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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DP·개인영성심화프로그램 7기 에세이)
소명의 빛을 따라 걸으며
김미경
영적 동반자로부터 PSDP 제안을 받았습니다. 메일로 보내주신 ‘더 깊은 영성생활로의 초대’를 살펴보며 ‘누구를 위한 프로그램인가? 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하나,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며 그 관계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둘, 지속적인 영성수련을 통하여 더 깊어지고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들. 셋, 매일의 관상적 삶을 위하여 정기적인 영적동반과 지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 넷, 진정한 영적 공동체와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 등등... “내 마음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내면의 욕구를 고스란히 적어 놓았습니다. 경제적, 시간적인 부담감이 컸지만, 마음을 먹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첫 전체모임에 앞으로의 일정을 소개 받으며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염려하는 마음도 올라오고, “내가 참여 하는 만큼 얻어 가겠구나!”싶기도 했습니다. 샬렘의 사명과 프로그램의 의도가 마음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언제 어디에나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영적훈련’ ‘각 사람의 고유한 은사와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과 신뢰로 응답하며 살기’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잘 안내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안내를 받으며 “녹녹치 않구나.”라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읽어야 할 책들과 과제들로 머릿속이 꽉 채워졌습니다. 집으로 돌아 와 생활공간에 기도의 자리를 만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톡방에 올라오는 곳곳의 기도처를 바라보며 “이제 시작됐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영성생활 규칙」을 작성 할 때는 일 년 단위의 긴 호흡, 규칙 세우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훈련을 마치는 지금 시점에 다시 돌아보니 꾸준히 실행 한 것 보다 놓치고 산 것이 더 많음을 보게 됩니다.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걸 맞는 미소를 지어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미소를 보내는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과 연결 된 그 사랑의 미소를 마음에 품었을 때, 느꼈던 온화함과 평화를 기억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을 닮았습니다. 의식해야지만 가능한 제가 배워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첫 눈 내리던 날 김오성목사님께서 “희망의 신비를 경험할 때 우리는 예기치 않은 선명함과 충만함에 스며듭니다...영적인 삶은 오로지 현재,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게 합니다.〈희망의 신비, p20〉”라는 글을 톡방에 올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카톡! 알림음이 왜 그리 가슴을 설레 게 하던지요. 청소하던 것을 멈추고, 먼 풍경을 바라봤었습니다.
제럴드 메이의 「사랑의 각성」은 몇 번이고 책을 되돌려 읽으며, 마음밭을 갈아엎었던 기억이 납니다. PSDP 바다를 항해 하는 데, 안전한 배를 타고 여행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습니다.
렉시오디비나 훈련과 침묵기도학교를 통해 배웠던 〈기도어린 경청〉 훈련은 이번 PSDP 과정을 통해 일상의 삶에,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 요청하기보다 듣는 기도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고, 사람들과 관계할 때, 판단이나 조언,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기보다 말하는 이가 자신의 내면을 더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 질문을 던지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어둠, 상처가 나의 개성이 되고,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용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침을 알게 되었습니다(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헨리 나우웬).
「마음 열고, 가슴 열고-토마스 키팅」 책을 통해 향심 기도 훈련을 하던 중에 ‘실수하기를 기대’하라는 대목에서 한참 머물렀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실수하면 안 된다.’라는 테마에 사로잡혀 살았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이들의 작은 실수도 웃어넘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참 유연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의지로 해야 한다는 착각이 나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장식으로 걸어 두고 살았나 봅니다. 과연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늘 갈증이 있었던 〈분별〉이란 주제를 훈련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는다.’는 안내가 마음에 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가 주어졌고, 어떤 영역에서 지도력을 갖는다.’ ‘지도력과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공동체에 의해서 확증된다.’는 안내 또한 위로함을 얻습니다. 그리고 영적 공동체와 공동 분별에 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결정 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안내를 인식합니다.
「분별-로즈 마리 도허티」 “하나님, 당신이 나를 보시듯이 내가 나 자신을 보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충만한 나 자신이었다고 느꼈던 내 인생의 때?”에 대해 계속 묵상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분별이 필요할 때, 공동체의 분별이 어려울 경우 “영적 동반자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에 두고 있는가?’를 인식하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분별〉에 대한 주제 훈련을 할 때 영화 ‘1987’를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변호사’ ‘택시운전사’ 등의 영화를 관람 하면서도 빚진 마음, 부끄러운 마음, 이 시대를 살며 “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가?”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던 기억이 납니다. 「분별력-헨리 나우웬, p144」 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사건들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에 관하여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놀라운 일은 때가 차야 알아볼 수 있다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종이니, 주님의 증거를 알 수 있도록 나를 깨우쳐주십시오. (시편119:125) ”라는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적 공동체의 특징이나 성찰 안내는 지금 머물고 있는 공동체를 진단해 보는 좋은 도구가 되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길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분별과 관련해 하나님께서 맺어 준 인연들, 영적 여정에 동행 해 준 지인들을 떠올리고, 그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피조세계 인식〉 훈련에서 읽게 된 「아씨시 프란치스코」의 삶은 낮아짐의 영성,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활동 안에 있으며,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나에게 되돌아 온다.”는 나눔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린 시절 동·식물들에게 말을 건네곤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했습니다. 늑대와 새들 모든 자연과 소통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마을의 동물들과 자연과 인사를 나누고, 숨을 나누는 순간을 마주하는 저를 봅니다. 일상의 아름다움, 경이로움과 경탄의 감정들을 회복하는 일이 영성이 깊어지는 길이고, 일상의 결을 다르게 만드는 길이 된다는 나눔에 동감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 네 방향의 기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새 땅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이 빚으신 나의 존재, 공동체 안에서의 나, 피조세계속의 나를 새롭게 성찰하게 했고, 기도의 변화, 지경이 확장됨을 느꼈습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사계절에 실은 ‘삶이 있는 앎(정양모 신부님의 말씀을 빌어...)’의 이야기가 참 아름다워 흥미롭게 봤습니다. 살아 숨 쉬는 계절의 장면 장면에 감탄하고, 너무 곱고, 능숙한 음식 만들기 솜씨, 삶을 마주하는 평온함(물론 삶의 고뇌와 고독이 영화에 녹아 있긴 합니다만...)에는 약간 시샘의 마음도 올라 왔습니다. 사람풍경,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잠시 여행을 떠나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살기〉 주제 훈련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았던 성인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나에게 영적 영향력을 끼친 성인들을 떠올리고 회상 해 보고, PSDP 여정을 함께 걷는 동반자들로부터 나에 대한 이미지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갑자기 던져 주신 성인에 대한 성찰은 잊었던 또 다른 나의 일부를 찾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적의 사명선언문」 작성은 소명을 찾는 데 재밌는 제시가 되었고, 소명과 은사에 관한 분별은 PSDP 초반에 성찰할 때 보다 더 큰 저항과 분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파커j. 팔머」를 통해 소명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부름의 소리이며, 나의 참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듣는 삶이고, 거룩한 삶의 실천임을 안내받았습니다.
PSDP 훈련 중에 〈경청모둠〉은 나를 성찰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흡족한 빈 방이 되어 주었습니다.
PSDP 기도어린 경청 모둠을 통해 각 개인이 던지는 질문, 고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친히 대화를 나눠 주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안전하다는 신뢰가 개인의 영성 돌아보기에 큰 영향을 미침을 경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안, 두려움, 이유 없는 날카로움과 사나움 등에 대한 성찰을 나누었고, 흘려보내야 할 것과 보물로 간직해야 할 것 등을 분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솔한 고백이 내 안에 울림을 만들고, 하나님께 시선을 드리는 자리를 만들게 됨을 느꼈습니다. 또 PSDP 기도어린 경청 모둠에서 나눔을 하며, 다른 동반자를 통해 듣게 되는 공간에 내가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고, 성직자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관상적 삶을 지향할 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 역할을 수행하게 됨을 느꼈습니다.
한 번이긴 했지만 김오성목사님과의 〈영적동반〉을 통해 갈등하고 있던 소명에 관한 어려움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PSDP 모임 할 때 마다, 우리들 가운데 아름다운 센터(중심 자리)를 장식해 주셨던 장면을 떠올리며, 주제 마다 훈련 했던 기도들을 되뇌어 봅니다.
* 새벽에 눈을 뜨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아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당신은 사랑이심을 고백하는 일상을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 잠들기 전 들숨, 날숨, 깊은 호흡을 통해 정결한 마음을 유지합니다.
* 씽크대, 냉장고 등 자주 머무르는 곳에 관상에 관한 인용문, 묵상 글귀 등을 붙여 놓고 반복적으로 되뇌이며(암송이 더 좋은데, 쉽게 잊어버립니다.) 일상생활 중에 인식하려 노력합니다.
* 영성생활 규칙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 누군가와 대화 할 때, 기도어린 경청을 인식합니다.
*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 사람들과의 교제 가운데 대화 단조로움을 느끼는 경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기도어린 경청을 인식하고 대화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바람이 불어 와 숨이 쉬어짐을 느낍니다.
* “과거로 돌아가지도 말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도 않으며,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 “나를 칭찬하는 것이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임”을 인식합니다.
*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를 일상생활 중에 호칭기도 합니다.
* “하나님! 밝은 빛으로 나를 비춰 주소서.
연약한 존재임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시고,
받아 들일 것과, 흘려보내야 할 것을 분별하게 하소서.
분노와 화가 아닌
주님이 주시는 평화, 인내, 사랑, 친절, 온유, 절제, 자비, 정의, 기쁨,
제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허락하시어
어둠을 대적하게 하소서. 끌어안게 하소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나를 내신 나의 전 존재를 감사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 하루에 다섯 가지 이상 ‘오늘의 감사’ 일지를 작성 하고 있습니다(만족 보다는 불만족스러움이 큰 마음밭을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 관상기도(향심기도)를 정해진 시간에 하려고 노력합니다.
훈련 주제와 기도 내용들을 돌아보며, 거꾸로 타는 자전거 영상을 떠올립니다.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향을,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Shalom(Peace be with you!), 평화와 정의 그리고 온전함을 향한 하느님의 꿈이, 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오디를 주신다는 교회 공동체 어머니회장님을 따라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인자한 웃음, 따뜻한 안내. 농사를 함께 짓는 아들이 어머니 간식이라며 안겨 주신 오디를 우리 가족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꽃과 하늘, 산을 올려다보며, 불현 듯 예수님과 동행하였음을 느꼈습니다. 그 감격스러움이 PSDP 여정을 마치는 지금 밀려옵니다.
2월에 강화도 양도면 삼흥리로 이사를 하고, 지역에 있는 작은 도서관 ‘자람’에서 만난 조○○님이 산문마을에 작가 김중미 선생님이 살고 계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깜언」이라는 청소년 성장소설에 산문 마을이 배경이고, 성공회 교회와 성직자 자녀도 등장인물로 나온다며, 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소설책을 정독하며 읽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을 풍경 곳곳을 상상하며 읽게 되고, 사람들의 내면 또한 아프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20대 중반에 강화를 떠나 40대 중반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 왔습니다. 운전을 하며 다니는 곳곳마다, 발을 내딛는 장소마다 “내가 살았던 강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이로움에 사로잡힙니다. 이사를 하며 가장 걱정 했던 것이 “PSDP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삶의 균형을 잡아 주는 샬렘의 영성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PSDP 여정을 열어 주신 하느님께, 영적 동반자에게, 가족에게, 모든 상황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마음 담아 이렇게 인사를 건넵니다.
모두 깜언!!(베트남어, ‘고맙습니다.’라는 뜻. 김중미 작가 「모두 깜언」 중에)