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정치관심 배격
군정 4년 연장 선언과 여야 정치인의 격돌 등, 그간 나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밤잠을 못 이루고 악착같은 우리의 이 정치 현실을 저주도 해보고 정치인들 욕도 해보고 나 자신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발표된,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약리학 교실 주임 교수인 이광수(李光秀) 박사의 2주간 모국 시찰 후 고국을 떠나는 인사말 가운데서 섬광과도 같은 영감 아닌 영감을 얻어, 이 역시 부끄러운 일이나 나의 신자로서의 우매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박사의 말씀은 국민이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여기 그의 글을 옮겨본다.
끝으로 국민들의 지나친 정치관심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각자가 자기 할 일에 전심전력 하고 정치에는 너무나 무관심한 것이 미국 사회이다. 불안정한 일반 국민 생활에도 원인은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지나친 정치 관심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참 부끄러웠다. 나의 정치적 관심, 그것은 따지고 보면 결국 밥이나 잘 먹고 옷이나 잘 입고 집칸이나 쓰고 살자는 본능적이고 안이한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정치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불충이요, 실로 모독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위(胃)와 관계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도의적 각성과 사명의 자각과 문화의 창조, 그리고 특히 민족 고유의 정신적인 사상, 철학, 종교의 배출 등 정신문화에 의한 인류사에 대한 기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어느 것 하나 정치나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실 정치의 여하를 막론하고 오직 국민 전체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부단히 자각적으로, 아니 희생적으로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우선 밥을 먹어야 하니 정치가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정치지상주의적인 국민이 내놓는 위대한 대답이다. 그것이 또한 우리 민족 4천년의 철학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정신력과 도덕성으로 여하한 현실에서도 국민이 자기 임무와 사명과 인간의 도리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이 때에 우리의 현실 정치도 진정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 이의 반대는 아니다. 그러므로 해방 후 우리의 이 천박한 현실이란, 일제시 반세기 동안 총독 정치 밑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여, 종교마저 정치적인 소위 민족 운동에만 열을 올려 골몰했던 데 깊은 인과적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을 걸고 국민의 정치적 메시아 운동을 거부한 까닭이다. 민중이 5천명을 빵 기적을 재차 요구했을 때 그는 영의 빵, 하늘의 빵으로서의, 즉 진리와 생명과 구원 자체로서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했던 것이다(요한복음 6장).
요새 신문에서 청년 정치인들이 인도의 국민회의 같은 이상정치를 말하는데, 그러면 우리에게 간디나 네루가 있단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다. 정치인이 불미한 지배욕이나 욕심에서 나라를 어지럽혀도, 그럴수록 믿음과 진리와 희생으로 이를 키워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아니 신자의 최대 애국인 것이다.
<성서연구> 제108호 (196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