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에 가면 참으로 묘한 인연을 만날 수 있다.
성이 다른 배씨 가문에서 조씨 가문 형제묘를 대대로 관리해오고 있다.
요즘 한국 세태에서 보기 드문 일이며 이러한 인정을 보기조차 쉽지 않다.
창녕 조씨 조석증과 조석빈 형제는 천주교를 받아들인 뒤 동서학당에 은거하면서 유학과 서학을 비교연구를 하였다.
한문성경을 나무상자 속에 넣고 양반집을 찾아다니며 전교하였다.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김해읍 왜장대에서 참수되었으며 그들의 강인한 신앙에 포졸들도 감탄하였단다.
두 형제 시신을 조씨문중 선산에 매장하려고 하였으나 문중의 심한 반대로 시신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의 배정문이 자신의 집 뒤 언덕에 묻어주고 후손들이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배정문은 고 배문환 신부의 4대조이며 신부님의 형 배대환은 농학박사,
신부님은 신학박사, 동생 배길한은 보건학박사를 받은 박사형제 집안이다.
배문환신부는 물에 빠진 교우 3명을 구하고 본인은 익사한 하느님 사랑을 지상에서 실천한 신부님이다.
조씨 형제의 묘를 참배하면서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은총을 가져다주는 곳이다.
“오늘 이 미사가 지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라고 미사를 봉헌하였단다.
농담 같이 던진 이 말은 신부님에게 정말로 마지막 미사가 되었던 거다.
훌륭한 신부를 지상에서 먼저 데려가신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거다.
곧 살신성인으로 표현되는 의인으로서 하느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라고 하신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자 한 것 같다.
언덕 위에는 배문환 신부 본가에서 조씨 형제 두 묘소를 잘 관리하여 성역화하고 있었다.
신부님 본가 후손들이 조씨 형제의 순교사실 자료들을 찾아서 현재까지 순교신앙을 전하고 있다.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게 한다.
순교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골고타 언덕을 올라간 분들이다.
스스로 2천 년 전에 이 땅에 강생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그대로 본받은 분들이다.
이들은 사랑의 실천자였으며 고통 없는 부활의 영광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았던 분들이다.
시신조차 거둘 수 없었던 순교자 조씨 형제
무덤을 지켜내고 있는 배문환 신부 본가
순례자들이 쉬었다가라고 아름다운 생가를 내어주는 후손
이 모두는 한 송이 사랑의 들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들꽃조차도 하느님이 내시고 기르시는 창조물이라 아름답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저자 헬렌 켈러가 남긴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2019. 3. 16 조씨 형제 순교자묘역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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