마지막에 나타난 친구야! 늦게라도 와주어서 고맙다.
이름을 몰라 미안하다.
앨범을 찾아보니 유영숙이 같기도 한데..맞는지 모리것다..^^*
시술에 영이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다음 모임이 토요일로 잡혔다만 무슨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꼭 참석 하길 바래..
친구들아!
이것으로 2011년 곡송초등학교 총동참회 참석 후기를 마친다.
곡송29기 카페가 있으면 올릴려고 찾아보았는데 없어 나의 개인 불로그에 올린다.
컴맹에다 글솜씨도 일천하고 사진도 잘 찍은게 하나도 없다만 잘 봐주길 바란다.
다음 만날때까지 항상 건강하고 잘지내길 바래..
포항에서 - 근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